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199화 (199/430)

 199화

[11회차] 혼돈+파괴+망각=?

“피해자는 난데 왜 소리를 질러.”

저 중학교 학생회장이, 있지도 않은 여자친구 행세하는 바람에 새하얀 내 마음에 시커먼 멍이 들었다.

즉, 화를 내야 하는 건 나다.

내가 호구 같은 MAX급 용사님이라서 참아주는 거다.

“이상한 건 당신이에요! 저처럼 능력 좋은 미녀를 여자친구로 삼지 못해서 안달인 남자가 중등교육장에 얼마나 많은 줄 아시나요? 과장 하나 안 보태고 줄을 섰습니다.”

“공략할 차례를 기다리는 B급 남자친구가 많아서 좋겠네. 수성(守城)하기 바빠서 하루도 지루할 날이 없겠어.”

“으으….”

학생회장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건 한순간이었다. 손바닥 뒤집듯 표정을 화사하게 바꾼 그녀는 본론을 꺼냈다.

“강한수 씨의 중등교육과정 입학시험장에 남은 5대 재앙 중에서 둘을 재학생과 학생회 임원들이 토벌했어요. 단 한 명의 사망자와 낙오자도 없이 깔끔히 처리했지요! 대단하지 않나요?”

“총원이 몇 명이었는데?”

“100명이요.”

“참 많이도 동원했네. 동시에 50명씩 투입해서 각개격파한 건가?”

“에…. 아니요. 차례차례 토벌했어요.”

어린 초등학생도 아니고, 중학생씩이나 되는 연놈들이 무더기로 우르르 몰려가서 5대 재앙을 처치했단다. 그걸 자랑하기까지?

어찌 이리도 뻔뻔하고 비열할 수가!

“그런데 왜?”

그 치졸한 수법은 잘 들었다. 하지만 자기들 멋대로 난입해서 5대 재앙을 토벌한 이유를 아직 듣지 못했다.

“판타지아 대륙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신질환을 앓는 초등교육생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탓입니다. 그런 후배들의 미래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선배인 저희가 투입됐어요. 중등교육생들에게조차 벅찬 이 교육장을 폐쇄하기 위해.”

“너희가 보모니?”

애초에 내 동향들은 평화로운 고향별 지구에서도 사회부적응자로 찍힌 인생의 패배자들이었다.

다른 별에서 또 적응 못 하는 게 이상한 일인가?

그들은 최약체 고블린이 너무 강해졌다고 하소연하지만, 내 1회차도 시작부터 압도적 강자인 알렉스에게 인권을 유린당하며 평온한 날이 없었다.

그렇게 1년을 보낸 뒤는 또 어떻고?

사사건건 참견하며 발목 잡고 민폐나 끼치는 동료들이 온종일 나를 괴롭혔다. 일만 벌이고 수습할 줄 모르는 그 연놈들 때문에 죽을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당시에 느낀 압박감은 엄청났다.

한 번 죽으면 영원히 끝인 줄 알았으니까.

반면, 이 입학시험장의 용사들은 죽어도 부활한다는 사실을 안다. 가상현실게임 한다는 기분으로 부담감이 전혀 없다.

완전히 애들 장난이잖아?

이런데도 적응하지 못한다면, 자기 종족이 정말로 인간인지, 다리 밑에서 주워온 요정인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보모는 아니지만, 후배들이 아니더라도 꼭 필요한 조치였습니다. 이 입학시험장에서 너무나 많은 힘을 할당해간 탓에 초등교육장만이 아니라 중등교육장까지 교실 생성에 제한이 걸렸거든요.”

“그래서 내 교실을 부수러 왔다?”

“에…. 해석하기에 따라서 그렇게 들릴 수도 있겠네요.”

중학교 학생회장은 정의감 넘치는 MAX급 용사님의 찬란한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죄인처럼 시선을 피했다.

“토벌하는 김에 중앙대륙도 하지 그랬냐?”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중앙대륙의 뇌비우스 토벌을 의논하기 위해 강한수 씨를 찾아온 거예요. 다양한 전략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저희만으로는 피해 없이 힘들 것 같아서요.”

“전멸이 아니라?”

“호호!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당신이 중등교육생 개개인보다 강한 건 인정하지만, 중등교육장 학생회의 힘을 무시하진 마세요. 제가 강한수 씨를 찾아온 건, 굳이 감수할 필요 없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자존심을 접고 제안하는 것뿐-.”

“잘 가.”

“...네.”

학생회장은 군말 없이 떠났다.

그녀도 내심은 내 협력을 받길 그다지 원치 않았던 듯했다.

“용사. 조금 전의 그 밥맛 떨어지는 여자는 누구지? 뻔히 약혼녀가 있으면서 여자친구라니! 네가 그러고도 정의로운 용사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가?”

도적E가 경계의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며 물었다.

“아니라고 했잖아.”

“약혼녀 앞이라고 얼버무리려는 거 아닌가?”

“내가 네 눈치를 볼 것 같아?”

“...묘하게 설득력 있어서 기분 나쁘다.”

산전수전 다 겪은 용사님의 완벽한 정론(正論)에 찍소리도 못하고 수긍한 도적E가 순순히 물러났다.

그나저나….

“동대륙과 북대륙에 갈 필요가 없어졌네.”

5대 재앙이 없어도 아들을 보러 북대륙에는 갈 의향이 있지만, 도착하기도 전에 이 입학시험장이 종료될 것 같았다.

그것도 금방.

쿠구구구-

판타지아의 대지와 하늘이 공포에 떨듯 진동했다.

이 파동의 근원지는 북쪽.

굳이 확인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벌써 시작됐나.”

5대 재앙의 수좌, 망룡왕 뇌비우스.

중앙대륙의 신성제국이 지키고 있던 성물의 ‘시간 정지’에서 풀려난 최고룡이 마침내 눈을 떴다.

그 개막식 또한 실로 요란했다.

촤아아아-!

북쪽 하늘에서 핵폭발처럼 치솟은 버섯구름. 그 직후에 시커먼 독가스가 판타지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역시, 나의 친애하는 전우답구먼.”

그것은 잠에서 막 깨어났다고 알리는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종말을 통보하는 장엄한 연설이었다.

누구에게?

Everyone~

대륙의 모든 생명체가 죽었다.

*

털썩.

방금까지 내 옆에서 조잘대던 도적E가 뽕으로 부풀린 가슴을 부여잡더니 맥없이 허물어졌다.

여기까지 나를 태워준 메두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이?”

“......”

“......”

내 부름에도 대답이 없는 그 둘이 다시 움직이는 일은 없었다.

“흠…. 전형적인 독살이로군.”

내가 있는 곳은 남대륙에서도 최남단이다.

망룡왕 뇌비우스가 중앙대륙 북부를 지배하는 신성제국에 봉인되어 있었다는 걸 고려하면, 우리는 그 전장에서 가장 먼 땅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독가스에 죽었다.

흔한 몬스터인 메두사는 몰라도, 도적E는 절대 약하지 않았다. 심지어 독의 면역력을 키워주는 해독(解毒) 스킬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평등한 죽음.

그 공명정대한 판결에 용사인 나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전황은…. 오! 볼 수 있군.”

중등교육생들도 ‘학생’ 신분인 덕분이다.

나는 그림자A의 교사 권한을 이용해서 중앙대륙의 전장을 생생하게 관전할 수 있었다.

505명의 초등교육생은?

부활과 죽음을 반복하고 있었다.

안전한 도시와 마을에서 부활해도 독가스에 바로 죽어버리는 악순환. 그들의 레벨과 스킬 등급이 급속도로 내려가고 있었다.

중등교육생들은 확실히 달랐다.

미리 준비한 해독 물약과 본연의 능력으로 망룡왕 뇌비우스의 맹독 숨결에 저항한 그들은, 병든 닭 같은 얼굴이긴 해도 낙오자 하나 없이 비열한 우정의 힘에 가담했다.

꽤 하찮아?

하지만 연약한 판타지 세계는 아니었다.

치이이….

스르르….

망룡왕 뇌비우스가 숨결을 내뱉을 때마다 살포되는 독가스가 진해졌고, 판타지아 대륙의 모든 것들이 소프트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며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산, 나무, 강, 바위, 요정, 거인….

예외는 없었다.

바다도 먹물처럼 시커멓게 변했다.

죽어서 물 위에 뜬 인어 1마리 찾아볼 수 없었으며, 냄새마저 녹아내렸는지 바다 특유의 비린내조차 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혼돈, 파괴, 망각이로군.”

망룡왕 뇌비우스는 세계를 무(無)로 되돌렸다.

올해 안에 세계를 파멸시킨다고 용사에게 신년계획을 프레젠테이션하는 게 아니다. 용사가 이기면 그럴싸한 계획이 무산되면서 세계가 안전해지는 전개도 아니다.

전투의 시작과 동시에 세계멸망!

용사가 이기든 지든 결말은 정해져 있다.

“마약 용사. 혼자만 보지 말고 내게도 해설해줘라!”

내 머리에 앉은 최초의 정령이 발뒤꿈치로 내 이마를 두드리며 재촉했다. 이 지독한 맹독도 정령은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다.

“두 번 말하지 않을 테니 잘 들어. 비열한 중학교 용사들이 망룡왕을 깨우기 전에 미리 설치해둔 함정과 우정의 힘으로 압박했어. 막 깨어나서 상황파악을 못 한 망룡왕이 단숨에 수세에 몰렸지.”

“오….”

“하지만 숨결 한 방에 상황이 뒤집혔어.”

같은 용사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비겁한 용사들은 우정의 힘으로 망룡왕을 압박했다.

이에 망룡왕은 ‘협찬의 힘’으로 극복했다.

판타지아 세계에 사는 모든 생명체가 망룡왕 뇌비우스에게 경험치를 나눠줬다. 거대한 몬스터부터 작은 미생물까지.

그렇게 쌓인 힘은 실로 방대했다.

‘이, 이건 절대로 못 이겨….’

‘맙소사! 이런 시뮬레이션은 없었잖아!’

‘회장님! 지금이라도 후퇴- 아악?!’

‘독가스에 좌표가 일그러져서 공간이동이 안 돼!’

‘예상은 했지만, 힘의 편차가 너무 심해!’

절망에 찬 중학생들의 사념이 끊이지 않았다.

안 그래도 강했던 망룡왕 뇌비우스는 레벨이 폭등하며 더욱 강해졌고, 비열한 용사들은 하나둘 비참하게 죽어갔다.

성검? 전술? 협공? 비기? 우정? 사랑?

그 무엇도 이 용을 막지 못했다.

판타지아 세계의 모든 경험치를 흡수한 존재를 얄팍한 수단으로 이기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콰앙! 쾅! 퍼어엉!

망룡왕 뇌비우스가 날갯짓하면 바람의 정령마저 버티지 못하고 훨훨 날아갔고, 착지하는 것만으로도 가파른 산맥이 평야로 바뀌었다.

맹독에 녹아내린 대지는 발 디딜 틈 없는 죽음의 늪이었고, 독가스로 시커먼 하늘은 망룡왕 뇌비우스를 제외한 그 어떤 비행체도 용납하지 않았다.

만약, 능력치 뻥튀기로도 해결 안 된 노안(老眼)만 아니었다면, 용사들은 망룡왕의 숨결에 진즉 녹아버렸을 것이다.

빗나가도 피해 범위가 넓고 강력해서 별 의미 없었지만.

그 여파에도 빌빌거리는 용사들의 상태는?

‘나쁜 놈! 전멸할 줄 알았으면 좀 도와주지! 나처럼 예쁘고 잘난 여자친구가 자존심 접고 간절히 부탁하는…. 꺄읏?!’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버틴 학생회장과 그녀의 친위대를 끝으로 중학생들의 발악도 막을 내렸다.

이제 이 세상에 남은 건….

“흠. 나뿐인가?”

이까짓 공격에는 몰랑거릴 필요도 없는 위대한 마스터 몰랑을 걱정하는 건 불경죄니 논외로 치면, 판타지아 대륙의 실질적인 생존자는 나 혼자라고 봐야 했다.

중등교육생들이 다 죽는 바람에 이젠 전황을 살필 수 없었다.

망룡왕 뇌비우스가 뭘 하는지 파악이…. 음!?

콰아아앙-!

마스터 몰랑의 참교육 이후로 이런 고통은 처음이었다.

제대로 반응할 틈도 없었다.

“Chaooo.”

“안녕, 친구. 인사가 참 화끈하네. 끙….”

항공모함에 후려맞으면 이런 기분일까?

그게 고작 손가락 하나였다.

중등교육생들을 몰살시킨 망룡왕 뇌비우스는 곧장 이곳으로 날아온 듯했다.

마지막 용사를 처리하기 위해.

승리를 만끽하거나 휴식 따위는 안중에 없는 모양이다. 참으로 한결같은 패왕이다.

▷종족: 카오스 드래곤

▷레벨: 9999+

▷직업: 패왕(정벌→패기↑)

▷스킬: 패기ZZZ 혼돈ZZZ 파괴ZZZ 망각ZZZ 몰살ZZZ 맹독ZZ 면역ZZ 변신ZZ 비행ZZ 지배ZZ 불사ZZ 광기ZZ 내성ZZ 근력ZZ 맷집ZZ 어둠ZZ 오감ZZ 민첩ZZ 투기ZZ 자유Z…

▷상태: 졸음, 몽롱, 황혼

“Chaoooo….”

졸면서 용사들을 몰살시킨 칠흑빛 고룡이 화산에 처박힌 나를 물끄러미 관찰했다.

노안 때문에 바라보는 시선의 각도가 조금 어긋났지만, 그걸 따지기에는 상황이 썩 좋지 않았다.

우주의 협찬은?

탁! 탁! 탁! 탁!

우주에서 배달된 운석들이 망룡왕 뇌비우스의 넓은 등판에 부지런히 꽂히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소나기를 맞는 이구아나?

서대륙에 광명을 가져다줄 정도로 강력했던 운석들이 이 용의 칠흑빛 비늘과 날개에는 흠집 하나 내지 못했다.

자연재해 같은 존재에게 자연재해는 무의미했다.

“그래도 해보자구, 친구.”

“Chooo…?”

체급에서 너무나 불리했지만, 친애하는 망룡왕 뇌비우스의 전우로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그리고 부족한 몸집은 키우면 된다.

내 정령의 힘으로!

휘이이잉~!

사랑, 우정, 사기, 날조, 희망. 5가지 힘이 하나로 합쳐진 내 야망의 결정체가 이 야만적인 세계에 강림했다.

이름하여,

“오라. 캡틴 판타지.”

“Chooo…!”

우리의 행성 터질 법한 우정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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