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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급 관심용사-203화 (203/430)

 203화

[12회차] 정정당당하게!

이전에는 나라들의 중추 역할을 맡고 있던 악마숭배자들을 마기로 복종시키면서 간단히 점령했었다.

하지만 영재ZZZ를 올리기 위해 마기를 갈아버린 지금, 내가 취할 수 있는 수단은 약간의 폭력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정의로운 용사.

쿠데타 같은 저열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딸랑-♪

침대 옆의 줄을 당겼다.

내가 방의 디자인을 보고 마음에 안 들면 곧바로 부를 거라고 예상했던 걸까?

나를 이곳까지 안내해준 귀족 영애가 하녀 대신 들어왔다. 그녀는 화사한 미소를 유지한 채 입술을 뗐다.

“용사님. 무엇이 필요하신가요? 목욕? 식사? 아니면…. 저?”

목욕은 불필요하다.

내 겨드랑이에 붙은 물의 정령이 언제나 청결을 유지해주기 때문이다. 빨래도 할 필요 없다.

식사는 글쎄?

생체 원자력발전소나 다름없는 내 소화기관은 효율이 굉장히 뛰어나다. 그런데도 높은 활동량 때문에 열량 소모가 무지막지해서 식사는 꾸준히 하는 편.

그러나 지금은 우선순위가 낮다.

“영애가 필요합니다.”

“어머!”

내가 정말로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올 줄 몰랐던 걸까? 뺨이 순식간에 빨개진 영애는 주춤했다.

그러나 한순간일 뿐.

귀족 가문의 여인답게 표정 관리가 뛰어났다.

도발적이면서도 그윽한 눈빛이 된 귀족 영애가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탄탄한 가슴께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다.

나는 잘록한 허리를 코르셋으로 더욱 조인 귀족 영애의 요추(腰椎) 4번과 5번 사이에 오른팔을 두르며 내 쪽으로 당겼다.

그녀는 못 이기는 척하며 내 넓은 품에 안겼다.

“부탁할 일이 있소.”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까치발을 든 귀족 영애의 뜨거운 숨결이 내 귓가를 간질였다. 내 어깨에 앉아있는 최초의 정령은 안중에 없는 듯했다.

“내가 이 나라의 진정한 정통후계자임을 소문 내주시오.”

“네…. 네?”

“나는 평범한 용사가 아니오. 판타지아 북대륙을 통일한 위대한 황제의 피가 내 몸에 흐르고 있지. 내 말을 믿소?”

“...물론입니다, 나의 용사님.”

꿈꾸는 소녀처럼 두 눈이 몽롱하게 풀린 귀족 영애가 공손히 대답하고는 내게서 살짝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드레스 끝자락을 양손으로 살포시 쥐고는 귀족 예법에 맞춰서 우아하게 인사했다.

“성스러운 용사님께 소녀의 충성을 바칩니다.”

“고맙소.”

응. 아주 고마워!

스킬 날조를 어렵게 올린 보람이 있었다.

▷종류: 스킬

▷명칭: 날조

▷등급: Z(54%)

▶ZZ: 신으로 둔갑한다.

▶Z: 신의 호소를 이긴다.

▷SSS: 가족으로 둔갑한다.

▷SS: 애인으로 둔갑한다.

▷S: 친구로 둔갑한다.

▷A: 증인으로 둔갑한다.

▷B: 가족의 호소를 이긴다.

▷C: 애인의 호소를 이긴다.

▷D: 친구의 호소를 이긴다.

▷E: 증인의 호소를 이긴다.

▷F: 거짓이 그럴싸해진다.

왕으로 둔갑한다는 편리한 옵션은 없지만, 왕의 가족이 되면 이것도 아귀가 대충 맞아떨어진다.

물론, 날조도 만능은 아니다.

지나치게 심한 거짓말은 높은 확률로 실패한다.

하지만 나는 0.1%의 가능성만 있어도 100% 성공하게 도와주는 ‘우주의 총애’를 받고 있다.

여기에 신성Z의 효과까지.

빼꼼.

아! 깜빡했다.

여기에 마음의 정령이 가세했다. 최초의 정령이 왕으로 임명했다고 했으니, 마음의 정령왕이라고 해야 할까.

내 눈에는 성희롱을 즐기는 변태 정령일 뿐이지만,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일한 공을 높이 사서 정령왕으로 불러주겠다.

나머지 녀석들? 일하고 요구해라.

“영애. 나를 도와주시겠소?”

“진실을 알게 된 이상, 소녀는 용사님의 호의와 배려를 감당하기 어렵사옵니다. 부탁하지 말고 명령해주소서.”

“그러지. 이 나라의 왕비를 이곳으로 불러와라.”

방법은 설명하지 않았다.

내게 충성을 맹세한 이 귀족 영애는 뒷감당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내 명령을 달성해낼 것이다.

물론, 그녀를 쓰고 버릴 생각은 없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은 유능한 부하를 믿지 못하는 겁쟁이나 하는 저열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네. 나의 주군이시여.”

근육질 기사도 아닌 귀족 영애에게 너무 큰 임무를 준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귀족 사회의 여성은 절대 그 지위가 낮지 않다.

귀족은 명분으로 움직이는 족속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전부 집어삼킬 만큼 압도적인 힘이 있지 않은 한, 귀족들은 하찮은 평민과 노예를 죽일 때도 이유를 꼭 넣는다. 그 이유가 아무리 억지라도 말이다.

이때, 귀족 여성들이 힘을 발휘한다.

그녀들이 풋풋한 ‘꼬마 아가씨’라고 불릴 때부터 쌓아온 인맥과 친분이 억지스러운 명분들을 그럴싸하게 포장해준다.

가문을 위해, 남편을 위해.

똑똑. 얼마 안 지나서 만두 왕국의 왕비가 정말로 내 침실로 찾아왔다.

만두 왕국 최고의 미녀로 손꼽히는 그녀의 얼굴에는 지울 수 없는 불편함으로 가득했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림자A도 말했지만, 이제 막 소환된 용사가 한 나라의 어머니에게 오라고 하는 건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다. 하물며 그녀는 유부녀이기에 건장한 수컷의 침실을 막 드나들 수 없는 몸이다.

하녀들의 입단속을 잘못하면 추문이 돌 터.

나도 잘 안다.

내 판타지 경력이 벌써 환갑(還甲)인데 모를 리가.

“용사님.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나요? 중요한 용무가 아니라면 간단히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길. 매우 중요한 용무입니다, 왕비님.”

설득하는 과정은 귀족 영애랑 같았다.

하지만 악마숭배자인 왕비를 이대로 놔둘 순 없었다. 내게 스킬 마기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언젠가 악마의 명령을 받는 꼭두각시로 전락한 그녀가 내 뒤통수를 칠 터.

빠르게 제거하던가 복속시켜야 한다.

내 선택은?

“아읏?! 이, 이 불쾌한 힘은 설마…!”

“그 설마가 맞습니다, 왕비님.”

“꺄아아앗~?!”

뼛속까지 스며든 마기를 강제로 적출당한 왕비가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그녀의 시중을 드는 시녀 또한 악마숭배자였기에 같은 신세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들을 구해주지 않았다.

왕궁을 방문하는 귀한 손님들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방음처리가 잘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 고통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식은땀과 함께 위아래로 액체를 줄줄 흘린 그녀들의 얼굴은 금방 평온해졌다.

그리고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아! 신성한 분이시여!”

“존귀한 분께 인사드리옵니다!”

신성Z와 날조Z의 환상적인 콜라보! 여기에 실패 확률을 삭제해주는 우주의 총애까지.

새끼 용 먹기나 다름없다.

▷종류: 스킬

▷명칭: 신성

▷등급: Z

▶ZZ: 신성한 응징을 행사한다. (35%)

▶Z: 아무튼 신성하다.

▷SSS: 경배받는다.

▷SS: 신성한 반사를 행사한다.

▷S: 일반속성 공격을 무시한다.

▷A: 찬양한다.

▷B: 마기를 정화한다.

▷C: 신성한 방어를 행사한다.

▷D: 축복한다.

▷E: 마기를 견뎌낸다.

▷F: 신성한 공격을 행사한다.

그러나 내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귀족 영애는 왕비를 내 작업장(침실)까지 끌고 오는 것으로 임무를 완수했기에 더는 신경 쓸 필요 없지만, 만두 왕국의 여성들을 대표하고 유행을 선도하는 왕비의 역할은 이제부터 시작이기 때문이다.

▷종족: 휴먼

▷레벨: 164

▷직업: 왕비(총애→마성↑)

▷스킬: 매력A 기품B 마성C 사교D 마기E···

▷상태: 불쾌, 진노, 경계

이랬던 왕비는 스킬 마기를 잃고 큰 타격을 받았다.

왕국 최고 미녀란 명성이 무색하게 탄력이 줄어든 피부로 국왕의 침소로 들어갔다가 퇴짜를 맞으면 내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그렇기에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종족: 휴먼

▷레벨: 104

▷직업: 왕비(총애→마성↑)

▷스킬: 신성A 매혹A 기력B 마성C 애교D···

▷상태: 경배, 전율, 축복, 강화, 세례···

신성Z를 포함해서 내가 보유한 보조계열 스킬의 효과를 퍼부어서 왕비의 능력치를 끌어올렸다.

그녀의 메인 스킬이라고 할 수 있는 스킬 ‘매력A’는 원래 건드릴 수 없지만, 신성을 그 이상으로 주입해서 두 번째로 끌어내렸다. 그런 후에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혹A’로 수정했다.

대충 한 것치고는 완성도가 높은걸?

“왕비.”

“네. 나의 주(主)여.”

“거짓된 왕을 네 사랑의 노예로 만들어라. 내가 우매한 백성들의 지지를 받으며 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될 때까지 남편의 눈과 귀를 가려라.”

“비천한 소녀의 몸과 열의를 다 바쳐서 꼭 완수하겠사옵니다.”

왕비와 시녀가 공손히 물러났다.

만두 왕국의 안주인인 왕비를 내 편으로 끌어들인 이상, 이 나라의 모든 여성이 내 아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당장은 아니다.

왕비가 귀부인들만의 사교 파티를 주최하고 야금야금 세력을 확장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마약 용사. 질문이 있다.”

“뭔데?”

“그 만두처럼 생긴 왕을 세뇌하면 간단하잖아? 그런데 이처럼 번거롭게 돌아가는 이유를 모르겠다.”

“용사니까.”

야만적인 폭력으로 억압하면 반발이 생긴다.

왕을 꼭두각시로 만들더라도 귀족과 기사들이 따르지 않으면 그 나라는 엉망진창이 된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돌아가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

1회차 때 경험이다.

울컥한 동료들이 마음에 안 드는 왕이나 수장을 제거한 후, 정의(正意)를 가장한 군사정권과 공포정치로 나라와 조직을 망쳐놨다.

그 뒷수습은 언제나 내 몫이었고.

“인간은 너무 복잡하다.”

“정령이 지나치게 단순한 거겠지.”

지독한 수직구조의 계급체계다.

내가 그 꼭대기에 있어서 별말 안 하는 거다. 하급이나 중급 정령이었으면 진즉 쿠데타를 일으켰을 것이다.

“마약 용사. 쿠데타라면 진즉 일으켰었잖아! 그 손가락과 마약으로 정령들을 몽땅 노예로 만들었다. 그런데 했다는 자각조차 없었다니! 양심이 있긴 한 거냐?”

“너희가 자발적으로 항복했으면서 무슨. 진실을 날조하지 마라.”

“너에게만큼은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내가 뭘 어쨌-”

선동F→선동D

한계돌파 제물로 갈아서 없어졌던 스킬 선동이 새롭게 생성됐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등급이 오르기 시작했다.

왕비가 벌써 일하는 모양이군.

“이제 옆집인 성왕국으로 간다.”

“벌써?”

“놀랐냐, 마약 정령. MAX급 용사님의 업무처리 속도에.”

나는 정정당당하게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겠다.

*

만두 왕국을 무턱대고 떠나는 건 아니다.

중앙대륙을 통일하고 거대한 제국을 세우기로 마음먹은 이상, 이 땅도 언젠가 내가 지배하게 되니까. 악마숭배자나 비밀결사 같은 내부 문제가 남아있으면 그때 걸림돌이 된다.

그러나 만두 왕국은 신경 쓸 필요 없다.

“먼저 온 친구들이 열심히 일했네.”

나보다 앞서 소환된 5명의 용사가 만두 왕국의 문제를 싹 처리해놨다. 5명이라서 아주 사소한 것까지 말끔히 정리했다.

악마숭배자인 왕비 빼고.

왕의 총애를 받는 왕비를 처벌하려면, 나라를 통째로 엎어버리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2회차 때 그랬듯이.

하지만 이 방식은 충성심 높은 왕궁기사단장인 알렉스가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즉, 왕비를 건드리려면 알렉스부터 처리해야 한다.

동료 1명이 귀한 용사들에게는 힘든 일이다.

“마약 용사. 성왕국은 어떻게 접수하려고? 너의 비열한 스킬 콤보는 잘 알지만, 성왕국의 중추인 성기사와 성녀는 신앙심이 투철하고 특별한 가호를 받고 있다. 정신방어를 뚫을 수 없어.”

“알아.”

내가 60년 경력의 용사다! 그 정도도 모를까!

지저분한 하수구에 갇힌 채 나이를 총배설강으로 먹은 정령보다 못하다고 착각하면 곤란하다.

“이 우주에서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최초의 정령을 무시하는 존재는 세상에 너뿐일 것이다, 마약 용사. 천벌이 무섭지…. 하늘이 네 편이구나?! 끙….”

최초의 정령이 원통하다는 듯이 부들부들 떨었다.

우리는 성왕국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여행경비는 왕비가 설득할 것도 없이 만두 국왕이 흔쾌히 내줬다.

다만, 라누벨과 알렉스 같은 감시자도 없이 혼자 보내는 것을 대단히 탐탁지 않게 여겼다.

이때 왕비가 힘을 써줬다.

번쩍!

그 덕분에 나와 잡것들은 마탑의 공간이동 마법진을 활용하여 순식간에 성왕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리 연락을 받은 성녀A와 그녀의 호위기사이자 성왕국 최강인 영웅T가 대기하고 있었다.

영웅T. 이름은 토마토.

루크가 가르쳐준 뒤부터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성왕국에 오신 용사님을 환영합니다. 예지몽을 꾸신 용사님께선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신께 과분한 사랑을 받는 성녀. 그리고 이쪽은 성왕국의 영웅이신 토마스 성기사단장님입니다. 그런데 용사님은 정말 미래를 아시는 건지요? 아신다면 성검의 시험부터 통과한 후에 절 찾아오셔야 한다는 사실을 알 텐데요.”

성녀A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올려보며 추궁했다.

제법 일리 있는 추리로군?

하지만 최초의 정령도 그렇고, 이 건방진 성녀도 그렇고, 용사란 직업을 너무 얕잡아보는 것 같다.

준비성 없는 용사는 용사가 아니다.

단순한 사회부적응자지.

뿅!

“성녀여. 용사의 시험을 받을 준비가 되었는가?”

성검 뉴클리온.

더 무슨 말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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