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217화 (217/430)

 217화

[12회차] 인어왕

하지만 내가 정말 찾으려는 바다인어는 이 수호자가 아니다. 수호자란 직업은 이름 그대로 무언가를 수호하는 경비원 같은 존재니까.

내 목적은 이 안쪽에 있다.

스르륵….

스륵….

해초와 산호 등으로 가려져 있던 입구가 수호자의 접근을 인식하고 자동문처럼 좌우로 벌어졌다.

그냥 부수고 들어가도 된다. 하지만 도난방지 시스템 같은 게 발동해서 목표로 하는 것을 파괴해버리면 허탕 치게 된다.

안전이 최고잖는가?

나는 변수 없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휘유~ 전에 보았을 때도 느꼈지만, 포르말린에 담가서 소장하고 싶은 인어야.”

성검2를 끌어안은 채 죽은 바다인어.

내가 이곳에 온 진짜 이유다.

▷종족: 카오스 머메이드

▷레벨: 1

▷직업: 해왕(바다→가호↑)

▷스킬: 가호Z 파괴SS

▷상태: 경직, 수호, 시체, 보관

울룰루가 ‘담수(淡水)의 왕’이라면, 성검2를 끌어안은 채 죽은 이 바다인어는 ‘염수(鹽水)의 왕’이었다.

친애하는 전우인 망룡왕 뇌비우스처럼 ‘패기’가 넘쳐서 ‘패왕’이라는 직업이 생기기도 하지만, 이 인어나 울룰루처럼 지리적인 지배자로서 ‘해왕’ 같은 직업을 얻기도 한다.

▶깜짝: 정말로 성검이네요! 골렘의 그 은밀한 소켓에 넣은 에고소드 성검도 그렇고, 강한수 생도님은 정말 모르시는 게 없네요.

교생 아가씨는 몰랐던 모양이네?

▶긍정: 학창시절에는 보지 못했어요. 교생으로서 열람할 수 있는 자료집에도 오토매틱 성검 외에는 없었거든요. 물론, 친구와 선배들이 말해줘서 성검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고 듣긴 했지만요. 하지만 어차피 봉인해서 꽁꽁 감춰둘 무기를 왜 교실에 구현해놨는지는 모르겠어요.

혼자 고민하지 마, 교생 아가씨. 이마에 주름 생긴다구?

그걸 설명해줄 프로그래머가 옆에 있다.

“성검 러브에이드. 고대어로 ‘애인을 강화하는 검’이야. 소유자의 사랑하는 감정에 비례해서 무한정 강해지는 로맨티움 합금인데, 분할돼서 그 힘을 1%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야. 써봤다면 알겠지? 증폭 효과가 있어. 구현된 이유? 파괴하긴 아깝고, 남의 손에 들어가는 것도 원치 않아서 잘게 쪼개둔 거야.”

“과연….”

쏘시아가 하려는 말을 잘 알겠다.

이걸 계륵(鷄肋)이라고 하던가?

“하지만 이 인어가 누군지는 모르겠네. 인어라는 종족이 원래부터 아름다운 편이긴 했지만, 이 인어는 그중에서도 특별해. 외모만으로도 절대 평범할 수 없는데…. 누군지 모르겠네. 붙잡고 있는 수호자에게 물어보는 게 어때?”

“그럴까? 야, 물고기. 읊어봐.”

“.....꺅?! 흑흑! 저, 절대로 말하진 않을 거예요!”

수호자 인어가 입술을 꾹 다물기에 지느러미를 살짝 찢어줬다. 그랬더니 바로 비명을 지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하지만 굉장히 아파하면서도 말하지 않았다.

“귀찮게 하네.”

“흑흑! 훌쩍!”

하지만 상관없다.

비열한 악당도 배려하는 호구 MAX급 용사님은 고문하는 취미가 없으니까. 뇌에서 정보를 직접 끄집어내는 편을 선호한다.

이번에는 그보다 더욱 쉬운 방법을 골랐다.

“찰떡.”

“일어나라. 나의 종이여.”

신앙이 신의 경지에 도달한 성녀H는 평범한 성녀랑 격이 다르다.

치유사에게 경험치(치료비)를 줄 수 없는 1레벨은 민간요법이나 약으로 부상을 치유하고, 부활은 아예 꿈도 못 꾸는 게 판타지아 대륙의 상식이다.

하지만 그녀는 다르다.

자기 경험치를 깎아서 부활시키기 때문이다.

단, 그렇게 부활한 대상은 그 경험치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성녀H에게 절대복종하게 된다.

“아…?”

감겨있던 눈을 천천히 뜬 바다인어는 파도처럼 상쾌한 미성(美聲)으로 감탄사를 터트렸다.

▷종족: 로열 머메이드

▷레벨: 999+

▷직업: 해왕(바다→가호↑)

▷스킬: 가호Z 매력MAX 마성MAX 노래F 유혹F…

▷상태: 부활, 수호, 보관, 혼란, 종속

예전에 페스티벌에서 보스K가 죽었다가 살아나면서 ‘카오스 엘프’가 사라지고 ‘그랜드 엘프’가 됐었다. 이 인어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압도적인 미모 때문에 부활하자마자 스킬 매력과 마성이 MAX급까지 뻥튀기했다.

혼란스러워하는 얼굴조차 황홀하다.

반면, 수호자 인어의 얼굴은 겁에 질려 있었다.

“당신의 이름은 뭔가요?”

성녀H가 차분한 어조로 질문했다. 하지만 그것은 질문을 가장한 절대명령이었다.

거부권이 없는 바다인어가 바로 답했다.

“저는 19대 인어왕 포세라니안. 지상의 친우가 맡긴 성검 러브에이드를 보관하는 검집이기도 합니다.”

“반가워, 포메라니안.”

신기하다. 인어 이름이 옆집에서 키우던 애완견이랑 품종이 같네?

“제 이름은 포세-”

“닥쳐. 용사님이 말씀하시는데 끊지 마.”

“죄, 죄송합니다….”

몸을 움츠린 포메라니안이 바로 사과했다. 다짜고짜 내 기억을 지우려고 한 어떤 인어보다는 예의가 있다.

“부활한 걸 축하해, 인어왕 포메라니안. 너에게 아직 인어들을 복종시킬 권한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실패하더라도 내년에 완공될 해수욕장에서 키워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아, 네. 감사합니다? 저를 키워주신다는 용사님께 감사해야 하는 상황인 거 맞죠? 이제 막 부활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감을 못 잡겠거든요….”

“맞아.”

“그, 그렇군요. 제 동족들은 성욕에 굴복해서 끝내 인간들의 애완물고기로 전락했군요…. 이게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겠죠….”

비린내 나는 물고기 주제에 제법 똑똑한 바다인어였다.

괜히 인어왕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동족들을 지배할 수 있겠어?”

“가능합니다.”

“어머니시여! 그것만은 절대로 안 됩니다!”

내 질문에 인어왕 포메라니안이 긍정적으로 대답하자마자 수호자 인어가 격렬하게 날뛰었다.

“배신자는 얌전히 있으세요.”

“아….”

인어왕이 명령하자마자 발광하던 수호자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저항하듯 몸을 떨었으나 곧 그것도 잠잠해졌다.

포메라니안이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동족들은 빛에 모여드는 오징어처럼 멋진 수컷만 보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어서 포획당했습니다. 그들은 뱃머리에 묶이거나 박제되어 모두의 구경거리가 됐습니다. 그게 너무나 싫었던 저는 동족들에게 금욕을 명령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이처럼 배신으로 인한 죽음. 그리고 부활한 저는 용사님의 노예가 됐습니다. 자! 무슨 명령이든 내려주세요, 세상의 모든 인어가 당신의 암컷입니다.”

인어들은 성욕을 위해 자신들의 왕을 살해했다는 것 같다.

이에 인어왕은 동족들에게 환멸을 느꼈고.

“무슨 명령이든 따르나?”

“네. 저랑 같은 물에 있는 인어라면 누구든지. 세상의 모든 바다는 이어져 있죠. 그들은 파도를 타고 전해진 제 노래를 듣고 복종할 겁니다.”

“민물인어도?”

“제가 민물에 들어가서 노래한다면 그들도 따를 수밖에 없어요. 참고로, 왕족인 저는 담수와 염수를 가리지 않습니다.”

“호오…?”

내륙에서는 바닷물을 구하기 힘들어서 내심 걱정했었는데, 이 인어를 키우는 데 문제없을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손에 쥐고 있던 수호자 인어를 버렸다.

사기적인 능력을 보유한 인어왕만 있으면, 나머지 인어들은 손쉽게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기한걸?

종족특성에는 그런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종류: 종족

▷명칭: 로열 머메이드

▷등급: 전설

▷전설1: 물에서 절대 소멸하지 않는다.

▷전설2: 가장 아름답다.

▷특성1: 매력 효과가 상승한다.

▷특성2: 유혹 효과가 상승한다.

▷특성3: 하반신이 수륙양용이다.

▷종족1: 가창력이 우수하다.

▷종족2: 우수한 아름다움을 내포한다.

인어왕의 종족 ‘로열 머메이드’는 평범한 인어보다 뛰어났다. 물에서 절대 소멸하지 않는다니?

물의 총애를 받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우주보다는 못하지만!

“저는 인어들을 복종시키는 노래를 18대 인어왕에게 배웠습니다. 평범한 인어는 습득하더라도 쓸 수 없어요. 금단의 힘을 건드린 대가로 소멸해버리니까요. 그래서 물의 가호를 받는 왕족만 가능하죠. 제가 어이없게 죽으면서 노래도 사장된 것 같지만요.”

굉장히 흥미로운 설명이었다.

“인어가 아닌 종족도 배울 수 있나?”

“불가능합니다, 용사님. 인간은 물에서도 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인어의 성대랑 구조가 다르니까요.”

“인어랑 성대만 똑같으면 된다는 거지?”

“네? 네. 아마도….”

모든 인어를 복종시킬 수 있는 노래.

굉장히 매력적이지 않은가?

▶의문: 강한수 생도님. 저 인어왕의 감언이설(甘言利說)처럼 모든 인어를 소유하고 싶으신 건가요?

교생 아가씨가 이 친구를 의심하니 섭섭한걸!

그랬다간 어머니의 테니스라켓이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테니스라켓이나 내 대갈통 중 하나가 부서질 때까지 때리실 터!

“그건 황궁으로 돌아가면서 천천히 배워보기로 하고. 인어왕.”

“네. 용사님.”

“모든 바다인어에게 중앙대륙 북부 해안으로 집결하라고 해.”

“전부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나는 인어왕의 탐스러운 경추(頸椎) 6번과 7번 사이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전쟁이다.”

바다인어들은 훌륭한 해병대가 될 것이다.

*

*

*

인어왕은 예상했던 하렘이 아닌 전쟁이란 말에 식겁했지만, 성녀H의 지배를 받는 그녀에게 거부권은 없었다.

왕의 노래를 들은 바다인어들이 항구 앞에 집결했다.

대형 어류와 몬스터의 갈비뼈로 만든 어설픈 창을 쥔 아름다운 여자들이 알몸의 상체를 바다 위에 내놓은 채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보이지 않는 하체는 물고기 꼬리.

전부 인어였다. 물속에 완전히 잠수해있는 인어까지 합치면 그 숫자가 얼마나 될지 예측이 안 됐다.

심지어 이 순간에도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이렇게 많은 인어가 바다에 사는 줄 몰랐네.”

나는 다른 군함보다 5배나 큰 사령선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봤다.

황제인 나뿐만이 아니다.

“으아아악~?!”

“헤에…. 허엇?!”

군함의 갑판 위에서 침을 줄줄 흘리며 인어들을 구경하다가 추락한 멍청이들이 속출하는 중.

바다에 빠진 병사와 기사들은 사방에서 달려드는 인어들에게 순식간에 옷이 벗겨지고, 약 1시간 뒤에 송장 같은 몰골로 항구 근처의 해변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종족특성이 인간 수컷을 유혹하는 것에 특화된 인어들의 전투력은 미미한 탓이다. 그리고 바다에 사는 몬스터는 육지랑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

그런 바다에서 인어가 멸종하지 않으려면, 멸치나 다랑어 같은 소형물고기처럼 많이 낳는 수밖에 없다.

나는 혀를 찼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부유한 상인이나 귀족의 첩이 돼서 호의호식했을 텐데, 참 힘들게 사는군.”

“흥! 인어로 태어났기 때문에 저런 미모가 나오는 거야. 조금도 연민할 필요 없어.”

내 혼잣말을 들은 쏘시아가 핀잔을 줬다.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쏘시아, 너도 남 말할 처지가 아닐 텐데?”

“내가 왜?”

“그 비겁한 가슴이 자연산일 리 없잖아. 종족 보정이지?”

“이 용사는 툭하면 성희롱이네! 야! 밤새 만지작거려놓고 그딴 말이 나와?!”

“그거랑 이거랑은 별개지.”

“같아! 이 나쁜 새끼야!”

나는 쏘시아의 히스테릭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오른손에 쥔 지휘봉으로 북쪽을 가리켰다.

다 모일 때까지 굳이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현재 모인 인어만으로도 차고 넘쳤으니까.

“전군 출격.”

“폐하의 명이다! 출항!”

“출항!”

“출항하라!”

뿌우우우!

뿌우우!

내 신호를 확인한 병사들이 초대형 소라로 만든 나팔을 힘껏 불었다.

모든 군함이 일제히 출항했다.

군함이랑 속도를 맞춰서 헤엄치는 인어들까지!

장관이란 말이 절로 나왔다.

번쩍 콰광광!

천둥과 벼락이 우리의 출전을 축복했다.

돛이 부러질 정도의 강풍이 쉴 새 없이 몰아쳤지만, 애초에 신성몰랑제국의 배들은 풍력(風力)과 인력(人力)을 사용하지 않았다.

인어력(人魚力).

인어의 힘으로 나아간다.

이 폭풍은 적들에게나 위협적일 뿐.

“전쟁하기 좋은 날이야.”

검희가 낳은 내 아들에게 패왕의 모습을 보여주리라!

“마왕이 아니라?”

“너는 춤이나 추고 있어.”

용사님을 짝사랑하는 비겁한 악마도 신성몰랑제국의 무적함대를 축복해줬다.

그런데….

“적이다!”

“적의 함대다!”

북대륙에서 먼저 침공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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