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218화 (218/430)

 218화

[12회차] 북대륙 vs 중앙대륙

화르륵!

파지지직!

콰앙-!

태풍을 뚫고 북쪽에서 출현한 대규모 함대에서 쏜 불과 번개가 포물선 혹은 직선을 그리며 아군 쪽으로 날아왔다.

대충 봐도 한두 나라가 힘을 합친 게 아니었다.

다수의 마법사를 보유한 북대륙답게 군함에는 함포보다 마법사의 수가 더 많았다. 사정권은 대포보다 훨씬 길었으며, 화약고에 불이 붙어서 폭발할 걱정도 없다.

반면에 아군은?

“헉! 또 날아온다!”

“꺄아앗~?!”

“불! 불을 꺼!”

“으아아악?!”

출정식 중에 받은 기습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경계를 안 한 건 아니었지만, 이 태풍을 뚫고 북대륙에서 먼저 공격해오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탓이 컸다.

이유는 또 있다.

신성몰랑제국은 정복으로 세워진 나라가 아니다.

단 한 번도 전쟁다운 전쟁은 해보지 않고 중앙대륙을 통일했다. 당연히 병사들의 숙련도가 떨어졌고, 경험이 부족한 기사와 지휘관들도 허둥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야만적인 판타지 63년 경력의 용사다.

배신과 통수를 비롯하여 산전수전 다 겪었고, 귀여운 척하는 라누벨 때문에 다양한 죽을 고비를 넘기며 여기까지 왔다.

“이건 반칙 같아서 웬만하면 안 하려고 했는데….”

우매한 판타지 원주민들에게 마스터 몰랑의 위대함을 가르쳐주겠다.

나는 성대를 인어처럼 개조하고 힘차게 외쳤다.

“싸워라~♩ 물리쳐라~♪ 정의는 승리한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애니메이션 주제곡을 살짝 편곡해서 가슴 벅찬 군가로 승화시켰다.

애초부터 둘의 주제가 비슷했기에 문제없었다.

악당을 물리치고, 적군을 몰살한다.

“용사님께 제 사랑을 바쳐요~♬”

“폐하의 정의를 위해~♪”

“이 목숨은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을 위해 싸울게요~♪”

번개 마법에 감전당하고 비명을 지르며 허둥대기 바쁘던 바다인어들이 일제히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나의 노래는 인어들에게 용기를 심어줬고, 그녀들은 힘차게 꼬리지느러미를 저으며 북대륙 함대를 향해 겁 없이 돌진했다.

뽀글뽀글….

보글보글….

수많은 인어가 마법과 폭탄 등에 당하여 치명상이나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녀들은 비명 대신 끝까지 노래를 불렀다.

내 노래가 아직 멈추지 않았으니까.

그녀들은 후퇴할 수 없었다.

“몰랑의 백성들은 기뻐하라~♬ 선하고 인자하신 그분의 이름을 찬양해~♬ 할~렐몰랑♪ 할~렐몰랑♪ 할렐몰랑♪ 할렐몰랑♪”

신성몰랑제국에서 마스터 몰랑이 빠질 수 없다. 찬송가를 부르지 않고 어찌 승리를 탐한단 말인가?

그분의 가호와 자비가 우매한 인간과 인어들이랑 함께하길. 몰랑!

퍼어엉!

퍼엉!

인어들의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됐다.

창으로 찔러서 본판(배 밑판)에 구멍을 뚫고, 평소에 선원들을 납치할 때 쓰는 밧줄을 던져서 병사들을 바다로 끌어내렸다.

수심이 낮은 해안가에선 인어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지만, 육지에서 멀어지면 그녀들의 독무대였다.

위험하면 물밑으로 도망쳤다가 사각지대에서 공격했다.

“어, 어떻게 인간이…?”

언제든 하반신을 변신할 수 있도록 맨발에 속옷 없이 원피스 한 벌만 알몸 위에 걸친 인어왕이 당황했다.

나는 상큼하게 답해줬다.

“마스터 몰랑의 제자라면 이 정도는 기본이지. 기술의 원리만 알면 나머지는 쉬워.”

“인어의 성대를 흉내 냈다고요?”

“흉내가 아니라 복사다.”

마스터 몰랑의 가르침 중 기본기에 속한다.

인어는 암컷뿐이라서 나도 목젖이 사라지고 목소리가 가늘어지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효과는 인어왕의 노래랑 같았다.

모든 인어를 복종시켰다.

“그, 그러면 소멸은 어떻게…?”

“영업비밀.”

“마약 용사는 전설이다!”

“도움 안 되는 마약 정령 같으니!”

내 머리 위에서 비비적거리던 최초의 정령이 바로 반박했다.

“착각하는 건 너다, 마약 용사. 전설이 된 존재는 완전히 잊히기 전에는 절대 소멸하지 않아. 즉, 이렇게 소문내고 다닐수록 유리해. 네가 전설이란 걸 아는 시점에 이미 기억한다는 뜻이니까. 알게 되면 막지 못한다는 거지.”

“...생각해보니 그렇네?”

이 정령이 나이를 총배설강으로만 먹은 건 아니었군?

“제가 알던 용사는 이렇지 않았는데….”

인어왕 포메라니안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시선은 북대륙 함대랑 싸우는 동족들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나를 그런 아마추어들이랑 비교하지 말아 줄래?”

귀여운 1살에 북대륙 황제가 된 몸이다.

물론, 내가 남들보다 월등히 대단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망국의 공주님이었던 유모의 자궁에 있을 때부터 인식이 뚜렷했다.

그러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나?

▶난감: 글쎄요….

왜? 교생 아가씨는 못 해?

▶대답: 강한수 생도님이랑 비슷한 사례를 겪은 어떤 생도는 15살이 될 때까지 평범한 척하면서 힘을 키우던데요? 20살쯤에 독립해서 나라를 세우고 25살에 조국을 무너트리고 황제에 올랐었죠.

결혼은? 이건 빨리했겠지?

▶설명: 첫 결혼이 23살이었을걸요? 정략결혼이 싫어서 신분을 감추고 가출한 공주님이랑요. 두 번째는….

됐어, 교생 아가씨. 더 말하지 않아도 돼.

사회부적응자들끼리 결혼한 사연 따위는 더 듣고 싶지 않았다.

직업마다 역할과 책임이 있다.

태어난 순간부터 온갖 호사를 누리며 자란 왕자와 공주는 힘들게 세금을 낸 백성들에게 보답할 의무가 있다.

왕족과 귀족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라고 말하는 새끼들은 싹 단두대로 보내야 한다.

누구는 좋아서 하나?

내가 호구 같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용사인 탓이다!

평판과 명성 때문에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흔한 직업 중 하나인 농부만 됐어도 직접 출전해서 적들은 싹 거름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나도 피해자다.

강제로 이 야만적인 판타지 세계에 납치돼서 강제로 용사가 되고, 날마다 호구처럼 무료봉사 중이다.

“짐이 명한다! 신성몰랑제국에 영광을…!”

아들에게 선물로 줄 신성몰랑제국의 탄생은 중앙대륙의 황금기라고 표현해도 절대 과하지 않다.

GDP(국내총생산)가 단 3년 만에 200배 이상 올랐고, 하수시설의 정비와 함께 수세식 변기가 보급되면서 위생상태가 급격히 좋아졌다.

도로가 정비되면서 상업이 활발해지기도 했지만, 기사단과 용병대의 기동력 향상은 몬스터의 원활한 토벌로 이어졌다.

이렇게 삶이 안정된 백성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물론, 인구가 단시간에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관리와 영주들이 업무폭주로 비명을 지르는 실정이지만.

행복에 겨운 앙탈이다.

“제국을 위해!”

“가족을 위해!”

“폐하를 위해!”

“몰랑을 위해!”

비열한 북대륙 함대의 기습공격으로 허둥대던 신성몰랑제국 병사들이 고래고래 함성을 질렀다.

겁먹고 뒤로 빠지려는 놈들이 속출해도 이상하지 않지만, 고조된 분위기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남자의 오기라고 할까?

내 눈에는 비린내 나는 물고기일 뿐이지만, 절대다수 원주민과 용사들은 인어를 아름다운 여성으로 본 탓이다.

즉, 이런 거다.

여자가 싸우는데 남자가 뒤에 숨는다고?

판타지아 대륙의 상식으로는 남자이길 포기하는 행위다. 남자는 절대로 늙어 죽지 않는다.

가족과 나라를 지키다가 전장에서 죽는다.

흉흉한 몬스터가 박멸하지 않고 끊임없이 출몰하는 판타지 세계이기에 통용되는 논리였다.

미녀보다 전사 노예가 훨씬 비싼 이유이기도 하다.

“이길 것 같네.”

옆에서 함께 구경하던 쏘시아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승리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어. 단, 피해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지.”

북대륙에서 쥐어짤 수 있는 최대 전력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맞춰서 군대를 정비했다.

단순한 전략가들은 머릿수로 승산을 계산한다.

상대적으로 많은 병력을 동원해서 적은 피해로 승리하는 것을 최고로 여긴다.

여기에는 나도 일부 동의한다.

하지만 그건 시야가 좁은 자들의 논리다.

병력의 머릿수를 불린다고 남자들을 전부 차출하면 농사와 대장간처럼 힘이 필요한 국내산업이 마비된다.

그리고 늘어난 병력만큼 소모되는 식량과 유지비도 늘어나며, 행렬이 길어지면 관리가 어렵고 기동력도 떨어진다.

무조건 많다고 좋은 게 아니다.

특히, 장기전에서.

북대륙 정벌은 단시간에 어렵다.

바다가 사이에 있고, 환경도 다르기에 병사들이 적응할 시간도 필요하다. 현지조달이 어려운 물자수송까지 가면….

▶감탄: 강한수 생도님은 뭔가 많이 알고 계시네요.

1회차 때 열심히 공부했거든.

동료들은 용병으로 위장해서 직접 출전했다. 그리고 패색이 짙은 불리한 전투를 간단히 뒤집어버렸다.

해맑게 웃는 얼굴로 누가 더 많이 죽이는지 내기하는 그 살인마들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웃기는 일이지.”

마왕을 무찔러야 하는 용사 파티가 인간들의 사사로운 전쟁에 끼어들어서 한쪽 편을 들었다.

심지어 내기까지!

자기들이 자존심 혹은 용돈 아끼려고 신나게 죽인 병사의 아내와 자식들은 고려하지 않는다. 승패를 뒤집을 정도로 많이 죽인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부르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공부했다.

용사 파티가 참전하지 않았을 때, 어느 쪽이 얼마만큼의 피해로 이길지 손익 계산을 시뮬레이션하는 연습을 했다.

그러다가 패배가 90% 이상 확실한 진영에는 논리적인 이유를 대면서 항복을 권고했다.

물론, 동료들이 자주 방해했다.

자기들이 나서면 이길 수 있다면서.

자기가 결혼하기 싫다고 수천 명의 과부를 양산하려는 철부지 아가씨 편을 드는 동료들 때문에 진짜 환장하는 줄 알았다.

그 심리를 가장 잘 활용한 게 ‘황녀’였고.

“나는 충분히 이해해. 너 같은 망나니랑 결혼하라고 하면, 남들이 과부가 되든 말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야.”

내 넋두리를 들은 유부녀가 시비를 걸었다.

“...쏘시아.”

“흥! 때릴 테면 때려! 네가 망나니 남편이란 증거일 뿐이니까.”

“아까부터 계속 피해자인 척하는데. 약혼을 결혼으로 확정시킨 건 내가 아니라 너거든?”

“......”

“아직 할 말 있어?”

“...응. 다시 생각해보니,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정략결혼을 거부하는 이기적인 년들을 이해해줄 필요 없어. 자신의 행복을 위해 남들을 불행하게 하려는 것들은 망나니 남편을 만나서 참교육 좀 당해야 해.”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더니….

단호했던 신념마저 너무 쉽게 바뀌는 것 같다.

“마약 용사. 그래서 너는 참전하지 않는다는 거야?”

“어. 이미 인어를 동원한 것만으로도 너무 간섭했다고 보거든. 하지만 인명피해는 적을 거야. 인어들이 물에 빠진 병사들이 익사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있거든. 적군과 아군 구분 없이.”

구출비로 방울이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탈탈 털리긴 하겠지만, 죽는 것보다야 낫잖은가?

눈치 빠른 북대륙 병사들은 고의로 바다에 빠지기까지 했다. 어차피 진 싸움, 목숨을 보전하고 황홀경에 몸을 맡기겠다는 의도.

나는 그 광경을 거대한 지휘함에서 내려다봤다.

바로 그때,

쩌저적!

해수면이 얼음으로 뒤덮였다.

하지만 빙점이 낮은 바닷물이 순식간에 얼어붙었음에도 냉기는 강하지 않아서 병사와 인어들은 죽지 않았다.

“도와줘! 가슴이 껴서 못 빼겠어!”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끽해야 해수면에 내놓은 상반신이 얼음에 껴서 꼼짝달싹 못 하는 수준이었다.

운 나쁘게 잠수하고 있다가 얼음에 막힌 인간 병사들은 인어들이 인공호흡으로 숨을 연장해주며 살렸다.

당연히 평범한 자연현상은 아니다.

마법.

그것도 대규모다.

전장의 승패를 뒤집을 수 있는 존재.

마법으로 이만한 이적을 일으키는 ‘북대륙 출신의 용사 동료’는 내가 알기로 단 한 명뿐이다.

“현자도 참전했었군.”

쉽게 이길 생각은 버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마법으로 하늘을 나는 군함의 선단에 당당히 선 소년, 현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북대륙의 용사들이여! 마법의 심연을 탐구하는 제가 여러분을 도와주려고 왔습니다! 중앙대륙의 탐욕스러운 황제를 쓰러트리고 함께 고향으로 돌아갑- 푸악?!”

황제인 나를 쓰러트리기 위해 사령선까지 쭉 날아오던 현자가 코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평범한 인어는 견딜 수 있었던 모양이지만, 쏘시아나 인어왕은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마력 공급이 끊긴 배가 얼어붙은 바다에 곤두박질쳤다.

콰앙-!

“...바뀐 게 없군.”

하지만 아직 싸움이 끝난 건 아니었다.

배가 추락해서 파괴되기 직전에 탈출한 자들이 있었다. 단 한 명 빼고는 전부 아는 얼굴이었다.

검희, 얼음공주, 성녀C, 용병왕, 빙룡….

그들이 뭐라고 한마디씩 했다.

나도 친절히 답해줬다.

“닥쳐. 너 빼고. 무슨 말이라도 해보렴.”

내 시선은 검희 옆에 선 귀공자 복장의 귀여운 소년에게서 도저히 떨어지지 않았다.

소년의 꾹 다물어진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엄마는 당신이 제 아빠를 죽였다고 했어요. 저는 그런 당신을 용서할 수 없어요.”

“너는 잘못 알고 있어.”

나는 검희를 한 차례 쏘아본 후에 엄숙히 말했다.

“I am your 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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