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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급 관심용사-220화 (220/430)

 220화

[12회차] 전후처리

▶당혹: 뼈로 구분이 되나요…?

당연하지, 교생 아가씨!

정의로운 용사의 마음처럼 아들의 척추도 올곧았고, 척추 마디 사이의 디스크들이 촉촉해서 허리가 유연했다.

하지만 당분간은 고생 좀 할 것이다.

“아으으읏…?!”

재차 내게 도전하고자 벌떡 일어선 아들이 허리를 부여잡은 채 얼어붙은 바다 위에서 몸부림쳤다.

“허리디스크는 젊다고 방심하면 안 된다.”

“우으….”

“뭐, 젊음과 마법이면 금방 회복되긴 할 거다. 살짝 어루만지기만 했으니.”

“살짝이…. 아윽!”

나는 아들 크리스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감동적인 가족 상봉도 좋지만, 황제로서 해야 할 일을 더는 미룰 수 없기 때문이다.

“전군에 명한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승전고를 울리고 퇴각하는 북대륙 함선을 추적하라! 남자는 범하고 여자는 생포해라!”

현자가 코피로 쓰러지면서 바다도 빠르게 녹기 시작했다. 덕분에 다시 자유로워진 인어들이 마음껏 날뛰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구, 구해줘~!”

“아직 동정인데…!”

“내 옷- 우읏?!”

첨벙! 첨벙!

전의를 상실한 북대륙 함대의 갑판 위로 날치처럼 과감하게 뛰어오른 인어들이 병사들을 덮치듯 끌어안고 바다로 끌고 갔다.

동정, 소년, 노인, 추남….

인어들은 예외를 두지 않았다.

외모와 능력이 준수한 남자는 레벨 높은 인어들이 잡아가고, 그보다 아래면 인어의 수준도 낮아졌다.

그들의 운명은 뻔했다.

인어들이 죽이진 않겠지만, 친구와 동료들이랑 돌려가면서 쥐어짜고 쥐어짠 후에 해변에 버려둘 것이다.

정말 마음에 들면 무인도에 가둬둘 것이고.

“폐하. 생포한 여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이 사령선의 원래 주인인 노귀족A가 내게 질문했다.

“종군마법사로 일 시켜. 마법사가 아니면 화장실 청소든 설거지든 막 부려먹고.”

야만적인 판타지 세계의 전쟁은 전적으로 남자들의 몫이다.

하지만 근육이 발달하지 않은 여성도 전쟁에 극소수 참석한다. 현대에 총화기가 있다면, 판타지에는 마법이 있으니까. 현대무기가 방아쇠를 당기거나 버튼 누를 손가락 힘만 있으면 되듯, 마법도 근육이 중요하지 않다.

예외 중의 예외라면 역시….

“저들은 어찌합니까? 폐하의 침실로…?”

노귀족A가 용사의 동료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코피를 쏟으며 쓰러진 현자는 진즉 인어공주들에게 끌려갔고, 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나머지 남성 동료들도 성질 급한 인어들에게 줄줄이 바다로 잡혀갔다.

그리고 남은 건?

검희, 얼음공주, 성녀C….

건드리면 위험한 여자들뿐이었다.

저들의 팔다리가 가늘다고 방심했다간 그대로 이 세상이랑 작별하는 수가 있다.

능력치 깡패들.

스킬과 레벨은 덧셈이 아닌 곱셈으로 계산되는 증폭 같은 개념이기 때문에 근육이 있는 남자가 유리하지만, 남자에게 따라잡힐 능력치였다면 애초에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다.

“예외는 없- 야! 허리 아픈 미성년자는 놔둬, 이 망할 물고기 대가리들아!”

나는 아들 크리스도 끌고 가려는 인어공주들을 쫓아냈다.

진짜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내후년쯤에 수백 마리의 손녀 인어를 볼 뻔했으니까.

정말로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어머니의 테니스라켓이 용서와 자비 없이 나를 후려칠 것이다.

“아들? 인수·인계받을 준비가 됐니?”

“엄마는…!”

아들 크리스는 기사들에게 포박되어 끌려가는 검희를 걱정했다.

“고문해야지.”

“어, 어떻게 그런 끔찍한…!”

“북대륙을 통일할 때까지 검희가 못하고 싫어하는 설거지와 청소를 온종일 시킬 거다. 밤에는 말랑말랑한 슬라임으로 가득한 방에 넣어서 수면과 휴식을 방해하고.”

“...그게 고문 내용인가요?”

아직 어린놈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피식 웃으며 아들의 머리를 손으로 헝클어트렸다.

크리스는 싫다는 얼굴로 도리질 치는 대신 허리를 부여잡으며 또 쓰러졌다.

“이 아빠는 용사다.”

“들어서 압니다.”

“그래서 공명정대하지.”

“네…. 네?”

“나를 공격한 자들은 예외 없이 처벌할 거다. 인어들에게 끌려간 병사들처럼. 방법은 많아. 팔다리 힘줄을 자른 다음에 아군 병사들의 숙소에 던져놔도 되고. 벌거벗긴 채 장대에 깃발처럼 매달아서 구경거리로 만드는 수도 있고. 육체적인 고통을 주고 치료하기를 반복하면서 1레벨로 떨어트리는…. 왜? 이런 걸 기대한 거 아니었어?”

아들의 표정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빠는 정말 용사인가요…?”

“용사란 족쇄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는 호구지. 이미 너도 이 아빠를 호구로 보고 있다. 내가 위에 나열한 것처럼 당하는 건 괜찮고, 남에게 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하지. 틀렸나?”

“그, 그건….”

“재차 말하마. 이 아빠는 전쟁하는 게 아니다.”

전쟁은 상대의 모든 것을 빼앗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기고도 얻은 게 별로 없었다.

부드러운 핫팩들이 항시 대기 중이고, 재산은 이전에 천사들의 보물창고를 턴 이후부터 부족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황제란 감투도 내게는 허울 좋은 개살구일 뿐.

“그러면 왜…?”

“너에게 멋진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세상의 그 어떤 아버지랑 비교해도 꿀리지 않도록.”

“......”

“초대형 파리만 가득한 서대륙과 척박한 남대륙은 정벌해봐야 일만 늘어날 뿐이라서 포기하고 남은 대륙은 셋. 이 중에 두 대륙을 정복하면 판타지아 세계의 그 어떤 황제도 따라올 수 없는 업적을 세운 셈이지. 나는 누가 더 최고였다더라, 같은 소리로 비교되기 싫거든.”

“뭔가…. 어설프시네요.”

“누구나 처음에는 어설프지.”

어린 아들의 핀잔에 나는 반박하지 않고 깔끔히 인정했다.

애초에 멋진 아버지란 무엇일까?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테니스 동호회 명예회장이었다. 접시만 만지면 깨는 어머니 대신 요리도 썩 잘하시는 편.

하지만 그게 다였다.

나는 아들에게 존경받고 싶은데, 나는 아버지를 존경해본 적이 없어서 참고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어느새 60년도 더 된 과거의 추억이 됐다.

판타지 세계로 납치되어 능력치를 얻고부터는 기억력이 매우 좋아진 편이지만, 고된 1회차 생활로 신경 쓰지 못한 사이에 대부분 망각하고 말았다.

“마약 용사. 내 이름은?”

...그때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1회차 때의 나는 언제나 지구로 돌아갈 생각만 했다. 그래서 판타지 세계의 인연은 의도적으로 피하고 무시했다.

그 일환이 이름.

외워도 지구로 돌아가면 아무짝에 쓸모없다.

모두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뿐이다.

...라고 치부했던 게 60년씩이나 이어질 줄은 몰랐지만.

현재는 비중 없어서 기억하지 않는다. 몰라도 마왕을 쓰러트리는 데 전혀 지장 없으니까.

“이대로 너에게 황제 자리를 떠넘겨도 되지만, 인수인계를 제대로 안 하면 중앙대륙이 망할 거다. 다양한 이데올로기를 억누를 만큼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내게 물러나면 바로 딴마음을 품는 녀석들이 나올 터. 그건 바로 백성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또한, 이 나라는 신성몰랑제국이다. 이 전쟁도 마스터 몰랑의 이름으로 시작한 성전인 셈이지. 그렇기에 멈출 수 없다. 퇴각하면 신성모독이 되니까. 대패하거나 예정대로 북대륙을 통일할 때까지 가야 한다.”

“저에게 선택권이 없네요.”

“...그 점은 미안하다.”

나는 솔직하게 사과했다.

아빠가 중앙대륙을 통일한 황제면 아들이 ‘대박!’이라고 외치며 좋아할 줄 알았다. 하지만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다.

애초에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었다.

전부 교직원 잘못이다.

검희의 태몽을 이상하게 해놔서 감동적인 부자 상봉을 엉망으로 만들어놨다.

이 부분은 언젠가 따지리라!

“제 허리는요?”

“그건 아빠에게 덤빈 벌.”

“언제 나아요?”

“내가 교정해줄 수 있지만, 바로 고쳐줄 생각이었다면 애초부터 하지도 않았지. 허리가 아플 때마다 효도의 중요성을 되새김하도록. 조언하자면, 슬라임 압박 마사지가 허리통증 완화에 도움이 될 거다.”

신성몰랑제국 함대는 그대로 북대륙까지 진격했다.

박박 긁어모은 남정네들이 전부 바다인어들에게 먹히는 바람에 항구는 텅텅 비어있었다.

남은 건 항구도시에 살던 여자와 아이들뿐.

시장과 영주는 도망치고 없었다.

“엉망이로군.”

법을 수호하는 관리자가 없는 탓이다.

평소에 벌레처럼 깔보던 양아치들에게 붙들려서 성희롱당하는 여인들의 우는 광경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저놈들이…! 아으읏?!”

혈기왕성한 코뿔소처럼 돌격하려던 아들이 허리를 부여잡으며 갑판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내가 이래서 허리디스크를 선호한다.

제멋대로 나서는 녀석들도 얌전하게 해주니까.

“들어라! 여기는 앞으로 짐이 통치하게 될 땅과 백성이다. 지켜야 할 법은 간단하다. 위대한 마스터 몰랑의 재산을 탐하는 자는 반역죄로 사형. 빈집을 터는 저 양아치들을 광장에 산 채로 매달아두도록.”

“폐하. 휴식을 원하는 병사가 많습니다.”

노귀족A 옆에 있던 부함장인 귀족B가 말했다.

“전사자의 명단을 작성하고 부상자는 하선하여 빈 관사에서 치료하라. 또한, 공을 세운 병사들만 약간의 용돈을 지급해서 자유행동을 허가한다.”

“자유행동이라고 하시면…?”

“남자들끼리 다 알면서 뭘 묻는가? 그대는 위엄 빼면 시체인 짐에게 꼭 들어서 확인하고 싶은가?”

“험험! 늙은 몸이라 눈치가 없었나이다. 용서하십시오.”

노귀족A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전쟁은 꼭 싸우지 않더라도 지속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지치게 만들지. 기분 탓이라고 할까? 밥맛이 똑같아도 가족이 해주는 걸 먹는 쪽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거랑 같은 이치.”

“저…. 폐하.”

“또 뭔가?”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음?”

나는 무슨 말이냐는 의미로 귀족B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가 정중히 답했다.

“그 유명한 북대륙의 3대 미녀가 퍼주는 밥에 모든 병사가 불만 없이 만족하는 추세입니다. 폐하의 혜안처럼 맛은 평범하지만, 기분 탓인 거겠지요. 하하!”

“...그런가.”

판타지아 북대륙에는 3명의 절대적인 미녀가 존재한다. 내 주관적인 판단으로는 성격 빼고는 썩 훌륭하다.

검희, 성녀C, 얼음공주.

원래는 갑판 청소부터 다양한 걸 시킬 예정이었는데, 식사 준비 하나만으로도 하루가 다 갔다.

병력이 먹고 싸는 일도 전쟁이다.

요리에 소질이 없는 공주님과 영애, 성녀라서 감자 껍질만 벗기다가 식사시간에 국자 하나씩 쥐고 배식해주는 게 일이지만….

병사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한다.

“또한,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는 병사는 신성몰랑제국 함대에 없다고 확신합니다. 정예이기 때문이 아니라 낮의 전투에서 본 인어들이 워낙 충격적이라서.”

“...그렇군.”

내가 알던 전후처리랑 많이 다르네!

“자잘한 사안들은 그대들에게 위임하지. 내일부터는 함대를 나눠서 북대륙 남부의 모든 항구를 점령해서 보급로를 확보한다.”

“폐하께서는 어디로….”

“짐은 아들이랑 내륙으로 간다.”

회의가 끝나고 함장실에는 나와 마약 정령, 쏘시아만 남았다. 아들 크리스는 검희의 안전을 확인하러 갔다.

푹신한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은 쏘시아가 말문을 열었다.

“비겁한 용사. 마냥 망나니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게 됐어. 의외로 가족에게는 무른 성격이네.”

“무른 게 아니라 서툰 거다.”

나는 그녀 옆에 털썩 앉으며 소파 등받이에 상체를 기댔다.

“설마, 지쳤어?”

“그건 아닌데….”

아들에게 잘 보이려고 시작한 일인데, 괜히 황제가 됐다고 후회하는 중이다.

이런 게 좋다고 은하계를 정복하는 선배는 대체 뭐지?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는 게 어때?”

“...뭐?”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는 항상 너를 지켜보고 있었어. 지금도 부르면 모습을 드러낼 거야.”

“그럴 리가….”

피식 웃으며 부정하는데 메시지가 들렸다.

▷긍정: 쏘시아의 말대로다. 알고서 내 욕을 하던 거 아니었나? 까마득한 후배가 아들에게 쩔쩔매는 모습이 참… 인간적이더군. 귀한 미녀들의 목과 허리를 뚝뚝 부러트리는 녀석답지 않게.”

교생 아가씨가 아니었다. 방식은 비슷한데 전혀 다른 인물.

어떻게 보는 거지…?

▷설명: 진짜 한심한 질문이군. 함께 모험했던 동료들이 전부 명예교사가 됐는데, 나만 아닐 리 없잖은가?

최초의 용사가 상큼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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