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229화 (229/430)

 229화

[12회차] 반드시 돌아오리라…!

‘저는 손이 없으니까요.’

철없는 귀족 딸내미가 저렇게 말했으면 참교육을 시켜줬겠지만, 이 하피는 정말로 손이 없기에 뭐라 할 수 없었다.

새들은 발이 손 역할도 한다.

그건 하피도 마찬가지인데, 사람 같은 발을 가진 설녀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먹고 씻고 입고 싸는 일에 전부 남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니 이건 자기가 속박되는 게 아니라, 정의로운 용사님을 전용 하인으로 쓰겠다는 고약한 심보!

몬스터라도 예쁘면 상관없는 선배에게는 통했을지 모르지만, 귀여운 척하는 라누벨에게 단련된 내게는 어림없는 소리다.

즉, 이 거래는 결렬이다.

‘어…. 굉장히 나쁜 하피처럼 들리는데요? 용사님. 저는 그렇게 손이 많이 가지 않아요. 그걸 위해 열심히 마법을 익힌 거니까요. 먹고 씻고 입는 일 빼고는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망할 새대가리, 잘 들어.

하루 중 먹고 씻고 입는 걸 빼면 남는 게 없다.

하지만 그 정도는 대신해줄 쏘시아나 쏘시아가 있으니 괜찮다. 남편이 기르는 애완동물 한 마리쯤은 돌봐줄 수 있겠지!

논점은, 내가 너를 부양했을 때의 이득이야. 그걸 읊어봐. 없으면 당장 내 머릿속에서 꺼져.

없는지 조용해졌다.

별 시답잖은 망령이 용사님을 귀찮게….

‘이제 막 물어보셨잖아요.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이봐, 새대가리. 그냥 만만한 사람을 찾아보는 게 어때? 최초의 용사 같은 전설적인 호구가 어딘가에 더 있을 거야.

나는 선배만큼 취향이 관대하지 않아서 안 되겠다.

‘마법사님은 제가 예쁘다고 하셨어요. 동족들은 제 다리를 비웃었지만, 인간들은 칭찬하거나 부러워했어요. 용사님도 인간이시면 분명 만족하실 거예요.’

만족 못 하면 인간이 아니란 거네?

아까부터 이 하피는 요런 식으로 함정을 파고 있었다.

선배 같은 잡식성의 사기당하기 쉬운 용사들은 그녀의 교묘한 말장난에 홀딱 넘어갔을 것이다.

나는 관상용 몬스터가 필요 없다.

‘으음…. 아! 제 깃털은 마법의 촉매로 매우 좋다고 마법사님이 곧잘 말씀하셨어요. 빛을 상징하는 백색의 이형종 날개. 그래서 차원이동 같은 고위마법에 유용하다고….’

합격! 무조건 합격!

‘예?’

설녀 양. 내일부터 출근해서 깃털을 뽑도록!

불필요한 자기소개와 포부 빼고 처음부터 경력을 이야기했으면 얼마나 좋아? 지루한 면접으로 시간과 심력만 낭비했다.

혹시, 차원이동 마법도 쓸 줄 아는가?

‘마법사님께 배우긴 했지만, 실제로 해보진….’

아주 훌륭해! 오늘부터 출근해서 일하도록!

먹고 씻고 입는 일은 내 마누라가 도와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설녀 양은 깃털 뽑고 차원이동 마법에만 열중하면 돼.

뚜렷한 성과를 내면 노후까지 보장해줄게!

우주의 총애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차원이동 마법을 쓸 수 있는 설녀를 내게 소개해주기 위해 ‘불운’ 같은 상황이 쭉 이어졌던 게 틀림없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하지만 어떻게 탈출시키느냐가 관건이로군….”

아들을 빼돌릴 방법조차 감을 못 잡아서 중등교육장에 입학한 나로선 골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이 하피를 어떻게 탈출시킬까?

혼자 고민하지 말고 교생 아가씨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교생 아가씨!

▶난감: 교생에게 교보재를 빼돌릴 방법을 물어보시면 곤란해요. 그리고 상대는 5대 재앙의 심장. 지나가는 행인A의 영혼도 힘든데, 하물며 마왕 다음가는 악당 캐릭터라면 말할 것도 없죠. 강한수 생도님의 우수한 능력을 잘 알지만, 이번만큼은 포기하시는 편이 좋아요.

이번에는 약한 소리를 해도 이해해. 나도 방법이 영 떠오르는 게 없거든.

이럴 때는 시스템 개발자였던 쏘시아에게 물어보는 게 최고다.

“내가 왜?”

그녀의 대답은 굉장히 단순명료했다.

“방법 좀 말해봐.”

“야.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나에게 득은커녕 손해뿐인 일에 협조할 리 없잖아. 하피를 돌보기 위해 탈출에 협조를-”

“말해.”

내 명령은 ‘이인자’인 쏘시아에게 절대적이었다.

“비, 비열한 자식! 천벌 받을- 아아! 어째서 우주는 이런 놈을 편드는 거야?!”

한껏 짜증을 낸 쏘시아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러쿵저러쿵.

“즉, 시스템을 속여야 한다…?”

“처녀인 검희가 뜬금없이 네 아들을 낳기 전에 꿈을 꾼 것처럼, 전체적인 설정을 붕괴하지 않는 선에서 속이는 장치가 필요해. 아! 이건 교직원 놈들처럼 대충 짜면 안 돼. 네 아들이랑 5대 재앙은 차지하는 비중 자체가 다르니까.”

“원리는 이해했어. 방법은?”

그 방법이 없으면 지금까지 설명이 전부 무의미했다.

쏘시아가 입꼬리를 올리며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역사를 바꿔야 해.”

“......”

판타지 경력 63년 만에 공상과학(SF)으로 노선이 틀어지고 있었다.

*

*

*

그걸 위해 우리는 장소를 옮겼다.

역사를 바꾸기 위해선 ‘타임머신’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타임머신은 쏘시아의 집에 애물단지처럼 모셔져 있다.

그녀의 집은 여기서 코 닿는 거리에 있고.

마치, 이걸 노렸다는 듯이 상황이 퍼즐처럼 딱딱 들어맞았다.

“우주의 편애는 사기야….”

언제 납치될지 몰라서 전전긍긍하는 남편의 마음도 모르고, 쏘시아가 우주 회장님을 시기했다.

나는 그녀가 만든 타임머신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부모님 안부부터 확인하고.”

이게 있으면 졸업장이랑 상관없이 지구로 넘어갈 수 있다. 무려 63년 동안 미뤄온 꿈을 단숨에 이룰 수 있는 기계장치.

만년 꼴찌의 학생이 똑똑해지는 약을 목도한 기분이 이럴까?

마음이 괜스레 뒤숭숭했다.

타임머신(Time Machine).

사람들은 회귀하듯 과거로 넘어가서 역사를 입맛대로 바꾸는 것만을 생각하는데, 타임머신은 좀 더 포괄적인 기능의 장치다.

여기에 착각까지.

타임머신은 과거로 가는 게 아니다.

이 장치는 ‘과거의 차원’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절대로 시간을 되돌리는 게 아니다.

이건 아주 간단한 이치다.

타임머신이 시간을 거꾸로 돌려서 과거로 보낸다면, 이 순간에도 70km/s로 팽창 중인 광활한 우주의 속도를 멈추고 수년 전의 위치로 역주행시킨다는 의미다.

여기에 필요한 힘의 총량은?

천문학적이란 표현조차 부족하다.

이만한 힘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건 둘째치고, 저장하고 이용하는 기계를 구현해낸다는 것부터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내 비겁한 남편은 사족이 기네. 타임머신은 차원이동 마법을 과학으로 구현해낸 것이다. 이 말만 하면 끝인데.”

“......”

쏘시아의 핀잔에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내 설명이 길었다는 것에는 수긍하기 힘들지만, 그녀가 요약한 결론은 틀리지 않았다.

타임머신은 ‘차원이동장치’랑 이음동의어다.

정말로 시간을 역주행시키거나 하는 방법을 안다면, 그 존재는 마스터 몰랑이거나 진짜 신(神)일 것이다.

그렇다고 차원이동이 쉽다는 건 아니다.

쉬웠다면 당장 나부터 이용해서 지구로 귀환했을 테니까.

꽤 강해졌다고 자부하는 현재의 나로서도 이처럼 제3의 무언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내 집을 구경해본 소감이 어때?”

“딱히.”

부를 과시하듯 호화찬란하긴 했지만, 나도 두 대륙을 통일한 황제로서 남 부럽지 않은 생활을 누리고 있다.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본다면 침대 밑에 떨어진 먼지까지 트집 잡으며 긴 소감을 발표했겠지만, 지금의 내 관심사는 오직 타임머신이었다.

형태는 목욕탕처럼 넓은 캡슐.

그 안에는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액체로 가득했다.

이것이 쏘시아가 말한 타임머신이었다.

“얼른 들어가. 그리고 5000년쯤 돌아오지 마.”

그녀는 캡슐 뚜껑을 열면서 재촉했다.

평소의 나였다면 이 비겁한 악마를 혼쭐내줬겠지만, 지구로 마음이라도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마냥 행복해서 관대해질 수 있었다.

“그래, 쏘시아. 5000년 뒤에 보자.”

“나쁜 자식.”

“이 악마는 소원대로 늦게 돌아온다고 해도 뭐라 하네.”

헛웃음을 터트린 나는 타임머신 안으로 들어갔다. 최초의 정령도 당연하다는 듯이 따라와서 조금 난감했지만,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가만히 놔뒀다.

“실행한다.”

“어.”

나는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

“.......”

“...야. 뭐해?”

“음….”

어째선지 쏘시아가 뜸을 들였다.

사랑하는 남편을 보내기 싫어서 망설였다는 소리를 한다면, 관대함을 집어던지고 혼쭐을 내주리라.

“빨리해.”

“아무래도 막힌 것 같아.”

“...뭐?”

“장치는 분명 가동했어. 그런데 안 된다는 건, 시스템이 이걸 불법으로 정의하고 차단한 게 틀림없어.”

“미친!”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훨훨 날아갈 것 같았던 내 기분이 한순간에 곤두박질쳤다.

“아무래도 좀 서둘러야 할 것 같네. 지금은 졸업하지 않고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방법만 막혔지만, 조만간 이 타임머신 자체가 무용지물이 될지도 몰라. 어떻게 할래?”

물을 것도 없었다.

내게는 선택권이 없었으니까.

지구로 돌아갈 수 없다면, 늦기 전에 설녀라도 챙겨야 했다.

“시작해.”

“응. 지금부터 내 설명을 잘 들어. 시스템은 진짜 역사를 알고, 그걸 토대로 5대 재앙을 구현해냈어. 북대륙의 5대 재앙인 서리여왕 엘쉬는 서리왕 에쉬노프가 설녀를 잡아먹고 탄생했다고 말이지. 네가 할 일은 이미 벌어진 역사를 뒤집는 게 아니야. 시스템에 기록된 진실만 날조하는 거지. 직접 그 당시로 가서.”

원리는 이해했다.

이 타임머신을 타고 가짜 과거로 넘어가서, 설녀가 용에게 잡아먹히지 않게 하면 된다는 뜻이다.

“맞아. 하지만 너무 여유 부리지 않는 편이 좋아.”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지만, 이유는?”

“네 본체는 여기에 있으니까. 아빠가 세상을 멸망시키거나 토벌되면 이 중등교육수업도 끝나. 그러면 네가 작전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도중에 강제로 귀환하게 돼. 이해했어?”

“그래.”

아주 잘 이해했다.

가자마자 그 용을 때려잡으란 뜻이다.

용을 처치하면 설녀가 잡아먹힐 일도 없으니까.

“전혀 이해를 안 하고 있잖아! 그러면 안 돼.”

“왜?”

“그러면 서리여왕 엘쉬가 사라지니까. 네가 서리왕 에쉬노프를 토벌해버리면 시스템 오류로 걸려서 롤백 될 거야. 그리고 이렇게 한 번 정밀점검해버리면 백신 같은 거에 막혀서 또 시도하기 힘들어져.”

“기회는 한 번뿐이고, 용도 잡지 말아라?”

“이번에는 제대로 이해했네.”

번거롭긴 하지만, 어렵진 않았다.

설녀를 납치하면 용에게 잡아먹히지도 않을 테니까.

“명심해. 설녀가 서리왕 에쉬노프에게 잡아먹히지 않도록 하는 것 외에는 역사가 틀어지면 안 돼. 내 기억이 맞는다면, 최초의 용사는 망설이다가 설녀와 융합한 서리왕을 처치하지 못해. 그리고 몸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입지. 그것까지 완벽하게 재현해내야 해.”

“그건 좀…?”

너무 어려운 요구다.

여자 문제만 아니면 무쌍인 최초의 용사라면, 납치극을 벌이지 않는 용을 거침없이 썰어버릴 테니까.

갑자기 난이도가 급격히 올라갔다.

“그러면 시작한다.”

“포기하고 돌아올 방법은?”

“없어.”

“뭐? 이 미친…!”

“잘 가.”

꾸욱.

쏘시아가 버튼을 눌러서 타임머신을 가동했다.

내 정신은 아바타에 깃든 채 ‘육성시스템에 기록된 과거 세계’로 차원이동 했다.

완전히 당했다!

하지만 이대로 절대 끝내지 않으리라.

“I will be back…!”

나는 반드시 돌아올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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