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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급 관심용사-231화 (231/430)

 231화

[13회차] Iceeee~?!

설녀가 사는 마을로 들어오는 선배 일행.

아는 얼굴들이 주르륵 보였다.

귀여운 척하는 라누벨, 검왕 알렉스, 인어공주 아쿠아, 검희, 현자, 암흑공주, 성기사 토마토, 얼음공주, 암흑기사….

그 구성원은 판타지아 중앙대륙과 서대륙, 북대륙에서 모을 수 있는 동료들이었다. 아직 동대륙과 남대륙은 모험하지 않았다는 의미.

그리고 선배의 응원단이 있었다.

나는 그 면면을 살펴봤다.

그녀들의 얼굴이 아름다워서 보는 게 아니다.

이중 다수가 나를 이 야만적인 판타지 세계에 납치하고, 잘못된 편파판정과 가르침으로 괴롭힌 교직원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교직원 일동의 척추를 만져주려면 얼굴들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엑스트라인 줄 알고 지나치면 척추의 한이 되리라!

“당신, 천사이시군요.”

선배가 내 능력치를 보고는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

“천사라고…?”

“이 남자가 천사?!”

“눈빛은 꼭 악마 같은데….”

“내가 아는 천사는 이렇지 않아….”

선배의 발언에 주위에서 무례한 소리를 한마디씩 했다.

정의로운 용사님을 닭대가리들이랑 비교하다니? 이런 수치와 굴욕을 당하고도 참아야 하는 내 상황이 통탄스러웠다.

마음 같아서는 일렬로 세워놓고 요추를….

“아무튼, 천사를 선하고 올바른 존재라고 맹신하는 너희들에게 정의로운 천사로서 충고하자면, 인기가 많은 자네는 주위에 여자가 많을수록 불행해질 운명이야. 네가 행복해지려면 옆에 서 있는 귀여운 척- 하는 것 같은 귀여운 아가씨랑 결혼해야 해.”

나는 라누벨을 가리켰다.

이열치열(以熱治熱).

열은 열로써 다스린다는 뜻이다.

선배와 라누벨이 결합해서 상쇄되거나 중화되면, 이 우주가 좀 더 평화로워질 게 틀림없다. 이건 과학이다.

“라누벨은 결혼하기 일러요!”

“하하…. 저도 아직 생각 없습니다, 천사님.”

내 중매를 둘 다 사양했다.

시스템 방화벽에 걸릴 각오하고 나름 노력해봤지만, 이 우주가 평화로워지긴 요원한 것 같았다.

“그런데 천사님은 굉장한 정령을 친구로 두셨군요.”

선배가 말 돌리듯 엉뚱한 소리를 했다.

그의 시선은 내 머리 위에 앉아있는 최초의 정령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굉장하다고 칭찬받은 정령이 바로 보답했다.

“멍청이. 너랑 함께할 마음 없으니 포기해.”

“예?”

“그런 줄로 알고 있으면 돼. 언젠가 이 고귀한 정령님 말씀의 진의(眞意)를 깨닫게 될 날이 올 거야.”

“아, 네.”

최초의 정령이 선배를 상대하는 사이, 나는 교직원 일동으로 추측되는 응원단의 얼굴들을 전부 익히고 동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 집단이든 불만을 품은 자가 있기 마련이니까.

예상대로 그런 인물이 몇몇 보였다.

내가 선배와 라누벨에게 결혼하라는 발언할 때, 표정이 싸해지던 일부 동료와 응원단 멤버들.

잘만 구슬리면 괜찮을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중 한 명인 현자는….

“우윽…. 저 정령은 어째서 알몸- 푸확?!”

코피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었다.

저 저주를 극복하고 동정을 깨면 깨달음을 얻어서 ‘성현’으로 진화하지만, 그 길은 누군가 반강제로 떠먹여 주지 않는 한 요원해 보였다.

“야. 내 알몸도 몇 번 봤으면서 뭘 그래.”

“아쿠아, 너에게는 음란한 생각이 전혀 안 드니까.”

“여성으로서 매력적이지 않다는 뜻?”

“아니. 그 반대야.”

“흥! 됐어. 별로면 별로라고 말해.”

“내 진심을 오해- 컥컥?!”

인어공주 아쿠아가 휴지를 둘둘 말아서 피투성이인 현자의 콧구멍 속 깊숙이 밀어 넣었다.

체구가 작고 과다출혈로 빌빌거리는 현자는, 아쿠아의 과격한 임시처방에 저항하지 못했다. 저항할 의지도 없는 것 같고.

바보 같은 얼굴이 된 현자는 패스.

내가 주목한 표적은 뜻밖에도 ‘성녀C’였다.

판타지아 북대륙 3대 미녀는 검희, 얼음공주, 성녀C다. 하지만 이 셋 중 한 명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성녀C가 최고.

이건 내 취향이 아니다. 검희는 무뚝뚝하고, 얼음공주는 대인기피증이 있는 탓이다.

그래서 성녀C가 넘버1.

한데, 이런 절세미녀의 표정이 매우 좋지 못했다.

“나는 분명히 경고했다?”

나는 마을로 들어가려는 선배 일행이 지나갈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섰다.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으니까.

선배가 설녀를 발견하고 해롱거리는 동안은 이 마을을 절대 떠나지 않고 쭉 머물 터.

지금은 계획대로 용이 우선이다.

*

*

*

서리왕 에쉬노프.

추운 설산M과 북대륙 북부에 몰려 사는 ‘아이스 드래곤’의 수장으로서, 매우 모범적인 마룡으로 명성이 높다.

녀석의 둥지는 숨결로 꽁꽁 얼린 울창한 숲의 정중앙. 그 주위에는 하피의 서식지가 듬성듬성 있다.

나는 그곳까지 이동하는 내내 마음이 평온했다.

“살려주세요!”

“누가 좀 도와줘!”

“하피에게…. 흑흑!”

“나를 풀어다오!”

나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도와달라고 외치는 자들을 깔끔히 무시하고 지나쳤다.

정의로운 용사님은 하피의 전리품으로 붙잡힌 사내들을 구해주고 싶었지만, 역사가 틀어지면 안 되기에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

나는 그들의 희생 덕분에 시간을 대폭 절약할 수 있었다.

“Iceee…?”

얼어붙은 나무들을 쌓아서 만든 목책을 두른 천연요새. 그 정중앙에서 느긋하게 낮잠을 즐기던 흰색 용이 내 인기척을 느끼고는 게슴츠레 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도 놈을 봤다.

▷종족: 아이스 드래곤

▷레벨: 999+

▷직업: 설왕(설원→불패↑)

▷스킬: 빙결ZZ 폭설Z 용린Z 비행Z 관통Z···

▷상태: 몽롱, 흥미

전반적인 능력치는 ‘서리여왕 엘쉬’로 변했을 때랑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마룡을 마룡답게 해주는 막강한 스킬 ‘용린’도 보유하고 있다는 정도.

용린의 성능을 고려하면, 유전자조작 식품을 먹고 더 약해진 걸지도 모르겠다.

덩치도 상당히 컸다.

이미 웬만한 성룡(成龍)이랑 어깨를 부딪쳐도 밀리지 않는 우량아인 쑥떡의 3배는 될 것 같았다.

망룡왕 뇌비우스랑 비교하긴 미안하고.

팔 한 짝쯤 될까?

“우리, 진지하게 이야기 좀 해볼까?”

“Iceee.”

쿠구구구….

용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걸 잠자코 지켜볼 내가 아니다. 원래도 기습할 생각이었는데, 용의 예민한 감각에 들켜서 무산된 것이다.

“놈을 뭉개버려. 캡틴 판타지!”

“응애-!”

콰아앙!

허공에서 소환된 거대한 아기가 날도마뱀의 등을 탱글탱글한 엉덩이로 깔아뭉갰다.

“I, Iceee~?!”

아가리를 쫙 벌린 용이 처절한 절규를 내질렀다.

캡틴 판타지가 체급에서 망룡왕 뇌비우스에게는 한참 밀렸지만, 다른 용들에게까지 꿀리는 건 절대 아니다.

꿀리긴커녕 압도적이다.

“응애♬ 응애♪”

유아용 꼬마 자동차에 탄 것처럼 신난 캡틴 판타지.

용의 단단한 비늘과 혹한의 냉기도 몰랑몰랑한 아기 피부를 어쩌지 못했다.

급기야,

쿵!

자신보다 큰 캡틴 판타지의 몸무게를 견디지 못한 용이 얼어붙은 대지에 머리를 처박으며 고꾸라졌다.

“Iceeeeee….”

이제 좀 대화할 자세가 된 것 같았다.

5대 재앙으로 불리게 되는 마룡이 꼼짝달싹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놈이 약해서가 아니다.

캡틴 판타지가 상대적으로 너무 강해서다.

하지만 쉽게 포기하면 마룡이란 명성이 우는 법. 서리왕 에쉬노프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리고는,

번쩍-!

빛에 휩싸인 용의 덩치가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용인(龍人) 드래고니안.

날파리처럼 작은 적들을 상대하기 위한 전투형태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이유가 정반대였다. 자기가 날파리가 되어 캡틴 판타지를 괴롭혀주겠다는 괘씸한 심보였다.

“응애? 응애!”

“컥-?!”

하지만 비겁한 악마 쏘시아를 상대해본 경험이 있는 캡틴 판타지에게는 가소로운 전술이었다.

단숨에 드래고니안을 낚아챈 후, 장난감 비행기처럼 붕붕 흔들었다.

하지만 입에 넣고 빨거나 핥지 않는 거로 봐서는, 쏘시아만큼 마음에 들진 않는 듯했다.

“이 괴물 녀석! 놔, 놔라!”

“응애…!”

“자, 잠깐! 던지지- 으아아아~?!”

캡틴 판타지가 싫증 난 드래고니안을 힘껏 땅바닥에 내리쳤다.

콰아아앙-!

단숨에 깊고 넓은 크레이터가 생겼다.

그 정중앙에 운석처럼 처박힌 드래고니안은 혼수상태- 아니,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공황에 빠졌다.

“이제 좀 대화할 준비가 된 것 같군.”

“큭! 네놈도 모험가냐?”

“아니. 용사다.”

“용사?”

피투성이의 드래고니안이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내가 용사란 걸 의심하는 게 아니라, 아예 ‘용사’라는 단어의 의미나 개념 자체를 모르는 것 같았다.

이것도 과거의 특수인 걸까?

아무튼,

“너는 오늘부터 서리여왕 엘쉬다.”

“그게 무슨 뜻이지?”

갑자기 개명하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지금의 드래고니안 같은 표정을 지을 것이다.

용은 성별이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성격과 취향에 따라 수컷과 암컷, 둘 중 하나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기분 내키는 대로 번갈아 가면서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부 용은 죽을 때까지 하나의 성별을 고집한다. 망룡왕 뇌비우스가 그 대표적인 예.

“말 그대로. 오늘부터 너는 하피들의 여왕도 겸한다.”

“어째서 그런 무가치한 짓을- 크아아악?!”

“그래. 이 손맛이야.”

캡틴 판타지에게 전부 맡기고 뒷짐만 지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귀여운 척하는 라누벨을 본 이후부터 오른손이 날뛰고 싶어 했기에 나로선 나쁠 게 전혀 없었다.

“내 몸에 대체 무슨 짓을--”

무심코 허리를 움직인 드래고니안이 활처럼 몸을 쫙 폈다. 소리 없이 벌어진 입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상황임을 암시해줬다.

“오늘부터 숙녀로 다시 태어나는 거야. 아! 너무 걱정하지 마. 수업료는 조금 전에 받았으니까.”

전신성형 후, 서리왕에서 서리여왕으로 바꿔 불리면 되는 것이다.

생각처럼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

*

*

정의로운 용사님은 고작 이틀 만에 작업을 마쳤다.

마룡을 수컷에서 암컷으로 성전환!

그 자세한 이유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알려주면 서리여왕 엘쉬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출금지 같은 조건도 달지 않았다.

어차피 당분간은 허리가 아파서 외부활동이 힘들 테니까. 괜히 설녀의 존재를 알려줘서 일을 복잡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마약 용사. 나는 네 편이다.”

“갑자기 웬 뚱딴지같은 소리야.”

지난 이틀 동안 최초의 정령은 무척 얌전히 지냈다. 내가 녀석에게 얼마나 관대했는지 깨달은 걸까?

“그렇다! 깨달은 것이다! 마약 용사가 사실은 착한 마약 용사라는 걸 이번에 깨달았다! 그러니 나는 괴롭히지 마라.”

“너는 손가락 하나로 충분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착한 마약 용사!”

“거참….”

오늘따라 태도가 이상한 최초의 정령은 놔두고, 마을로 돌아온 나는 선배가 뭘 하고 다니는지 찾아봤다.

그런데 역시나….

“설녀 양. 오늘 날씨가 참 좋지요?”

“대부분 인간은 통행로를 막는 폭설을 매우 싫어하는 거로 아는데요….”

“당신처럼 새하얀 눈이 저는 좋습니다. 힘들거나 곤란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제게 도움을 청하세요.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벌써 부담스러워요….”

선배는 설녀에게 치근대고 있었다.

누가 봐도 양아치.

어디 가서 용사라고 자기소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오늘은 이쪽에 용무가 있는 게 아니다.

재앙을 몰고 다니는 선배의 마수로부터 설녀가 아직 무사한 걸 확인했으니 됐다.

나는 겨드랑이에서 비비적대는 바람의 정령왕이 알려준 여관 겸 술집으로 향했다.

“여기란 말이지….”

점점 거세지는 눈보라를 뚫고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문을 과감히 열어젖혔다.

끼이익-

벽난로와 인간의 열기로 후끈 달아오른 실내.

주점으로 운영되는 1층에 자리 잡고 앉아있는 남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여인이 있었다.

성녀C.

하지만 지금은 성녀가 아니다. 이 시대에는 ‘성스러운 여자’란 직업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추한 술집을 압도적인 미색으로 빛내는 그녀에게 접근하는 사내는 아직 없었다. 서로 견제하며 눈치 보기 바쁠 뿐.

나는 그들을 비웃듯 성큼성큼 접근해서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저는, 당신의 오른쪽 엉덩이에 보라색 점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수상한 남자인데요.”

“푸웁- 콜록콜록!”

선배랑 달리 대화의 시작이 매우 순조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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