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244화 (244/430)

 244화

[13회차] 큰 요정, 작은 요정

“응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이 상황을 무마할 수 있을까, 그런 내 마음도 몰라주고 즐겁다는 듯이 까르르 웃는 캡틴 판타지.

일단, 폐기 처분이 시급했던 불량식품 ‘초대 요정왕’을 먹었음에도 소화불량은 없는 것 같았다.

불량은커녕,

“끄읔…!”

아주 잘 소화됐다고 알리듯 트림까지!

그 직후, 3등신 캡틴 판타지의 거대한 머리에 송송 자란 검은색 머리카락이 짙은 붉은색으로 변했다.

초대 요정왕이 변으로 나올 가능성이 완전히 없어진-

툭!

탱글탱글한 아기 엉덩이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저건…. 오! 맙소사.”

나는 거인왕이랑 대치 중이란 사실도 잊은 채, 캡틴 판타지가 난생처음으로 싼 대변을 구경했다.

땅에 떨어진 똥이 생동감 넘치게 꿈틀거렸다.

“으으으….”

시들시들해진 줄 알았던 우주의 총애는 계속되고 있었다.

캡틴 판타지가 배설한 초대 요정왕은 사지 멀쩡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빠져 있었다.

▷종족: 로열 엘프

▷레벨: 1

▷직업: 무직(경험치 110%)

▷스킬: 인내S 통역A

▷상태: 혼란, 공황

암 덩어리 같은 몸뚱이만 남고 경험치와 스킬이 싹 사라졌다.

S등급 인내가 남아있긴 했지만, 저건 소화되는 과정에서 생긴 것 같으므로 논외다.

나는 캡틴 판타지를 돌아봤다.

“너, 대단하구나?”

영양분만 쏙 빼먹고 불필요한 찌꺼기는 완벽하게 배출했다.

“응애!”

화르륵!

꽃이 만개하듯 입을 활짝 벌리며 웃는 캡틴 판타지의 등에서 새빨간 불의 날개가 솟구쳤다.

덩치에 걸맞게 그 규모 또한 무시무시했다.

남대륙을 홀라당 태워버릴 기세!

내가 알던 5대 재앙이나 초대 요정왕의 화염하고는 격이 달랐다. 날개를 한 번 펄럭이자마자 주위의 온도가 급격히 올라갔고, 풀과 나무가 바싹 말라버렸다.

“뜨, 뜨겁다!”

“무섭다!”

“너무 크다!”

캡틴 판타지 때문에 ‘힘없는 작은 생물’로 전락한 거인들은 공포에 찌든 얼굴로 줄행랑쳤다.

그 마음은 거인왕도 마찬가지였지만, 녀석에게는 아직 볼일이 남아있기 때문에 보내줄 수 없었다.

“뭐, 뭐냐.”

“먹어.”

나는 초대 요정왕을 가리키며 말했다.

불의 힘을 상실하는 바람에 불꽃왕이 되긴 글렀지만, 저 늙은 거인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만으로도 값어치가 있다.

거인은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요정은 수명의 한계가 없다.

둘이 합쳐지면 이론상 무한정 커진다.

컴퓨터게임에서는 레벨만 높으면 최강이지만, 현실에서는 체급과 근육량, 신장 같은 요소를 무시할 수 없다.

친애하는 전우, 망룡왕 뇌비우스는 둘 다 높은 반칙이었고.

“모욕하지 말고 죽여라! 똥을 먹을 바에- 우읍?!”

“응애!”

캡틴 판타지가 거인왕의 입에 초대 요정왕을 욱여넣었다.

영양분이 다 빠진 똥이긴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 남은 영양소 하나는 무사한 듯했다.

두두둑, 두둑…!

이걸 전문용어로 ‘환골탈태(換骨奪胎)’라고 부르던가?

주름이 자글자글했던 거인왕이 단숨에 회춘했다. 하지만 약간의 부작용이 있었다.

“큭?! 내 머릿속에서 나가…! 아니, 내가 들어온 건가? 아니야! 아닌 게 맞나?! 나는 요정들의 왕…. 거인들의 왕? 내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은…. 아니, 내게 그런 하찮은 것들은 없어! 크윽! 당장 사라져! 너나 사라져! 아아아악!”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며 허물어지듯 쓰러진 거인왕이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이걸 정신분열이라고 하던가? 혹은 이중인격?

뭐든 간에 괜찮게 합체된 것 같았다.

“마약 용사.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다.”

“내가 괜찮아.”

“아하!”

덩치가 크기 때문에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진 않을 것이다.

실제 역사에 나오는 불꽃왕 페닉스가 아니라 ‘거인왕 페닉스’가 돼버렸지만, 약간의 오차와 변수는 어디에나 있는 법이다.

그렇지?

☞포기: 어쩔 수 없지요…. 전쟁을 일으키려는 그가 내건 유예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5대 재앙이 완전히 공석이 된 건 아니기에 재촬영까지 갈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이전만큼의 강함을 기대할 수 있을지가 걱정입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 이 용사님에게 맡겨달라구?

“내가 가르치는 것 하나는 끝내주게 잘하지.”

자격증은 없지만.

가르치는 데 최고의 걸림돌인 덩치의 격차는 캡틴 판타지가 옆에서 도와주면 문제없을 것이다.

“응애.”

함께 훌륭한 악당을 만들어보자!

*

*

*

...세상일이 전부 뜻대로 풀리면 참 좋겠지만, 아무리 훌륭한 선생이 지도편달 해줘도 따라오는 학생이 불성실하고 무능하면 성과도 미미할 수밖에 없다.

그 탓에 나는 남대륙에서 무려 1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나의 육성프로그램은 거인왕만 해당하는 게 아니었다.

화산을 거대한 용광로로 개발해서 거인들도 충분히 쓸 수 있는 철제 갑옷과 무기를 제작하고, 덩치를 효율적으로 활용해서 싸우는 전투법 등을 거인들에게 전수해줬다.

가장 힘들었던 일은 수세식 변기의 보급이었다.

제작 자체는 크기만 키우면 돼서 어렵지 않았지만, 정화조를 금방 채워버리는 거인들의 무지막지한 배설량이 문제였다.

정의로운 용사인 나마저 포기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 우주의 총애로 늦지 않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다.

대규모 토목사업!

“정말 힘들었었지….”

“응애….”

강력한 해양몬스터를 주식으로 삼는 거인들의 똥은, 말려서 약간의 공정을 거치면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나는 여기서 착안하여 개발한 벽돌로 높은 성벽을 쌓고, 댐 등을 건설했다.

그 시작은 미미했으나, 쌓이고 쌓이니 그럴싸해졌다.

마지막 토목사업은 거대한 양식장이었다.

거인의 막대한 식사량을 감당할 수 없는 농업 대신 수산업을 선택한 결과였다.

그 최종적인 목적은, 바다 한복판까지 걸어서 이동할 수 있을 만큼 얕은 길을 만드는 것이다.

언제 완성될지 기약 없는 중노동이다.

“하지만 내가 알 바 아니지.”

내가 직접 만드는 건 아니니까.

거인왕과 요정왕이 합체한 ‘이중인격 페닉스’가 심각하게 무능하고 약하니 어쩌겠는가?

나중에 토벌한답시고 찾아올 용사를 비겁하게 협공해서라도 쓰러트려야지.

그걸 위해 종족 규모의 빠른 발전을 유도했다.

젖니와 함께 제국을 세운 귀여운 황제였던 내 경험을 살리면, 이건 누워서 새끼용 먹기나 다름없다.

“용사님. 이건 빨라도 너무 빠른데요…?”

그림자A가 터무니없는 이유로 내 계획을 지적했다.

“느리면 느리다고 지랄. 빠르면 빠르다고 지랄.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거야?”

“이 속도로 계속 발전한다면 거인이 세계정복도 할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아아, 그건 걱정하지 마.”

나의 친애하는 전우, 망룡왕 뇌비우스가 가볍게 입김을 불면 싹 녹아버릴 테니까.

세상에는 시간과 노력으로 안 되는 것도 있는 법이다.

아무리 가르쳐도 못 따라오는 페닉스도 거기에 해당했다. 이 녀석의 무능함에는 나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이, 이 지옥 같은 삶은 대체 언제까지…!”

야만적인 검왕 알렉스의 훈련이랑 비교하면 강도가 너무나 몰랑몰랑한 내 가르침을 못 쫓아오고 있었다.

내 주문이 그리 어렵나?

“캡틴 판타지를 업고 뒷산 한 바퀴 도는 게 어렵냐?”

“응애?”

힘들다고 칭얼대는 페닉스가 피를 토하듯 외치며 반박했다.

“그 뒷산이 얼마나 큰 줄 알- 아십니까?! 그리고 아기님의 체중은 모든 거인을 합친 것보다 무겁습니다!”

“우량아라서 그래.”

“응애, 응애.”

목표치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더는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다.

동대륙도 가야 하고, 중앙대륙에서 친애하는 전우와 장인어른도 상대해줘야 한다.

남대륙에서 시간을 너무 빼앗겼다.

“위대한 아기왕이시여. 요정 나라의 사절단을 자칭하는 무리가 찾아왔습니다.”

제법 머리가 굴러가길래 관리직으로 뽑은 거인이 공손한 어조로 내가 아닌 캡틴 판타지에게 보고했다.

...야. 부르잖아.

“응애.”

그 아기왕의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거인왕보다 압도적으로 크고 강한 캡틴 판타지는 자연스럽게 거인들의 왕이 됐고, 작디작은 나는 실무를 맡고 있다.

“들어오라고 해.”

“응애.”

내가 지시하고 캡틴 판타지가 허락하는 특이한 명령체계지만, 지금까지 잡음 한번 없이 잘 굴러가고 있었다.

최근에 국가로 주위에서 멋대로 인정하면서 국교 문제로 외교사절단 등이 자주 방문하고 있었다.

아! 이웃하는 인간 나라의 공주님들도 체류 중이다.

처음에는 도살장에 끌려온 것 같은 암울한 얼굴들이었는데, 수세식 변기를 써본 이후부터 표정이 살아났다.

하지만 요정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필 떠나려는 이 시기에?

☞참견: 이대로 흘러가면 역사가 완전히 틀어집니다. 실제 역사를 돌아보면, 요정들이 나라를 건국하려면 거인의 위협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용사를 도와서 불꽃왕 페닉스를 쓰러트린 3대 요정왕이 주변국들의 인정을 받고 나라를 세워야 하는데, 당신의 이상적인 치세로 그럴 기회가 사라졌습니다.

시스템의 설명은 잘 이해했다.

유감스러운 요정왕이 요정들을 위한 나라를 세우려면 외부세력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거군?

그럴 만도 하다. 내가 최근까지 관찰해본 요정들은 아직 멸종하지 않은 게 신기한 종족이었으니까.

이 시대의 인간들 관점에서 보자면, 원숭이치고 똑똑한 원숭이가 나라를 세우겠다고 까부는 거나 다름없다.

“용사님. 저 어때요?”

그림자A가 갑자기 헛소리했다.

매일 보는 아줌마가 어떠냐고 물으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까?

“한결같네.”

솔직하게 대답해주자.

“제 말은, 여성으로서 매력적이냐는 겁니다.”

“그걸 굳이 나에게 확인할 필요가 있나? 간절히 바라는 남자만 예쁘다고 해주면 누구든 절세미녀지.”

“그건 저도 아는데….”

마침내 요정 사절단이 들어왔다.

그들은 원재료가 똥인 웅장한 건물 내부를 구경하면서 연신 감탄하기 바빴다.

그리고 그 요정 무리의 선두.

보자마자 그냥 불쾌해지는 요정 소년이 있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거인들의 존경을 받는 위대한 아기왕이시여. 제 이름은 엘브하임 칸 라누베르크. 요정 종족의 임시대표를 맡은 작은 존재입니다. 거인과 요정 사이에 있었던 전쟁의 앙금을 풀고, 양국의 발전과 평화를…. 컥?!”

“엘브하임 니이임~”

두 눈이 하트로 변한 그림자A가 바람 같은 속도로 돌진해서 조그마한 미래의 요정왕을 끌어안았다.

“숙녀분. 이러시면 곤란…. 곤란한데…. 어흠. 잠깐이라면….”

그림자A의 깊은 가슴골 사이에 얼굴이 낀 유감스러운 요정왕의 말투가 뒤로 갈수록 관대해졌다.

하지만 주변은 그렇지 않았다.

“아줌마! 당장 나의 엘브하임 님을 내려놓지 못해?!”

독이 오른 고양이처럼 앙칼진 목소리로 외치며 위협적으로 단검을 꺼내 드는 요정 소녀.

...그 아줌마랑 무척 닮은 것 같은데?

가슴 빼고.

“너, 너는…?!”

“나는 엘브하임 님의 아내야!”

“후보겠지! 미래의 아내가 아니란 얘기는 절대 아니지만! 오늘은 내게 양보해.”

“싫어! 아줌마는 뭔데 그 괴물 같은 젖통으로 그분을 유혹하는데! 그거 가짜지?”

“너, 누워서 침 뱉기라고 들어봤어?!”

큰 그림자A랑 작은 그림자A가 유감스러운 요정왕을 사이에 두고 유치한 말다툼을 시작했다.

그 둘 때문에 외교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동대륙으로 떠날 때가 임박한 것 같네.”

“응애.”

“나도 동감한다, 마약 용사.”

“여기요, 깃털”

판타지아 남대륙의 미래는 저 유감스러운 요정 가족에게 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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