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247화 (247/430)

 247화

[14회차] 용사의 지침서

“미인이시네요.”

사회경험 부족한 설녀가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녀의 평가처럼, 쏘시아는 같은 여자가 봐도 매력적인 마성의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개인의 취향은 둘째 문제.

이 악마의 미모는 권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속지 마. 아주 비겁한 여자야.”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쏘시아는 성검마저 튕겨내는 몰랑몰랑한 가슴으로 시선을 빼앗은 후에 공격하는 아주 비열한 전법을 구사한다.

밤에 자주 경험하면서 꽤 익숙해졌다고 자신하는 지금도 까딱 방심하면 넋을 놓거나 한눈팔 때가 종종 있다.

☞주의: 그녀를 아는 척하지 마십시오.

현대에선 마왕과 최초의 정령이 공증하는 내 마누라지만, 이곳은 과거의 시대.

그녀와 나는 남남인 상태다.

시스템의 경고처럼 처음 만난 척해야 한다.

귀찮구먼~

하지만 여기서 설정 오류가 생긴다.

내가 처음 보는 여자를 구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정말로 죄를 짓고 봉인된 악마일 수도 있고, 너무 강해서 봉인해둘 수밖에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그녀가 조금도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모른 척해야 하는 이 상황에선….

☞설명: 남성 용사가 미녀, 여성 용사가 미남을 구하는데 딱히 명분이나 이유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마음대로 구하-

그 설정은 마음에 안 드네.

☞오류: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예뻐서 구했더니 쏘시아처럼 비겁한 여자일 수도 있잖아?

외모를 보고 판단하는 방식은 잘못됐다.

이건 청개구리, 놀부 심보로 하는 말이 아니다.

시스템이 내게 비상대책위원장이란 감투를 주고, 한 걸음 양보해서 타협점을 찾으려고 애쓸 때부터 눈치챘다.

지금의 내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당연했다.

“앞으로는 내가 후배 용사들의 기준점이 될지니.”

지금 내가 진행하는 모험은 ‘최초의 용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후배들이 따라서 배울 지침서, 교과서가 될 예정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내 인성을 비난하며 낮은 점수를 매겼던 잘못된 교육시스템을 붕괴시키고 새롭게 편찬할 수 있다.

물론, 확신이 있기 전부터 내 행동들에는 전부 이유가 있었다.

수세식 변기의 보급부터 절세미녀 중매, 거인의 문화혁명, 동대륙의 대량학살까지.

하!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내 1회차 때랑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미래의 판타지아 대륙에는 수세식 변기가 널리 보급되고, 능력 있는 대마법사인데도 촌년에게 속고 살던 순진한 노총각이 구원받았다.

남대륙은 온난화로 고통받지 않을 것이며, 간사한 용들은 함부로 인간 행세하지 못하게 되리라.

내 행동들에는 전부 이유가 있었다.

그건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고.

“우매한 돌연변이 하피야. 여자는 외면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해. 이 악마는 기형적인 내면을 가지고 있어. 척추가 평균 여성의 골격보다 더욱 S자로 꺾여서 음란하지. 그리고 골반이 넓어서 순산과 다산의 운명을 타고났어.”

그 밖에도 세세한 내면의 특징들이 있는데….

종합적으로 평가해보면, 쏘시아는 숨만 쉬어도 주위의 남자들에게 지독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준다.

그 비겁한 삶의 방식에 치가 떨리는군!

“마약 용사.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내 조카를 은근히 잘 챙겨주는 것 같은데.”

“천만에! 나는 어디까지나 그녀를 내 옆에 두고 감시하는 거야. 다른 수컷들에게 민폐가 안 되도록.”

용사는 미래마저 헌납해야 하는 3D 업종이다.

나는 인류의 절반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희생하는 것이다.

“솔직하지 못하긴.”

“닥쳐.”

정의로운 용사님의 깊은 뜻을, 마약에 찌든 게으름뱅이 정령이 어찌 알겠는가?

나는 거대한 보석 위에 손바닥을 댔다.

파직-!

그 즉시, 쏘시아를 봉인한 자수정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안 부수고 옆으로 소환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처음 만나는 관계란 설정이 파괴되기에 귀찮더라도 꼭 필요한 절차였다.

자수정이 부서지고, 내가 서 있는 방향으로 쏘시아가 기울어지듯 쓰러졌다.

나는 그녀랑 부딪히지 않도록 옆으로 한 걸음 피했다.

“우으으…. 이게 어떻게 된…?”

파괴된 수정 잔해에 이마를 받으며 깨어난 쏘시아가 몽롱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안녕? 처음 보는 비겁한 악마 아가씨. 나는 4년째 판타지아 세계에서 삽질- 모험 중인 정의로운 용사라고 해. 수정에 갇혀있던 아가씨를 구해낸 은인이기도 하지.”

“...우리는 처음 만난 거군요?”

“그런 거지.”

“호호호!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정의로운 용사님! 제가 왜 이곳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도와달라는 건 염치없죠. 은혜는 나중에 꼭 갚을게요. 그러면 전 이만…. 꺅?!”

“안 돼. 지금부터 갚아.”

비틀비틀한 자세로 뒷걸음치는 악마 아가씨의 잘록한 허리를 정중히 끌어안았다.

“마약 용사. 너무 정중해서 척추가 부러진 것 같은데….”

“완전히 잘못 본 거야.”

탈골과 골절을 혼동하면 곤란하다.

“나, 남편. 내가 전부 잘못했어. 화해하고 끝내자. 아빠에게도 안 한 애교도 부리면서 내가 이렇게 사과하잖아. 응응? 자기야~”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났다니까.”

쯧쯧. 눈치가 없구먼.

“눈치는 네가- 호호! 용사님이 없으신 것 같은데요. 처음 만난 여자의 허리를 다짜고짜 망가트려도 괜찮은 건가요?”

“척추가 음란하게 생긴 너는 유죄.”

“뭐야?! 그 외모지상주의적인 발언은…! 아니, 그보다 척추가 음란하게 생겼다는 기준이 뭐야?!”

우리는 편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지하아파트에 살던 용들은 다 죽어가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두 번째 악마인 쏘시아의 몸에서 홍수처럼 쏟아지는 막대한 양의 마기가 그 원인이었다.

그녀의 종족특성은 ‘무엇이든 두 번째’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보유한 마기의 양도 세상에서 두 번째로 많다. 하물며 지금은 ‘소유권’이 내게 넘어오면서 분할되지 않은 ‘완전한 쏘시아’였다.

그 능력치는 실로 압도적이었다.

▶종족: 세컨드 데몬

▷레벨: 1

▷직업: 무직(경험치 110%)

▶스킬: 마기GG 매력GG

▶상태: 귀속

보유한 스킬은 단 2개뿐이었다.

나머지는 세월이 흐르면서 사라졌거나 소유권이 넘어오는 과정에서 레벨과 직업처럼 회수되고, 그녀 고유의 스킬만 남은 것 같았다.

세상에서 두 번째로 마기가 많은 악마.

세상에서 두 번째로 매력적인 여성.

신의 영역인 G등급에서도 두 번째인 GG등급이었다. 순수한 전투력만 따지면 나보다 강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쏘시아의 진짜 힘이리라.

세상에서 두 번째로 강한 존재 같은 설정도 반영된다면 정말 사기였겠지만, 그렇게까지 편리하진 않기에 ‘저주’라고 부르는 것이리라.

그리고,

“비겁한 악마 아가씨. 이 땅에서 최근에 죽은 자들을 악마로 몽땅 환생시켜줘.”

전투력이랑 상관없이 우리의 부부관계는 수평이 아닌 수직이다.

내가 첫 번째, 그녀가 두 번째.

그렇기에 쏘시아는 ‘남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다.

“용사가 악마를 양산하겠다고…?”

“오늘 처음 만난 악마 아가씨의 지적대로라면, 용사가 악마의 허리를 부드럽게 껴안고 있는 것도 문제겠는걸? 우리, 단둘이 으슥한 공간에서 엉덩이에 성검 박는 십이지장 관통 수술부터 시작해보지 않을래?”

내가 예쁘게 뚫어줄게!

“비겁하게 협박- 호호호! 농담이에요. 훌륭하신 용사님이 융통성을 발휘할 수도 있는 거죠.”

쏘시아가 괄약근을 바짝 긴장하며 자기 잘못을 시인했다.

그리고 마기를 활짝 개방했다.

쏴아아아-!

그녀의 몸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마기는 마른 땅에 내리는 소나기처럼 대지로 스며들었다.

악마는 어둠에서 비롯된 정령.

그렇기에 빛이 들지 않는 밤에 땅속에서 태어난다.

“나, 나는 분명 운석을 맞고….”

“어떻게 살아있지?”

“온몸에 활력이 넘친다!”

“오오! 내가 다시 돌아왔노라!”

인간에서 악마로 환생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왜 내가 살아있지?’라고 당황하다가 이내 순수하게 삶의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여보. 당신의 이마에 뿔 같은 게 생겼어요.”

“뭐? 헉! 정말이잖아!”

토벌대상인 악마가 됐음을 눈치챈 사람들은 공황에 빠졌다.

되살아난 가족과 애인의 몸에서 시커먼 뿔과 날개를 발견한 지인들도 혼란스러워하긴 마찬가지.

내 예상대로였다.

“아! 사악한 용들도 재활용해야지.”

착한 용은 아낌없이 주는 용뿐이다.

금은보화를 쌓아두기만 하고 용사에게 베풀지 않는 용들은 살아있을 자격이 없다.

하지만 나는 자비로운 용사.

자격 없는 용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했다.

“Bluuuaaaa?!”

“Bluu- Blaaaaa…!”

마기에 찌든 푸른색 용들이 검게 변했다.

완전히 죽어서 자연으로 회귀한 용들은 뼈로 이루어진 언데드 몬스터로 되살아났다.

▷종족: 스켈레톤 드래곤

▷레벨: 1

▷직업: 요리사(경력→요리↑)

▷스킬: 숨결Z 요리Z 마기MAX 마법MAX 해양MAX…

▷상태: 종속, 광분

내게 죽은 용들은 경험치를 싹 빨리는 바람에 레벨이 복귀 안 됐지만, 운석에 맞고 죽은 용과 사람들은 악마가 되면서 더욱 강해졌다.

생전 능력에 마기가 추가됐으니 오죽할까!

악마의 강점은 그뿐만이 아니다.

“오빠. 우리는 앞으로도 함께야.”

“이, 이러지 마.”

“나만 바라보는 악마가 되어줘.”

“크아아악~?!”

다른 생명체에게 마기를 심어서 동족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그리고 악마는 보유한 마기의 양으로 신분이 나뉜다.

즉, 인간 시절의 직급과 관계는 무의미해진다.

“공작 영애. 앞으로는 제 노예가 돼주셔야겠습니다.”

“비천한 하인 따위가 내게…. 내게….”

“자! 다시 말해보십시오.”

“...당신의 노예가 되겠습니다, 주인님.”

“하하하하! 그래, 바로 이거야! 나는 이걸 원했어!”

쏘시아의 강대한 마기에 휩싸인 동대륙 섬E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됐다.

사방에서 배신과 통수가 난무하고, 보유한 마기의 양이 비슷한 자들끼리 목숨을 건 쟁탈전을 벌였다.

물론,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악마 아가씨. 전부 닥치라고 명령해.”

“어. 제발 좀 닥쳐.”

“...어째 나에게 하는 말 같다?”

“기분 탓이에요, 용사님.”

쏘시아의 한마디에 모든 혼란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퍼진 마기의 재분배를 시작했다.

인간 시절의 신분에 어울리는 양의 마기를 나눠줬다.

“공작 영애. 옷을 벗고 내 앞에 엎드리십시오.”

“그 더러운 입, 닥치세요!”

“뭐라고…! 감히! 주인인 내게…. 내게….”

“비천한 하인으로 돌아가- 아니, 창밖으로 뛰어내리세요.”

“안, 안 돼! 으아아악~?!”

약간의 부작용으로 인명피해가 약간 발생했지만, 마기로 잠시 혼란스러워졌던 섬E는 빠르게 안정됐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세계평화를 위해 공사다망으로 애쓰시는 용사님에게 토지를 저렴하게 매각하라고 명령해줘.”

“맙소사! 용사가 어떻게 그리 잔인한 생각을…?”

쏘시아가 악마답지 않게 경악했다.

“어허! 내 의도를 오해하면 곤란해.”

이건 내 노후를 위한 준비가 절대 아니다.

풍부한 자금과 투자를 바탕으로 빠르게 강해지려는 의도다.

아마 강해진 지금의 내게는 필요 없는 수단이지만, 맨땅에서 시작하는 신출내기 후배 용사들을 위한 지침서가 되어줄 생각이다.

나만 따라 하면 금방 강해질 수 있다고.

“마왕의 지침서 같은데….”

“잔말 말고 본인의 운명부터 걱정하는 게 어때?”

“......”

“나는 그날의 통수를 잊지 않았다.”

지난 4년 동안 매월 3할 복리로 계산 중이었다구?

“...바보 아빠가 마왕이라서 참 다행이야. 너 같은 게 마왕이었다면 세상은 진즉 끝장났….”

오늘 산 따끈따끈한 항구도시에서 출항한 정의로운 용사님은 정답게 미녀의 목을 잡고 섬S로 이동했다!

동대륙 5대 재앙, 저주왕 말파르트.

역사는 반복되어야만 한다.

▶의문: 이렇게 꼬인 상황에서 반복될 수 있을까요…?

물론이야, 예쁜 교생 아가씨!

68년 동안 쌓인 복리를 계산할 날이 머지않았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