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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급 관심용사-261화 (261/430)

 261화

[14회차] 거절한다!

“알렉스 씨! 라누벨의 얼굴을 봐서 지크를 용서해주세요! 그는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안 드는 색골이지만, 세상을 구하려면 용사의 힘이 꼭 필요해요!”

“...두 번은 없다.”

지크의 멱살을 놔주고 흐트러진 앞치마를 정돈한 알렉스. 그는 손님들에게 들어오라는 듯이 현관문에서 살짝 옆으로 비켜섰다.

설녀도 환영하는 어조로 말했다.

“어서 들어오세요! 알렉스의 요리는 뭐든 맛있어요!”

“크흠!”

알렉스가 먼 산을 바라보며 헛기침했다. 방금까지 지크에게 지옥의 수문장 같은 험악한 표정을 지었던 그의 변화는 극단적이었다.

그 야만인이 여자의 칭찬에 부끄러워하다니….

“보기 좋네. 신혼부부 같잖아.”

청춘 로맨스 드라마의 마지막 화를 시청 중인 어머니처럼, 쏘시아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너는 괜찮은 모양이네. 나는 아까부터 속이 매스꺼운데.”

내가 알던 알렉스랑 너무 달라서 적응이 안 됐다.

강해지면 저 야만인의 요추(腰椎) 4번과 5번 사이를 성검으로 찌르겠다고, 이불 속에서 질질 짜며 다짐하던 시절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또….

“그만 말해! 네가 1회차 이야기할 때마다 나도 속이 매스꺼워! 내가 보기엔 알렉스보다 네가 더 심해.”

“내가 어때서?”

나는 1회차부터 지금까지 늘 이성적으로 행동해왔다. 상대적인 강함의 차이가 있을 뿐.

쏘시아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설녀를 보며 이상한 말을 했다.

“살짝 얼빠진 푼수인 줄 알았는데, 정말 대단한 여자였네.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남편을 변화시키다니. 나도 본받아야겠어.”

“포기해.”

내가 이불 속에서 질질 짜는 날은 오지 않는다.

“그런 변화는 나도 싫어! 하지만 조금은 궁금한걸? 네 1회차를 보고 싶어. 생활기록부에 있을 텐데….”

“보지 마라. 나는 경고했다.”

“정색하지 마. 나 혼자 몰래 볼 거니까.”

“야!”

내가 쏘시아랑 치열한 부부싸움을 벌이는 사이, 앞치마를 두른 알렉스는 부지런히 칼질하고 있었다.

다다다다-!

도마 위에서 채소와 과일이 정확한 크기로 썰렸다.

저러려고 익힌 G급 검술이 아닐 텐데…?

알렉스의 가마솥 같은 주먹이 고깃덩어리를 후려쳐서 부드럽게 만들고, 한 손으로 문질렀음에도 밀가루 반죽이 순식간에 완성됐다.

그 밖의 모든 과정에서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여유 부리듯 콧노래까지!

검왕이 아니라 요리왕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시작된 식사 시간.

알렉스는 손이 없는 아내 옆에 앉아서 일일이 먹여줬다. 그리고 설녀는 싱글싱글 미소 지으며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식성이 왕성한 건 여전하군.

알렉스는 식사를 마친 설녀의 입가에 묻는 양념들을 냅킨으로 닦아준 후, 접시에 남은 얼마 남지 않은 음식들을 깔끔히 처리했다.

남편보다는 가정부에 가깝지 않을까?

하지만 그의 상태에 계속 붙어있는 ‘행복’을 보면, 그는 저 귀찮은 노동에서 진심으로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랑 다른 세계를 사는 것 같다.

“비겁한 남편. 부러워?”

“아니.”

“부럽지? 솔직하게 말해. 내가 얌전히 먹어줄게.”

“혼자 알아서 처먹어!”

“부끄러워하긴~”

“마약용사. 내가 봤다! 조카가 설녀를 부러운 눈으로 빤히….”

“이모님은 아무 말도 하지 마요! 제발!”

“우히히히!”

알렉스까지 식사를 마친 후, 바짝 긴장한 지크 대신 라누벨이 방문한 용건을 꺼냈다.

“알렉스 씨, 설녀 양. 마왕이 부활했어요. 정의감보다 성욕이 더 많은 지크 용사만으로는 세상을 지킬 수 없어요. 라누벨이 이렇게 부탁할게요. 저희의 모험에 동참해주세요!”

나도 이때만큼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전히 졸업 못 한 지크가 있고, 만두 왕국의 기사A 능력치를 보았을 때, 이곳은 초등교육장이 확실하다.

그런데 G급 검술이라고?

직업효과까지 고려하면 G급 신성도 보유한 셈!

당장 알렉스 혼자서 마왕의 성까지 돌격해도 됐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내 다운그레이드 전투력을 보유한 더미들은 무슨 수를 써도 저 판타지산 흑곰을 이길 수 없으니까.

이건 지크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교육장 전개가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라누벨들(?)은 자기가 소환한 용사가 미덥지 않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알렉스부터 찾아간다. 그리고 지금 같은 부탁을 했다.

그렇기에 이 대화가 중요하다.

만약, 알렉스가 지크의 모험에 가담하면?

모든 교육장의 용사 파티에 G급 괴수가 참가한다고 봐야 한다. 덤으로, 예쁘고 편리한 교통수단인 설녀까지!

용사의 모험이 100배쯤 쉬워질 것이다.

“거절한다.”

그리고 알렉스는 예상 밖의 대답을 했다.

“헛! 왜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뜬 라누벨이 귀여운 척하며 질문했다.

이에 알렉스는 큼직한 손으로 설녀의 아담한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답했다.

“나는 홑몸이 아니다.”

“부부동반 하면 되죠! 가족여행들 많이 하잖아요~”

“라누벨. 나는 설녀를 사랑한다. 그렇기에 수세식 변기가 없는 지저분한 모험에 그녀를 데려가고 싶지 않다.”

여기서 또 수세식 변기가…?

“수세식 변기가 없는 모험에도 낭만이 있어요! 꽃을 꺾으러 혼자 수풀에 들어갔다가 몬스터랑 마주치는 상황. 상상만으로도 흥분되지 않나요?”

라누벨이 끈질기게 매달렸다.

하지만 알렉스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 불청결하고 위험천만한 상황을 내 아내에게 경험시켜주고 싶지 않다. 또한, 내가 아닌 다른 사내가 그녀의 부끄러운 모습을 실수로라도 보는 걸 원치 않는다.”

그렇게 말하면서 지크를 매섭게 노려본다.

이 부부가 모험에 동참할 확률은, B급 용사님의 잘못된 처신으로 더욱 떨어졌다.

“알렉스. 잘 생각해주세요! 수세식 변기가 없는 장소도 이 세계의 일부예요. 동등하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요. 수세식 변기가 없다는 이유로 외면하면 이 세상은 부활한 마왕에게….”

“와아! 주인님이 깨어났어요?”

잠자코 있던 설녀가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알렉스가 탐탁지 않다는 어조로 답했다.

“그렇다는 것 같아.”

“알렉스! 빨리 만나러 가자!”

오지 마!

“설녀. 오랜만에 그 몹쓸 주인을 만나고 싶은 네 마음은 충분히 알지만, 너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 몸에서 냄새가 나.”

“정말?!”

“그러니 이따가 꼭 씻자.”

“응! 알렉스도 같이 씻을 거지?”

“네가 원한다면.”

돌연변이 하피를 2000년 동안 돌본 사육사다운 연륜이 느껴졌다.

알렉스의 재치로 설녀의 소망이 무산됐다.

아마, 저 단순한 닭대가리는 내일쯤이면 내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감쪽같이 잊고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알렉스는 라누벨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경고하듯 말했다.

“들었겠지? 설녀의 주인은 마왕이다. 그녀가 2000년 전처럼 마왕의 편을 들면, 나는 너희와 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둘이 안 만나도록 하는 게 상책이다.”

“알렉스! 얼른 씻자! 얼른~!”

“...내 말을 충분히 알아들었으리라고 믿는다.”

결국, 지크와 라누벨은 아무런 소득 없이 알렉스의 호화저택에서 왕궁으로 털레털레 돌아왔다.

하지만 완전히 빈손은 아니었다.

“지크. 너무 낙심하지 마.”

“낙심하지 않아. 낙심하긴커녕 알렉스가 동행을 거부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중이야. 배신자 자식! 이전까지는 사나이들의 우정을 아는 멋진 남자였는데! 결혼하더니 이상해졌어.”

부들부들 떠는 지크랑 달리, 금방 평상시의 귀여운 척하는 라누벨로 돌아간 미소녀가 종이를 팔랑팔랑 흔들며 말했다.

“그 대신에 알렉스에게 추천서를 받았잖아.”

“이건 또 처음 보는 전개인데….”

“알렉스가 2000년 동안 설녀만 돌본 건 아니야. 그에게 검술을 배운 제자가 대륙에 셀 수 없이 많아. 알렉스의 집에 전시된 귀중품들은 전부 수업료로 받은 것들이지.”

“알렉스의 제자…. 남자일 것 같아.”

지크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한 것 같다.

모든 회차의 왕궁훈련장에 여기사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실전을 빙자한 구타와 모욕을 일삼던 왕궁기사단장 알렉스의 야만적인 훈련방식 탓이다.

“여자야.”

“헉! 정말로? 아니, 기대를 말자. 성별만 여자인 남자겠지.”

한순간 반짝였던 지크의 표정이 실망으로 바뀌었다.

“후후! 천만의 말씀! 지크가 몸소 경험해봐서 알겠지만, 알렉스는 아내 주변에 남자가 기웃거리는 걸 대단히 경계해. 그래서 그의 제자들은 전부 여성이야.”

“오오…!”

“그리고 호색한 지크에게 희소식이 있어. 알렉스가 소개해준 제자는 굉장한 미녀야! 와아! 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구나!”

“라누벨, 누군데 그리 호들갑이야?”

지크의 재촉에 라누벨이 귀여운 척하며 말했다.

“실비아 공주님.”

B급 용사는 발작하듯 환호성을 지르며 알렉스의 저택이 있는 방향을 향해 무릎 꿇고 절했다.

*

*

*

여기까지의 전개는 모든 교육장이 비슷했다.

용사와 라누벨이 알렉스의 집을 찾아가고, 거절당한 후에 추천서를 들고 실비아 공주를 찾아갔다.

일부 고등학생들이 설녀에게 치근대다가 팔불출 남편에게 걸려서 참교육 당하고 재시험을 치르긴 했지만.

대부분 학생은 무난하게 실비아 앞까지 도달했다.

“전설적인 검성(劍聖), 알렉스 님의 부탁이니 어쩔 수 없네요. 예전에 신세 진 것도 있고….”

역사가 바뀌면서 정령을 더는 노예처럼 부릴 수 없게 된 실비아가 선택한 전투직업은 ‘검사’였다.

같은 요정이 아닌 인간을 스승으로 선택했다는 점이 조금 특이하긴 했지만, 그 상대가 인간이길 포기한 2000년 묵은 유부남 알렉스였기에 또 수긍이 갔다.

하지만 제자인 실비아는 알렉스처럼 판을 완전히 엎어버릴 수준은 아니었다.

▷종족: 아크 엘프

▷레벨: 425

▷직업: 여검사(미모=검술↑)

▷스킬: 검술S 기품A 매력A 민첩B 회피B…

▷상태: 양호

직업효과가 비슷한 ‘마녀’ 만큼 희귀하진 않지만, 물리계열의 마녀로 통하는 ‘여검사’였다.

일반적인 여성 검사는 스킬이 저렇게 불균형하면 ‘외모를 꾸밀 시간에 검을 휘둘러라!’라고 쓴소리 듣지만, 예뻐질수록 강해지는 여검사는 예외다.

여자가 검을 휘두른다고 모두가 ‘여검사’가 되는 건 아니다.

검술과 미모.

둘 다 포기하지 않은 상태로 오랫동안 수련해야 한다.

세세한 조건으로는, 검술만 수련하는 자들에게 뒤쳐지지 않으면서, 미모만 가꾸는 아가씨들에게 비주얼도 꿀리지 말아야 한다.

즉, 노력만으로 절대 얻지 못하는 직업이다.

“실비아.”

“지크 용사님. 알렉스 님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당신의 동료가 되긴 했지만, 제 남자친구라도 된 것처럼 친근하게 부르지 마시죠? 팔뚝에 소름이 돋으면서 굉장히 불편하네요.”

“그럴 수가….”

정색하는 옛 애인의 태도에 지크가 크게 충격받았다.

이 친구야. 그래서 내가 예전에 말했잖아. 회귀가 절대 좋은 게 아니라고.

“비겁한 남편. 지금처럼 계속 저 호색한 친구를 구경할 거야?”

호색한 지크에게 흥미를 잃었다고 주장하듯 질문하는 쏘시아.

그녀는 얼른 마왕의 성에 돌아가서, 내가 비겁한 아내를 위해 손수 요리해주길 원하는 것 같았다.

참고로, 내 요리 스킬은 초기화돼서 F등급이다.

“완전히 잘못 짚었거든? 나를 남편의 사랑에 굶주린 아내로 날조하지 말아 줄래?”

“정곡을 찔리고 자폭하는 조카도 귀여워~”

“아아! 진짜! 이모님은 제발 빠져요!”

“히히히!”

광분에 빠진 쏘시아의 지적도 옳다.

G등급 검술과 신성으로 무장한 알렉스가 빠지긴 했지만, 모든 교육장의 용사들이 ‘여검사 실비아’를 동료로 맞이했다.

용사의 전력이 상승했다는 의미.

나도 마왕으로서 전력을 올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

“쏘시아. 따라와.”

지크 일행과 헤어진 나는 더미를 조종해서 왔던 길을 쭉 되돌아갔다. 그리고 알렉스와 설녀의 러브하우스에 도착했다.

“설마…. 비겁한 남편! 손이 없는 설녀를 돌보며 행복하게 잘 사는 알렉스를 가만 놔둬! 라누벨의 부탁도 딱 잘라 거절했고, 너에게 해코지하지도 않았잖아.”

“야. 비겁한 마누라.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설녀를 알렉스에게서 빼앗을 속셈이잖아.”

“내가 왜?”

나 대신 닭대가리를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는 호구를 건드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응?”

“쏘시아. 천진난만한 척하면서 머리 위에 물음표 띄우지 마. 구역질 나니까.”

“말 좀 가려서 해! 그리고 정말로 궁금해서 그러거든?”

“보고만 있어.”

아무리 잉꼬부부라고 해도, 알렉스와 설녀가 온종일 붙어 다니는 건 아니다.

남편의 도움으로 옷을 벗고 알몸이 된 설녀가 큰 욕조에서 젖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물장구치는 모습을 흐뭇하게 구경하던 알렉스.

그는 설거지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하지만 설녀를 무방비하게 혼자 놔주지 않았다.

“부탁하지.”

“네. 스승님.”

“설녀 님은 걱정하지 마세요.”

“뒤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유령처럼 조용히 다가온 미녀들이 알렉스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녀들 모두가 알렉스의 제자.

여검사 실비아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았다.

달그락달그락.

설녀를 제자들에게 맡기고 부엌으로 온 알렉스는 그 커다란 손으로 설거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말했다.

“진짜 용사여. 언제까지 구경할 셈인가?”

진짜 용사! 두 번째 마왕이 된 나를 용사라고 칭했다. 너무 고마워서 눈물마저 나오려 하네.

저렇게 부르면 대답해주는 게 인지상정!

나는 정리된 식탁 위에 다리를 꼬고 걸터앉으며 호응해줬다. 정의로운 용사의 미소는 서비스다.

“여어, 알렉스. 결혼하더니 신수가 훤해졌네. 그런데, 지금처럼 가정적인 남편도 좋지만, 유명한 대기업 간부가 되면 치킨- 사랑하는 아내가 더 좋아하지 않을까?”

이 MAX급 마왕님이 한자리 줄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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