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266화 (266/430)

 266화

[15회차] 똑똑한 교생 아가씨!

뿌잉: 강한수 생도님. 본 적도 없으면서 자꾸 예쁘다고 하면 놀리는 거로밖에 안 들려요. 그래도 털북숭이 아저씨로 오해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다시 만나서 반가워, 비밀 친구!

하지만 내가 마왕이 된 후까지 쫓아올 줄은 몰랐다.

교직원 일당이 내게 감시자를 붙이리란 건 시스템이 알려줘서 알고 있었지만, 예쁜 교생 아가씨일 줄은 몰랐다.

나는 얼굴이 시커멓게 탄 우락부락한 체육 교사가 와서 ‘일 똑바로 안 하십니까?’라고 할 줄 알았으니까.

뿌듯: 제법 오랫동안 강한수 생도님을 봐온 제가 적임자라고 선배님들이 입을 모아서 말씀하셨어요. 우후후! 훌륭한 선배님들께 인정받아서 매우 기분이 좋아요!

후배에게 일을 떠넘긴 교직원 일동이 훌륭하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그들이 무능한 덕분에 교생 아가씨를 다시 만날 수 있었기에 불만은 없다.

교생 아가씨. 내게 해줄 말 없어? 직접 와서 말하지 못하는 교직원 일당의 전달사항 같은 게 있을 것 같은데?

긍정: 있어요. 이건 교직원의 공식 입장이기도 해요. 흠흠. 장문이니 주의하세요.

장문? 설마…?

공문: 안녕하십니까. 저는 기나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배움의 터전인 판타지아를 설립한 이사장 겸 교장인 파르마엘입니다. 낯선 세계에 용감히 발을 내디딘 미래의 용사님들이 꿈과 희망을 키워가는 초등교육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강한수 학생에게 닥친 비극적인 사고에 대해 먼저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초등교육과정은 학생들이 판타지아에 적응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와 친구들이랑 떨어져서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이 학당을 둘러보던 강한수 학생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벌써 100년이 흘렀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초등교육과정이 판타지아에 적응하는 기간이었다면, 중등교육과정은 본격적으로 배우는 진정한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등교육과정에서는 더욱 어려워진 모험 속에서 선과 악의 의미를 깨닫고, 초등교육과정에서는 적이었던 악마에 대해 새롭게 고찰해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중략) 이런 중등교육장에서 배운 기초내용을 토대로 고등교육과정에서 좀 더 심도 있게 전문적으로 다루게 됩니다. 이렇게나 중요한 중등교육과정을 강한수 학생이 졸업하진 못했지만, 교사진 추천서와 우수한 입학성적 그리고 중등교육장에서 보여준 모범적인 수업 태도만 보더라도, 당신이 훗날 훌륭한 용사가 되리란 건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강한수 학생에게 닥친 불미스러운 사고가 더욱 안타깝고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기, 교생 아가씨? 언제 끝나?

대답: 에…. 1/3쯤 읽은 것 같아요.

맙소사….

공문: 엄연한 피해자인 강한수 학생에게 이번 사건의 전말을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말 부끄럽고 유감스럽게도, 판타지아 2차 교육과정 졸업생의 야만적인 만행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는 변변찮은 성적과 불량한 수업 태도로 가득한 생활기록부 말소를 학교 측에 요구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폭력을 행사하겠다는 식으로, 아름다운 모교(母校)와 아들처럼 키워준 선생들을 협박했습니다. 초등교육과정 때부터 방황하고 목표를 찾지 못하던 그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하여 어엿한 사회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준 추억의 장소를 부정하고 모욕한 그의 만행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중략) 저는 판타지아를 대표하는 교장으로서, 이런 불량한 학생에게 높은 성적과 졸업장을 건넨 불성실한 교사들을 징계하고, 저 또한 미숙함과 잘못을 통감하며 자숙의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놀라고 분노했을 강한수 학생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위로됐길 빕니다. 또한,몰상식하고 야만적인 선배 졸업생의 만행을 비판하고, 위기에 빠진 학교를 도와서 사건을 원만하게 수습할 수 있도록 도와준 강한수 학생의 올곧은 마음과 성실함에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당신의 위업은 명예의 전당에 오를 것이며, 후배들에게 ‘올바른 용사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모범적인 답안이 될 것입니다.

몸도 마음도 착한 교생 아가씨!

숨도 안 쉬고 부지런히 읽는 중에 끼어들어서 정말 미안한데, 마지막 줄만 읽어주면 안 될까?

난감: 죄송해요. 교칙이라서 저도 어쩔 수 없어요. 그래도 대낮에 은하수의 별을 세면서 의식을 놓지 말고 끝까지 경청해주세요. 중요한 내용이 중간중간 끼워져있답니다! 마저 읽을게요.

그 중요한 내용만 요약해줘….

공문: 교내 수사팀은 졸업생들이 마왕 페도나르랑 공모해서 그의 탈주를 도왔을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강한수 학생의 생활기록부를 마왕에게 흘린 동조자가 있다고 판단되어 내부감사를 병행하여 진행하는 중입니다. 교내 수사팀은 우주에서도 알아주는 이 분야의 최고로만 구성된 프로들이기에 금방 사건의 윤곽과 실체를 잡아낼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결과가 나올 때까지 강한수 학생의 넓은 아량으로 기다려주시길 간곡히 부탁합니다. 아량은 훌륭한 용사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좋은 덕목입니다. (중략) 우리는 실수로 점철된 과거를 후회만 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저는 마왕이란 직업을 절대 하찮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사의 지위는 없지만, 학생들이 목적 없이 방황하지 않고 훌륭한 용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내자입니다. 저는 마왕이 쓰러진 이후에 도태된 학생들을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마왕이 없으면 용사도 없습니다. 친애하는 강한수 학생. 당신의 직업에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자부심을 가지세요. 이 어려운 시기에 당신처럼 희생적인 훌륭한 학생이 있다는 사실에 우주와 운명에 감사하고, 저도 한 명의 교사로서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후배 용사들을 끌어주는 마왕 강한수의 앞날이 무궁한 발전과 희망으로 가득하길 빕니다.

......

...끝?

정말로 끝?!

긍정: 다 읽었어요!

읽느라 수고한 교생 아가씨! 질문이 있어!

듣는 사람의 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교장이 씨부렁거린 내용 어디에도 중요한 피해보상 언급은 없는 것 같은데?

교장의 이름이 파르마몬이란 사소한 정보만 입수했다.

정정: 파르마몬이 아니라 파르마엘 교장님이에요. 으음. 저는 미리 언질을 받아서 알고 있지만, 공문은 공식적인 정식문서라서 보상은 언급하지 않은 것 같아요. 마왕을 쓰러트리라고 선전하는 신이 마왕에게 무언가를 보상해준다는 건 모양새가 이상하니까요.

내가 교생 아가씨의 말을 잘못 이해한 게 아니라면, 비공식적으로는 뭔가를 준다는 거네?

흐뭇: 네! 듣고 놀라지 마세요. 하늘 같은 대선배님들께서 일개 교생인 저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신 것도 놀라운데, 진지하게 의견을 물어보셨어요. 심지어 그 의견을 채용하기까지!

흥분하지 마, 교생 아가씨.

그다지 놀라울 건 없다고 본다.

나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교생 아가씨의 의견을 물어보고, 그걸 보상으로 선택하는 방식은 지극히 정상적인 판단이니까.

아니, 이건 교묘한 회피책이다.

제시한 피해보상이 마음에 안 든다고 내가 행패를 부리면, 모든 잘못을 무고한 교생 아가씨에게 떠넘기려는 수작!

도무지 상종하려야 할 수 없는 연놈들이다.

생글: 저를 생각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강한수 생도님의 마음에 들면 문제없잖아요? 그리고 잘 골랐다고 자부해요!

호오? 자신만만한데?

장인어른이나 교장이 보이면 우주의 심연까지 쫓아가서 경추(頸椎) 6번과 7번 사이와 요추(腰椎) 4번과 5번 사이를 콤보로 비틀어줄 것이다.

이런 내 분노를 누그러트릴 수 있는 보상이 존재할지 의문이다.

움찔: 완벽히는 어렵더라도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지크 학생의 스마트폰을 기억하시죠?

물론이다. 액정 뒷면에 유명한 RPG 게임의 성녀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최신형 스마트폰을 말하는 거잖아?

유감: 지구 기준으로는 벌써 10년도 더 된 골동품 취급이지만요.

그럴 수가….

듣고 보니 그랬다.

내 판타지 경력이 어느새 100년이다.

아름다운 녹색별 지구는 판타지아 차원보다 시간이 10배 느리게 흘러가지만, 완전히 멈춘 건 아니다.

지구의 시간도 어느새 10년이 흘렀다는 얘기.

어머니의 테니스라켓이 쭉 무서웠는데, 이젠 연세가 드셔서 GGG급으로 휘두르실 수나 있을지 걱정됐다.

능청: 건강하신지 직접 물어보시면 되잖아요?

...음?

설명: 지크 생도는 아직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의 스마트폰에 WiFi가 연결되어 있어요. WiFi에 비밀번호가 걸려 있어서 아직 통신은 안 되지만. 무슨 말씀이신지 아시죠?

아주 잘 이해했어! 교생 아가씨!

야만적인 판타지 세계에 아름다운 지구의 인터넷이 개통됐다는 소리잖아.

이제 남은 건?

“지크 용사님. 스마- 헐벗은 성녀가 그려져 있는 문명이기를 구경할 수 있겠습니까?”

“뭐…. 잠깐이라면.”

내 갑작스러운 부탁에 잠시 어리둥절하던 지크는 호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어 대수롭지 않게 건냈다.

여행지에서 인터넷이 막힌 휴대전화는 사진기나 다름없다.

나의 친구 지크 같은 경우에는, 회귀할 때마다 기껏 찍어둔 사진들이 사라지고 배터리도 무한하지 않은 탓에 언제부턴가 찍는 것도 포기했다.

2D 성녀가 그려진 액세서리 취급이랄까?

희귀한 물건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 고상한 귀족에게 팔면 단숨에 큰돈을 만질 수 있기에 비상금으로도 쓸만하다.

하지만 앞으로는 다르리라!

WiFi가 연결되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무궁무진하다.

“과연….”

우주에서 가장 예쁘고 똑똑한 교생 아가씨의 말대로였다.

지크의 스마트폰 전원을 켜자마자 ‘네트워크 검색 중….’이란 안내문이 뜨더니, 비밀번호가 걸린 WiFi 하나가 잡혔다.

부채꼴 모양으로 표시된 신호 세기는, 최대 4칸 중 1칸으로 매우 미약하긴 했지만, 연결됐다는 게 중요하다.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88년쯤 전에 막 판타지아 세계로 납치되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지크를 떠올렸다.

지문인식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비밀번호라면 가능하다. 그리고 지크의 어깨너머로 ‘와! 12년 만에 보는 스마트폰이다!’라는 기분으로 구경하던 나는 비밀번호를 기억하고 있다.

비밀번호가 아마…. 569#

“...비겁한 남편. 세상을 다 가진 얼굴을 하고 있어.”

“마약정령사가 아까부터 이상하다. 내가 발등으로 이마를 두드려도 반응이 없다. 평소 같으면 손가락으로 내 엉덩이를 응징했을 텐데.”

조용히 해. 지금은 너희랑 놀아줄 시간 없어.

“배터리가 아슬아슬한 게 아쉽군.”

나는 지크에게 스마트폰을 돌려주지 않고 내 호주머니에 넣었다.

“어?! 그거, 제 물건입니다! 돌려주- 꾸엑?!”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내 더미들은 직업 ‘마왕’의 페널티 탓에 레벨이 용사랑 같고, 스킬도 내 능력치를 계승하지 못하고 초기화돼서 변변찮다.

하지만 내가 직접 조종하는 더미는 특별하다.

마왕의 성 옥좌에 앉아있는 내 본체로부터 의식과 힘을 전송받은 더미의 강력함은 다른 더미들이랑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방금까지 지크와 라누벨을 사이좋게 죽이기 위해 힘을 추가로 전송하던 중이었다.

그렇기에 살짝만 툭 건드려도….

“하하! 용사여! 참으로 나약하구나. 살짝 미끄러진 거로 탈골, 염좌, 골절, 염증, 결림, 파열, 출혈이라니!”

“우으으으…. 후작님…?”

피투성이로 쓰러진 지크가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었다.

나는 쏘시아의 비겁한 허리에 팔을 감으며 끌어안은 후,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를 펼치고 수직으로 날아오르며 선언했다.

“용사 지크. 너의 물건을 찾고 싶다면 마왕의 성으로 와라. 놀면서 기다리고 있겠다!”

판타지아 운영권을 빼앗기 위해 용사들을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계획의 1호로 지크를 골랐었다.

하지만 우주에서 가장 예쁘고 똑똑한 교생 아가씨가 근사한 선물을 준비해주는 바람에 계획이 바뀌었다.

스마트폰을 빼앗긴 지크가 내 편이 되어줄 리 없잖은가?

지크 빼고 다른 용사들을 섭외하기로 했다.

“마왕의 성…? 마왕?! 하지만 내가 아는 마왕은….”

“라누벨이 설명할 때, 뭐 했냐?”

물론, 지크의 마음은 잘 안다. 회귀할 때마다 매번 같은 설명을 반복하는 라누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3회차부터는 그랬으니까.

“마왕 페도나르를 쫓아내고 내가 마왕이 됐다. 내 이름은 마왕- 파르마몬!”

내게 신개념 언어폭력으로 스트레스를 준 파르마몬 교장 선생, 당신의 이름에 먹칠을 해주겠어!

이것이 나의 복수다! 하하!

당혹: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교장님 성함은 파르마몬이 아니라 파르마엘이에요….

그, 그랬나?

하지만 이미 ‘마왕 파르마몬’이라고 내뱉은 후였다. 이름을 잘못 말했다고 되돌리기에는 분위기와 타이밍이 좋지 못했다.

“마왕 파르마몬…! 나를 속였구나! 그러면 아내는…?”

라누벨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선 지크가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는 내게 안겨있는 쏘시아를 돌아보며 자기소개를 요구했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어투로 답했다.

“여전히 아내야.”

“마왕의 아내! 그렇다면 요정이란 것도 거짓말이구나! 역시! 나는 처음부터 당신이 가장 수상했어! 그렇게 가슴이 크고 아름다운 요정이 있을 리 없지!”

“요정 종족에 실례되는 발언이네. 역사적으로- 아얏! 왜?”

말이 많다! 비겁한 마누라!

이 MAX급 남편님은 지금부터 아름다운 지구의 현대문물을 탐구해야 해서 바쁘다.

전화, 게임, 만화, 소설, 드라마, 영화….

배터리는 무한하지 않고 지크 따위에게 할애할 시간이 없다.

“용사 지크. 죽지 마라. 이 마왕님이 나쁜 말로 할 때 듣는 게 좋을 거야. 나는 분명히 경고했다. 죽으면 두 번 죽을 줄 알아.”

지크가 죽으면 세상이 초기화된다.

그러면 내 소유물이 아닌 스마트폰도 지크와 함께 회귀하며 사라질 것이다.

다시 구하려면 번거롭다.

적어도 배터리를 다 쓸 때까지는 지크가 살아있어야 한다.

“뭔 말이야…?”

“오늘은 기분이 좋아서 특별히 살려주마, 용사 지크. 그리고 거짓말쟁이 라누벨.”

“사악한 마왕 파르마몬! 그렇게 말하는 당신도 라누벨처럼 거짓말했잖아요!”

“너랑 똑같이 취급하지 마! 소름 돋잖아!”

“라누벨도 마왕에게 지적받아서 소름 돋았어요!”

펄럭!

이 중대한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귀여운 척하는 라누벨에게 대꾸해주지 않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쏘시아에게 주문했다.

“얼른 돌아가자. 아늑한 침대 위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러.”

수세식 변기랑 쌍벽을 이루는 중요한 아이템을 습득한 MAX급 마왕님은 오늘부터 장기휴무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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