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267화 (267/430)

 267화

[15회차] Wifi가 이걸…?

“오오옷-! 된다, 된다, 된다!”

“...비겁한 남편. 여태까지 내가 봐온 네 모습 중에서 지금이 가장 유감스러워.”

“상관없어.”

나는 교생 아가씨에게 WiFi 비밀번호를 듣자마자, 지크의 스마트폰으로 곧장 접속을 시도했다.

결과는 대성공!

판타지아 대륙에 지구의 통신망을 연결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의문이지만, 화면에 ‘네트워크 접속 성공’이란 문구는 가짜나 환상이 아닌 진짜였다.

“헐. 부재중 통화와 문자가 7개밖에 없네.”

연락처 중 6개에는 ‘엄마’라고 쓰여 있었고, 마지막 하나는 경찰서에서 ‘이 문자를 확인하는 즉시 연락 주십시오.’라는 문자 메시지였다.

그리고 1분쯤 지났을까?

통신사에서 정중하게 ‘통신료 미납으로 손님이랑 작별하게 되어 매우 불편합니다.’라는 의미가 담긴 이별통지 메시지가 도착했다.

지크도 꽤 오랫동안 판타지아 차원에 묶여있었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지구 시간으로 약 9년간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실종된 그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엄마’뿐이란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삭막한 인생이네.”

“사회부적응자가 다 그렇지 뭐.”

반면, 판타지아 대륙에서는 지구의 사회부적응자들에게 따스한 시선과 관심을 아낌없이 보내며 무료로 이용해준다.

너는 선택받은 주인공이라고.

상식이 있는 인간이라면, 판타지아 대륙에 납치되어 ‘우리를 위해 마왕을 쓰러트려라.’라는 부당한 강요를 받자마자 ‘맡겨주세요!’라고 말해서 납치범들을 안심시킨 후에 탈출할 궁리를 할 것이다.

하지만 지크의 1회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사랑에 굶주린 사회부적응자들은 약간의 관심만 줘도 홀딱 넘어간다.

“너는?”

“네 남편은 사회에 잘 적응하던 지구인이었어.”

차원이동 할 당시에 휴대전화를 안 들고 있어서 당장 증명할 방법은 없지만,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수백 건은 쌓였을 것이다.

쏘시아가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안 믿어져?

“으음….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현재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탈출을 간절히 희망하는 10대 중후반의 학생 위주로 용사를 선별해. 원치 않는 사람을 데려오면 초대가 아니라 네 말대로 납치니까. 그러니 너도 사회나 환경에 불만이 있었을 거야.”

“없었어.”

“잘 생각해봐.”

“정말로 없었어.”

“정말로?”

“정말로.”

나는 불신에 찌든 마누라에게 대꾸해주며 침대 위에서 빈둥거리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가장 먼저 메신저 앱을 설치했다.

실종으로 주민등록증이 말소되면서 메신저 계정이 정지됐을 수도 있기에 살짝 긴장했던 나는, 무사히 접속된 것에 안도했다.

그리고 입꼬리를 쓱 올렸다.

“비겁한 마누라야. 잘 봐. 이것이 네 남편의 인덕이다.”

“...조작이지?”

“그게 가능하겠냐?”

“하지만 말이 안 되잖아. 지구에서 너를 기다리는 사람이 300명이 넘는다는 것이……. 응? 잠깐만! 어째서 자칭 대통령이나 총리 같은 대단한 사람들이 너를 찾는 거야?”

“글쎄~”

고향별 지구의 그리운 매연을 들이킬 기회가 잠시 생겼을 때, 내 부모님을 지켜주면서 무병장수하라고 마기를 조금 나눠줬을 뿐이다.

쏘시아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상대를 불쾌하게 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동질감이랄까.

“내 남편. 뼛속까지 마왕을 타고났구나?”

“헛소리는 그만하고 스마트폰 내놔. 그리고 이거에 맞는 충전기 좀 만들어줘. 너는 공상과학에 나오는 광선검도 뚝딱 만들어내는 엔지니어잖아.”

“보채지 마. 말처럼 쉬운 작업이 아니거든? 여기에는 기반시설이 없잖아. 그리고 너는 당연히 안다는 듯이 말하는데, 나는 그 충전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

“샘플이 필요하다는 거군.”

지크는 충전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판타지아 차원에 납치된 학생 중에 충전기를 소지한 자가 분명히 있을 터.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흐응~ 보아하니 마력이 아닌 전력을 이용한 구시대 골동품이네. 그렇다면 발전기도 필요하겠고, 전압을 바꿔줄 어댑터도 있어야 해.”

“발전기….”

판타지아 대륙의 마법사와 난쟁이들이 주력으로 삼은 마도공학은 기본적으로 마력을 이용한다.

수세식 변기가 판타지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면서 4차 교육과정 때보다 문명과 사회가 발전하긴 했지만, 기본적인 틀은 바뀌지 않았다.

여기에 쏘시아가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고 실망시켜서 정말 미안한데, 나는 프로그래머지 엔지니어가 아니야. 우주 굴지의 명문대인 몰랑 아카데미 컴퓨터학과를 나오고, 엘몰랑도 행성에서 주관하는 창조기술사 2급 자격증도 땄지만, 기계를 만들진 못 해. 다루는 거라면 잘하지만.”

“정말 실망했다!”

“...비겁한 남편. 이럴 때는 괜찮다고 말하는 게 도리 아니야?”

“남편을 속이다니! 섭섭하다!”

아름다운 아내의 학창시절 사진을 봤더니, 주먹코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기분이다.

혹시…?

“무례한 추측은 적당히 해줄래? 내 몸은 철저한 자기관리와 유전자의 조화로 이뤄낸 자연산이야.”

“누가 뭐래?”

그렇다면 나를 기대시켰던 광선검은 어떻게 된 거야?

“몰랑이가 만들었어.”

몰랑몰랑~

꼬인 실타래처럼 복잡한 상황도 몰랑 한 번으로 대부분 해결해버리는 위대한 존재께서 겸손하게 몰랑거리셨다.

“역시….”

마스터 몰랑께서 만들었다는 말에 그냥 수긍이 돼버렸다.

은하계의 지배자라고 어깨 힘주고 다니는 흑화 선배마저 몰랑 한 번으로 겸손하게 만든 절대강자께서 기계공학마저?

너무 사기다.

삼국지의 여포와 제갈공명을 합쳐놓은 셈이잖아.

“몰랑이는 한 번 먹어본 물질은 뭐든 복사할 수 있어. 창조기술사 1급 자격증을 딴 배운 몰랑이는 복사를 넘어서서 세계창조도 가능하지만, 그들은 고향별에 사는 최상류층 몰랑이고, 친구에게 선물 받은 내 몰랑이는 공부하질 않아서 자격증이 없어.”

“뭘 모르네. 마스터 몰랑은 자격증이 필요 없는 분이야!”

자격증과 실력이 항상 정비례하는 건 아니다.

나도 의과대학을 졸업한 정형외과 의사는 아니지만, 척추교정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

“아무튼, 그 스마트폰도 네가 원한다면 몰랑이가 복사할 수 있어.”

“그건 좀….”

나를 염치 없는 놈으로 몰지 말아 줄래?

우주를 굽어보며 평화롭게 몰랑거리시는 마스터 몰랑을 불초 제자가 귀찮게 할 순 없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배터리가 다 떨어지면 먹여봐.”

“배터리는 복사가 안 되나?”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기의 원재료를 복사할 순 있어도, 전기 자체는 몰랑이가 생산하지 못해.”

“흐음….”

지크의 스마트폰은 얼마 쓰지도 않았는데도 벌써 배터리가 간당간당했다.

네트워크 신호가 약한 산악지대에선 배터리가 더 빨리 닳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는데, 아무래도 그 때문으로 짐작됐다.

나는 메신저 앱에서 ‘어머니’를 검색했다.

그리고 10년 전에

□어머니: 그만 놀고 들어와. (오후 4:32)

□어머니: 아들. 엄마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렴. ^^ (오후 5:01)

□어머니: 죽을래? (오후 5:35)

“음….”

1시간 늦을 때부터 이미 내 사형은 결정된 사항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10년을 늦었으니….

어머니의 문자를 전부 읽고 싶지만, 배터리가 얼마 안 남았다.

그래서 나는 중간을 생략하고 최신 문자로 넘어갔다.

□어머니: 아들. 복 받은 줄 알아. ^^ (오전 8:04)

□어머니: 며늘아기가 정말 착하고 능력도 좋네. (오전 8:05)

□어머니: 얼른 돌아와. 손자 보고 싶어. (오후 11:46)

...며늘아기라고?

내가 비공식적으로 결혼한 전적은 총 2번이다.

귀여운 3살에 내 의지로 검희랑 했었고, 또 한 번은 마왕 페도나르의 교묘한 술수에 걸려서 쏘시아에게 코가 꿰였다.

하지만 지구는 아니었으며, 어머니에게 소개해준 적도 없었다.

나는 빠르게 메신저에 답장을 썼다.

□나: 아들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오전 5:26)

□나: 돌아가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아요. (오전 5:26)

□나: 많이 사랑합니다. (오전 5:26)

□나: 아버지는 문자를 한 통도 안 보냈네요. (오전 5:26)

□나: 매우 섭섭하다고 전해주세요. (오전 5:26)

□나: 며느리가 누구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오전 5:26)

□나: 사기꾼을 조심하세요. (오전 5:26)

내 마누라 행세하는 사기꾼의 정체를 파악해두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구의 고향 시간은 새벽 5시였다.

그래서 어머니의 답변을 받기도 전에 배터리가 완전히 떨어져서 스마트폰이 꺼지고 말았다.

“젠장! 문자 조금 보냈을 뿐인데 배터리가 팍팍 닳네!”

이래선 WiFi가 확보돼도 의미가 없었다.

“비겁한 남편. 그래서 어머님이 말한 며늘아기가 누구야?”

“나도 몰라.”

당시의 나는 배움의 전당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모범적인 고등학생이었다. 이성이랑 교제할 시간이 없었다. 하물며 결혼이라니?

더욱 말도 안 된다.

“확인해둘 게 있어. 너희 집안은 부자야?”

“아니.”

은행이나 제삼금융에 빚이 없는 게 유일한 자랑거리인 평범한 가정집이다.

“재산을 노리고 네 부모님께 접근한 여자는 아니란 소리네.”

“쏘시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정말 놀랐어. 그리고 사과할게. 나는 네가 사회부적응자라고 단정했었거든. 그런데 10년이나 실종된 너를 잊지 못하고 아내를 자처하는 정신 나간- 나 같은 여자가 있을 정도로 인간관계가 좋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어.”

“이제 알겠지? 너랑 결혼해준 이 인기남에게 감사해라.”

“오늘만 감사해줄게. 고마워.”

내 옆에 팔짱을 끼고 누운 쏘시아가 생글생글 웃었다. 또 무슨 비겁한 꿍꿍이가 있는 얼굴이다.

“흠…. 우선은 배터리부터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는걸.”

지구에서 내 마누라를 자칭하는 여자의 정체를 어머니에게 듣기 위해선 스마트폰부터 살려야 했다.

문화시민의 삶도 이 상태로는 어렵고.

그때였다.

“폐하께서 성에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받자마자 달려왔나이다! 무한정 연기됐던 정기회의를 진행하심이 어떻사옵니까?”

대전의 입구 밖에서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의 주인을 나는 알고 있다.

악마 대공B.

대공A는 마왕 페도나르의 장인어른이란 신분으로 마기를 부여받아서 대공의 지위를 얻었지만, 대공B는 순수하게 자신만의 실력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진정한 실력자다.

하지만 그건 4차 교육과정 설정이다.

마왕이 바뀌면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내게 경험치와 아이템을 아낌없이 퍼준 왕자와 공주를 많이 낳아준 왕비D는 존재하지 않고, 딸을 마왕에게 시집보내지 못했기에 대공A도 존재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대공B는 아니다.

모든 영토를 잃고 인류에게 포위된 별장 하나만 달랑 남은 마왕을 따르는 극소수 악마 중에 그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기회의. 당연히 해야지.”

더미들은 굉장히 수동적이다. 그래서 마왕 페도나르가 그랬듯이 나도 옥좌에 더미들을 앉혀놓고 무한정 대기시킨 상태다.

용사가 오길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하지만 변수로 가득한 전투 외의 단순한 행동들은 어렵지 않다.

가령, 부하 악마들에게 명령을 내린다든가?

“오오! 폐하. 부활하신 걸 감축드립니다!”

대공B가 내 앞에 부복하며 감격의 눈물을 글썽거렸다.

“대공B.”

“제 소개를 하….”

“대공B.”

“네! 폐하! 편하신 대로 부르소서!”

나는 장인어른이 그랬던 것처럼 마기를 풀풀 풍기는 멋진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선언했다.

대공B를 호출한 모든 더미도 함께.

“비겁한 사랑과 우정으로 싸우는 MAX급 마왕 파르마몬으로서 명한다! 귀족들은 짐의 부름에 응하라. 수세식 변기의 안락함에 취하여 오만방자해진 인류에게 본때를 보여줄 때가 됐다!”

용사들의 스마트폰은 전부 내 차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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