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273화 (273/430)

 273화

[16회차] 이것이 5차 교육과정!

“너는 어머님을 많이 닮았구나?”

“그렇게 보여? 지구에 있을 때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는데.”

“...교육이 참 중요한 것 같네.”

“내가 효자로 훌륭하게 잘 자라긴 했지!”

“어, 그래. 그건 인정.”

용사들의 꿈과 희망을 짓밟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쉬운 방법은 ‘유부남 알렉스’를 동원하는 것이다. 막 소환된 용사를 알렉스가 처리하면 된다.

하지만 그건 썩 좋은 방법이 아니다.

모든 용사에게 한 번씩은 먹히겠지만, 그 뒤부터는 ‘알렉스는 마왕의 하수인이었구나!’라고 눈치채게 된다.

용사들은 사회부적응자일지언정 바보는 아니다.

회귀할 때마다 학습한다.

알렉스의 부름을 받고 저택에서 수련하면 ‘짐을 도둑맞는다.’라는 미래를 알게 된다.

한 번 당한 뒤부터는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다.

왕궁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가거나, 수련 나갈 때마다 짐을 꽁꽁 감춰두는 용사가 등장했다.

그 탓에 스마트폰 수급이 점점 힘들어졌다.

“어쩔 셈인데?”

“하나하나 바꿔가야지.”

용사들을 위한 고난과 역경을 준비하자.

*

초등교육과정, 중등교육과정, 고등교육과정.

그 수준이 올라갈 때마다 판타지아 원주민 능력치도 상승한다. 그래서 체감하는 난이도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

예를 들어,

초등교육장에서 악마A를 간신히 토벌했다면, 초월영역 스킬을 다수 보유하더라도 중등교육장의 악마A에게 다시 쩔쩔매게 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

모든 용사에게 ‘유부남 알렉스’는 대적 불가의 괴물이다.

고고학자 라누벨이 귀여운 척하면서 그런 알렉스를 영입하려고 시도하지만, 나의 개입으로 100% 실패한다.

아주 간단한 논리다.

세계가 10초 뒤에 멸망한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세계의 멸망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용사가 몇 번을 회귀하더라도 ‘알렉스를 고용할 수 없다.’라는 미래를 바꿀 수 없다.

대신,

“용사님! 도망치듯 어딜 가세요?”

“도망치는 거 맞아! 라누벨!”

“헛! 마왕이 쫓아오나요?!”

“아니! 알렉스의 지시를 받은 실비아가 추적해올 거야! 그 전에 왕궁을 조용히 빠져나가야 해!”

내가 알렉스에게 주문한 ‘용사를 수련이란 명목으로 붙잡아둬라.’라는 운명을 회피할 순 있다.

소환되자마자 ‘화장실이 급해서!’라고 거짓말한 후, 왕궁을 빠져나가고 있는 용사E가 여기에 해당했다.

그의 이름이 ‘용사E’인 이유?

▷종족: 울트라 휴먼

▷레벨: 1

▷직업: 용사(경험치 500%)

▷스킬: 대검Z 괴력Z 통역A 업보E

▷상태: 초조

스킬 업보가 E등급이었다.

회귀할 때마다 등급이 올라가는 건 아니지만, 패치된 이후에 최소 2번 이상 죽었다는 뜻이다.

▷종류: 스킬

▷명칭: 업보

▷등급: E

▷D: 회귀할 때마다 호감이 감소한다.

▷E: 회귀할 때마다 명성이 감소한다.

▷F: 회귀할 때마다 평판이 감소한다.

하지만 2번 이상 죽으면서 깨달은 것 같다.

알렉스에게 붙잡히지 않으려면 지금 도망쳐야 한다는 것을.

용사가 소환된 직후부터 내 더미가 편지를 쓰기 시작해서 알렉스에게 보내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조금 있으니까.

“비겁한 남편. 쫓아갈 거야?”

“그래야지. 알렉스에게 붙잡히지 않은 용사들의 다음 행선지를 알아야 또 거기에 맞는 무언가를 준비할 수 있잖아?”

용사E와 라누벨은 멀리 도망치지 못했다.

돈이 없었으니까.

수세식 변기가 있는 여관에서 머물고,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면 전부 돈이 필요했다. 회복 물약 같은 소모품도 돈이 들고, 장비의 수선에도 돈이 든다.

전부 돈! 돈! 돈!

세상을 구할 용사님에게 공짜로 지원해주는 원주민은 없다.

공짜 밥을 대접해준다고 해서 따라가면 ‘내 딸이 내일 원치 않는 결혼을….’이라는 식으로 사연을 읊기 시작한다.

용사E는 돈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한 귀족의 저택으로 향했다. 잘 정돈된 정원과 예술품들만 보더라도 상당히 부유한 귀족이 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물건을 팔고 싶습니다.”

집주인이랑 대면한 용사E는 스마트폰을 제시했다.

“호오? 매우 특이한 재질로 된 거울이로군. 용사님의 고향에서 가져온 물건이라고 하셨소?”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그 희소성을 생각해서….”

딸랑.

귀족이 돈주머니를 내밀었다.

“에? 너무 적습니다. 전에는 더….”

“전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용사E는 암울함에 찌든 얼굴로 귀족의 저택을 나왔다.

눈치 없는 라누벨이 귀여운 척했다.

“우와! 용사님! 굉장해요! 고향의 물건을 팔아서 여행자금을 엄청 많이 확보하셨어요!”

“아니. 상황이 좋지 않아, 라누벨.”

“예?”

“그런 게 있어….”

주어진 상황은 같지만, 업보E의 부정적인 효과로 이전 회차보다 거래가 원활하게 풀리지 않은 것이리라.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용사님. 그 가격에 이 바스타드소드를 드릴 순 없습니다.”

“꼭 필요합니다.”

“죄송합니다. 용사님께서 제 일을 도와주신다면 그 가격에 못 드릴 것도 없지만…. 어떻습니까?”

“그건…. 아니요. 포기할게요.”

“언제든 생각이 바뀌면 찾아오십시오.”

용사E는 물건을 살 때도 손해를 봤다.

판타지아 원주민들은 상대가 용사라고 해서 무상으로 의식주와 장비를 제공하진 않는다.

하지만 지역 평판에 따라 할인이 적용된다.

나는 그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지크와 루크는 얍삽하게 평판 작업을 해서 가는 곳마다 할인을 꽤 많이 받았었다.

그리고 이곳은 시작도시인 만두 왕국의 수도.

평판 작업을 따로 하지 않더라도 유명인사 겸 신분증인 라누벨이 옆에서 ‘이분이 용사님이세요!’라고 말하면, 평균 15% 할인된 가격으로 상점과 여관 등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용사E는 아니었다.

평판, 명성이 떨어져서 할인을 받지 못했다.

“진짜 돌아버리겠네.”

“용사님! 돌아버리시면 안 돼요!”

“하아….”

한숨을 푹 내쉰 용사E는 입고 있던 교복과 속옷까지 팔아서 간신히 원하는 바스타드소드를 구매했다.

눈 뜨고 못 봐줄 슬픈 광경이었다.

상인도 이런 용사E를 불쌍하게 여겼는지, 시스템을 무시하고 5% 할인된 가격과 교복 대신 입을 싸구려 옷을 제공해줬다.

“용사님. 어디로 가세요?”

“오크 사냥.”

고향별의 물건을 팔아서 1레벨에 그럭저럭 쓸만한 바스타드소드를 확보한 용사E는 도시를 빠져나와서 동쪽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역시나 가장 만만한 성왕국.

성녀A, 토마토 기사단장, 인어공주 아쿠아.

성왕국에서 구할 수 있는 동료가 셋이나 되기 때문에 용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모험 코스다.

하지만 용사E의 여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가는 길마다 마주치는 판타지 원주민들이 그에게 바가지 씌울 생각밖에 하지 않았던 탓이다.

“내가 할 일이 없네.”

MAX급 마왕님은 입맛을 다시며 후배의 뒤를 몰래 따라갔다.

“비겁한 남편. 왜 그렇게 생각해?”

“용사가 10번쯤 회귀하면, 굳이 내가 개입하지 않더라도 꿈과 희망을 상실할 것 같아.”

“그전에 마왕을 무찌르지 않을까?”

“그 마왕이 네 남편이다만?”

“그랬나?”

쏘시아가 어깨를 으쓱하며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그러자 내 머리 위에서….

“마약마왕. 네가 딴 암컷이랑 시시덕거릴 때마다 조카의 표정이 엘브하임의 세 번째 암컷처럼 바뀌는 걸 봤어야 했는데. 바라보는 내가 안타까워서 눈물이 왈칵-!”

“이모님! 저는 그런 적 없거든요?!”

“히히! 우리 조카 귀여워~”

“아, 진짜-!”

마약정령이 오랜만에 옳은 소리를 하는군! 질투가 참 귀엽구나, 비겁한 마누라!

“너는 닥쳐!”

마왕님과 졸개들이 친목을 다지는 사이.

용사E는 성왕국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던전, 유적, 무덤, 몬스터 서식지 등을 공격하면서 레벨을 올렸다.

“KuKu~?!”

“OwOwuu~?!”

“Trooo~?!”

용사E가 속옷까지 팔아가면서 악착같이 바스타드소드를 구하려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용사가 성검1을 얻기 전까지는 평범한 무기를 써야 하는데, 질이 나쁜 무기는 공격력도 떨어지고 금방 못 쓰게 된다.

그렇기에 좋은 무기는 필수!

물론, 바스타드소드밖에 없었다면 지금 같은 맹위를 떨치기 힘들었겠지만, 초월영역 스킬이 합쳐지면서 1레벨에도 강한 몬스터를 사냥하는 게 가능해졌다.

1레벨, 50레벨, 200레벨….

용사E는 직업 용사의 경험치 5배 특전과 미래의 지식을 활용해서 빠른 속도로 던전을 클리어하고, 경험치를 쓸어 담았다.

험하게 써서 칼날의 이가 빠진 바스타드소드는 영웅의 무덤을 도굴해서 구한 보검으로 금방 교체됐다.

이것이 회귀한 사회부적응자의 힘!

최적의 모험 코스였다.

“우우…. 라누벨이 할 일이 없어요.”

“라누벨은 귀여우니 괜찮아.”

“감사합니다, 용사님! 그런데 이쪽 길로 가시는 게 어떠세요? 라누벨이 보기엔 여기가 출구….”

“그 길에는 함정이 잔뜩 있어. 내가 알아.”

“우우…. 할 일이 없어요.”

귀여운 척하면서 용사E를 나락의 구렁텅이로 빠트리려는 라누벨의 훼방도 회귀한 용사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덕분에 모험의 진행 속도가 매우 빨랐다.

“따분하다, 마약마왕.”

“일이니 당연히 지루하지.”

졸개A. 우리는 놀러 온 게 아니야.

지크처럼 초반에 자빠지지 않고 꽤 진도를 뺀 후에 죽은 용사들은 대부분 이 코스를 밟고 있었다.

모두가 성왕국으로.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탱커: 토마토 기사단장

힐러: 성녀A

딜러: 인어공주 아쿠아

비겁한 사랑과 우정의 핵심인 세 역할군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심지어 얻는 방법도 매우 간단하다.

인어공주 아쿠아만 설득하면 나머지 둘은 줄줄이 딸려온다.

아쿠아→성녀A→토마토

...이런 식으로.

그렇기에 MAX급 마왕님은 용사E보다 먼저 ‘슬픈 노래의 호수’로 가서 작업해두기로 했다.

*

성녀A를 동료로 영입해도 아쿠아는 꿈쩍 안 하지만, 호수에서 아쿠아를 영입하면 성녀A는 무조건 따라온다.

그리고 토마토는 호위기사란 명목으로 성녀A를 무조건 따라온다. 당연히 그 반대는 안 된다.

즉, 영입 1순위는 무조건 아쿠아.

멍청한 물고기가 마음에 안 들더라도 어쩔 수 없다.

내가 알기론 그랬다.

“...설정이 많이 바뀌었네.”

판타지아 대륙에서 민물인어가 가장 많이 사는 슬픈 노래의 호수는 성왕국의 군대에 포위된 상태였다.

특이하게도 그 군대를 구성하는 병사는 전원 여성. 남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진영 내 수세식 화장실의 줄이 너무 길어서 수풀로 조용히 빠져나온 병사A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실례합니다.”

“꺄읔?!”

주르륵.

놀란 병사가 물줄기의 각도를 잘못 잡아서 속옷을 누렇게 물들였지만, 절대로 내 잘못이 아니다.

쯧쯧. 목이 잡힌 정도로 호들갑 떨긴.

훈련이 덜 된 게 틀림없다.

“예쁜 병사 아가씨. 나쁜 말로 할 때 순순히 대답하는 게 척추에 좋을 거야. 싫으면 내게 침을 뱉거나 발로 걷어차면 돼. 쉽지?”

“.....”

“그렇게 떨 필요 없어. 나는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구?”

판타지아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MAX급 마왕님이다. 절대로 수상한 사람 같은 잡것이 아니다.

나는 정의로운 용사의 미소로 그녀를 안심시켜줬다.

“펴, 편안히 죽여주세요! 흑흑!”

“거참….”

내가 뭘 어쨌다고 울어?

“비겁한 남편. 그 흉악한 미소랑 함께 옆으로 좀 꺼져봐. 내가 이 아가씨랑 대화해볼 테니까.”

쏘시아가 비겁한 가슴으로 병사의 얼굴을 끌어안고 등을 토닥이기 시작했다.

다 큰 처자를 어린애 취급하냐?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유분수….

금방 안정을 되찾은 병사가 코를 훌쩍이며 답했다.

“성왕국은 마왕에게 영혼을 판 호수의 인어들이랑 2000년 전부터 쭉 전쟁 중이었어요. 아니, 모든 인어가 인류의 적이에요! 저도 인어에게 남자친구를 빼앗…. 흑흑! 에릭~ 돌아와! 내가 미안해! 정말 잘못했어! 엉엉! 에리이익~!”

“......”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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