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281화 (281/430)

 281화

[17회차] 대응책

“몰랑교는 북대륙의 이단이잖아?”

“믿었다가는 바로 화형이야.”

“이보쇼! 얼씬도 하지 마시오!”

세뇌 교육을 당한 신성제국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저들은 사이비교의 박해가 두려워서 말을 못 하는 것뿐이다.

위대한 마스터 몰랑이시여!

저에게 우매한 야만인들을 설득할 용기와 지혜를 주소서.

“신성제국의 신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나라가 국민을 지키는 건 당연한 의무다. 하지만 마스터 몰랑께서는 그대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대들은 이미 아침마다 그분의 은혜를 누리고 있다. 수세식 변기가 없는 삶을 상상해보라! 이제 깨달아라! 이것이 진정한 신의 사랑이오, 몰랑일지니!”

바로 옆에서 비겁한 마누라가 “수세식 변기는 네가 전파한 거잖아.”라고 핀잔을 줬지만, 나는 무시하고 어리석은 원주민들만 바라봤다.

어쭈? 이래도 안 움직여?

그렇다면 우주의….

“몰랑교여! 영원하라~!”

그때, 몰랑교 덕분에 동정을 탈출한 유부남A가 외쳤다.

은퇴해서 쓸모없을 줄 알았는데, 정말 생각지도 못한 지원이었다.

심지어 유부남A의 ‘신앙’ 스킬이 발동했다.

▷종류: 스킬

▷명칭: 신앙

▷등급: SS

▷SSS: 이단자를 봉인한다.

▷SS: 이단자를 응징한다.

▷S: 이단자를 세뇌한다.

▷A: 이단자를 추적한다.

▷B: 이단자를 구분한다.

▷C: 개종을 거부한다.

▷D: 설교에 저항한다.

▷E: 기도로 강화한다.

▷F: 대상을 믿는다.

신앙은 하위등급일 때는 그다지 쓸모없지만, 위로 갈수록 사기적인 효과가 잔뜩 생겨난다.

유부남A는 SS등급.

몰랑교의 신실한 신자다.

신성제국 수도에 도착할 때까지 경험치를 퍼마시다시피 한 그의 레벨은 실로 깡패다.

“으읔- 몰랑교 만세! 몰랑! 몰랑!”

“몰랑교는…. 유일한 진리다!”

“오빠. 내가 좋아, 몰랑이 좋아?”

“당연히 너-보다 몰랑이지!”

용사님의 신앙 S등급 효과가 급속도로 이단자들을 개종시켰다.

내가 나설 차례는 오지 않았다.

신성제국 심장부에 마스터 몰랑의 위대함이 널리 전파됐다.

스킬 업보 탓에 용사들의 대우가 용병만도 못했지만, 약해서 무시당한 건 절대 아니다.

당장 눈앞의 찬란한 광경을 보라.

몰랑교를 믿고 구원받은 용사 유부남A가 시민들을 이끌고 신성제국 황궁으로 쳐들어가고 있었다.

“마, 막아!”

“용사가 미쳤다!”

“타락한 용사를 막아라!”

“경비병! 경비병~!”

용사 유부남A의 단점은 낮은 스킬 등급이다.

직업 용자의 도움으로 강자들의 경험치를 날로 먹으며 레벨을 빨리 올린 부작용.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레벨이 압도적인데.

나는 느긋한 발걸음으로 성난 몰랑교도들을 뒤따라갔다.

신성제국의 정치, 세력구조를 알아볼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거짓된 신을 끌어내리자!”

“몰랑교를 위하여!”

“몰랑한 영웅들이여! 몰랑한 무기를 들고 몰랑의 깃발 아래로 모여라! 우리는 역전의 몰랑!”

“저 몰랑한 소리가 들리는가? 몰랑한 발걸음으로 몰랑의 나팔에 맞춰 나아가자!”

“그분의 영광된 이름을 모두가 찬양하리라!”

“몰랑! 몰랑! 몰랑!”

몰랑교도들은 황궁의 가장 깊숙한 중심부까지 거침없이 진격했다.

“...희한한걸.”

용사&용자 콤비가 앞장서서 길을 뚫고 있긴 하지만, 이건 빨라도 너무 빨랐다.

저항이 너무 약했다.

여기는 황궁.

판타지아 중앙대륙 북부를 지배하는 신성제국의 황제와 황족들이 사는 장소다.

그런데 이 중요한 곳을 지키는 병력이 너무 적었다.

호위기사들은 다 어디로?

“황궁을 포기하고 탈출했을지도 모르지.”

쏘시아의 의견에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내가 황제를 해봤기에 잘 안다.

“이까짓 민간봉기에 황제가 황궁을 포기하고 도망치면 황권이 밑바닥까지 추락해. 네 말대로 정말 탈주했다면 제국을 포기한 셈이야.”

하지만 그건 절대 아니다.

신성제국은 그 기나긴 역사만큼이나 황족들의 자존심도 강하다.

황자1도 그랬다.

비열한 황녀의 눈물에 넘어간 용사 일행이 반란을 일으켜서 황궁을 점령할 때도 옥좌에 앉아있었다.

현 황제는?

4차 교육과정 때처럼 골골 앓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황자1보다 독하면 독했지 무른 황제는 절대 아니었다.

지금도 옥좌에 있으리라.

끼익-

유부남A가 육중한 대문을 밀어젖히며 드러난 황제의 홀.

내가 신성몰랑제국의 황제일 때, 꽤 오랫동안 이용했던 장소였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바로 그곳에서는….

“딸아! 이게 무슨 짓이냐!”

“국교를 개종 중이에요, 아바마마.”

코빼기도 안 보였던 기사들이 전부 몰려있었다.

황녀의 곁에 선 그들은 황제와 로열기사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종족: 휴먼

▷레벨: 274

▷직업: 황녀(서열=주목↑)

▷스킬: 신앙SS 매력S 기품A 불로A 정치A···

▷상태: 갈망, 흥분

신성제국 황녀의 능력치는 내 기억이랑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딱 하나 다른 점이 있었다.

신앙SS.

4차 교육과정까진 황녀에게 없었던 고위등급 스킬이다.

“어째서 네가 몰랑교를….”

황제는 딸의 배신보다도 신앙이 더 이해 안 되는 말투였다.

“황위계승서열 1위이신 오라버니를 밀어낼 가장 훌륭한 수단이니까요.”

“설마, 네가…?”

“오라버니를 몰랑교도로 모함하는 건 대단히 쉬웠답니다. 다름 아닌 제가 몰랑교도니까요.”

황녀는 저급한 악당답게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자기 계획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딸아. 이 자리가 그리 탐나더냐.”

“오라버니에게 살해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었답니다.”

“참으로 뻔뻔하구나.”

“손님들도 계시니 이만 끝내도록 하겠어요, 아바마마.”

우리는 안중에 없는 줄 알았던 황녀가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폐하를 지켜라!”

“몰랑의 이름으로!”

양립할 수 없는 두 세력의 기사들이 칼부림을 시작했다.

하지만 승패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컥-!”

“폐하~?!”

충성해온 황제의 몸에 망설임 없이 칼을 꽂은 몰랑교의 기사.

그리고 지켜야 할 충성의 대상을 잃은 신성제국 로열기사들은 무기를 버리고 항복했다.

황녀가 흡족한 미소로 말했다.

“제 황궁에 오신 몰랑교의 형제자매님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대업의 시기를 앞당길 수 있었어요.”

...정말 대단한 년이다.

용사의 동료 중에서 전투력은 가장 약하지만, 위험성으로 따지면 상위권에 속할 것이다.

신성제국의 황제가 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뒤는 생각 안 하고 무식하게 돌격할 줄만 아는 다른 동료들은 단순해서 읽기 쉽지만, 황녀만은 그게 매우 힘들다.

“친아버지를 살해하다니….”

지구인의 감성이 남아있는 유부남A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새 황제를 바라봤다.

황녀는 옥좌에 앉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어조로 답했다.

“매우 안타깝지만, 아바마마는 개종을 거부한 이단자니까요. 저도 슬프답니다. 어째서 몰랑교를 이해하지 못하시는 걸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황녀.

누가 보면 정말로 안타까워하는 줄 알겠다.

“몰랑교를 모욕하지 마십시오.”

유부남A가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어머! 저는 누구보다도 열렬한 몰랑교의 신자입니다. 용사님이라면 보이실 텐데요? 저의 SS등급 신앙이 그 증거입니다.”

“신앙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분의 몰랑함을 헤아리지 않고 멋대로 해석하여 이용하지 않았습니까? 몰랑교는 정치적인 도구가 아닙니다.”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사실이 그렇습니다.”

“몰랑교를 박해하는 신성제국에서 교도들이 편안히 지내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답니다. 이것은 정치가 아닌 자유를 위한 투쟁이에요.”

“궤변입니다. 그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몰랑하십니다. 이단자도 예외는 아닙니다. 몰랑교의 열렬한 신자를 자처하시는 분이 어째서 그 사실을 모르십니까?”

교리를 놓고 용사와 황녀가 설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정말 웃기지도 않는다.

몰랑교의 첫 번째 사도였던 내 앞에서 교리를 논하다니?

하지만 여기서 정체를 밝힐 순 없었다.

몰랑교를 전파한 ‘선지자’가 마왕을 쓰러트리고 마왕이 됐다는 전설이 파다하게 퍼졌으니까.

그래도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마스터 몰랑이시여.”

몰랑?

비겁한 악마의 깊은 가슴골 사이에서 무지갯빛 슬라임이 빼꼼 모습을 드러냈다.

“전부 조용! 마스터 몰랑께서 올바른 교리를 알려주실 것이다!”

“헉!”

“세상에!”

“어머!”

여기저기서 경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차린 몰랑교도들은 바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설전을 벌이던 용사와 황녀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 마스터 몰랑. 연설하실 준비가 끝났습니다.

저 오만한 교도들에게 매서운 가르침을 내려주시지요.

몰라앙? 몰랑몰랑~

그러자 마스터 몰랑께서는 평소처럼 몰랑거리셨다.

“교도들이여! 방금 들었는가? 그분께서 차별 없이 모두에게 몰랑이라고 말씀하시니, 어찌 우리가 몰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예?”

“네?”

마스터 몰랑의 깊은 뜻을 나만 이해한 것 같았다.

“쯧쯧. 교리를 들어도 정 모르겠다면 거룩한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며 기도해. 그러면 절반은 간다.”

“아! 몰랑!”

“몰랑!”

신성제국의 국교가 몰랑교로 바뀌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

동정A가 유부남A로 성장하는 이번 회차는 수확이 아주 좋았다.

이단을 믿는 신성제국이 몰랑교를 박해해왔으며, 제국의 황녀가 몰랑교도란 사실을 알게 됐다.

정보는 곧 힘.

나는 곧장 활용했다.

모든 더미가 ‘황녀, 나는 너의 비밀을 알고 있다.’라는 식으로 편지를 써서 보냈다.

그 편지를 받은 황녀는 사색이 돼서 협조를 약속했다.

멋지군?

“...비겁한 남편.”

“왜?”

“네가 나서지 않아도 업보 스킬 탓에 쩔쩔매는 중이잖아. 여기서 지금처럼 더 쥐어짜면 용사들이 미쳐버릴지도 몰라.”

“그전에 은퇴하겠지.”

의무교육이 아닌 용사의 모험은 강제성이 없다.

힘들면 유부남A처럼 포기하고 가정을 꾸릴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생기겠지.

MAX급 마왕님과 비겁한 악마가 판타지아 차원을 지배할 날이 머지않았다!

“강한수. 나중에 또 보자.”

몰랑교도로서 임무를 마친 유부남A는 은거에 들어갔다.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용사가 신성제국에서 꿈과 희망을 접었다.

방법이 없으니까!

몇몇 여성 용사들이 도망치는 황자1을 구출해서 자초지종을 들은 후, 반격해서 황녀를 끌어내리긴 했으나 정말 극소수였다.

“신성몰랑제국을 위하여!”

“몰랑을 위하여!”

“신성몰랑제국! 만세!”

“몰랑! 몰랑! 몰랑!”

신성제국에서 신성몰랑제국으로 국호(國號)를 바꾼 제국은 황녀의 치세 아래 빠르게 시국이 안정됐다.

여기까지 스토리가 전개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약 3년.

즉, 3년 안에 황자1을 구출하고 황녀를 저지하지 못하면, 용사는 중앙대륙 북부에 발도 들이지 못한다.

몰랑교도가 되지 않는 한.

“고모가 불편해하겠는걸.”

“신성제국이 망해서?”

“응. 성녀들이 건재하긴 하지만, 고모를 믿는 단일국가로는 신성제국이 유일했으니까.”

최초의 천사를 찬양하던 신성제국이 판타지아 대륙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아주 좋은 결말이다.

“네 말대로 불편하다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이겠지.”

▶깜짝: 강한수 생도님! 교직원 회의결과가 나왔어요. 곧 모든 교육장에 적용될 거예요!

알려줘서 고마워, 예쁘고 똑똑한 교생 아가씨!

업보에 대항할 스킬 말이지?

▶부정: 유감스럽게도 스킬은 개발되지 않았어요. 능력치가 난잡해진다는 이유로요.

난잡해지는 게 아니라, 스킬을 개발하지 못하는 거겠지.

내 더미를 예로 들자면,

능력치의 스킬을 ‘전부 살펴보기’로 전환하면 500개가 넘어서 보는 내가 현기증 날 지경이다.

여기에 고작 1개 늘어나봤자 티도 나지 않는다.

즉,

“후후! 고모는 스킬을 개발할 능력이 없어.”

“우쭐대는 마누라. 이 세계를 탈출하는 차원이동 스킬도 개발해봐.”

“그건 유감.”

“나도 너에게 유감.”

난잡해진다고?

쏘시아의 말처럼, 자기들이 스킬을 개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뭔가 조치했다는 것 같다.

▶난감: 제 설명을 듣기보다는 직접 보시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뭘?

▶설명: 생도들의 능력치를 한 번 봐주세요.

나는 교생 아가씨의 말대로 용사들의 능력치를 훔쳐보기로 했다.

유부남A는….

‘아빠. 뭐해?’

‘한계돌파 하는 중이야.’

‘한계돌파?’

‘나의 사랑스러운 공주님을 지켜줄 무적의 용사님이 된다는 뜻이야. 한! 계! 돌! 파-!’

‘히히히! 아빠, 바보 같아.’

Z등급 스킬을 만들기 위한 한계돌파를 시도 중이었다.

유부남A뿐만이 아니었다.

신출내기를 제외한 용사들이 거침없이 스킬들을 제물로 갈면서 Z등급 스킬을 늘렸다.

그럴 수 있는 이유?

“거참! 교장 녀석. 스킬 초기화 기능을 삭제했군.”

최초의 천사는 회귀해도 스킬이 남도록 시스템 규칙을 수정했다.

새로운 스킬 개발은 못 해도 기존의 시스템을 삭제하는 작업은 할 수 있으니까.

회귀한 용사들을 압박하던 스킬 업보의 대응책으로 나쁘지 않았다.

다만,

“용사 출신인 MAX급 마왕님도 스킬을 회복하리란 건 예상하지 못한 건가?”

정의로운 용사님의 모험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동료들에게 10년 동안 고통받으며 단련된 내 1회차.

마지막까지 초월영역은커녕 MAX등급 스킬 하나 없었지만, 블랙박스 없이 기초부터 차근차근 성장한 까닭에 희귀한 스킬들이 은근히 많았다.

그리고 균형 잡혔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고모…. 대체 무슨 짓을….”

“당분간은 심심하지 않겠는걸?”

초월영역 스킬을 잔뜩 만든 용사들이 꿈과 희망을 품고 마왕의 성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곧 깨달으리라.

봉인을 깬 것은 용사들만이 아니란 사실을.

“환영한다, 용사들이여.”

비열한 우정의 힘도,

유통기한 짧은 사랑의 힘도,

회귀한 경험도,

사기적인 블랙박스도,

오토매틱 성검도,

...

그 무엇도 없이 단신으로 마왕 페도나르를 압살해버렸던 힘.

뼈에 예쁘게 새겨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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