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화
[19회차] Re: Hell
“리엘. 인간과 천사 혼혈입니다. 그 외에는 알려진 정보가 없지만, 교장의 손자인 만큼 평범한 인물은 아닐 겁니다.”
“이름이 리엘이란 말이지….”
정보는 이름이면 충분하다.
파릇파릇한 떡잎일 때 밟아버리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니까.
“그것만은 참아주십시오. 당신에게 호의적인 교사들이 전부 등을 돌리게 될 테니까요. 형평성에 어긋나는 행동은 반발을 부릅니다.”
“교장은?”
최초의 천사야말로 공명정대함이랑 거리가 먼 것 같은데?
“교장도 어긋났기에 저 같은 무리가 생겨났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군.”
이해했다.
그렇다면 전반적으로 난이도를 어렵게 해버리면 그만이다.
“아! 또 말씀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난이도를 올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시험 문제가 너무 어려우면 학생들은 교사를 원망합니다. 이 부분도 헤아리셔야 합니다.”
“전부 하지 말라네.”
내 불만을 들은 진학상담사가 신뢰감 깃든 시선을 보냈다.
“기나긴 판타지아 교육장의 기록을 수없이 갈아엎은 강한수 학생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돌파구를 마련하시리라고 믿습니다.”
“너도 뼛속까지 교사군.”
하지 말라는 조건만 덕지덕지 달고 내팽개친다.
“하하! 꼭 그렇진 않습니다. 수업을 못 따라오는 학생들은 하나하나 보살펴줍니다. 보살펴주는 만큼 기대감도 떨어집니다만.”
“할 말은 그걸로 끝?”
“네.”
“그렇다면 이번에는 내 차례.”
파앙-!
진학상담사의 얼굴을 노린 내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하지만 상관없다.
내 등에서 솟아난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가 후속타로 먹잇감을 노리고 있었으니까.
“이거 참…. 신(神)이여.”
진학상담사의 한마디.
그것은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힘의 현현(顯現)이었다.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가 먹잇감의 반격에 튕겨 날아갔다.
성검보다 단단한 날개 골격이 어이없게 부러진다.
과연….
“그게 네 힘이로군?”
“엄밀히 말하면, 신에게 빌린 힘입니다.”
최초의 천사에게 빌린 힘은 절대로 아니리라.
그 반대속성인 내가 못 알아볼 리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스터 몰랑의 전지전능한 GGG등급의 힘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약했다.
그렇다면 제3의 신(神).
내가 모르는 존재의 개입이 있다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누구의 신이 더 강한지 여기서 시험해보기로 했다.
“난감하군요. 저는 당신을 돕는 아군입니다만.”
“아군은 내가 정해.”
진학상담사가 도덕 선생 대신 2회차 때부터 나타났다면 ‘아군’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이미 나는 오롯한 존재이기에.
조금 전까지 주절주절 설명했던 진학상담사가 하고자 하는 말은 간단했다.
교장파 vs 마왕파
어느 진영의 우정이 더 강한지 대결하자는 것이다.
“강한수 학생. 당신의 공격은 저에게 닿지 못합니다.”
“...기다려. 곧 후려쳐줄 테니.”
녀석의 말대로 내 공격은 닿지 못하고 있었다.
진학상담사의 몸 주위로 위성처럼 돌아다니는 ‘백색 오각형 방패’가 원인이었다.
방패 면적은 그리 넓지 않았다. 손바닥 2배쯤 될까?
대신,
캉! 캉! 카강! 캉-!
내 눈으로도 움직임을 따라잡기 힘들 만큼 매우 빨랐다.
그런 방패는 내가 가하는 모든 종류의 공격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포기하십시오.”
“고슴도치처럼 방패 뒤에 숨은 주제에 말은 잘하네.”
“우호적인 대상을 다짜고짜 기습하신 분이 할 말은 아닙니다만.”
“우호는 무슨.”
내게 아군은 필요 없다.
비겁한 우정과 사랑의 힘에 기댈 마음이 있었다면, 진즉 그 길을 택했을 것이다.
진학상담사는 말했다.
불량학생은 불량학생이라고.
나도 여기에 공감한다.
교사는 교사다.
지구의 선량한 문화시민이었던 나를 판타지아 차원으로 납치한 그들은 전부 나의 ‘적’이고, 내게 명령할 권리는 없다.
교장의 손자를 막아라!
단, 방법은 네가 생각하고.
대화의 요지 자체는 ‘너를 위한 일이야!’라고 했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내 아들로 협박한 놈의 말을 믿을 리 없잖아?”
“그때는 협박이 아니라 교칙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이용했다는 건 변함없지.”
“덕분에 아들을 살리실 수 있지 않았습니까?”
“반쪽짜리 삶이지.”
내 아들은 수많은 분신으로 나뉜 채 판타지아 차원에 묶여있다.
이걸 과연 온전히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아…. 비겁한 남편. 저 녀석이 무슨 꿍꿍이가 있든 당장은 서로에게 이득이잖아. 그런데 왜 건드려….”
쏘시아가 무너지는 마왕의 성을 어이없게 바라보며 핀잔을 줬지만, 내가 알 바 아니다.
“조카야!”
“안 추했어요!”
“그게 아니라, 마약마왕이 마약마왕 했을 뿐인데, 무슨 문제라도?”
“......”
나는 공짜로 일하지 않는다.
판타지 원주민을 도와주면 뿌듯함을 얻는다고?
정말 웃기지도 않는다.
만약, 판타지 세계로 납치되지 않았으면 지구에서 잘 살았을 것이다.
그런 내게 판타지 원주민이 아무리 훌륭한 보상을 해주더라도 만족할 수 없다.
하물며 공짜? 공공의 이익?
부질없는 사탕발림이다.
그나저나….
카강-! 팅팅팅!
저 방패는 대단히 성가셨다.
내가 어떤 식으로 공격하더라도 완벽하게 막아내는 중.
동시에 공격해도 더욱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따라잡았다.
대신, 방패에 가로막힌 진학상담사도 내게 공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끈질기네.”
“포기하십시오. 모든 공격을 완벽하게 막는 방패를 만들어서 신이 된 완벽한 존재의 권능입니다.”
“완벽이라….”
참으로 오만한 발언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존재는 마스터 몰랑밖에 없거늘!
“그리고 저를 쓰러트린들 당신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습니다. 이건 무의미한 싸움입니다.”
“아니. 의미는 내가 만든다.”
나는 우주의 섭리에 따라 ‘두 번째 마왕’의 권좌에 앉은 자.
완벽한 존재, 마스터 몰랑에게 가르침을 받은 수제자!
그러니,
신(神)쯤은 자처해도 괜찮잖아?
▷종류: 스킬
▷명칭: 날조
▷등급: ZZ(3%)
ZZZ: 아무튼 진실이다.
ZZ: 신으로 둔갑한다.
Z: 신의 호소를 이긴다.
▷SSS: 가족으로 둔갑한다.
▷SS: 애인으로 둔갑한다.
▷S: 친구로 둔갑한다.
▷A: 증인으로 둔갑한다.
▷B: 가족의 호소를 이긴다.
▷C: 애인의 호소를 이긴다.
▷D: 친구의 호소를 이긴다.
▷E: 증인의 호소를 이긴다.
▷F: 거짓이 그럴싸해진다.
고작 손바닥만 한 방패 하나로 우쭐대면서 ‘완벽한 신’을 자처하는 존재가 있다.
그렇다면, 그 존재보다 더욱 잘난 내가 ‘신’이 아니란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대전제: 적은 완벽한 신이다.
소전제: 나는 적보다 완벽하다.
결론: 나는 신이다.
“그러므로 나는 마신(魔神)일지니.”
몰랑하지 않은 모든 현상과 존재를 암흑으로 몰랑하리라.
캉! 캉! 파직-!
내 의지에 호응한 마기가 암흑물질이랑 혼재되어 방패를 두드렸다.
그것은 눈으로 볼 수 없었다.
빛마저 흡수하여 반사되지 않기에 각막에 상이 맺히지도 않으니까.
그리고 빠르다.
“아닛-?!”
방패에 금이 가는 것을 본 진학상담사의 눈이 부릅떠진다.
좋은 눈이다.
“그 방패가 모든 공격을 완벽하게 막는다고 했지만,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다는 옵션은 없는 모양이네?”
참으로 허술한 완벽이로군?
쨍그랑!
진학상담사가 경악성을 내뱉고, 내가 오만하게 지껄이는 사이.
수백만 번 두들겨진 방패가 마침내 파괴됐다.
마치, 유리 세공품처럼.
아름다운 빛의 입자로 변했다.
그리고,
퍼억-!
정의로운 마신의 기운이 사악한 교사의 턱주가리를 힘껏 갈겼다.
“우워어어어~?!”
내게는 슬로우모션처럼 진학상담사의 턱주가리가 돌아가는 과정이 세세하게 보였다.
아래턱 왼쪽 어금니 5개가 차례대로 빠지고, 송곳니와 앞니가 그 뒤를 이었다.
아득.
혀도 살짝 깨물었는데, 기적적으로 잘리진 않았다.
치이이이….
하지만 진학상담사의 부상은 빠른 속도로 회복됐다.
치아가 새롭게 자라나고, 뭉개진 아래턱도 서서히 복구됐다.
벌써 말할 정도였다.
“지, 지독하군요. 황혼기 뇌비우스의 맹독 숨결도 이렇게까지 제 치유력을 갉아먹진 못했는데.”
“정의로운 마신의 기운이니까.”
몰랑하지 못한 부정한 존재들에게 몰랑한 응징을!
“마신…. 과연. 그래서 더미임에도 그만한 힘을 쓸 수 있었군요. 본체의 사도(使徒)로 임명해서 힘을 대행하도록. 하지만 제가 아는 정의랑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정의를 모르는 사악한 존재의 불평을 듣지 않겠다.
“진학상담사 베이커리.”
“페이커-리입니다.”
“그래. 베이커리.”
“......”
“내게 아군은 없다.”
“그렇군요. 마신의 비열한 기습으로 심하게 다친 진학상담사는 마왕 파르마몬의 적이 확실합니다. 교장도 의심하지 않겠지요.”
“...음?”
뭔가 얘기가 이상한데?
진학상담사의 영혼을 몰랑하게 갈아버리려던 나는 멈칫했다.
“때가 올 때까지 당신의 적으로서 기다리겠습니다.”
뿅!
내가 한순간 머뭇거린 사이, 진학상담사 베이커리가 도망쳤다.
“...이모님. 정말 놀랐어요. 영혼까지 전투민족인 줄 알았던 제 남편이 생각이란 걸 했어요.”
“그러게. 나도 놀랐다.”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동맹을 죽이려는 줄 알았는데, 고모를 속이기 위한 기만책일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어요.”
“오! 귀여운 조카야! 네 눈동자가 하트로 바뀌었다.”
“이모님! 저는 만화캐릭터가 아니거든요?!”
“감정을 부정하진 않네?”
“...예?”
“우히히히!”
쏘시아와 마약정령이 대단히 실례되는 뒷담을 했지만, 나는 이번만 특별히 용서해주기로 했다.
“리헬이라….”
Re-Hell.
지옥이 반복된다는 의미.
천사의 피를 이은 사내답지 않은 으스스한 이름이다.
정정: 리엘이에요.
아! 교생 아가씨.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베이커리가 대선배랍시고 괴롭히면 바로 말해. 이 정의로운 마신님이 혼쭐을 내줄 테니까.
난감: 그분은 후배들이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선배님이세요.
그럴 리가!
순진한 교생 아가씨에게 베이커리의 나쁜 점을 설명해주고 싶지만, 오늘만 날이 아니잖은가?
지금은 할 일이 있다.
“리헬을 만나러 가보실까.”
녀석에게 지옥을 반복시켜주자.
*
*
*
사악한 교장의 손자를 찾는 단계부터 쉽지 않았다.
초등학생을 위한 교실은 용사의 숫자만큼 많고, 그들의 모험 진도와 성적도 천차만별인 탓이다.
백과사전처럼 이름을 검색하는 기능이 있으면 좋겠지만, 비겁한 마누라의 프로그래밍 능력이 부족해서 일일이 찾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뛰어난 남편님이 알아서 해. 무능한 아내는 옆에서 몰랑이랑 놀고 있을 테니까.”
몰랑몰랑~
“쏘시아. 좀 더 자부심을 가져.”
마스터 몰랑을 모시는 것만으로도 너는 유능한 아내라구?
“전혀 위로가 안 되네. 분명히 칭찬인데, 비아냥으로 들려.”
“마음을 곱게 먹어.”
어디에 있을까?
아니, 어떤 용사일까?
진학상담사 베이커리의 말에 따르면, 리헬은 최근에 초등교육과정에 입학했다.
내 업적을 빼앗으려는 녀석인 만큼 레벨과 스킬이 낮아도 고블린, 오크쯤은 간단히 잡을 수 있는 실력자일 것이다.
즉, 미쳐서 자살하지 않았다면 스킬 업보는 쌓이지 않았을 터.
나는 그림자A의 명예교사 지위를 활용하여, 판타지 원주민들이랑 원만한 관계를 형성 중인 용사들을 위주로 살펴봤다.
판별하는 기준은 어렵지 않다.
평판이 나쁘지 않은 그들은 노숙하지 않고 마을과 도시를 근거지로 삼아서 활동하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 닷새….
분류가 끝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지만, 후보의 범위가 단번에 확 줄어들었다.
“좋아. 다음은…. 음?”
원주민들의 하찮은 부탁을 들어주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용사를 물색하던 나의 시선이 딱 멈췄다.
의도해서 멈춘 게 아니다.
저절로 멈췄다.
‘초면의 용사여. 어째서 나를 적대하는가?’
‘네가 뇌비우스이기 때문이다.’
‘과연…. 수긍했다. 에르단티. 아이들을 데리고 물러나라.’
‘조심하세요, 뇌비우스임.’
친애하는 전우 뇌비우스가 패기 넘치는 청년의 형태로, 맹랑한 소년이랑 대치하고 있었다.
그 소년은 말했다.
네가 뇌비우스이기 때문에 적대한다고.
나도 떠올렸다.
▷2: 초등교육과정 최초, 망룡왕 토벌★
▷5: 초등교육과정 최초, 성검 없이 망룡왕 토벌
▷6: 초등교육과정 최초, 동료 없이 망룡왕 토벌
▷7: 초등교육과정 최단기간, 성검 없이 망룡왕 토벌
▷8: 초등교육과정 최단기간, 동료 없이 망룡왕 토벌
최초의 업적 셋은 영구적이지만, 최단기간 업적은 아니다.
물론, 의문이 하나 있긴 하다.
유부남이 된 뇌비우스는 망룡왕이라고 더는 불리지 않으니까.
그래도 상관없다는 걸까?
아무튼,
“찾았다.”
“벌써? 남편. 찾기 귀찮아서 용사들을 학살하려는 건 아니지?”
“아니야.”
대도시를 둥글게 감싼 산맥 형태로 모습을 감춘 채 가족을 지켜보고 있던 최강의 용.
원한이 있을 리 없다.
그런데도 적대하는 신출내기 용사가 있다면, 단 한 명뿐.
“친애하는 전우여! 기다리게! 내가 저 건방진 초딩을…. 음….”
건방진 초딩은 0.1초 만에 업보F를 획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