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291화 (291/430)

 291화

[19회차] 용사의 비리

“진짜 미치겠네! 업보가 쌓이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잔소리를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

용사 리헬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박박 긁으면서 만두 왕국의 수도 거리를 걷고 있었다.

비주얼은 나쁘지 않았다.

녀석이 지나갈 때마다 근처의 아가씨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와아아...”

“진짜 잘생겼다.”

“어머! 어머!”

하지만 실로 가소롭다.

귀여운 황제였던 나는 ‘응애!’라고 한 번 외치면 남녀노소,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까무러쳤으니까.

인기가 생기면 시기하는 안티도 튀어나오기 마련이지만, 나의 귀여움은 진리라서 부정하는 자가 대륙에 단 한 명도 살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면, 나는 귀여운 척하는 라누벨이랑 질적으로 다르다.

“리엘 용사님. 검성 알렉스의 저택은 저쪽이에요~”

한창 심각한 표정인 용사 옆에서 싱글벙글 미소 짓는 라누벨.

주먹을 부르는군!

“라누벨 님의 활기찬 목소리를 들으니 힘이 나는군요!”

...저 새끼가 뭐래?

언제 심각했느냐는 듯이 정말로 기운을 차린 리헬.

하지만 그는 라누벨이 가리킨 방향으로 이동하진 않았다.

아까부터 어디로 향하는 걸까?

금방 알 수 있었다.

용병 길드.

난폭하고 지저분한 판타지 야만인들이 일자리를 구하거나, 돈으로 그들을 고용하는 장소다.

“용사님. 라누벨이 맞춰볼게요! 용병 길드에서 모험을 함께할 동료를 구할 생각이시죠?”

“이거 참! 라누벨 님의 눈을 속일 수가 없군요.”

“헤헷.”

둘이서 실실거리는 꼬락서니를 볼 때마다 내 혈압도 가파르게 상승했지만, 지금은 시시콜콜하게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동료를 구한다?

내가 알기로, 용사 리헬은 이제 겨우 2회차다.

심지어 1회차는 판타지아 차원에 소환되자마자 뇌비우스에게 달려갔다가 ‘0.1초 컷’을 당했다.

즉, 정보가 있을 턱이 없다.

그런데 용사 리헬은 이 도시의 모든 지형을 숙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용병 길드에서 동료를 영입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야비한 수법을 쓰네.”

이건 내 예상 밖이었다.

4차 교육과정은 졸업생들이 떠벌리고 다니는 바람에 정보가 많이 풀려서 공략집이 흔했다.

하지만 5차 교육과정은 졸업생이 전무(全無)한 상황.

공략집이 있을 턱이 없다.

그런데 용사 리헬의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공략집을 읽고 정보가 빠삭했던 용사 루크만큼이나 기세등등했다.

허세인지 진짜인지 한 번 볼까?

우득, 우드득...

정의로운 MAX급 마신의 기운을 받은 귀족 청년의 얼굴과 체형이 빠르게 바뀌었다.

이건 성형 따위가 아니다.

몰랑은 과학이다.

▷종족: 휴먼

▷레벨: 44

▷직업: 귀족(족보=기품↑)

▷스킬: 체력MAX 건강MAX 내성MAX

민첩MAX 지력MAX 면역MAX

괴력MAX 오감MAX 매력MAX

근골MAX 피부MAX 모발MAX

수명MAX 기품C 마기D…

▷상태: 양호

육체랑 관련된 기본적인 스킬 등급이 이쯤 되면 사람이 환골탈태(換骨奪胎)하게 된다.

동일인물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극적인 변화.

이 얼마나 몰랑한가!

찌이이익-!

하지만 사소한 부작용이 있었다.

비실비실한 귀족 청년의 체구에 맞춰진 옷이 부푼 근육 때문에 찢어지고 말았다.

이미 로열기사들에 의해 넝마가 됐던 상태였기에 버티질 못했다.

펑퍼짐하게 제작된 삼각팬티를 제외하고 몽땅!

“히익-?!”

“어, 엄마얏?!”

“사람인가...?”

“와아...”

지나가던 행인들이 나를 보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몇몇 아가씨들은 사르르 얼굴을 붉히면서 이쪽을 힐끔거렸다.

이 상태로는 너무 눈에 띄겠는걸?

하지만 문제없다.

“깨끗한 양말입니다.”

“제 바지를 받아주십시오.”

“최고급 망토예요.”

“어제 산 신발입니다.”

평범한 시민들 속에 섞인 악마숭배자들이 내게 옷을 제공해줬다.

제대로 코디하지 않고 대충 껴입은 탓에 패션이 우스꽝스러웠지만, 그 위에 망토를 걸쳐서 해결했다.

당장 급한 문제는 아니니까.

“자, 그러면...”

마스터 몰랑의 가르침과 악마숭배자들의 협찬으로 완벽한 변신을 마친 나는, 조용하면서도 잽싸게 리헬과 라누벨의 뒤를 밟았다.

딸랑딸랑♪

드나드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문에 달린 종소리가 심야까지 멈추지 않는 용병 길드.

하지만 전쟁이나 몬스터 토벌이 매일 있는 건 아니기에 용병들의 일도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자잘한 심부름부터 불법적인 일까지.

그들은 합리적인 액수의 돈만 받으면 무슨 짓이든 한다.

위험수당.

시간수당.

인원수당.

계절수당.

...

온갖 이유를 붙여서 고용비를 올리는 용병들은 정규군보다 유지비가 훨씬 비싸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그들의 실전경험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다는 강점이 있다.

특히, 그 실력을 인정받은 ‘네임드 용병’은 부르는 게 값이며, 엔간한 기사보다 대우가 좋다.

용사 리헬이 동료를 모집한다면 분명히 이 네임드들을 노릴 것이다.

내가 1회차 때 ‘용병왕’을 비싼 돈 주고 고용했듯이.

“실례합니다.”

“어머! 신성한 소년 기사님. 무슨 용무로 저희 용병 길드를 방문하셨나요? 의뢰? 고용? 등록?”

안내원 아가씨가 사근사근한 말투로 용사에게 질문했다.

소환됐을 당시부터 복장이 화려했기 때문에 리헬을 왕국의 기사로 착각한 듯했다.

“용병을 찾고 있습니다.”

“그 용병의 이름이나 별명을 아시나요?”

“폭풍의 검사, 라파벨리.”

“아! 그분이라면 길드 3층의 정회원 쉼터에 계실 거예요. 고용을 위해 호출하시고 싶으시면 수고비가 듭니다. 단, 지인이시라면 이름을 무료로 전달해드릴 수 있어요.”

“리엘.”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용병 길드는 회원제다.

하지만 한 곳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용병의 특성을 고려해서 자유를 제한하진 않는다.

1층은 손님.

2층은 준회원.

3층은 정회원.

용병 길드 대륙지부나 총본부 같은 곳은 더욱 고층이고,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이런 식으로 구성된다.

용병 길드에 있어서, 신분이 불확실한 대부분의 용병은 일용직 노동자이자 손님일 뿐.

오랫동안 활동해서 신원이 확실하다고 판단되는 자들만 준회원으로 승급되며, 이중에 능력마저 출중한 자들을 정회원으로 뽑는다.

길드의 회원이 되면 당연히 그 대우가 확연히 달라진다.

시장바닥을 연상시키는 1층이랑 달리, 준회원만 출입할 수 있는 2층부터는 길드건물의 각종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니까.

하물며 2층도 아니고 3층이면, 아무리 용병이라도 기사 이상의 대우를 받기에 콧대가 높아지기 마련.

하지만 이 여인은 달랐다.

“누구시기에 나를 찾... 엇?!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어요.”

매우 귀찮다는 어투로 1층까지 내려오던 미녀는 용사 리헬을 보자마자 말끝을 흐렸다.

그녀는 표정을 싹 바꾸고는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나는 그 이유를 안다.

▷종족: 휴먼

▷레벨: 754

▷직업: 검사(검술=절단↑)

▷스킬: 검술S 매력S 민첩A

폭풍A 회피A…

▷상태: 식겁

능력치가 이런 줄 알았는데,

▷종족: 하프 휴먼

▷레벨: 754

▷직업: 검사(검술=절단↑)

▷스킬: 신성SS 검술S 은닉S

민첩A 폭풍A…

▷상태: 식겁, 은닉

이랬기 때문이다.

그녀는 종족과 스킬을 꽁꽁 감추고 있었다.

스킬 은닉(隱匿).

능력치를 감추는 효과가 있다.

용사가 아니면 남의 능력치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쓸모없는 스킬처럼 보이지만, 판타지 세계에는 마법 안경 같이 간접적으로 능력치를 판별하는 물품들이 존재한다.

인간사회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싶어하는 극소수 요정들이 주로 이 스킬을 익힌다.

가슴에 뽕을 넣고 긴 귀를 마법이나 모자로 가리면, 요정인 것을 못 알아보기 때문이다.

“다시 소개하지. 나는 리엘. 보이는대로다.”

“예. 보여요. 당신의 신성함이 똑똑히 보입니다.”

용사와 원주민.

오늘 처음 만나는 둘 사이에 절대로 있을 수 없는 대화였지만, 리헬은 이 상황을 자연스럽게 여겼다.

“내 파티에 들어와라.”

“그분의 고귀한 혈통을 돕게 되어 영광이에요.”

길드에서 특별취급하는 정회원 용병을 고용하는 셈인데, 돈 얘기는 일절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삼자가 봐도 알 수 있는 뚜렷한 상하관계.

인간인 줄 알았던 ‘폭풍의 기사’도 천사 혼혈이었으며, 리헬의 신성을 보자마자 복종의 자세를 취했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요놈들 봐라?”

공명정대한 MAX급 마왕님은 신성한 학당에 있어선 안 되는 비리를 발견했다!

*

내 업적을 빼앗는다고 했을 때는 코웃음쳤는데, 복장도 그렇고 만반의 준비를 해놓은 상태였다.

과연, 교장의 손자란 걸까?

시작된 지 얼마 안 되는 5차 교육과정의 정보를 벌써 상당히 파악해둔 것 같았다.

어쩌면 나 이상으로.

“용사님의 파티에 오신 걸 환영해요! 저는 전설을 쫓는 고고학자 라누벨이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라누벨 양. 저는 폭풍의 기사란 이명으로 불리는 상급 용병 라파벨리입니다.”

간단한 자기소개의 시간을 갖고 다시 출발하는 리헬 용사 일행.

하지만 무언가 달랐다.

“리엘 용사님. 검성 알렉스는 안 만나세요?”

“아! 죄송합니다, 라누벨 님. 말씀드리는 걸 깜빡했군요. 검성 알렉스는 손이 없는 아내 때문에 마왕의 편을 들고 있습니다.”

“에엣?! 정말요?!”

라누벨이 귀여운 척하면서 놀란 표정을 지었을 때, 뛰쳐나가서 한 대 후려쳐주고 싶었다.

가까스로 참은 나는 그들의 대화를 계속 엿들었다.

“하지만 알렉스의 제자 중 하나인 요정공주 실비아는 아닙니다. 실력도 나쁘지 않고, 그녀를 얻으면 요정왕국의 지원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와아! 리엘 용사님을 정말 많은 걸 아시네요!”

“과찬이십니다.”

...실비아를 노린단 말이지?

유부남 알렉스의 비밀을 눈치챈 것도 그렇고, 이건 준비를 넘어서서 사기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나는 리헬보다 한발 앞서서 실비아를 만나기로 했다.

*

“몸이... 정말 좋으시네요.”

만두 왕국의 귀족 청년들이랑 이야기를 나누던 실비아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쪼르르 다가왔다.

4차 교육과정 때는 인간혐오에 찌든 캐릭터였는데, 유감스러운 요정왕이 왕권을 쥐면서 후예인 그녀의 성격도 완전히 달라졌다.

5차 교육과정의 실비아는, 멋진 인간이랑 결혼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요정공주였다.

“칭찬 감사합니다. 아침마다 몰랑하게 운동했지요.”

아직 하루도 안 지났지만, 몰랑한 트레이닝의 효과는 원래 빠르니 틀린 말도 아니다.

“저... 저기...”

내 가슴을 바라보면서 우물쭈물대는 실비아.

귀여운 척하는 라누벨만큼은 아니지만, 이런 실비아도 정말 봐주기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MAX급 마왕님.

공과 사는 확실하게 구분한다.

“만져보시겠습니까?”

“아! 실례가 아닌지...”

“괜찮습니다.”

“그러면 잠시만. 와아... 이 탄탄한 가슴. 온종일 안기고 싶다...”

동족을 비하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3대 요정왕 엘브하임에게 조기교육을 받은 폐해.

이래도 괜찮은 걸까?

인간혐오보다는 나으니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실비아 공주님.”

“애정을 듬뿍 담아서 실비아라고 편하게 불러주세요.”

뭐? 애정? 이년이 처맞고 싶나!

“...실비아. 제가 괜찮은 신랑감을 추천해드리고 싶은데, 한동안 저랑 동행하시지 않겠습니까?”

“당신보다 가슴이 탄탄한 분이신가요?”

“보시면 압니다.”

후보가 여럿 떠오르는데, 상황을 봐서 유동적으로 고를 계획이다.

“으으. 궁금해서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네요.”

자연스럽게 내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 뺨을 비비는 실비아가 동행을 약속했다.

그걸로 됐다.

우드득.

나는 실비아의 잘록한 허리에 감은 왼팔에 힘을 줬다.

“아아! 이 두꺼운 팔뚝! 당신의 팔에 제 몸이 바스러져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야. 벌써 바스러지면 곤란해.

요추(腰椎) 4번과 5번 사이를 살짝 어루만져줬다.

성녀가 치료해줘도 최소 3년은 모험을 포기하고 집에서 요양해야 할 것이다.

그때였다.

실비아가 까치발을 들더니 과감히 내 입술에 자기 입술을 포갰다.

“우웅~”

“음...”

나는 거부하지 않았다.

LCD 모니터는 취급 안 하지만, 옛정을 생각해서 이 정도는 서비스해줄 수 있다.

길거리에서 공원으로.

우리는 장소를 옮겨가면서 입맞춤을 이어가다가 조용히 헤어졌다.

곧 그가 도착할 테니까.

잠시 후, 용사 리헬이 공원 벤치에 누워있는 실비아를 발견했다.

그리고 외쳤다.

“주, 죽었어?!”

이래서 죽을 만큼 사랑하면 안 되는 것이다.

▷난감: 강한수 생도님의 사랑을 견딜 수 있는 여성은 쏘시아 고문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헉! 교생 아가씨!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하면 너무 섭섭해!

“자, 계속 따라다녀볼까.”

여유부릴 틈이 없다.

정의로운 MAX급 시민A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비대 탓이다.

“잡아라!”

“저 살인마를 붙잡아!”

“실비아 공주님을 대체 왜!”

“절대로 놓치지 마!”

이웃나라 공주님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도망치는 후배를 놓치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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