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292화 (292/430)

 292화

[19회차] 유일무이한 미소

“뛰어!”

비열한 용사 리헬이 달리면서 두 잡것에게 외쳤다.

“용사님! 이게 무슨 일이예요?!”

“저희가 어째서 도망을...”

요정공주 실비아를 영입하러 간 용사가 혼자서- 아니, 수많은 경비병을 달고 돌아오는 모습을 본 라누벨과 용병A가 당황했다.

하지만 눈치가 없진 않았다.

둘은 용사 리헬을 뒤따라 부지런히 달렸다.

나도 그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살짝 거리를 둔 채 달렸다.

경비병이 쫙 깔린 도시에 머무는 건 불가능하다. 아니, 만두 왕국 어디서도 머물 수 없다.

혐의가 풀릴 때까지.

“쯧쯧. 경험부족이군.”

용사 리헬이 무장해제와 포박을 거부한 판단은 나쁘지 않지만, 오해가 풀릴 때까지 경비병들에게 협조했어야 했다.

안 그러면 오해만 커지니까.

범죄를 인정하고 도망친다는 식으로 해석되버린다.

애초에 말이다.

실비아는 몬스터가 아니고, 시신의 상태도 매우 좋다.

시신이 썩기 전에 마법처리 후, 성왕국의 성녀A에게 데려가면 충분히 살릴 수 있다.

그러면 가슴이 탄탄한 MAX급 시민A랑 키스하다가 쇼크사했다는 진실이 밝혀질 터.

그런데 용의자가 도망쳤다.

실비아가 성왕국으로 옮겨져서 부활할 때까지 ‘용사 일행’은 현상수배범의 명단에 오를 것이다.

▶빼꼼: 확신하시네요.

물론이야, 교생 아가씨.

내가 1회차 때 겪어봤으니까.

용사의 목숨을 노린 미모의 암살자를 처치했는데, 무고한 미녀를 살해했다는 식의 오해를 받고 도망자 신세가 됐던 적이 있었다.

▶궁금: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그 암살자의 신원이 불분명한 덕분에 ‘자국민 외의 살인은 무죄’로 판결났다.

하지만 그전까지 노숙과 숲길을 전진하며 숨어다녀야만 했다.

그래서 모기에게 잔뜩 물렸지!

정말 엄청 고생했다.

“다음은 어디로 가려나?”

용사 리헬은 요정공주 실비아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상황이다.

만두 왕국에 머물 수 없다.

중앙대륙 서부의 요정왕국을 가는 것도 자살행위.

남은 선택지는 북부의 신성제국과 이웃국인 성왕국.

아니면 옛 마왕의 영토였던 남부의 무법지대로 갈 수도 있다.

비열한 후배의 선택은?

“용사님! 라누벨이 예전에 와봐서 아는데, 이 앞은 절벽이예요!”

“절 믿으십시오!”

만두 왕국의 수도를 빠져나온 리헬은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라누벨과 용병A도 망설임없이 그를 뒤따라갔다.

모험을 포기하고 자살?

그럴 리 없다.

펄럭~!

펄럭~!

절벽 아래에서 거대한 돛을 단 배가 출현했다.

용사와 잡것들을 갑판에 태운 배는 중력을 무시하고 하늘 높이 수직으로 날아올랐다.

나는 저 배를 알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비슷한 배를 탄 적이 있다.

“천공선(天空船) 라우리타.”

현자가 제작한 교통수단인 ‘날아다니는 배’의 원조다.

모방품과 원조의 성능은 증기기관차와 자기부상열차 만큼 차이가 극심하며, 천공선 라우리타는 판타지아 북대륙의 수호자가 보유하고 있던 ‘성물’이었다.

용사 리헬의 능력치 상태에 표시된 ‘성물’의 정체가 궁금했었는데, 천사의 도시들을 왕래하던 마을버스 ‘천공선’이었다.

▶추가: 천공선은 비행이 미숙한 어린 천사들의 추락사를 방지하기 위해 고안된 교통수단이예요.

세세한 설명 고마워, 똑똑하고 예쁜 교생 아가씨!

그나저나...

“반칙이 너무 심한걸.”

판타지 원주민들의 구조요청에 발목 안 잡히려고, 2회차부터는 마탑의 공간이동 마법진을 애용했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수직이착륙 자가용비행기나 다름없는 천공선은 너무 심했다.

용사 리헬이 마음만 먹으면 판타지아 대륙의 어디든 하루만에 갈 수 있다는 소리니까.

▶난감: 교칙상으로는 아무런 문제 없어요. 생도가 소환되기 전부터 보유하고 있던 물품이니까요.

“교칙이란 말이지...”

나는 합법이라고 주장하는 학생물품을 한 번 노려본 후,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리고 서쪽으로 빠르게 날아가는 천공선을 추적했다.

이동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순식간에 요정왕국을 횡당한 용사 일행은 중앙대륙과 서대륙을 나누는 산맥을 넘었다.

여기서부터 서대륙 시작!

4차 교육과정의 서대륙은, 빛을 먹는 초대형 파리 ‘루시퍼’의 대량번식으로 온종일 어둡고 추웠다.

하지만 5차 교육과정은 다르다.

루시퍼의 천적인 초대형 모기 ‘제우스’가 망령왕 섹스피어에게 멸종당하지 않은 덕분에 자연의 먹이사슬과 환경이 파괴되지 않았다.

대신,

▶설명: 전기과학이 발달했어요. 번개를 쏘는 제우스를 발전기로 활용하는 기술이 개발된 덕분에요.

교생 아가씨의 말대로다.

판타지아 서대륙은 전기제품이 상용화됐다.

이렇게 말하면 지구랑 비슷할 것 같지만, 마법이 섞이면서 기상천외한 제품이 많이 등장했다.

휘익!

휘이잉!

휙휙!

4차 교육과정에선 서대륙 하늘에 루시퍼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수많은 비행체가 날아다녔다.

판타지 스타일의 비행기랄까.

당연히,

“미등록 비행체에 경고한다! 당장 착륙하지 않으면 발포한다! 다시 말한다. 착륙하지 않으면 발포한다!”

그런 하늘을 관리하는 레이더와 교통경찰도 존재했다.

이 넓은 하늘에서 그런 걸 따질 필요가 있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도시를 가로지르던 비행체가 추락한다고 상상해보라.

얼마나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할지 추산이 안 된다.

▶뿌듯: 강한수 생도님 덕분에 서대륙은 지난 2000년 동안 눈부신 발전을 이뤘어요.

나도 악마와 악마추종자들이 주기적으로 보내는 보고서를 통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항공법까지 완벽하게 잡혀있을 줄은 몰랐다.

“저는 용사입니다! 절대로 수상한 자가 아닌...”

“중앙대륙에서 현상수배 중인 용사는 무장을 해제하고 착륙하라. 거부할 시에는 위협으로 간주하고 발포하겠다!”

“미친! 이놈이나 저놈이나...!”

용사 리헬의 천공선은 순식간에 포위됐다.

날개 달린 오토바이처럼 생긴 비행체를 탄 경찰들.

일개 경비병이나 기사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멋진 복장이었다.

심지어,

▷종족: 뱀파이어

▷레벨: 783

▷직업: 창기병(승마=창술↑)

▷스킬: 승마S 창술A 시력A

비행B 혈기B…

▷상태: 경계

경찰의 절반 이상이 인간이 아닌 흡혈귀. 엑스트라치고는 상당한 능력치를 보유하고 있었다.

“용사님. 이제 어쩌죠?”

라누벨의 질문에 용사 리헬이 표정을 굳히며 답했다.

“...세계를 구하려는 용사를 적대하는 자들은 악(惡)입니다. 천공선 오르가타! 전투모드로 전환!”

지잉, 지잉, 지잉.

용사의 명령을 받은 천공선이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수십 개의 포문이 열렸다. 그리고 포수도 없이 자동으로 주위의 경찰들을 조준하고 발포했다.

펑! 펑! 펑! 펑!

서대륙의 경찰들도 놀라웠지만, 용사 리헬의 ‘천공선 오르가타’의 전투력은 더욱 놀라웠다.

단 몇 초 만에 포위망을 분쇄해버렸다.

“갖고 싶은걸.”

변신, 합체 슈퍼로봇이 남자의 로망이라면, 애마는 당연히 장만해야 할 필수품이 아니겠는가?

지금까지는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와 설녀의 깃털로 해결해왔지만, 천공선은 내 소유욕을 자극했다.

그렇다면,

“용사님. 정말 굉장한- 꺄읔?!”

천공선의 전투력에 감탄하며 용사에게 아부하는 용병A.

그의 얄팍한 경추(頸椎) 6번과 7번 사이를 붙잡은 행인A는 그를 힘껏 갑판 밖으로 던졌다.

다음은?

“와아~”

천공선 오르가타의 갑판 난간에 상체를 기댄 아슬아슬한 자세로 공중전을 관람하는 라누벨.

그녀는 용병A가 추락한 사실을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살금살금 라누벨의 등 뒤로 접근했다.

그리고는 귀여운 척하는 그녀의 엉덩이를 힘껏 걷어찼다.

“꺄아앗?!”

상체가 앞으로 기운 라누벨은 난간 밖으로 추락했다.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걸♪”

마법사인 라누벨이 늦지 않게 비행마법을 썼다면 최소한 추락사하진 않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년을 확실하게 죽여두고 싶다. 그러나 용사 리헬의 모험이 쉬워지는 건 원치 않았기에 꾹 참았다.

물론, 한동안은 엉덩뼈가 아파서 제대로 걷지 못하리라.

“헉! 너는-!”

비열한 수단으로 모험을 진행하는 후배가 나를 발견했다.

경악하는 그의 눈빛이 내게 묻고 있었다.

어떻게 침입했느냐고.

“정의로운 마음으로♬”

“...뭐?”

나는 대답해주는 대신에 가볍게 발을 굴렀다.

우웅-

몰랑한 파동이 천공선 오르가타 전체를 감쌌다.

내 목적은...

[경고! 경고! 침입자 발견!]

[해킹을 감지했...]

[승선을 환영합니다, 함장님.]

[전투모드를 해제합니다.]

[향로를 설정해주십시오.]

용사 리헬의 애마를 해킹해서 소유권을 내게 이전했다.

리헬이 또 죽어서 회귀하면 천공선 오르가타가 다시 생기겠지만, 적어도 이번 회차에선 쓸 수 없다.

“미안하지만, 내 애마에서 당장 내려줘야겠어.”

“누구 마음대로...!”

격분한 용사 리헬이 허리에 찬 칼을 뽑으며 돌진해왔다.

신성한 기운을 머금은 칼날이 환하게 빛났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린애 같군.”

가능성이 무한한 인간 혼혈이면 좀 나은 줄 알았는데, 전투방식이 닭대가리들이랑 똑같았다.

신성 스킬의 일반속성 면역과 반사보호막에 너무 의존한다.

방어를 도외시한 전투법.

이 애송이에게 ‘MAX급 용사의 전투법’을 약간만 보여주기로 했다.

시작은 기세싸움.

표정과 눈빛이 매우 중요하다.

번뜩!

평상시의 나는 판타지 원주민들에게 신뢰를 주는 ‘정의로운 용사의 미소’를 짓는다.

그래서 만만하게 본 모양인데...

“헉!”

휘청!

두 다리에 힘이 풀린 용사 리헬은 균형을 잃고 천공선 갑판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바라봤을 뿐.

“조금 전의 기세는 어디 갔어?”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떠는 후배를 내려다봤다.

녀석은 횡설수설했다.

“너, 너는 대체 누구냐? 어떻게 인간이 그만한 악의(惡意)를 품고 멀쩡할 수 있지? 어떻게 영혼이 미치지 않... 설마! 미쳤는데 평범한 척하는 건가?! 그런 터무니없는...!”

“어이가 없네.”

기세싸움에서 패배한 겁쟁이의 정당화에 헛웃음밖에 안 나왔다.

그리고 인간?

나는 ‘두 번째 마왕’이다.

용사 시절의 정의로운 마음씨를 잃지 않은 특이한 마왕.

“가, 가까이 오지 마!”

“뭐래? 나는 조금 전부터 가만히 서 있다만?”

“오지 마! 오지 마!”

하지만 용사 리헬은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뒷걸음친 후배는 곧 난간에 부딪혔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휙.

자살하듯 천공선 오르가타에서 뛰어내렸다.

“...은근히 기분 나쁘네.”

눈가에 살짝 힘을 줬을 뿐인데 저리 겁먹다니?

교장이 귀여운 손자랍시고 너무 곱게 키운 것 같다.

마왕이 아닌 선배로서, 일상생활이 가능할지 걱정스러웠다.

“흠흠.”

그때, 내 등 뒤에서 중후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공격하려는 의사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인기척을 안 내고 기습했을 테니까.

아니, 그전에 내가 먼저 척추를 어루만져줬을 것이다.

나는 몸을 돌렸다.

상대는 아름다운 흡혈귀 숙녀랑 정답게 팔짱을 낀 인간 수컷이었다.

둘 다 아는 얼굴.

하지만 정체를 숨기는 중이기에 시치미 뚝 떼며, 정의로운 용사의 미소를 지은 채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중앙대륙에서 넘어온 귀족A입니다. 요정공주를 살해한 현상수배범을 급히 추적하느라 신분증을 지참하지 못한 점, 너그럽게 이해해주십시오.”

그러자 둘이 마주 미소지었다.

이해해준 모양이군.

“허허! 친절한 용사님. 정체를 완벽하게 감추셔도 소용 없습니다. 어느새 2000년이나 지나버렸지만, 이 세계에서 그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존재는 당신밖에 없으니까요.”

“용사님 덕분에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요. 그렇지요, 섹스피어?”

“물론이오. 흠흠!”

서대륙 최강의 대마법사.

서대륙 최고의 미녀.

음양의 조화와 균형이 너무나 완벽해서 흠잡을 구석이 없었다.

하여간 난감하게 됐다.

“이거 참... 미소가 너무 멋져도 문제로군.”

내가 2000년 전에 중매를 서줬던 부부가 반갑게 환대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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