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295화 (295/430)

 295화

[19회차] 몰랑폰

“자다가도 알람이 울면 벌떡 일어서서 기도부터 드려야 할 것 같은 이름이로군...”

나는 마왕의 고유권능인 ‘공간’으로 생성한 ‘마신의 창고’에 몰랑폰을 넣었다.

이 힘은 페스티벌 임무보상 중 하나인 스킬 ‘창고’랑 다르다.

부피, 무게 제한이 없으며, 스킬이 아닌 권능이기에 육체를 바꾼다고 해서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러면 어떤 물건이든 무한정 넣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지만, 유감스럽게도 ‘회귀’는 막을 수 없다.

회귀는 교장의 권능인 ‘시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판타지아 차원의 물건은 회귀하는 즉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 그렇기에 마신의 창고에 아무리 많이 넣어두든 의미가 없다.

이건 제작품도 마찬가지다.

재료를 판타지아 차원의 어딘가에서 가져왔기에 이 또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얘기는 간단해진다.

판타지아 차원의 물건도, 재료도 아니면 된다는 뜻이니까.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원주민들은 불가능하지만, 천사들의 협찬을 받은 내게는 어렵지 않다.

“비겁한 남편. 늦지 않게 왔네?”

“내 몸은 소중하니까.”

마왕의 화신으로 써먹던 귀족 청년의 몸은 천공선 오르가타에 놔두고, 정신만 더미로 옮겨왔다.

힘이 샘솟는다.

본체를 분할하여 생성된 더미들답게 내 영혼을 가장 많이 담을 수 있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화신은 아무리 용써도 화신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새삼 재확인했다.

뿅!

나는 마신의 창고에서 몰랑폰을 꺼냈다. 당연히 잘 옮겨졌으리라고 확신하지만, 그래도 확인해봐서 손해볼 건 없으니까.

“마약마왕! 새로운 장난감이냐?”

내 머리 위에서 킁킁거리는 것 외의 취미가 생긴 최초의 정령이 짙은 흥미를 보였다.

나는 몰랑폰을 도로 창고에 넣으며 답했다.

“내 전용으로 만든 스마트폰. 굉장히 다양한 기능이 들어있지.”

“오오! 보여줘라!”

“나중에. 지금은 무례한 후배를 참교육해줄 차례거든.”

종결자 섹스피어에게 당하고, 라누벨의 희생(?)으로 탈출한 용사 리헬이 3년 만에 돌아왔다.

잡것들을 무더기로 데리고.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토벌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망룡왕 뇌비우스’와 ‘망령왕 섹스피어’를 포기하고 곧장 마왕을 치겠다는 심보.

내 업적을 빼앗는다는 야심도 포기한 것 같았다.

▶빼꼼: 업적 하나를 빼앗기셨어요.

뭐?! 빼앗겼다고?! 교생 아가씨! 그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야?

▶설명: 판타지아 대륙에서 가장 현상금이 높은 인물이요. 유감스럽게도 작년에 추월당하셨어요.

...내게 그런 업적도 있었구나.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정의로운 MAX급 용사님을 사냥하겠다는 정신 나간 현상금 사냥꾼을 여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너만 모르는 거야.”

“나만? 왜?”

“현상금 사냥꾼들이 자기소개할 시간도 안 줬잖아. 표정이 기분 나쁘다면서 목부터 두둑.”

“흐음. 기억에 없는데.”

중요하지 않아서 잊은 모양이다.

아무튼, 훌륭한 선배님의 업적을 빼앗는 데 성공한 후배 리헬이 부지런히 달려오고 있었다.

빨리 와. 이자가 복리로 쌓이고 있다구?

전설의 군주: 야스호

배신의 군주: 한죠

죽음의 군주: 실바라스

강철의 군주: 2D

이 방어선은 배치한 이래에 4년 동안 뚫린 적이 없었다.

성질 급한 초등학생들, 중2병에 빠진 중학생들은 평균 1시간 안에 정리돼왔다.

그랬는데...

‘여기는 배신의 군주 한죠. 1층 정원을 돌파당했습니다. 안개 마법이 짙어서 추적이 어렵습니다. 여기서 대기할게요.’

동족을 배신하고 마왕님에게 충성을 맹세한 천사 한죠.

빠르게 비행하며 원거리에서 용사의 동료들을 저격하는 역할인데, 깔끔히 무시당했다.

용사 리헬은 은신술이 뛰어난 암살자 동료 셋에게 안개 마법이 깃든 스크롤을 잔뜩 줬다.

암살왕, 암흑기사, 도적왕.

내 1회차 때부터 숨는 것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던 녀석들이었다.

리헬은 이 셋을 희생양처럼 남겨두고 1층 정원을 돌파했다.

‘2층 대식당을 지키는 전설의 군주 야스호가 보고드립니다. 바람처럼 돌파당했습니다. 스킬 신성의 반사보호막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쪽은 예견된 결과였다.

검술은 물리공격.

스킬 신성으로 보호받는 리헬이 야스호를 상대하는 사이, 동료들이 우르르 다음 층으로 올라갔다.

마지막에 리헬까지.

전설의 군주 야스호에게 성검을 주지 않으면 앞으로도 같은 공략법에 계속 당하리라.

그의 아내는 어떨까?

‘주인님. 죽음의 군주 실바라스가 상황을 알려드릴게요. 3층 연회장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남편보다 몸 좋은 사내들에게 한눈팔다가 그만... 저, 정말 죄송합니다!’

유감스러운 요정왕 엘브하임의 여동생이란 것인가?

탄탄한 근육질의 남자만 보면 넋을 놔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내 옆에서 보좌할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독립해서 비실비실한 남편이랑 함께하고부터 다시 시작됐다.

그녀의 앞을 가로막는 사내들은 나도 아는 인물들이었다.

기사왕, 용병왕.

내 1회차의 동료 중에서 가장 방어력이 뛰어났던 기사왕은 두말할 것 없고, 산전수전 다 겪은 용병왕도 근육질이 장난 없다.

여기에 검왕 알렉스까지 끼면 완벽한 삼총사가 되겠지만, 그는 손 없는 아내랑 알콩달콩 잘살고 있다.

“애증으로 가득한 나의 친구 보리스도 얼마 못 버티겠군.”

보리스가 담당하고 있는 4층 전시실이 뚫리면 바로 5층. 그 위층부터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그대로 여기까지 달려올 터.

나는 MAX급 마왕다운 퍼포먼스 준비를 서둘렀다.

“아얏! 왜?”

“후배가 오고 있잖아. 내 무릎에 그 비겁한 엉덩이를 비비는 채로 손님을 맞이할 셈이야?”

“후후! 비겁한 남편. 맨날 문화시민이라고 우쭐대더니 촌스럽네.”

“뭣-?!”

“요즘은 이게 대세야. 마왕이 미녀를 무릎 위에 앉힌 채 용사 일행을 맞이하는 게 정석이라고. 봐.”

비겁한 마누라가 내게 스마트폰 액정을 보여줬다.

만화책이었는데, 정말로 양아치처럼 생긴 마왕이 무릎에 전라의 미소녀를 앉힌 채 용사랑 대치하고 있었다.

“...이 만화, 19금 아니야?”

“15금이야.”

“말도 안 돼! 어떻게 이게 15금일 수 있지?”

“이 만화의 작가 후기를 보면, 자기 만화가 전체연령가가 아닌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던데?”

“양심 없는 새끼네.”

하여간 요즘은 이런 마왕이 대세란 거군?

마음에 안 들지만, 유행에 뒤처진 촌스러운 F급 마왕이란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저는 숨어있을게요.”

내가 시키기도 전에 그림자A가 잽싸게 모습을 감췄다.

착각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그 유감스러운 요정왕의 마누라를 내 탄탄한 무릎 위에 앉힐 마음은 추호도 없다.

“조카야, 조카야~”

“안 추해요.”

“그게 아니라, 행복해 보인다. 얼굴에 미소가 가득해.”

“거, 거짓말하지 마세요! 도도한 미녀의 무표정이었거든요!”

“히히히!”

“웃지 마세요.”

“왜? 나도 조카처럼 무표정 중인데. 우히히히!”

“이모님...!”

어떻게 싸워야 마왕다운지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마지막 관문이 뚫리길 기다렸다.

처음 디자인은 분명히 검은색과 흰색이 환상의 조화를 이룬 메이드 복장이었는데, 멋대로 짧은 핫팬츠를 입은 안드로이드 보리스.

전직 왕자였던 이 친구는 쓸데없이 크고 부드럽게 제작된 가슴 아래로 팔짱을 낀 채 상대방의 대화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강철의 군주 2D는 과학과 마법을 결합한 최신형 안드로이드야. 능력치는 높지 않지만, 직업이 용자란 점을 명심해. 우리는 1레벨로 떨어진 상태에서 본연의 힘으로 마지막 군주를 쓰러트릴 거야.’

‘주인님. 질문이 있어요.’

‘해봐, 아쿠아.’

‘이번에도 주인님의 혜안으로 무시하고 지나가면 안 되나요?’

‘이번만큼은 무리야.’

‘어째서죠?’

‘내가 아는 정보에 따르면, 저 안드로이드는 약점이 없어. 압도적인 숫자와 전력으로 압살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지.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이때를 위해서 준비해둔 비장의 수가 있으니까!’

아이고. 보리스, 이 친구야.

네 앞에서 주절주절 브리핑하도록 놔두면 어떡하니!

흑화 선배를 닮아서 맹한 구석이 있는 보리스의 방식이 답답했지만, 이 또한 업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가를 치르겠지.

어이없는 패배란 굴욕을 통해서!

쿵! 쿵! 쿵!

마왕의 성에 투신의 황금색 골렘이 소환됐다.

4차 교육과정이랑 함께 사라진 줄 알았던 슈퍼로봇!

판타지아 북대륙을 전쟁터로 만들었던 공학자 전신(戰神)의 전용 골렘이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모델의 골렘이 2기나 더 있었다.

검은색과 하얀색.

공통으로 왼쪽 어깨의 견장에 ‘눈동자가 그려진 탑’ 모양의 문장이 박혀 있었다.

어느 가문은 아니지만, 저건 ‘현자의 탑’을 뜻하는 문장이다.

즉, 현자가 만들었다는 뜻.

“...이 빌어먹을 현자 새끼. 살짝 열 받게 하네.”

내가 예전에 슈퍼로봇을 주문했을 때는 호리호리한 안드로이드를 만들어주더니, 용사 리헬의 주문은 제대로 받았다.

두꺼운 팔다리가 인상적인 두 골렘은 내 수집욕마저 자극했다.

온몸에 튼튼한 갑옷을 둘렀으며, 투구를 쓴 머리의 두 눈에선 시퍼런 안광이 번뜩였다.

대박! 대박이다! 초대박!

저렇게 잘 만들어도 되는 거야?!

쿠구구구-

하지만 낙관할 상황이 아니었다.

용사 리헬을 따르는 세 골렘이 움직일 때마다 마왕의 성이 크게 흔들렸다.

“이거, 별장이 안 무너지려나 모르겠네...”

내 중얼거림을 들은 쏘시아가 우쭐대기 시작했다.

“비겁한 남편. 이 건물을 누가 설계했다고 생각해? 걱정하지 마. 겉보기랑 달리 튼튼하니까.”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겠지.”

지난 3년 동안 용사 리헬이 준비를 참 많이 해놨다.

그러니 여기까지 별 피해 없이 올라올 수 있었던 거겠지만.

하지만 그를 인정하진 않았다.

용사 리헬은 마왕의 성에 처음 와보는 상태다.

그런데 4대 군주의 공략법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

누군가 그에게 정보를 제공해준 게 틀림없다.

그 누군가는 생각해볼 것도 없다.

교직원 일당.

정의로운 MAX급 용사였던 내 인성을 깎아내릴 때부터 예상했지만, 이 교사들은 양심이 없는 것 같다.

‘골렘에는 골렘이란 것인가!’

‘정말 대단해요, 용사님!’

‘존경합니다, 주군.’

‘주인님의 능력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잡것들이 용사 리헬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나를 굉장히 불편하게 하는 전개였지만, 몰랑폰으로 어머니의 메시지에 답하느라 정신없다.

⤷어머니: 아들. 이젠 문자 답변이 빠르네. (오전 7:42)

⤷나: 이번에 스마트폰에서 몰랑폰으로 바꿨거든요. (오전 7:43)

차원을 꿰뚫고 광통신마저 뛰어넘는 획기적인 발명품이다.

⤷어머니: 몰랑폰? 판타지 세계의 스마트폰이야? (오전 7:44)

⤷나: 비슷하지만, 훨씬 굉장한 겁니다. 내장된 기능도 무척 다양해요. (오전 7:45)

⤷어머니: 그러면 로봇으로 변신할 수도 있어? (오전 7:46)

⤷나: 로봇이요? (오전 7:47)

갑자기 웬 골렘 타령이시지?

⤷어머니: 별거 아니네. 요즘 스마트폰은 로봇으로 변신하는 게 기본옵션이야. (오전 7:48)

⤷나: 스마트폰에 그런 기능이 왜 필요해요? (오전 7:49)

밟으면 부서질 초소형 골렘을 만들어서 어디에 쓰려고?

영화관에서 영화 볼 때 입에 팝콘을 대신 넣어주나?

⤷어머니: 아들. 정말 미안해. (오전 7:50)

⤷나: ? (오전 7:51)

⤷어머니: 지금 시무룩하고 있지? 판타지 세계에서 최신형 폰으로 바꿨다고 기분 좋았을 텐데. 엄마가 정말 미안해. (오전 7:52)

⤷나: 괜찮습니다. (오전 7:53)

⤷어머니: 걱정하지 마. 이 엄마는 아들이 촌스러워도 사랑해. ^^ (오전 7:54)

⤷나: 저도 사랑해요. 집에 손님이 찾아왔네요.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또 연락드릴게요. (오전 7:55)

⤷어머니: 내일 오전 10시. 유치원 보내느라 바빠. (오전 7:56)

⤷나: 네. (오전 7:57)

...오늘도 어머니는 사랑으로 아들의 방어력을 키워주시는군.

“저기, 남편. 괜찮아? 울 것 같은 표정이야.”

“아주 괜찮아. 문제없어.”

나는 용사와 잡것들이 어서 빨리 올라오길 기다렸다.

제군들! 내 사랑을 받아줘!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