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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급 관심용사-296화 (296/430)

 296화

[20회차] 공명정대하게!

세상이 항상 효율적으로 굴러가는 건 아니다.

실수로 어긋날 때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비효율을 선택하기도 한다.

슈퍼로봇이 아주 좋은 예다.

팔다리를 두껍게 만들면 관절이 더욱 단단해지고, 그 덕분에 최대 출력도 올라간다.

하지만 눈앞의 광경을 보라.

쿠구구구- 콰앙!

팔다리가 가느다란 여성형 안드로이드가 덩치 큰 슈퍼로봇들을 일방적으로 쳐부수고 있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

“어째서 골렘들이 보리스보다 약한 거지...?”

고양이가 호랑이의 귀싸대기를 후려쳐서 쓰러트리는 셈!

보리스가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비겁한 마법소녀들처럼 반칙(마법)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니다.

조건은 동등하다.

모두가 공평하게 1레벨.

판타지 능력치가 봉인된 채 맨몸으로 싸우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니, 여기가 원리원칙대로 굴러가는 현실이라면 보리스가 패배해야 정상 아닐까?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

보리스 혼자서 리헬 파티를 초토화하고 있었다.

‘커억-?!’

‘으아아악~?!’

‘꺅?!’

그 가느다란 몸으로 우람한 덩치들을 때려눕히고 있었다.

이 와중에 여성은 안 죽이는 이상한 여유만 안 부렸다면, 훨씬 빨리 정리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시간문제.

보리스의 독무대였다.

콰직!

쿵!

빠각-!

용사 리헬이 비장의 수로 내보낸 초강력 골렘 3기는 진즉 고철로 변해서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치열한 접전은커녕 별다른 저항조차 못 했다.

일격(一擊)에 팔다리의 관절이 수수깡처럼 부러지고, 이격(二擊)에 골렘의 코어가 파괴됐다.

전투력 차이가 너무 심한데?

“비겁한 남편. 당연한 거야.”

“저게?”

“응. 아주 당연해. 생각해봐. 로맨티넘 젓가락이랑 쇠파이프가 충돌하면 뭐가 부서질까?”

“아!”

쏘시아가 제시한 예시가 굉장히 직관적이라서 이해가 잘 됐다.

로맨티넘 vs 강철

사랑의 힘을 받을수록 강해지는 전설의 금속 로맨티넘.

반면에 상대는 어디서나 흔하게 구할 수 있는 흔한 금속인 강철.

비교 자체가 되지 않았다.

골렘의 팔다리 단면적 두께나 물리법칙을 논하는 게 무의미했다.

‘2D를 막아! 막으라고!’

‘용사님! 2D가 너무 강해요!’

‘2D가 이쪽으로 온다!’

‘함께 2D를 협공- 크악?!’

용사 리헬이 3년 동안 모은 잡것들은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하고 30분 만에 정리됐다.

내 차례는 오지 않았다.

‘이놈들! 강철의 군주 2D의 전투력을 잘못 알려주- 켁켁?!’

허위정보를 전달한 누군가를 욕하던 용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애송이. 똑똑히 들어둬라. 내 이름은 2D가 아니라 보리스다. 안드로메다 3항성을 통치하던 암흑의 왕자. 그게 바로 나다.’

‘이 자식! 내가 누군 줄- 켁켁!’

‘회귀하면 잊을 패배자의 이름 따위 관심 없다.’

‘당장 이 더러운 손을 놓으-’

우드득.

보리스가 바둥대는 용사 리헬에게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

“오! 맙소사. 보리스, 이 친구야! 어떻게 그런 짓을...”

목디스크의 핵심인 경추(頸椎) 6번과 7번 사이가 아니었다.

보리스는 용사 리헬의 무의미한 4번과 5번 사이를 부러트렸다.

즉, 저건 이런 의미다.

너는 목디스크에 걸릴 자격도 없다!

전직 왕자라는 년이 까마득하게 어린 애송이에게 회귀해도 씻을 수 없는 수치를 안겨준 셈!

악마보다 사악하다.

“...저게 수치면 나는 너랑 잘 때마다 당했다는 소리잖아.”

“어허!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 마지막으로 잔 게 3년 전이라구?”

“부정하진 않네.”

“정의로운 MAX급 마왕님 말씀을 끝까지 들어. 골반이랑 궁둥뼈밖에 만지지 않았거든?”

“그게 그 말이지!”

“달라. 몰랑과 말랑만큼이나.”

몰랑?

오! 마스터 몰랑! 비겁한 가슴골 사이에서 잘 나오셨습니다!

몰랑과 말랑의 차이를 전혀 이해 못 하는 이 우매한 악마에게 한 말씀 해주십시오.

몰랑? 몰라아앙~

비겁한 마누라. 잘 들었지?

“...전혀. 몰랑이는 평소처럼 몰랑거렸을 뿐인데.”

“그게 핵심이야.”

“......”

“쯧쯧. 언젠가 깨닫게 될 거야.”

용사(학생) 리헬의 경추가 추하게 부러지면서 판타지아 세계(교실)도 붕괴하기 시작했다.

회귀는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귀여운 척하며 도망친 라누벨부터 파괴된 마왕의 성까지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갔다.

물론,

업보E→업보D

바뀐 것도 있었다.

교장이 규칙을 건드리면서 예전처럼 스킬이 초기화되진 않았지만, 업보 등급이 올라갔다.

▷종류: 스킬

▷명칭: 업보

▷등급: D

▷C: 회귀할 때마다 신뢰가 감소한다.

▷D: 회귀할 때마다 호감이 감소한다.

▷E: 회귀할 때마다 명성이 감소한다.

▷F: 회귀할 때마다 평판이 감소한다

호감, 명성, 평판.

감소하는 이 셋은 전투력에 영향을 안 준다.

하지만 용사의 모험에서 빼놓을 수 없는 판타지아 원주민들의 협조를 어렵게 바꿔놓는다.

그리고 나도 있다.

“으하하하! 네가 용사인가! 그 빈약한 척추로 마왕 파르마몬에게 대적하겠다고? 참으로 가소롭구나! 그리고 귀여운 척하는 라누벨. 네년의 그 시건방진 골반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리라!”

게임 프롤로그처럼 등장하는 깜짝 이벤트 ‘마왕의 화신’이 용사 리헬에게 돌진했다.

“또냐...!”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말하면 섭섭하지.

앞으로 계속될 이벤트니까!

특히, 보리스 탓에 내 차례가 취소돼서 매우 아쉬웠다.

비열한 후배야! 내 사랑의 복리를 받아줘!

“하하하!”

“이번에는 당하지- 꾸엑?!”

지난 3년 동안 나도 놀고만 있지 않았다구?

변변찮은 귀족 청년의 몸에 익숙해지면서 더욱 효율적으로 조종할 수 있게 됐다.

리헬의 아래턱을 무릎으로 쳐올리면서 몸을 허공에 띄운 후, 친애하는 전우 뇌비우스에게 맞으면서 배운 콤보를 시전했다.

몰랑! 몰랑-! 몰라아앙!

타이밍과 리듬이 매우 중요하다.

퍽! 빡-! 퍼버벅!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기절이 풀리지 않도록 턱주가리를 갈긴 후, 꼬리뼈를 발끝으로 쳐올려서 다시 띄우는 요령이 필요하다.

10 Combo! Nice!

20 Combo! Good!

30 Combo! Excellent!

40 Combo! Perfect!

...

몰랑폰은 고향별 지구의 스마트폰에 절대 꿀리지 않는다.

나는 판타지 촌놈이 아니다!

내일 오전 10시에 어머니께 꼭 증명하리라!

“백작가의 망나니가 결국...”

“마왕 파르마몬이 정말로 부활했단 말인가...”

“저 망나니가 기어코...”

“백작이 후계자 교육을 참...”

“...구경만 하실 건가요? 저러다 용사가 죽겠어요.”

깜짝 이벤트에 놀란 귀족들이 한마디씩 하고, 로열기사들이 일제히 칼을 뽑고 달려들었다.

푹! 푸욱! 푹! 푹-!

용사 리헬의 몸을 시원하게 두들기던 마왕의 화신이 쓰러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버티지 못하고 숨이 끊어졌다.

운이 안 좋았군?

상황이 종료됐다고 느낀 걸까.

로열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옥좌에 앉아있던 만두 국왕이 턱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신성한 짐의 영토에서 어찌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용사여. 음? 용사여. 듣고 있는가?’

‘크윽... 콜록콜록! 네, 폐하.’

‘이번 사태는 짐의 신하보다 약한 용사의 불찰이다.’

‘네... 네?! 콜록콜록!’

피떡이 된 용사 리헬은 만두 국왕의 뻔뻔함에 경악했다.

‘용사가 일개 귀족보다 약하다는 사실을 소문내지 않겠노라. 단, 그 대가로 본국을 위해 1년 동안 봉사할 것을 명한다.’

‘미친...!’

‘용사여. 짐에게 한 말인가?’

‘아, 아닙니다.’

국왕 모욕죄로 더러운 지하감옥에 10년쯤 갇히기는 싫었던 용사 리헬은 바짝 엎드렸다.

신에게 선택받은 용사의 비굴한 태도가 마음에 든 걸까?

만두 국왕의 표정이 풀렸다.

‘하지만 지금처럼 용사가 약하다면 봉사도 제대로 못 할 터. 검성(劍星) 알렉스 대공에게 수련받을 수 있도록 추천서를 써주겠노라.’

‘감사합니다, 폐하. 콜록콜록!’

‘퇴실해도 좋다.’

‘네... 으득.’

용사 리헬은 어금니를 깨문 채 울분을 삭이며 알현실을 빠져나왔다.

라누벨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런 용사의 뒤통수를 쳐다봤다.

벌써 탈주할지 말지, 주판을 굴리는 게 뻔히 보였다.

‘용사님! 일단 치료부터 하셔야 할 것 같아요.’

탈주하지 않고 좀 더 지켜보기로 한 라누벨이 귀여운 척했다.

‘괜찮습니다, 콜록콜록!’

‘이러다가 후유증이 생기면 1년 뒤에 시작될 모험에 차질이 생겨요.’

‘1년...’

‘나쁜 제안은 아니라고 라누벨은 생각해요. 검성 알렉스에게 1년 동안 지도받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유부남 알렉스가 이미 마왕의 편이란 사실을 아는 리헬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또한 잠깐뿐.

용사 리헬이 퉁퉁 부은 입술의 끝을 올리며 미소 지었다.

‘라누벨 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헤헷.’

‘추한 꼴을 보이긴 했지만, 그 마왕의 화신이 확실하게 죽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습니다.’

이 후배는 MAX 선배가 19회차 때처럼 난입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것 같았다.

굉장히 긍정적인 사고인걸?

틀린 말도 아니고.

“비겁한 남편이 웬일이래? 또 비겁한 편법으로 후배 용사를 괴롭힐 줄 알았는데.”

“내가 뭐하러?”

“업보가 쌓이긴 했지만, 리엘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전보다 더 준비해서 침공해올 거야. 어? 봐! 벌써 시작됐잖아.”

쏘시아의 지적대로다.

알현실을 나온 용사 리헬은 기사가 안내해주는 왕궁의 싸구려 숙소로 이동하지 않았다.

곧바로 왕궁 정원으로 달려간 후배가 힘차게 외쳤다.

‘천공선 오르가타~!’

뿅!

내게 제어권을 빼앗겼던 교통수단을 소환했다.

회귀하면서 다시 소유권을 되찾자마자 써먹는 것이다.

딱히 나무랄 생각은 없었다.

나도 블랙박스를 활용해서 시작부터 성검과 성녀를 소환했던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권장하진 않는다.

장인어른은 게을러서 시간이 흘러도 발전이 없었지만, 이 공명정대한 MAX급 마왕님은 다르니까!

싸움은 공평해야 하는 법이다.

“쏘시아. 이 남편님이 얼마나 글로벌하게 사는지 보여줄게.”

“글로벌? 내가 아는 그 글로벌이 맞아?”

“맞아.”

“또 무슨 편법을...”

“어허! 이건 편법이 아니라 진보라고 하는 거야.”

뿅!

쏘시아에게 핀잔을 준 후, 나는 ‘마신의 창고’에서 몰랑폰1을 꺼냈다.

삐--

그리고 곧바로 몰랑한 버튼을 눌러서 데이터를 전송했다.

“비겁한 남편. 스마트폰은커녕 핸드폰조차 보급되지 않은 판타지 세계에서 어디에 연락하는 거야?”

쏘시아답지 않게 아주 좋은 질문이다.

“몰랑폰 제작사에.”

용사 리헬이 앞으로 몇 번을 회귀하며 얼마나 성장하든 상관없다.

판타지아 세계는 그 이상으로 발전할 테니까.

[데이터 전송... 완료]

[압축 해제 중... 완료]

[송신 확인]

[수신자: 섹스피어]

‘허허허! 미래의 저에게 연락받는다는 신선한 경험을 다 해보는군요. 미래의 제가 상황설명까지 완벽하게 작성해놔서 이것밖에 드릴 말씀이 없군요.’

판타지아 서대륙의 지배자이자 진리가 함께하는 종결자 섹스피어.

그는 나랑 ‘처음’ 대화하는데도 전혀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았다.

과연...

또 다른 자신이 헤매지 않도록 몰랑폰에 오리엔테이션까지 꼼꼼히 준비해둔 모양이다.

덕분에 잡다한 설명을 자연스럽게 생략할 수 있었다.

“해봐.”

‘희망의 마왕이시여. 이 세계는 당신의 진리에 복종할 것입니다.’

진리라...?

나는 그런 두루뭉술한 철학적인 주제에 관심 없다.

그저, 위대한 마스터 몰랑의 가르침을 실천할 따름이다.

그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몰랑하시니...!

제자이자 첫 번째 사도인 나도 공명정대한 MAX급 마왕이 됐다.

그러니,

용사만 회귀하며 무한정 강해지도록 놔두지 않겠다.

싸움은 공평해야지 않겠어?

“섹스피어. 천공선 오르가타의 제어권을 빼앗아서 내게 넘기도록.”

‘5초만 기다려주십시오.’

비열한 후배야!

네 부모님이 초등학교 열심히 다니라고 사준 자가용은 압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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