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299화 (299/430)

 299화

[20회차] 공간 vs 시간

팟! 팟! 팟!

게임 캐릭터의 옷을 갈아입히듯 눈 깜짝할 사이에 노출 80%의 복장으로 바꾼 찰떡.

성스러움이 물씬 풍겼다.

“...이렇게 아름다운 미녀를 찰떡이라고 부르다니요? 당신의 생각을 들어보면 묘하게 성희롱당하는 기분입니다.”

“읽지 마.”

그리고 고결한 척하지 마.

교장이란 자가 자기네 학교 학생에게 새끼라니?

인성이 의심스럽다.

“무,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군요. 저는 판타지아 교육장을 대표하는 다정한 교장입니다. 숙녀의 부끄러운 곳을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파렴치한 학생에게 새끼라고 욕한 적이 없답니다. 저는 이해심 넘치고 자비로운 교장이니까요.”

“할머니...”

“리엘. 너, 이 새끼. 얘기 끝날 때까지 아가리 물고 있어.”

“......”

할머니를 애타게 찾던 용사 리헬이 입을 꾹 다물었다.

교장이 생긋 미소 지었다.

“호호! 학생에게는 다정하고 가족에게는 엄격하답니다.”

“내가 가족 같은 모양이군.”

“이 미친 새끼가?! 그런 끔찍한 소리를 잘도- 어흠! 강한수 학생은 농담도 참 잘하네요. 호호호!”

지상에 착지한 천사는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입가의 미소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동안 나는 그녀를 관찰했다.

남의 육체에 들어가는 방식은 다양하니까.

빙의, 강림, 화신, 윤회, 환생, 강탈, 침투, 융합, 공존...

찰떡은 어디에 속할까?

“......”

내 짐작이 믿어지지 않아서 힐끔 뒤편을 돌아봤다.

교장을 잘 안다던 최초의 정령과 비겁한 마누라의 변명을 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변호할 시간을 주겠다.

“고모를 오랫동안 못 봤어. 내 나이가 노출될 것 같아서 정확한 시간은 말해줄 수 없지만.”

“나도 조카랑 마찬가지다.”

...설마 끝은 아니겠지?

얼른 더 말해봐.

“그, 그래. 가정의 풍요를 상징하는 여성은 풍성하게 생겨야 한다고 주장하던 고모가 저렇게 바뀔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뻔뻔한 친구야! 양심이 있다면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라! 우우!”

조카와 친구에게 맹비난을 들은 교장이 움찔했다.

하지만 물러서진 않았다.

“두 분, 까마득하게 먼 과거의 일로 저를 비난하시는 건가요? 그때는 잘 먹고 풍만한 여성이 미녀로 통했답니다. 지금의 몸매는 가난과 기근의 상징이었다고요.”

“고모. 변명이 추해요.”

“추하다!”

“다, 당시의 미인상이 고혈압, 고혈당, 백혈병, 불임증, 관절염, 호흡곤란, 담석증, 지방간, 무호흡증, 비염, 천식, 동맥경화, 뇌졸중, 부정맥, 협심증, 심근경색, 코골이, 고지혈 같은 합병증을 유도하지만 않았어도 여전히 미녀로 통했을 거예요!”

“저기, 고모? 말하고도 설득력 없는 거 아시죠?”

“친구야. 너무 안타까워서 눈물이 앞을 가린다.”

“으윽.”

조카와 친구에게 말싸움에서 밀린 교장은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녀의 손자인 용사 리헬은 입 다물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이 ‘이렇게 당황하는 할머니는 처음 봐!’라고 말해줬다.

이젠 나도 어떻게 된 건지 대충 알았다.

“찰떡이 더미였군.”

내심 아니길 은근히 바랐지만, 현실은 잔혹했다.

더미.

찰떡은 교장의 분신이었다.

최초의 정령과 두 번째 악마가 이 둘을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본판이 아무리 예뻐도 뼈가 파묻혀서 보이지 않으면 진면모를 알 수 없으니까.

▶당황: 살이 아니라 뼈인가요...?

제대로 들었어, 교생 아가씨!

자고로 미녀는 쇄골과 골반이 뚜렷하게 보여야 한다.

그나저나...

이제 어쩌면 좋지?

나의 찰떡이 정말로 교장의 더미인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대응책은 아무것도 없다.

그게 만약 가능했다면, 교장은 진즉에 마왕 페도나르의 정신을 무수히 나눠서 세뇌했을 것이다.

더미는 더미다.

“그렇습니다, 강한수 학생. 당신이 찰떡이라고 불렀던 성녀 히프리아는 저의 더미였답니다. 학생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저는 학교를 대표하는 교장으로서, 항상 여러분들 가까이에서 페스티벌을 진행해왔어요.”

“그런가...”

생각해보니 그랬다.

지구의 학교 운동회나 축제도 교장이나 교감이 나와서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라고 훈시한 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됐었다.

교생 아가씨는 알고 있었어?

▶부정: 아니요. 저는 일개 교생인걸요. 대선배님들 앞에서는 항상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 얼굴을 뵐 기회가 별로 없어요. 교장실 앞에 걸린 액자를 보긴 했지만, 먼 과거에 찍은 사진이셨던 것 같아요.

최근 사진을 안 걸어두고 옛날 모습에 미련이 많았던 모양이다.

“왜?”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 거다.

“핵심을 찌르는 아주 좋은 질문이에요, 강한수 학생. 조카와 친구처럼 비난하지 않고 의문을 품는 자세가 매우 훌륭합니다.”

“잡소리는 됐어.”

“이 새끼가 말하는- 호호! 아름다움은 상대적이랍니다. 희귀한 돌멩이를 보석으로 분류하듯이요. 그 공식은 미녀도 다르지 않아요. 즉, 희소할수록 아름답다는 평가와 가치를 받는답니다.”

“그랬군.”

교장이 과거의 모습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지구의 미인상은 식량을 구하기 힘들어서 살이 찌기 힘들었던 구시대로 갈수록 통통해진다.

판타지 세계도 비슷하다.

여기는 여성들의 평균 미모가 워낙 뛰어난 탓에 능력치도 미(美)의 분별기준에 포함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스킬이다.

매력, 고결, 기품, 신성, 청순, 유혹, 사교, 교태, 애교, 음란...

하지만 이건 인간 기준이다.

스킬마저 타고난 종족인 천사는 어떨까?

“이해하신 것 같군요.”

“아니.”

천사는 건강한 몸매 보정을 받기에 불필요한 살이 찌지 않는다.

그렇기에 최초의 천사는 고도비만을 ‘희소하기에 아름답다.’라고 정의한 것이리라.

정말 어이가 없다.

“저야말로 어이가 없답니다. 과거랑 몸매가 다르다는 이유로 조카와 친구에게 비난받고, 오롯이 존재하는 제가 최초의 천사임을 증명해야 할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이제 이야기가 대충 정리된 것 같군요. 강한수 학생. 제 손자인 리엘을 풀어주고 물러나세요.”

“못 하겠다면?”

그 더미 육체가 ‘찰떡’이라서 내가 해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적에게 절대 굽히지 않는다.

내가 1회차에서 사지 멀쩡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종족: 퍼스트 엔젤

▷레벨: 999+

▷직업: 여신(마왕→레벨↑)

▷스킬: 신성G 가속ZZZ 감속ZZZ

비행ZZ 무한Z…

▷상태: 축복, 가호, 신룡, 관리,

교장…

교장의 능력치 하나하나가 시스템만큼이나 사기적이다.

특히, 그녀의 직업인 ‘여신’은 마왕보다 상대적으로 레벨이 더 높아지는 보정을 받았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애초부터 판타지 능력치로 교장을 쓰러트릴 수 있다는 기대를 하지 않았으니까.

스르르르...

내 실력으로 죽여주마.

“강한수 학생. 잊으신 모양이군요. 저는 최초의 천사. 두 번째 마왕인 당신이 공간을 다루듯, 저는 시간을 관장한답니다.”

“알아.”

“아니요. 강한수 학생은 제대로 모르고 있어요. 당신이 쑥떡이라고 부르는 헤츨링의 성장이 너무 빠르다고 느낀 적 없나요?”

“......”

자주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쑥떡이 우량아라서 성장이 빠르다고 치부하며 얼렁뚱땅 넘어갔다.

그것만이 아니다.

용사 페스티벌이 아닌 판타지아 차원에 귀속된 쑥떡은 회귀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원래는 있을 수 없는 현상.

하지만 교장이 개입했다면 모든 게 설명된다.

“당신의 양아들인 쑥떡은...”

“미안하다.”

파앙-

내 손에 응축되어있던 마신의 힘이 교장의 몸을 힘껏 후려쳤다.

“꺅~?!”

허리가 수직으로 접힌 천사가 피를 울컥 토해냈다.

하지만 얕다.

순간적으로 내 공격의 속도를 늦춰서 충격을 완화한 것이리라.

그래도 나쁘지 않다.

기습은 성공적이었으니까.

“교장. 너도 선생이라면 앞으로는 생활기록부는 읽고 학생 앞에 나타나려무나.”

내게 인질극은 통하지 않는다.

1회차 때, 동료들의 가장 많은 사망원인이 이거였다.

나는 제멋대로 행동하다가 붙잡힌 동료를 과감히 포기했다.

대신, 복수는 확실하게.

용사인 내가 당연히 항복할 줄 알고 방비를 소홀히 한 적들을 잔인하게 몰살시켰다.

“그건 용사가 아닙니다!”

“그건 네 생각이고.”

내가 기습 직후에 교장이랑 휴전하고 한가롭게 대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우우웅-

시간이 대폭 느려진 탓이다.

움직임이 굼떠진 내 공격은 그녀의 몸에 닿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읔! 공간을 분리했군요.”

“도망치는 건 포기해. 내 허락 없이 이 공간을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하니까.”

영원한 숨바꼭질이 아니다.

우리가 갇혀있는 ‘마신의 창고’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면적이 점차 좁아진다.

교장의 방해와 간섭으로 느리긴 해도 조금씩 꾸준하게.

내가 ‘시간’을 모른다고?

매연으로 가득한 지구의 고등학생에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기본소양에 속한다.

대비는 확실하게 해뒀다.

“고모가 잡혔잖아...?”

“히히히! 나는 마약마왕이 해내 줄 알았다!”

비겁한 마누라와 유감스러운 정령이 각각 다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제대로 봤다.

이 싸움은 정의로운 MAX급 마왕님의 승리란 것을.

교장이 겁도 없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시점에 정해진 결과다.

“강한수 학생.”

“포기해.”

“인정하도록 할게요. 당신이 미숙하다고 멋대로 추측하고 방심한 저의 패배입니다.”

“협상은 없어.”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 않나요?”

“너를 완전히 제압한 후에 돌아가도 늦지 않아.”

“아니요. 늦을 겁니다.”

우우우웅-

최초의 천사가 공간에 간섭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을 빠르거나 느리게 비틀어서 생긴 균열로는 내 공간에 구멍이 생기진 않는다.

“교장. 아직도 탈출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품어?”

“물론입니다.”

“......”

“이대로 시간이 계속 흐른다면 언젠가 당신의 손에 붙잡히겠죠. 저는 싸움을 할 줄 모르니까요. 하지만 그날이 올 때까지 당신의 가족들이 살아있을까요?”

“말장난은 집어치워.”

마신의 창고는 외부랑 완벽하게 단절되어 있다.

통신도 당연히 불가능.

교장이 제삼자에게 지시해서 지구의 내 가족을 해코지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교장이 본교의 학생 가족을 해코지한다고요? 어떻게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는지 놀랍군요.”

“네 입으로 말했잖아.”

“그건 오해입니다. 저는 당신이 고향별로 돌아갈 때쯤이면, 수명이 유한한 가족들이 전부 늙어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드린 거랍니다.”

“하아?”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시간은 상대적이니까요. 제가 이렇게 설명하는 사이에 판타지아 차원은 30년이란 시간이 흘렀답니다. 당신의 고향별인 지구는 3년이 지났겠군요?”

“미친...!”

기만책으로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 흑화 선배에게 비슷한 수법으로 당해봤으니까.

마신의 창고에 갇힌 교장은 외부에 간섭할 수 없지만, 이 내부의 시간은 자유롭게 조작할 수 있다.

즉, 이론상으로는 가능했다.

“40년.”

“......”

“협상의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 천천히 가속하는 중이랍니다. 함께 파멸하는 길은 원치 않으니까요. 하지만 서두르시는 편이 좋아요. 방금 막 50년이 지났답니다. 지구는 5년이 흘렀겠군요?”

나는 두 눈을 살포시 감았다.

가족들을 떠올렸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다시 어머니... 아! 어머니의 사랑과 관심을 빼앗아간 동생도 있었군.

정리가 끝났다.

“계속해.”

“......”

“100년, 1000년, 10000년. 네 마음대로 해. 나는 절대 후환을 남겨두지 않는다. 소중한 것을 잃을지라도. 더 소중한 것을 잃기 싫으니까.”

“당신...”

“다음은 무슨 얘기를 할까? 아! 혹시, 척추 좋아해? 찰떡은 요추(腰椎) 4번과 5번 사이를 어루만지면 허리를 비틀면서 무척 좋아했거든. 지금 돌이켜보면 내 기분을 맞춰주려고 연기했던 것 같아. 본체인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이 새끼는 돌았어...!”

어허! 섭섭한 말씀. 나는 지극히 멀쩡하다.

단지,

“너희가 원하던 용사가 이런 거였잖아?”

“뭣-?”

“희생적인 용사.”

“......”

“안 그래?”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게 되더라도 악(惡)에 굴복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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