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300화 (300/430)

 300화

[20회차] 희생

“이 새끼가...! 학생 주제에 다 아는 것처럼 기어오르지 마...!”

팟! 팟! 팟!

격분한 교장이 신성한 빛을 무작위로 내게 쏘았다.

내 몸은 감속하고, 빛은 가속한 상태였기에 피하는 건 불가능.

하지만 방어는 할 수 있다.

퐁! 퐁! 퐁!

몰랑한 암흑물질에 가로막힌 빛은 흐지부지 삼켜졌다.

그래도 명색이 최초의 천사니 다른 공격수단도 분명 있겠지만, 내게 접근하지 않는 안전한 공격 중에서 고르다 보니 종류가 한정됐다.

“시시하군.”

하품이 나올 지경이다.

내 움직임이 굼떠지긴 했지만, 방어용 공간의 생성에는 시간이 걸리지 않은 덕분이다.

0초를 100배로 늘려도 0초!

교장의 공격들이 내 인지능력을 웃도는 속도라면 또 모르겠지만, 저렇게 멀리서 찔끔찔끔 쏴대서는 가망이 없다.

“이익-!”

발악하고 또 발악한다.

보기 안쓰러울 지경이었지만, 이해 못 할 건 아니었다.

판타지아 차원에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르는 교장에게 대적할 존재는 없었으니까. 직접 싸워야 할 일은 없었으리라.

하물며 그녀는 천사 종족의 지배자라고 할 수 있는 ‘최초의 천사’다. 대신 싸워줄 천사는 발에 치일 정도로 많다.

그게 이 결과.

싸울 줄 모르는 초보자랑 싸우는 기분이다. 아니, 실제로 교장은 초보자였다.

“실로 즐겁지 않은가?”

“이 새끼! 약자를 핍박하고도 자기가 용사라고 지껄일 셈이냐!”

“힘은 아무래도 좋아.”

내 앞에 물리쳐야 할 악(惡)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

사랑, 우정, 희생, 의리, 약자...

여러 이유로 타협하고 용서해준다면 용사라고 할 수 없다.

그건 단순히 힘만 센 무법자다.

“감히...!”

“하하하! 지껄여라! 내 척추를 자극해줘! 복리로 계산하기 쉽도록! 짜릿하게! 계속! 계속! 계속...!”

“......”

“뭐야? 흥이 식잖아. 얼른 뭐라도 좀 해봐.”

“대, 대화로 풀자.”

“하앙?”

이년이 갑자기 뭐라는 거야?

“우리, 대화로 해결해요. 밖은 아직 80년밖에 흐르지 않았어요. 지금이라도 멈추고 지난 앙금과 원한을 털어낸다면, 모두가 행복한 결말로 나아갈 수 있-”

“그런 길은 없어.”

“있어요.”

“없어. 내가 알아.”

힘에 굴복한 자가 진심으로 화해와 공존을 원할 리 없다.

숨죽이고 있다가 힘이 생기면 곧바로 내 등에 비수를 꽂으리라.

장담할 수 있다.

“어째서 그리 쉽게 단정하지요?”

“내가 그랬으니까.”

“...예?”

“내가 그랬다고.”

용사를 못살게 괴롭히던 동료들을 한꺼번에 몰살시킬 자신이 없어서 10년 동안 힘을 길렀다.

결과는 대성공.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 또한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

용사가 마왕 페도나르를 무찌르고 지쳤을 때 처리해버리자고.

재미있지 않은가?

“그, 그건...”

“교장. 타협의 여지는 없어. 그러니 후회가 없도록 마지막까지 발버둥 쳐봐.”

“......”

“포기야?”

“얕보지 마세요. 희생 없이 끝내려고 노력했을 뿐이랍니다. 하지만 명심하세요. 저에게 희생을 강요한 이상, 앞으로 당신에게 자비란 일절 없다는 것을.”

“하핫! 그렇게 나와야지!”

“오만하게 웃을 수 있는 것도 여기까지입니다! 쑥떡!”

쿠우웅-

초록색의 거대한 존재가 출현하면서 축소 중이던 ‘마신의 창고’가 삐꺽거렸다.

그 정체는 쑥떡.

내 비상식량에서 양아들이 된 용이었다.

“Greeeeee...!”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훨씬 거대해진 쑥떡의 포효.

우리를 가둔 공간이 파괴되진 않았지만, 축소되는 속도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원인은 간단했다.

▷종족: 카오스 그린 드래곤

▷레벨: 999+

▶직업: 용자(전원=1레벨)

▷스킬: 혼돈G 신성G 생명G

마기G 용린ZZZ 대형ZZZ

가속ZZZ 감속ZZZ 마법ZZZ

사랑ZZ 비행ZZ 우정ZZ

안마ZZ 희망ZZ 행운ZZ

영재ZZ 천재ZZ 만능ZZ

마력ZZ 면역ZZ 마술ZZ

정치ZZ 사교ZZ 문학ZZ

친교ZZ 외교ZZ ■■Z…

▷상태: 종속, 세뇌, 현혹, 강화, 고유…

터무니없는 능력치.

그중에서도 직업 ‘용자’와 스킬 ‘블랙박스’가 가장 거슬렸다.

특히, 후자가.

▷종류: 스킬

▷명칭: ■■

▷등급: Z

▷ZZ: □□□ □□□□.

▷Z: 대상을 기록한다.

▷SSS: 변화한다.

▷SS: 생산한다.

▷S: 기록한다.

▷A: 대상을 혼동시킨다.

▷B: 대상을 파멸시킨다.

▷C: 대상을 망각시킨다.

▷D: 혼동하지 않는다.

▷E: 파괴되지 않는다.

▷F: 망각하지 않는다.

나는 블랙박스를 SS등급에서 버리고 나만의 길을 구축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쑥떡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Z등급까지 올렸다.

원흉은 교장일 터.

“호호! 놀랐나요?”

“그러게.”

솔직히 놀랐다.

블랙박스는 흑화 선배가 시스템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버그 같은 스킬이니까.

그걸 시스템 운영자가 이용할 줄은 몰랐다.

“이건 버그가 아닙니다.”

“아니지.”

“당신이 아는 것처럼 최초의 용사가 만든 스킬도 아니랍니다. 그는 이 힘의 사용을 허락받고 전파한 존재일 뿐이지요.”

“허락이라...”

모든 흑막은 자신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유감스럽게도 제 허락도 아니랍니다. 이것이 저의 힘이었다면 당신이랑 이 같은 소모적인 대치도 하지 않았겠지요. 안 그런가요?”

“그것도 그렇군.”

직업 용자와 스킬 블랙박스는 시스템 규칙과 균형을 간단히 파괴할 수 있었다.

써본 내가 잘 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시스템을 구축한 ‘최초의 천사’와 ‘최초의 마왕’이랑 동급이거나 그 이상의 존재여야만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누구지?

“성급한 어떤 마신. 우주에서 가장 성급한 존재랍니다.”

“마신(魔神)...?”

마신은 비매품이 아니었나? 나 말고도 또 있다고?

교장이 설명을 이었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영웅을 키워내는 신이랍니다. 하지만 그 방식이 너무 성급해서 마신으로 불리게 됐지요. 그래도 그 마신의 힘은 진짜랍니다.”

“Greeee-!”

포효를 내지른 쑥떡의 거대한 손이 내 머리를 수직으로 내려찍듯 휘둘러졌다.

콰직-!

몰랑한 암흑물질을 부순 쑥떡의 손톱이랑 충돌했다.

“과연... 블랙박스로군.”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로 막긴 했지만, 절대적이라고 과신했던 ‘정의로운 마신의 힘’이 뚫리고 말았다.

약간 성가신 수준을 넘어섰다.

“호호! 쑥떡은 평범한 용이 아니랍니다. 최강의 용 뇌비우스와 최초의 성녀 에르단티의 피를 이었고, 부화기에는 당신과 저의 힘을 먹으며 성장했어요. 즉, 터무니없는 부모를 넷이나 둔 셈이지요.”

“처음부터 노렸나?”

“천만에요. 쑥떡은 우연의 산물이랍니다. 당신에게 물려받은 블랙박스로 회귀에 저항하지 못했다면 이렇게까지 성장하지 못했을 거예요. 저는 이 사랑스러운 아이의 성장기를 단축해줬을 뿐이지요.”

“교장. 그래서 무척 아쉽겠군? 쑥떡을 더 키우지 못하고 허무하게 희생해야 해서.”

“맞아요. 최고의 혈통과 성급한 마신의 지원. 그리고 타고난 성품마저 훌륭한 쑥떡은 제가 그려온 이상적인 용사니까요.”

“너에게만 충성하는 애완동물로 말이지?”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탁!

사방에서 튀어나온 몰랑한 암흑물질이 쑥떡을 몰랑하게 감쌌다.

피하거나 방어는 불가능하다. 녀석의 덩치가 아무리 크더라도 살아가는 세상보다 클 순 없었으니까.

“G, Gree~?!”

끼긱- 끼기긱-

고통 없이 순식간에 압살시킬 생각이었는데, 쑥떡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내 마음이 약해져서?

부정할 순 없다.

“...쑥떡이 완전히 성장하면 장난 아니겠군.”

그 모습을 보지 못했던 게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리고 미안하다.

푸욱.

몰랑한 암흑물질이 쑥떡의 거체를 완벽하게 감쌌다.

그때,

“Greeee-!”

최후의 단말마가 아닌 포효가 암흑물질을 부수듯 울려 퍼졌다.

빠직, 빠지직...

질긴 생명력으로 저항하는 쑥떡을 놓치진 않았지만, 마신의 창고에 균열이 생겼다.

정말 터무니없는 양아들...

“설마!”

나는 서둘러 교장의 위치부터 확인했다.

“늦었답니다. 으윽!”

우득-

교장은 등에 달린 자신의 날개 중 하나를 통째로 뜯어냈다.

그건 단순한 자해가 아니다.

쑤욱-

최초의 천사는 뜯어낸 피투성이의 날개를 공간의 미세한 균열 사이로 욱여넣었다.

“젠장!”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다.

왜냐하면,

캉! 카강-!

그녀의 날개가 빠져나가기 무섭게 외부에서 이 단절된 공간을 파괴하기 시작한 탓이다.

‘여신님을 위해!’

‘마왕을 무찌르자!’

‘빨리 부숴!’

‘시간이 없다!’

수많은 천사가 몰려들었다.

저들을 몰살시키는 일은 내게 너무나 간단하지만, 그러면 마신의 창고를 유지할 여력이 없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답은 정해져 있다.

“와라!”

“응애!”

귀여운 아기가 세상과 함께 천사들을 활활 불태우며 현신했다.

캡틴 판타지!

난장판이 되면서 마신의 창고가 위태롭게 흔들렸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야! 너희도 도와!”

나는 비겁한 마누라와 유감스러운 정령에게 지시했다.

“나도 공간이 단절돼서 시스템적으로는 도움 안 되겠지만, 노력하는 척이라도 해볼게.”

“말하는 꼬락서니 보게!”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거짓말보다는 낫잖아.”

보라색 에테르 날개를 활짝 펼친 쏘시아가 교장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시간을 감속 당한 그녀의 비행 속도는, 지켜보는 내가 속이 터질 만큼 느렸다.

...정말로 도움 안 되네.

너는 어때?

“드디어 내가 나설 차례구나!”

“기대해도 되냐?”

명색이 최초의 정령이다. 격으로만 따지면 최초의 천사나 내게 전혀 꿀리지 않는다.

그리고 보건 선생에게 받은 커플링도 있다.

반지를 낀 상대의 힘을 고스란히 복사하는 사기적인 효과!

여태까지 쓸 일이 없었지만, 드디어 진가를 발휘할 때가 됐다.

“마약마왕. 나만 믿어라!”

“믿으마!”

“자! 몰랑이다!”

“......”

“마, 마약마왕. 이거 이상하다! 어째서 몰랑하지 않은 거냐!”

“기교니까.”

몰랑한 암흑물질은 스킬이 아닌 기교에 더 가깝다.

마스터 몰랑.

장인어른 페도나르.

두 존재에게 배운 기술의 이해도가 높지 않으면 쓸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빠직-

“앗! 반지가...!”

최초의 정령이 허벅지에 끼우고 있던 커플링이 파괴됐다.

그 원인은 뻔했다.

“제가 경고했지요? 지금부터는 희생을 감수하겠다고. 콜록콜록!”

교장의 짓이었다.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지만, 내가 보상으로 받은 커플링을 파괴한 교장이 피를 울컥 토했다.

“흠.”

비겁한 마누라. 하늘에서 헛짓하지 말고 와서 설명해봐.

“응.”

내 곁으로 귀환한 쏘시아는 파괴된 커플링을 주워들었다.

“원인이 뭐야?”

“직권남용.”

“음?”

“교직원의 사유재산을 함부로 건드린 대가야. 판타지아 교육장은 우주에서 가장 공정한 몰랑노조에 가입되어 있거든. 가입한 이상, 독재자나 대주주일지라도 함부로 갑질하면 몰랑노조의 심판을 받아.”

“그, 그렇군.”

마스터 몰랑의 위대함과 한계를 도저히 모르겠다.

“콜록콜록. 으윽...”

“그래서 교장. 정확히 무슨 심판을 받은 거야?”

얼마나 몰랑했는지 궁금하다.

“어이없군요. 제가 적인 당신에게 알려줄 것 같나요? 콜록콜록!”

“상태가 매우 안 좋다는 건 알겠네.”

“그래도 제 승리입니다.”

파직- 퍼엉!

캡틴 판타지의 귀여움에 몰살당하면서도 꾸역꾸역 몰려든 천사들이 마침내 공간에 구멍을 뚫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버지. 정말 죄송합니다...”

▷종족: 카오스 그린 드래고니안

▷레벨: 999+

▶직업: 용자(전원=1레벨)

▷스킬: 혼돈G 신성G 생명G

마기G 용린ZZZ…

▷상태: 종속, 변신, 부상, 골절, 약화…

거대한 용의 형태에서 소형전투용 용인으로 변신한 덕분에 압살만은 모면한 쑥떡.

세뇌와 지배는 풀렸다.

하지만 녀석의 존재랑 깊은 연관이 있는 ‘종속’은 여전히 유효했다.

찰떡의 모습을 한 교장이 득의양양한 어조로 말했다.

“호호! 수고했어요. 나의 사랑스러운 아들 쑥떡. 다친 머리가 회복될 때까지 푹 쉬고 있어요.”

“당신은 내 어머니가...!”

뿅!

저항하듯 외치던 쑥떡은 강제로 소환이 해제되며 사라졌다.

...최악의 전개로군.

쌓여가는 복리를 청산하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호호호!”

“......”

“우리의 만남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겁니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예요, 주인님.”

“...뭐?”

“귀가 막혔나요? 각오하라고 했습니다, 주인님... 어라?”

“다시 말해봐.”

“...강한수 학, 학- 주인님!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어째서 주인님을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아아아악! 내 머릿속에서 당장 나가! 나가란 말이야! 이 노예년-!”

“찰떡?”

“네. 주인- 그만! 그만해! 가짜 주제에 어디서 감히! 나는 최초의 천사 히프리아... 아아아악!”

양손으로 머리를 싸매며 귀곡성 같은 비명을 지르는 교장.

나를 기만하기 위한 연기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기회!”

“응애!”

나와 캡틴 판타지가 거의 동시에 교장을 향해 도약했다.

“저 둘을 막아라!”

“파르마엘 님을 지켜!”

“얼른 피하십시오!”

“저희가 막고 있- 크악~?!”

셀 수 없이 많은 천사가 우리의 앞을 막아섰다.

무모한 발버둥.

하지만 무의미하진 않았다.

“쳇.”

“응애.”

혼수상태에 빠진 교장은 천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도망쳤다.

수많은 천사의 주검을 남긴 채.

하지만 그 참혹한 광경도 오래가지 않았다.

정확히 10초 뒤.

교장의 손자 리헬이 휘말려 죽으면서 판타지아 세계가 붕괴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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