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303화 (303/430)

 303화

[21회차] 감찰단

▶설명: 명문으로 손꼽히는 판타지아 교육장은 수많은 협력업체와 자매학교, 투자사를 끼고 있는데요. 성장세 하락의 원인을 설명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교장의 부재가 길어지면서, 불만을 품은 투자사에서 감찰단을 파견한대요.

판타지아 세계는 원래 사회부적응자들을 위한 그린피스, 힐링 캠프가 아니었나?

그런데 갑자기 비즈니스로 장르를 바꿨다.

벌써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우주와 생명의 신비를 파헤치는 이과라고.

“이래서 이과는 안 된다니까.”

“닥쳐! 마약정령!”

“히히히히- 아얏?!”

손가락을 튕겨서 최초의 정령 엉덩이를 혼쭐내준 완벽한 용사님은, 예쁘고 착한 교생 아가씨의 설명에 집중했다.

▶우울: 저는 우주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어서 정보가 어두운데요. 그 투자사 이름을 들은 대선배님들께서 전원 사색이 되셨어요. 원래는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교무실은 현재 난장판이에요.

나도 우주 밖의 정보는 어둡다.

지구의 학생일 때는 화성인과 외계인이 존재하는지 아닌지를 놓고 과학자와 종교인들이 다투는 다큐멘터리를 보며 자랐으니까.

판타지아 세계에 납치된 후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외계인은 실존했구나!

...라고 깨달았지만, 우매한 판타지아 원주민들은 지구인보다도 우주여행이랑 거리가 멀었다.

“비겁한 남편.”

“왜?”

“네가 좋아하는 교생 아가씨에게 투자사 이름을 물어봐. 내가 결혼 잘못해서 무시당하며 살지만, 우주에선 모두가 부러워하고 인정하는 엘몰랑도 유학파라고.”

“나름 우주인이란 거군?”

결혼을 잘못했다는 반어법이 기가 막혔지만, 쏘시아에게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물어보기로 했다.

교생 아가씨. 교직원들이 무서워하는 투자사 이름이 뭐야?

▶대답: 몰랑소프트요.

몰랑소프트!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설명: 우주의 컴퓨터공학은 몰랑소프트의 창업 전과 후로 역사가 크게 나뉜다는 학설이 있을 정도로 대단한 곳이래요.

교생 아가씨가 아는 정보는 여기까지인 것 같았다.

나는 마누라에게 알려줬다.

“몰랑소프트래.”

“맙소사...”

“왜?”

“판타지아 교육장의 시스템을 혼자 구축한 나조차 입사하지 못하는 대기업이야.”

“너도 별거 없군.”

엘몰랑도 유학파라고 유세 떨더니 쥐뿔도 없었다.

“남편. 무시하지 말고 끝까지 들어봐. 흠흠. 입사에는 실패했지만, 최신형 안드로이드 디자인모델로 뽑혀서 회사를 견학할 기회가 있었어.”

“헤에~”

쏘시아 주제에 제법인데?

“나는 세상에서 두 번째로 아름다운 여자거든? 이런 제안은 너무나 당연한 거야.”

“그래서 견학 소감은?”

“비밀엄수 조항 때문에 말해줄 순 없지만, 몰랑소프트는 절대 적으로 돌려선 안 돼. 거기서 생산되는 안드로이드는... 으읔! 하여간 안 돼.”

쏘시아가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며 말을 줄였다.

“몰랑소프트의 감찰단이라...”

실감이 되질 않았다.

행성을 부순 적은 있어도 벗어난 적은 없는 내게 우주는 아직 머나먼 별나라 얘기였으니까.

하물며 비즈니스.

쉽고 간단한 날조라면 자신 있게 나서보겠지만, 사업은 내 전문이 아니었다.

“용케도 황제를 했었네.”

“멍청한 마누라야. 사업과 정치가 어떻게 같냐?”

“국가도 기업이야.”

“한심하긴. 기업은 돈(월급)을 주고, 국가는 돈(세금)을 걷는데, 이게 어떻게 같냐? 운영구조가 완전히 정반대라고.”

“이래서 이과는... 꺅?!”

“닥쳐.”

뚜렷한 근거도 없이 이과를 모욕하는 비겁한 마누라를 손가락으로 혼쭐내준 완벽한 용사님은, 어여쁜 교생 아가씨에게 다시 집중했다.

그래서?

▶침울: 폐교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는데, 힘없는 교생인 저는 모교(母校)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강한수 생도님께 상담하려고 급히 말씀드린 거예요.

아주 잘 찾아왔어, 교생 아가씨!

요즘은 상담을 안 하지만, 손이 덜 미끄러웠던 1회차 때는 실수하지 않고 판타지아 원주민들의 고민을 자주 들어줬었다.

문제의 해결은 기본이고.

요점은 잘 알겠다.

“투자사 몰랑소프트에서 보낸 감찰단이 판타지아 교육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도록 하면 되겠네.”

“하아... 비겁한 남편. 그게 말처럼 쉬울 것 같아? 몰랑소프트는 허술한 구멍가게가 아니야. 아마, 교직원 측에 방문하겠다고 알리기 전에 조사를 마쳐뒀을걸? 내부적으로는 이미 결론을 내렸을 거야. 감찰단 파견은 절차라서 진행하는... 아읏?!”

“시끄럽네.”

비관적인 말만 내뱉는 F급 마누라는 철저한 응징이 답이다.

나는 용사다.

판타지아 차원의 수많은 학생이 나랑 똑같이 자기소개하지만, 그들은 B급이고 나는 MAX급이다.

우리의 차이는 명확하다.

그들은 비열한 우정과 사랑의 힘으로 편하게 모험하고, 나는 언제나 불리한 상황을 극복해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 절망적인 상황을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으응... 어떻게 하려고?”

▶희망: 저도 강한수 생도님의 계획이 궁금해요.

감찰단을 암살해서 준비할 시간을 벌고 싶지만, 쏘시아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건 힘들 것 같다.

“절대로 하지 마!”

“야. 생각도 못 하냐?”

“생각도 하지 마! 나는 꽃다운 나이에 과부 되기 싫어!”

“꽃다운...?”

“따지지 마!”

이 마누라는 하지 말라는 것도 참 많네!

“그렇다면 감찰단이 트집 잡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교육과정의 모습을 준비해야겠네.”

문제는 시간이다.

교생 아가씨. 감찰단이 방문하기까지 얼마나 남았어?

▶확인: 선배님께 1년쯤 남았다고 들었어요.

혹시, 그 선배의 이름이 진학상담사 베이커리 아니야?

▶깜짝: 맞아요. 강한수 생도님, 어떻게 아셨어요?

판타지 경력 200년 용사님의 예리한 감이야.

시스템을 관리하던 교장이 부재중인 현재, 망가진 판타지아 교육장을 개선할 수 있는 존재는 나와 개발자인 마누라뿐이다.

하지만 교직원들은 교칙 때문에 우리를 만날 수 없다.

그러나 내 담당자로 지정된 교생 아가씨만이 이례적으로 소통이 허락됐다.

그렇다면 얘기는 간단하다.

진학상담사 베이커리가 고의로 이 고급 정보를 교생 아가씨에게 흘렸다는 뜻이다.

앞으로도 중요한 변동사항이 있을 때마다 그럴 것이고.

어때? 내 추리력이?

▶감탄: 굉장해요!

“뭐... 나쁘지 않네.”

아직 감탄하기에는 이르다.

내가 진학상담사 베이커리라면, 감찰단이 어떤 식으로 살펴보고 평가할지도 교생 아가씨에게 얘기해줬을 것이다.

안 그래?

▶깜짝: 맞아요! 몰랑소프트의 감찰단은 무작위로 교실을 선택해서 용사의 모험을 처음부터 끝까지 견학한다고 제게 말씀해주셨어요. 평가 기준은 학도의 전투력, 책임감, 행동력, 자신감, 판단력, 정신력, 지구력, 적응력, 성실성, 사교성, 친밀감, 배려심, 자비심, 잠재력의 성장효율을 본대요.

굉장히 복합적이다. 그리고 성장효율을 본다는 점이 중요하다.

판타지아 세계의 모험이 단시간에 용사를 얼마나 많이 성장시키는지 보겠다는 심산이다.

“비겁한 남편이 비관적이라고 자꾸 핀잔줘서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이것만큼은 객관적인 자료로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어. 교생이 말한 평가 기준이 사실이라면, 폐교는 피할 수 없어. 현재, 대부분 학생이 성장은커녕 퇴보 중이거든.”

“정말로?”

“어. 얼마나 심각하냐면, 네가 최근에 박살을 내놓은 고모의 손자는 대인공포증에 빠졌어.”

“...정말로?”

“그렇다니까. 천사들이 몰래 찾아와서 심리치료 중이지만, 방구석에 처박혀서 안 나오고 있어.”

“근성이 없네.”

하지만 심각하다는 건 알겠다.

애초에 교직원들이 사회부적응자들을 납치한 것부터가 잘못됐다.

조금만 힘들어도 세상을 탓하는 녀석들을 달래면서 써먹으려니 답이 없는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판타지아 세계에 학생이라고는 그런 녀석들밖에 없는데.

어떻게든 써먹어야 한다.

나는 솔직하지 못한 마누라의 요추(腰椎) 4번과 5번 사이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쏘시아. 이전에 했던 것처럼 과거로 가자.”

“역사를 또 바꿀 생각이구나?”

“맞아.”

“조금만 기다려봐. 몰랑아. 그거 만들자, 그거.”

몰랑? 몰랑몰랑~

가슴골 사이에서 마스터 몰랑을 꺼낸 쏘시아가 양손으로 무례하게 몰랑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짜잔!

끝에 보라색 오망성(五芒星) 장식이 달린 막대기를 생성했다.

“그건 뭐야?”

“판타지아 시스템 설정을 마음대로 고치는 마술봉. 스킬 제작 같은 무거운 프로그래밍은 할 수 없지만, 눈에 보이는 단순한 작업은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어. 내가 고모에게 배신당하기 전에 자주 써먹던 도구야.”

“흠...”

비겁한 마누라가 유식한 척하려고 말을 참 어렵게 하네.

“이게 어려워?”

“어.”

“...그러면 그냥 필요한 게 생길 때마다 내게 주문해.”

“진즉에 그리 말할 것이지!”

“하아...”

쏘시아가 오른손 손목을 까딱이며 보라색 마법봉을 흔들었다.

그러자 차원이동문이 내 눈앞에 뚝딱 형성됐다.

나는 완벽한 마왕.

이 문이 ‘어떤 공간’이랑 이어져 있는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과거.

하지만 먼 과거는 아니었다.

“제대로 봤어. 신탁을 받은 라누벨이 용사를 소환되기 1년 전의 시간으로 이동할 거야.”

“1년은 너무 짧아.”

“어쩔 수 없어. 감찰단이 1년 뒤에 온다고 했잖아. 남편이 1년 동안 바꾼 역사가 모든 교육과정과 교실에 적용될 거야. 시간을 관장하는 고모가 도와준다면 얘기가 다르지만, 그건 기대할 수 없잖아?”

“쩝.”

불평할 시간도 아까웠다.

나는 망설임 없이 차원이동문으로 들어갔다.

*

온몸을 옥죄는 감각.

마왕 페도나르를 무찌른 MAX급 용사님이 2000년 동안 봉인되어있다는 설정이 떠올랐다.

이 갑갑한 감각이 그 봉인일 터.

하지만 많이 약해져 있는 것으로 보아선, 가만히 놔둬도 1년 뒤에 자연히 사라질 것 같았다.

1년 뒤에.

즉, 마왕이 부활하고 용사가 소환되기 1년 전의 시점으로 무사히 도착했다는 뜻이다.

나는 온몸에 힘을 줬다.

빠직-

완벽한 마왕님이 봉인을 1년 일찍 부수고 활동함으로써 역사는 크게 바뀔 것이다.

팡!

봉인이 깨지면서 잠겨있던 오감이 살아났다.

“...남편! 남편! 조심해!”

가장 먼저 활성화된 청각으로 들려온 쏘시아의 다급한 외침.

하지만 그 경고는 불필요했다.

나는 완벽한 마왕.

봉인이 풀린 순간부터 이미 완벽한 방어태세를 갖췄다.

캉! 카강-!

내 목젖 앞에 형성한 어둠의 공간과 칼날이 거세게 충돌했다.

묵직하다.

조금만 반응이 늦었어도 칼날이 내 목을 꿰뚫었을 것이다.

대체 누가?

청각보다 한 박자 늦게 활성화된 시각이 적의 정체를 파악했다.

“...이상한데.”

이럴 리가 없는데.

“이 강대한 힘은 동료들을 잃은 분노다!”

“아니, 잠깐만.”

“내 동료들은 죽지 않았어! 지금도 함께하고 있다! 내 주위를 맴돌면서 힘내라고 응원하- 컥?!”

“생각 좀 합시다!”

“크윽...”

“연관도 없는 선배가 왜 여기에 있는 건데?”

“마왕 페도나르!”

“음?”

“결판을 내자!”

촌스러운 용사 차림의 흑화 선배가 내 장인어른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재차 돌격해왔다.

내 외모가 바뀐 건가?

그렇진 않았다. 그렇다면 왜...

“거참.”

일단은 눈앞의 선배님부터 조지고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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