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305화 (305/430)

 305화

[21회차] 라누벨은?

▶걱정: 강한수 생도님이라면 문제없으시겠지만요. 그래도 학도들의 소환을 맡은 고고학자가 죽지 않도록 조심해주세요.

걱정하지 마, 교생 아가씨.

라누벨이 귀여운 척을 심하게만 안 하면 실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부터가 본론이다.

라누벨을 나 혼자 정보도 없이 찾는 건 무리다.

다른 동료들은 어디서 살고 뭘 하는지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라누벨만은 그렇지 않은 탓이다.

그녀는 언제나 용사가 소환될 때부터 함께하기에 어디에 있는지 궁금할 일이 없으니까.

과거?

물어본 적도 있다.

하지만 라누벨은 유적과 신전 등을 파헤치는 도굴꾼이기에 언제나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지금은 어느 던전을 기웃거리고 있을까? 중앙대륙에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다.

“참고로, 나는 그녀의 위치를 몰라, 비겁한 남편.”

“참 자랑이다.”

창조신이 못하는 것도 많다.

“시스템이 멀쩡했다면 우리 앞으로 소환하는 것도 가능해. 하지만 복구하려면 못해도 수십 년은 걸려. 그것도 남편이나 누군가 이 세계를 더 안 부순다는 가정하에.”

“뼈가 있네.”

“하지만 남편에게는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어. 이건 정말이야.”

“어, 그래.”

“정말이라니까?”

“안 믿는 게 아니라, 쏘시아. 애초에 너는 항상 고마워하고 있잖아.”

“...어?”

“몰랐냐?”

“응...”

고분고분한 마누라가 무척 낯설었지만, 지금은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나 할 때가 아니다.

남은 기간은 1년.

체계적으로 계획을 짜서 팍팍하게 돌아다녀도 부족하다.

삑-

나는 몰랑폰으로 서대륙에 곧장 연락했다.

‘...아아! 은인이시여. 1999년 만에 뵙습니다. 깨어나시려면 아직 1년 더 남은 줄 알았는데, 과연... 중앙대륙 남부에서 이곳, 서대륙까지 전해져왔던 그 무지막지한 파동의 정체는 역시나 은인의 것이었군요.’

내 통화를 받은 섹스피어가 속사포로 상황을 정리했다.

사족이 없어서 편하군.

전직 현자였던 종결자답다. 하지만 단순히 그뿐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대화가 간결하지 않았을 것이다.

“데이터는?”

몰랑폰의 위력이다.

‘허허! 전부 확인했습니다. 비밀통신망으로 들어온 데이터는 미래의 저 자신입니다. 축적된 정보의 양이 110년이나 앞서있더군요. 저는 장담할 수 있습니다. 이 110년은 제가 지난 1999년 동안 일궈낸 업적들보다 훨씬 대단하리란 것을.’

그렇다.

내가 교장이랑 100년 동안 싸우는 동안에도 섹스피어는 연구를 계속해왔다.

그리고 세상이 초기화되기 전, 그렇게 쌓인 데이터들을 내 몰랑폰에 전송했다.

그리하여 총 110년.

하지만 1999년의 연구보다 대단하다고 평가한 이유를 모르겠다.

“흥미로운 관점이네. 어째서지?”

펄럭.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를 활짝 펼치며 하늘 높이 날아오른 나는, 세상에서 가장 복 받은 유부남에게 질문했다.

섹스피어가 시원하게 답했다.

‘이 판타지아 세계를 구성하는 마왕님과 여신의 싸움은 무려 100년 동안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데이터를 남겼습니다. 은인께서는 모르시겠지만, 미래의 저는 그 전장에 직접 가서 진리를 탐구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쌓인 방대한 정보가 지금, 제 손에 들어왔습니다.’

“재미있네.”

‘더욱 재미난 일을 3년 안에 보여드리겠습니다.’

“그건 천천히 해도 돼. 지금은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으니까. 나는 시작점의 1년 전으로 왔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너라면 알겠지?”

‘물론입니다, 희망의 마왕이시여. 지금으로부터 세상이 1년 뒤의 상태로 고정되어 무한회귀한다는 말씀이시지요? 매우 중요한 1년이 될 것으로 사료됩니다.’

“정확해.”

진리가 늘 함께하는 종결자답게 구차한 설명이 필요 없었다.

‘당신과 이 세상을 위해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나는 만두 왕국의 상공에서 라누벨을 수색하며 답했다.

“판타지아 서대륙은 어떤 용사도 침범할 수 없는 최후의 보루가 돼야 해. 필요하다면 용사를 영원히 가둘 수 있는 감옥이 돼야 하며, 모든 대륙에 정보망을 구축해줘. 그리고 이게 핵심인데, 모든 용사가 WiFi를 제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몰랑폰을 개발해. 당연히 1년 안에.”

‘제한적이라고 하신다면...?’

“지구의 데이터는 일절 받을 수 없고, 몰랑폰 사용자들끼리만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포털사이트와 메신져 기능만 들어갈 거야. 관리자는 당연히 우리고.”

언제나 머릿속으로 구상만 해뒀던 계획이다.

하지만 이젠 가능하다.

각 교실은 단절되어 있지만, WiFi는 지구라는 중간다리를 통해서 모든 교실이랑 연결되어 있으니까.

예전에도 할 순 있었다.

교실A의 내가 몰랑폰으로 ‘쏘시아 골반’을 찍어서 메신져에 올리면, 교실B의 내가 “오! 진짜 비겁한데?”라면서 수신할 수 있다.

“...비겁한 남편. 정말로 내 골반을 찍어서 올린 건 아니지? 그냥 예시지?”

“안 했을 리 없잖아.”

얼짱 각도로 예쁘게 잘 찍었다.

“뭐어어~?!”

“네가 보라색 미역처럼 축 늘어졌을 때, 테스트용으로 찍어서 메신저에 저장해뒀어.”

“변태야?!”

“왜 소리를 질러. 남편이 좀 찍을 수도 있지.”

“맨날 보고 만지면서 뭐하러 찍는데?! 남이 보면 어쩌려고!”

“그렇게 말하면 가족사진을 왜 찍냐? 맨날 보는 얼굴들인데.”

“가족의 골반은 안 찍거든?!”

문제의 사진을 삭제하기 위해 몰랑폰을 달라고 떼쓰는 쏘시아를 피하며, 통화를 계속했다.

‘아내의 골반이라... 흠흠!’

조용히 듣고 있던 섹스피어가 진리에 한 걸음 다가갔다.

“원리는 이해했어?”

‘이해를 넘어서서 실용화단계에 이미 접어들었습니다. 또 다른 제가 연구를 끝내놨더군요. 허허. 은인이시여. 정보망과 몰랑폰 외에 지시하실 일이 또 있으십니까?’

“라누벨의 현재 위치.”

‘...방문기록을 조회해본 결과, 서대륙에는 없는 게 확실합니다. 다른 대륙은 제 관할이 아니라서 알 수 없습니다. 특히, 중앙대륙과 동대륙은 정보가 전무(全無)한 상태입니다.’

“그렇겠지.”

서대륙에서 섹스피어랑 10년 동안 함께 이것저것 연구하고 실험하면서 알게 된 사실.

중앙대륙 중앙에 둥지(산맥)를 튼 친애하는 전우 뇌비우스가 내뿜는 아우라가 모든 계열의 탐지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다.

판타지아 행성에서 가장 많은 용이 사는 동대륙도 마찬가지고.

즉,

뇌비우스 = 모든 용

이 친구가 얼마나 변칙적인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아무튼, 섹스피어에게 뜬금없이 ‘라누벨이 어디 있어?’라고 물어보면 알 리 없었다.

서대륙에 있지 않은 한.

그래도 통화 한 번으로 수색 범위가 20%(1/5) 줄어든 셈이니 수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북대륙과 남대륙을 조금씩 조사해보겠습니다. 은인이시여. 또 지시하실 게 있으십니까?’

“나머진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진행하지.”

‘알겠습니다. 그러면 정보망을 구축하고 라누벨을 발견하거나 보급형 몰랑폰이 완성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수고해.”

‘마왕님과 세계를 위해.’

삑-

나름 유익했던 통신을 마쳤다.

귀여운 척하는 라누벨을 찾지 못한 건 애석하지만, 어디에 숨어있든 1년 안에 만두 왕국으로 올 것이다.

다른 차원에서 사회부적응자를 납치하기 위해.

“남편. 몰랑폰을 보급할 셈이야?”

“어.”

“신중하게 결정했으면 좋겠어. 각 차원을 독립적으로 분리해둔 건 교육 초창기부터 의도한 장치였으니까.”

“흐음...”

정보를 차단함으로써 학생들의 독립성과 자립심을 키워보겠다는 의도였던 걸까.

일부는 동의한다.

지금이야 판타지 경력 200년이 되면서 아는 게 많아졌지만, 나도 1회차 때는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경험을 쌓았다.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몰랑폰을 용사들에게 보급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일지도 모르겠군.

“어... 저기, 남편? 그렇게 거창한 의도는 아니었어.”

“으음?”

그러면 뭔데?

“용사들에게 너만은 특별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의도였어. 오직 나만이 이 세상의 멸망을 막을 수 있다. 이런 특별함을 부여해서 책임감과 자부심을 느끼게 하려고 했지.”

“......”

우리는 그것을 전문용어로 고상하게 중2병이라고 부른다.

자립심은 개뿔.

“자기만 특별하다고 착각하는 게 나쁜 병은 아니야. 오직 나만이 이 세상의 멸망을 막을 수 있다. 딱 들어봐도 멋지지 않아?”

“중2병.”

나만 특별하다는 전제가 들어간 시점에 이미 불치병이다.

“그렇게 말하는 남편도 심각한 중2병이잖아.”

“음... 그렇군. 오직 나만이 사회부적응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이건 사실이잖아?”

사회부적응자가 아니었던 나는 비열한 우정과 사랑의 힘 없이 마왕 페도나르를 쓰러트렸다.

이건 내가 특별한 게 아니라, 사회부적응자가 아닌 선량한 문화시민을 고른 시스템 잘못이다.

어째서 나만 이 야만적인 세계에 납치되어 고생해야 하는지 한탄했던 적은 분명 있었다.

그러나 이때까지 단 한 번도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회부적응자가 아니면 누구나 나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아니, 나는 평균이다.

까놓고 말해서, 지구에는 나보다 훨씬 유의미한 모험 성적을 낼 수 있는 뛰어난 인재들이 발에 치일 만큼 널렸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내 생각을 읽고 있으면서 뭐하러 묻냐?”

“그것도 그러네. 시스템이 멀쩡하다면 비겁한 남편을 소환한 근거자료를 열람할 수 있을... 엇?! 남편! 누군가 여기로 침투했어!”

“침투?”

“이 파동은 차원이동이야! 용사소환 마법진을 활용한 침투! 하지만 용사는 아니야. 이곳은 학생이 입학하기 1년 전의 시기이니까. 구조적으로 절대 들어올 수 없어.”

“침투한 위치는?”

“북대륙... 어머!”

나는 쏘시아의 비겁한 허리에 팔을 두르며 끌어안았다.

비겁한 마누라답지 않은 가증스러운 비명이었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용사소환 마법진.

그곳에 라누벨이 있을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바로 이동해.”

쏘시아는 판타지아 세계의 창조신이자 시스템 개발자.

인과율을 무시할 수 있다.

“안 돼.”

“개연성 따지지 마.”

“그게 아니라 고장 났어! 공간이동 마법진을 활용... 꺄아아앗?!”

말할 시간도 아깝다.

비겁한 마누라는 근처 마탑에서 공간이동 마법진을 이용하라고 제안하는 모양이지만, 마법을 준비하는 시간에 내가 북대륙까지 날아가는 편이 훨씬 빠르다.

나는 쏘시아를 안은 채로 빠르게 비행했다.

“일해라.”

내 겨드랑이에 뺨을 비비고 있던 바람의 정령왕이 권태롭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러자,

뿅! 뿅! 뿅! 뿅!

최상급, 상급, 중급, 하급 정령들이 줄줄이 소환됐다.

휘이이잉~

바람의 정령들이 노동력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내 앞을 가로막는 공기저항을 제거하고 내 날개에 추진력을 더했다.

나도 놀고 있지 않았다.

【어둠】

팟! 팟! 팟! 팟!

공간을 접는 방식의 단거리 공간도약을 무한정 전개했다.

북대륙까지 약 10초.

마왕의 힘이 온전했다면 ‘찰나’였겠지만, 불완전한 현재로선 이게 한계였다.

“괴, 굉장하네. 아빠보다 힘을 잘 다루는 것 같아.”

“칭찬은 됐고. 정확한 위치는?”

나는 북대륙에 도착하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만한 착각이었다.

기운을 감추고 있는지 차원이동 마법진의 위치를 여전히 특정할 수 없었다.

쏘시아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누군가 침투했는지도 여태 모르고 있었으리라.

“저쪽이야.”

쏘시아가 손끝으로 지상의 어딘가를 가리켰다.

“마법진이? 라누벨이?”

둘이 같은 장소에 있을 수도 있지만, 내가 만약 침입자라면 혹시 모를 추적자를 따돌리기 위해 이동부터 했을 것이다.

내 예상대로였다.

“라누벨인지는 모르겠지만, 침입자가 마법진에서 동쪽으로 빠르게 이동 중... 꺄아아앗~?!”

“이놈...!”

팟! 팟! 팟! 팟!

나는 공간을 접으면서 북대륙의 동부로 빠르게 이동했다.

“남편! 추적하지 않을 거야?!”

“그럴 필요 없어.”

나는 판타지아 북대륙의 영원한 아기돌, 귀여운 황제였다.

내 영토의 지형을 3D로 머릿속에 구현하는 건 일도 아니다.

침입자의 목적지.

북대륙 중앙의 설산M 남부의 마법왕국이랑 이웃하는 왕국의 어느 누추한 영지가 틀림없다.

“아! 거기는!”

내 생각을 읽은 쏘시아도 뒤늦게 깨달은 듯했다.

“맞아.”

난폭한 공작 영애 검희와 아들 카리스가 사는 영지다.

▶정정: 크리스예요.

하여간 그 둘이 위험하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