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화
[21회차] 너의 이름은?
치이이이...
감전된 침입자의 몰골은 처참했다.
두 눈알이 터지고 코와 귀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전류가 신경을 건드렸는지 사타구니 사이에서 암모니아의 뜨거운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능력치는?
▷종족: 아크 휴먼
▷레벨: 0
▷직업: 무직(경험치 110%)
▷스킬: 통역A 기마B 포격B
명중C 회피C...
▷상태: 사망, 탈골
확실하게 사망했다.
하지만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판타지 세계에는 부활이란 아주 훌륭한 보험이 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민폐 덩어리들을 되살리기도 하지만, 아는 정보가 많을 것 같은 악당을 살려내기도 한다.
머릿속에 든 정보를 전부 끄집어낼 때까지.
하지만 나는 1회차 때, 성녀와 동료들이 극구 반대해서 이것을 실행하지 못했다.
“아... 괜히 생각나서 열 받네.”
동료란 연놈들은 정말 도움이 되질 않았다.
도움이 전혀 안 되는 주민D는 살려내고, 아는 게 많은 악마 간부는 편히 죽게 내버려 뒀다.
그때, 악마 간부들을 쥐어짜서 정보를 얻어냈다면 10년씩이나 모험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왕 페도나르가 그렇게 약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빠를 옹호하고 싶진 않지만, 약하지 않아. 네가 지나치게 비정상적으로 강한 거지.”
“평균이다.”
사회부적응자가 아닌 일반인이 판타지 세계로 넘어오면 누구나 나 정도는 해낼 것이다.
몰랑?
마스터 몰랑께서도 몰랑하다고 몰랑하셨다.
“뭐... 생각은 자유니까.”
“쏘시아. 포격 피해는?”
“복구했어.”
MAX급 남편님의 질문을 받은 비겁한 마누라는 막았다고 대답하지 않았다.
복구.
그녀는 수호신이 아니라 창조신이기 때문이다.
마법봉을 휘두르면서 시간을 되감듯 파괴된 지형지물, 살해된 생명을 원상복구 했다.
성녀의 부활이 불필요한 수준!
나는 이어서 주문했다.
“이 전기매트도 좀 AS 해줘.”
“안 돼.”
“쏘시아. 추하게 그러지 말자. 네 골반이 훨씬 예뻐. 이 남편이 꼭 이렇게까지 말해야겠냐?”
“조카야! 너무너무 추하다!”
남편과 이모의 비난을 받은 창조신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녀가 같잖은 변명을 했다.
“이상하게 몰지 마!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추하다!”
“추하다!”
“정말로 못 하는 거라니까! 침입자의 영혼이 판타지아 세계에 귀속되어 회귀할 준비를 마쳤어. 그녀는 초등교육과정에서 신출내기 용사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거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납치한 건 아니지만, 용사소환 마법진으로 침투했기 때문에 시스템은 똑같은 것으로 간주했다.
침입자는 용사로 자동등록.
모험 도중에 실패하고 죽어서 회귀한 것이 되었다.
이러면 시체가 있어도 부활시킬 수 없다. 영혼이 없으니까.
즉,
“10년 뒤에나 캐물을 수 있다는 소리군.”
여기서 작업을 마치고 용사력 0년으로 귀환한 뒤에나 가능하다.
“제대로 봤어.”
“라누벨은?”
“흔적이 끊겼어. 내가 용사소환 마법진과 그 주변을 관찰해볼게. 너는 검희와 아들이나 돌보고 있어. 오랜만에 만나는 거잖아.”
쏘시아가 웬일로 예쁜 소리를 다 하네.
하지만 그냥 보내긴 불안했다.
시스템 관리자인 그녀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이번 계획은 완전히 파탄 나기 때문이다.
검희와 아들 카리스를 잃는 거랑은 피해 규모가 다르다.
그래서,
“쏘시아. 타고 가.”
조종사를 죽인 나를 얌전히 등에 태우고 있는 검은색 가오리를 손끝으로 가리켰다.
“Seeeex!”
“...가오리 같이 생긴 주제에 섹시하게 우네.”
보라색 에테르 날개를 펼치고 떠날 준비를 하던 쏘시아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나, 주는 거야?”
“그래.”
공간을 접으면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내게는 불필요하다.
게다가 이 가오리는 내 공격도 피해낼 만큼 눈치가 100단이다.
이 가오리가 있다면, 쏘시아가 적의 습격을 받더라도 내가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아...”
“뭐냐? 그 시선은.”
“잘생긴 강한수 남편님은 관심 없겠지만, 우주마를 사주는 남편이 가장 멋지다는 글을 예전에 연애잡지에서 읽은 적이 있어. 그때는 무슨 헛소리냐고 코웃음 쳤었는데, 이젠 알 것 같아.”
“이까짓 게?”
“남편. 우주마는 진짜 귀해. 돈 주고도 못 구할 정도야. 성공한 여자들의 상징 같은 거지. 이웃하는 은하계로 쇼핑갈 때, 우주마만큼 편한 교통수단이 없어. 그리고 위급한 상황에선 훌륭한 탈출수단이 되어주고, 짐도 꽤 많이 실을 수 있어.”
“Seeeex~”
“...아무튼, 마음에 든다는 거지?”
“응응!”
“그, 그래.”
완전히 신난 어린애가 돼버린 비겁한 마누라가 우주마를 타고 서쪽으로 휭 날아갔다.
...이해가 안 되는군.
자가용 하나로 남편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바뀌다니.
“히히히!”
“마약정령. 너는 또 왜 웃냐?”
“조카가 귀엽다!”
“흠...”
“많이 행복하게 해줘라! 나이는 많아도 마음만은 순수한 아이다!”
“어, 그래.”
대충 대답해준 후, 나는 공작Q의 영지 한복판에 착지했다.
그리고 동시에 ‘마신의 창고’에 넣어둔 검희와 아들 카리스를 원래 장소에 내려줬다.
쿵!
콰당!
엉덩방아는 기본옵션이다.
뭐가 어떻게 된 줄 모르고 어리둥절 주변을 둘러보는 둘의 모습을 멀리서 확인한 나는, 영지의 시장으로 이동했다.
“방금 뭐였지?”
“악마와 천사가 싸웠나?”
“용이야! 내가 봤어!”
“이제 안전한 걸까요?”
“나는 분명히 죽었는데...”
천둥과 벼락이 치고 별똥별(포격)이 무수히 떨어지는 하늘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시민들은 혼란에 휩싸인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뿐.
판타지 세계답게 기이한 현상에 익숙한 그들은 금방 ‘오늘은 뭐 먹을까?’ 같은 고민에 빠지며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렇다. 평범한.
“평범한 도시로 오는 건 오랜만인 것 같다.”
영지마다 특색이 있겠고, 공작Q의 영지는 그것이 좀 강한 편에 속하지만, 서대륙의 그 거대한 도시랑 비교하면 평범한 축에 속했다.
그렇다면 나도 바꿔야겠지?
▶종족: 퍼펙트 데몬
▷레벨: 1
▶직업: 탈마(용사=마왕)
▷스킬: 희생MAX 사랑D 용기D
희망D 우정D…
▷상태: 양호, 성검
간단한 조율을 거쳤다.
나는 용사이면서도 마왕.
이 둘을 동시에 활성화할 수도 있지만, 마기를 풀풀 풍기는 마왕은 잠재우고, 정의로운 MAX급 용사님만 끄집어냈다.
스킬은 변변찮았다.
원래 같으면 ‘희생’만 있어야 정상이지만, 비겁한 마누라가 장난을 쳐둔 것으로 짐작됐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감추는 기능이다.
▷종족: 퍼펙트 휴먼
▷레벨: 1
▷직업: 용사(경험치 500%)
▷스킬: 희생MAX 사랑D 용기D
희망D 우정D…
▷상태: 양호, 성검
감춰도 내 종족이 워낙 사기적이라 ‘살펴보기’ 기능이 있는 용사나 교직원들에게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이 이상은 비겁한 마누라가 있어야 숨길 수 있다.
여기까지만 해놔도 알아볼 원주민은 없으리라.
종결자 섹스피어는 논외고.
“마약용사. 곧바로 만나러 갈 거냐?”
“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신사적인 용사님이라서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서 만날 거야.”
“급한 줄 알았는데?”
“급한 거 맞아.”
1년 안에 5차 교육과정을 훌륭하게 바꿔놓으려면 시간을 잘게 쪼개서 사용해도 부족한 판국이다.
판타지아 세계는 총 5개 대륙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대륙에 2달씩 할애하고, 중앙대륙 북부 하늘에 있는 천사들의 군사도시 ‘엘몰랑도’와 바다인어들의 도시 등에 남은 2달을 사용하면 1년이 후딱 가버린다.
그렇다면 각 대륙에 분배한 이 2개월은 길까?
그렇지 않다.
이 방대한 대륙에는 수많은 국가의 이데올로기가 복잡하게 얽혀있고, 온갖 세력과 인물들이 다양한 이해관계를 맺고 있다.
원수, 동맹, 은인, 약혼, 계약, 질투, 의리, 형제, 친구...
“으으. 마약용사. 나는 벌써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냥 여기에 누워서 자연의 순리대로 흘러가는 걸 지켜보겠다.”
나태한 정령이 내 머리에 드러누워서 킁킁거렸다.
이렇게 유감스러운 최초의 정령을 절대적인 상관으로 모시는 모든 정령에게 애도를. 몰랑.
“몰랑.”
“상관이 아니라 가족이다!”
“몰랑.”
“정말이다!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아. 이 의심 많은 용사에게 따끔히 한마디 해줘라!”
......
......
......
......
...몰랑.
땅, 불, 바람, 물. 네 속성의 정령왕들이 대답하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리고 나의 공성추를 끌어안고 있던 마음의 정령왕이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졌다.
“그래. 아주 몰랑하지.”
“마음의 정령왕. 이 언니는 너무너무 섭섭하다!”
“조용히 해.”
“흥!”
마약정령의 소란으로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나는 공작Q 영지의 아카데미 출입구 옆에 세워진 관리소를 방문했다.
매년 봄에는 입학하려는 소년, 소녀들로 붐비지만, 지금은 출입허가를 받으려는 상인들과 학부모들만 간간이 찾아와서 한가했다.
아! 그래도 며칠에 한 번씩 붐비긴 한다.
“나이를 대충 보아하니, 특례입학을 노리는 꿈나무로는 안 보이는군. 그렇다면 우리의 아름다운 영애에게 청혼하려는 양아치- 실례. 신사 같은데... 토너먼트 등록을 빠르게 진행해주면 되겠소?”
깐깐하게 생긴 관리소 직원이 나를 보자마자 시냇물 흐르듯 술렁술렁 대화를 진행했다.
아는 얼굴이다.
이 남자의 딸에 관해서는 더욱 세세하게 잘 알고.
그녀는 이 아카데미 출신의 전도유망한 기사랑 결혼하는데, 그 기사가 신혼생활 단 5일 만에 고블린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서 죽는다.
즉, 젊은 과부다.
그녀의 외로움을 달래줬다는 이유만으로 동료들에게 맹비난을 당했지만, 지금도 후회하진 않는다.
그래도,
“관리인 양반.”
“젊은 놈이 말버릇이...”
“따님이 결혼하려고 하면 닷새만 늦추라고 하세요.”
“...뭐?”
“자! 등록절차를 밟도록 하죠. 이름은 파르파르. 나이는... 33살. 제가 파릇파릇하게 생기긴 했어도 영애보다 1살 많습니다.”
“진짜 나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빠나 오라버니라고 불리는 것에 집착하는 변태라는 건 알겠네. 출신과 직업을 말하게.”
아주 좋은 질문이다.
나는 창고에서 반지 하나를 꺼내어 왼손 중지에 꼈다.
반지의 인장에는 푸른색 도마뱀 대가리가 그려져 있다.
탁.
놀란 관리인이 부지런히 놀리고 있던 깃펜을 떨어트렸다.
“이 나라의 수도 모스크바? 모스카바? 모스키토?”
“...모스카르?”
“아! 감사합니다. 모스카르! 그 이름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하하! 절 낳아주신 분의 조국에 와보긴 정말 오랜만이라 가물가물했습니다.”
“설마...?”
“장래에 귀여운 황제가 되는 가장 고귀한 왕족이라고 소개하고 싶지만. 일단은 마구간에서 극적으로 태어난 사생아라고 해두죠.”
“그, 그렇습니까.”
관리인의 말투가 공손해졌다.
우매한 판타지 원주민들은 황족과 왕족이란 단어에 매우 약하니까.
얼굴에 시커먼 두건을 쓴 친구들을 제외하고.
“등록은?”
“거의 끝나갑니다. 본국의 왕족만 낄 수 있는 마법 반지를 소지하신 것만으로도 신분은 보장된 셈이니까요. 파르파르 님. 직업은 뭐라고 작성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이건 왕자와 공주들에게 전부 나눠주는 양산형 마법 반지가 아니다.
왕만이 낄 수 있는 옥새.
하지만 일개 관리인은 거기까지 생각하진 못한 듯했다.
알아봐도 곤란하고.
그가 묻는 ‘직업’은 판타지 원주민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능력치의 직업이다.
하지만 ‘사생아’인 내 직업을 ‘왕자’라고 고스란히 쓸 순 없기에 요청하는 것이다.
직업을 뭐라고 할까... 아!
“검왕(劍王).”
▶혹시: 알렉스 씨의 빈자리가 그리우셨나요?
히익?! 교생 아가씨! 그런 끔찍한 소리 하지 마!
내 심장에 무리가 간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