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308화 (308/430)

 308화

[21회차] 검왕 파르파르

내 기억 속의 검희는 알렉스의 ‘검왕’이란 칭호를 부러워했었다.

검희.

그것은 여성 검사를 뜻하니까.

여자 중 가장 강한 검사란 식으로 깎아내리는 별호인 셈이다.

그래서 여자가 아닌 한 명의 검사로서 ‘검의 왕’이라고 불리고 싶어 했다.

“검왕...?”

“왜? 아무도 안 쓰잖아. 아니면 황제라고 써줄래?”

“아, 아닙니다!”

손이 없는 설녀랑 결혼해서 유부남이 된 알렉스는 4차 교육과정 때보다 압도적으로 강해졌다.

까놓고 말해, 혼자 내게 도전해도 될 수준이다.

그래서 별호도 검성(劍星).

검의 별.

자연히 그 하위호환인 ‘검왕’은 공석이 됐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검왕’을 자칭한다면 검희를 향한 노골적인 도발이 될 것이다.

“등록은?”

“완료됐습니다. 이름 파르파르. 고향 모스카르. 나이 33세. 직업... 검왕. 영애께 도전하는 경쟁자들의 토너먼트는 기본 테스트를 통과한 64명이 채워질 때마다 진행됩니다. 귀찮으시더라도 저쪽으로 가셔서 기본 테스트를 받으십시오. 이 종이를 가져가시면 출입구의 경비병이 안내해줄 겁니다.”

“관리인 양반. 현재까지 지원자가 몇 명이지?”

“파르파르 님까지 포함해서 56명입니다. 앞으로 8명이 더 지원해야 토너먼트가 시작됩니다. 제 경험상 8명이면, 나흘 뒤에 개최될 겁니다.”

“고마워.”

나는 관리소 옆의 아카데미 출입구로 향했다.

그곳을 지키는 경비병들은 고압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랫동안 복무하면서 쌓인 눈치 때문이다.

경비병 중 하나가 말했다.

“기초 테스트를 보러 오셨습니까?”

“이거.”

나는 관리인에게 받은 종이를 경비병에게 건냈다.

“감사합니다. 처음 도전하시는 분 같은데 상당히 능숙하시군요. 보통은 허둥대기 마련인데.”

“...내가 아직 풋풋한 22살일 때 도전했었지. 음. 22살이 맞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라누벨이 귀여운 척하면서 ‘용사님! 성검 없이 도전하는 건 무모해요!’라고 지껄이는 걸 무시하고 검희에게 도전했었다.

그 결과는...

“오! 경험자셨군요. 그나저나 정말 대단하십니다. 여태 결혼하지 않고 10년 넘게 준비해서 재도전하신다니...”

“내가 좀 로맨티시스트지.”

지구인이 봤을 때, 판타지아 세계의 결혼적령기는 매우 빠르다.

북대륙은 아마...

남자는 18살, 여자는 16살.

대륙과 나라마다 다르고, 전쟁이나 자연재해 같은 문제로 인구가 급감해도 빨라진다.

여긴 지구랑 다르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는 몬스터를 사람 대신 처치해줄 재래식 무기가 발달하지 않았다.

즉, 인구가 곧 생존.

국가와 영지의 존속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왕과 영주가 출산을 독촉하기도 한다. 심할 때는 강제까지.

그런데 나는 33살로 소개했다.

결혼적령기를 넘어도 한참 넘은 노총각인 셈.

▶빼꼼: 실제로는 매우 능숙한 유부남이시지만요.

교생 아가씨! 오해야! 내 마음만은 여전히 순수하다구?

나를 노총각이라고 판단한 아카데미의 경비병들 표정은 대단히 호의적이었다.

내 판타지 경력이 200년이다.

원주민 평판 작업은 숨 쉬듯 자연스럽게 된다.

“하하! 개인적으로 파르파르 님을 응원해드리고 싶군요.”

“저도 응원합니다. 어휴! 11년이라니... 저는 못 견딜 겁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생각 있으시면 제게 말씀해주십시오. 참한 과부를 알고 있거든요.”

“절 따라오십시오. 기초 테스트 훈련장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고마워.”

나는 경비병들의 응원과 위로를 받으며 기초테스트 훈련장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얍!”

“하압!”

“합!”

땡볕 아래에서 검술을 훈련하는 소년, 소녀들이 보였다.

저 모두가 재능을 인정받은 아카데미의 학생, 기사지망생들이다.

아들 카리스도 보였다.

▷종족: 휴먼

▷레벨: 249

▷직업: 왕자(국력=기력↑)

▷스킬: 영재Z 검기MAX

만능MAX 매력MAX

내공MAX···

▷상태: 훈련, 각성

사기적인 능력치.

저 나이에 가질 수 없는 스킬 등급의 향연이었다.

내가 경험치 500%의 용사 특전을 달고 10년 동안 뼈 빠지게 노력했음에도 Z등급은커녕 MAX등급 하나 없었는데, 카리스는 넘쳐났다.

이유는 잘 안다.

스킬 영재와 만능의 콜라보!

몬스터 사냥을 별로 안 해서 레벨은 낮았지만, 그마저도 다른 학생들에 비하면 압도적이었다.

예를 들어...

▷종족: 휴먼

▷레벨: 94

▷직업: 영애(가문=매력↑)

▷스킬: 매력S 검술A 검기B 사교C

민첩C···

▷상태: 심쿵

아까부터 내 아들 옆에서 예쁜 척하는 여학생의 능력치다.

부족한 스킬은 경추(頸椎)를 잡고 끌어올리면 되기에 문제없지만, 척추와 골반이 변변찮은 것은 조용히 넘어갈 수 없었다.

굉장히 나를 불편하게 하는군!

“파르파르 님?”

“...아! 실례. 변변찮은- 훌륭한 기사지망생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넋 놓고 보다가 그만.”

“하하하! 괜찮습니다. 저희 영주님께서 끔찍이 아끼시는 크리스 도련님의 훈련을 보고 있으면, 저희도 시간 가는 줄 모르거든요. 저 늠름한 소년이 이 영지의 다음 주인이시란 생각을 할 때마다 자부심과 안도감을 느낍니다.”

“그렇군요.”

아들 카리스에 대한 호평이 나온 덕일까?

상대는 되돌아서면 잊을 경비병A였지만, 내 입에서 절로 신사적인 언어가 튀어나왔다.

“제 안내는 여기까지입니다. 테스트는 아카데미 교관이기도 한 기사님께서 해주실 겁니다.”

“수고하십시오.”

“파르파르 님도 힘내십시오.”

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경비병A랑 헤어졌다.

그리고 기사A를 돌아봤다.

아! 정정한다.

내가 아는 얼굴이다. 공작Q의 무남독녀인 검희를 손녀처럼 아끼는 노인이다.

이름은 기사L.

머저리에게 사랑스러운 영애를 넘길 수 없다면서 기초테스트를 지옥 수준으로 만든 영감탱이라서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보자마자 절로 이가 갈리는군!

나도 꽤 당했었다.

“잘 왔다. 내 이름은 로리쿤. 세월의 힘에 허리가 안 좋아진 이후부터 아카데미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일을 맡고 있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이래 보여도 나는 평범한 기사가 아닌 어엿한 백작이니, 무례하게 행동하는 일이 없도록. 호칭은 로리쿤 교관, 로리쿤 백작, 로리쿤 경. 편한 대로 부르면 된다.”

“로리 백작.”

“...경고하는데, 나를 그 애칭으로 부르지 마라. 그것은 영애와 도련님만 쓸 수 있다.”

“테스트나 진행하시죠.”

“백작이라고 소개했음에도 그 건방진 태도는 대체... 그 반지는?! 어흠! 본국의 왕족이셨습니까?”

“그래.”

나는 왼손에 낀 반지를 얄밉게 흔들며 답했다.

기사L의 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야! 빨리 좀 진행해라.

“소개는 이쯤에서 마치고 테스트로 들어가겠습니다. 이 구슬 위에 오른손을... 네. 그러시면 됩니다.”

“전에 해봤거든.”

축구공 크기의 이 녹색 수정구는 축적된 경험치, 레벨을 측정하는 마법 도구다.

휴대하기 편한 마법 안경보다 훨씬 정밀하게 두 자릿수까지 맞출 수 있다.

“300레벨을 넘기시면 됩니다.”

“간단하군.”

현재 나는 1레벨.

갓난아기랑 똑같은 이 레벨로는 기사L이 정해둔 최저기준치를 통과할 수 없다.

그렇지만,

우우우우웅-!

경험치는 마왕과 교장의 힘이 합쳐져서 탄생한 판타지의 자원.

나 혼자서는 임의로 경험치를 생성할 순 없지만, 이런 조잡한 측정은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

“580레벨...!”

기사L이 경악했다.

친애하는 전우 뇌비우스나 종결자 섹스피어 같은 초월자들은 999레벨을 가볍게 넘어섰지만, 대다수 원주민과 몬스터는 그렇지 않다.

인간은 100레벨만 넘어서도 상위 10%로 분류된다. 그리고 200레벨은 상위 2%쯤 된다.

용사가 직업 특성상 강자들만 찾아다녀서 실감을 못 할 뿐이다.

“다음 테스트로.”

내 레벨을 더 높게 속일 수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검희의 레벨이랑 비슷하게 맞췄다.

이러면 자기랑 비슷한 수준의 상대라고 착각할 테니까.

“이, 이번에는 이 구슬입니다.”

“직업을 보는 도구. 맞지?”

“정확히 보셨습니다, 파르파르 님. 이것은 현자의 탑에 특별주문한 굉장히 귀한 마법 도구입니다.”

“특별주문까지야...”

레벨처럼 직업도 본다!

말은 쉽지만, 마법 도구로는 완벽하게 구현되지 않았다.

분류만 해준달까?

기사L이 구슬 위에 손을 올리려는 나를 제지하며 말했다.

“측정하기 전에 미리 말씀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이 테스트는 어디까지나 참고일 뿐입니다.”

“알아.”

“푸른색은 마법 계열. 붉은색은 전사 계열, 초록색은 생산 계열, 노란색은 지식 계열입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하얀색은 떳떳하고 검은색은 남에게 알리기 껄끄러운 직업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영롱한 빛을 내뿜으면 고귀함을 뜻하며, 색이 짙을수록 자기 직업에 숙련됐음을 의미합니다.”

“안다고.”

“측정 결과가 나쁘게 나왔다고 흥분하는 분들이 있어서 노파심에 미리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래그래.”

“이제 올리십시오.”

나는 드디어 마법 구슬에 손을 올릴 수 있었다.

탁.

이번만큼은 나도 임의대로 조작할 수 없었다.

마법의 구조가 보유한 경험치의 양을 측정한 이전처럼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이이잉- 팟!

결과가 바로 나왔다.

“흐음~?”

“이, 이런 일이...”

다른 색이 침범할 수 없을 만큼 시커멓게 물든 수정구가 흑요석처럼 영롱한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흥미로운걸?

내가 1회차에 ‘용사’란 신분을 감추고 측정했을 때는 반짝반짝 빛나는 분홍색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용사’다.

그런데 뭐가 다른 거지?

반짝이 효과도 1회차보다 훨씬 강렬한 것 같다.

꼴깍!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기사L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흥미로운 결과네.”

“그, 그렇습니다. 남에게 알리기 굉장히 껄끄러우나 고귀한 직업임을 뜻합니다. 본국의 유일한 공작이신 영주님도 이만한 빛은...”

“다음으로 넘어가지.”

“...예.”

그 뒤로 자잘한 테스트가 이어졌다.

아카데미 학생들도 이용하는 장애물을 돌파하고, 까막눈이 아닌지 확인하는 간단한 쪽지시험을 봤다.

그리고 기회가 왔다.

“꺅?!”

“커억?!”

“악?!”

교관이기도 한 기사L을 도와서 학생들이랑 대련했다.

영애에게 도전하는 자들을 활용해서 아카데미 학생들의 실전경험을 쌓는 지능적인 수법이다.

한 번이라도 학생에게 패배하거나 치명상을 입히면 실격!

나는 무난하게 통과했다.

“속이 후련하네.”

“너, 너무해...”

내 아들 앞에서 예쁜 척하던 소녀를 합법적으로 혼쭐내줬다.

너, 정의로운 MAX급 용사님의 며느리가 되고 싶으면 골반부터 더 키우고 와라!

마지막 테스트는 ‘재력’이다.

“파르파르 님. 이번 테스트는 영애께 선물을 전달해서 호감을 사는 기회입니다. 영애께서 그 선물을 받고 마음에 들어하시면 토너먼트를 생략하고 바로 대련하실 수 있습니다.”

“그냥 뇌물이라고 해.”

“허허허!”

기사 L은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얼굴이었지만, 웃음으로 승화했다.

“선물은 이거.”

나는 왼손 중지에 끼고 있던 옥새를 건넸다.

“...진심이십니까?”

미소가 사라진 기사L이 심각한 어조로 질문했다.

왕족의 반지.

이걸 함부로 남에게 넘기면 왕족이라도 처벌받기 때문이다.

나는 상큼하게 답했다.

“내가 그녀를 차지하면 문제없는 것 아닌가?”

▶반짝: 너무나 낭만적이에요...

교생 아가씨가 뭘 좀 아네!

그런데 기사L은 동의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가문의 반지를 맡겼다가 치도곤당한 귀족 자제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나는 달라.”

“그들도 처음에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파르파르 님께 충고드리자면, 현실과 소설은 다른 법입니다.”

“전달이나 해.”

“후회하지 마십시오.”

“로리 백작.”

“로리쿤입니다!”

“그래, 로리 백작. 나도 충고 하나 해줄게. 때로는 현실이 더 판타지 같은 법이야. 명심해.”

토너먼트는 다음날 개최됐다.

관리인 친구는 나흘 뒤를 예상했지만, 지나가던 용사A에게 척추를 잡힌 8명의 사나이가 흔쾌히 신청해준 덕분이다.

운이 정말 좋았다.

자! 로맨스를 계속해볼까?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