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309화 (309/430)

 309화

[21회차] 결승전

“주목해주십시오! 북대륙의 날카로운 장미로 불리는 본 영지의 영애께 청혼하고자 모인 64명의 용사가 입장하고 있습니다! 박수로 환영해주시길 바랍니다!”

“우우우-!”

“우우-!”

“우우우-!”

검희에게 청혼할 기회를 걸고 64명의 남정네가 경쟁하는 토너먼트가 성황리에 개최됐다.

오락거리가 부족한 판타지 세계에서 싸움 구경은, 야만적인 원주민들에게 환영받는 이벤트다.

하지만 공작Q의 영지민들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검희를 차지하려고 모인 시커먼 수컷들은 조금도 환영받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연애한다고 하면, 괜히 심기가 불편해지는 거랑 비슷하다고 할까?

참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천민들이 감히...”

“내가 영주에 오르면...”

“나중에 두고 보자.”

“이 쓰레기들이...!”

구경거리가 된 것만으로도 굉장히 신경 쓰이는데, 푸대접까지 받은 왕족과 귀족들은 바득바득 이를 갈면서 경기장으로 올라왔다.

출전자 대부분이 왕족과 귀족인 건 어쩔 수 없다.

최저기준치 300레벨.

이것만으로도 이미 인류의 상위 0.1%에 해당하니까. 1000명에 1명인 셈이니 많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대다수가 귀족과 기사, 마법사에 몰려있다.

농사, 장사, 낚시 같은 생업에 종사하기 바쁜 평민들은 레벨을 올릴 기회가 거의 없다.

동물, 식물을 살해해도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지만, 평생 도축업을 해온 노인이 20레벨조차 안 되는 게 현실이다.

“추억 돋네.”

4차 교육과정과 5차 교육과정은 세세한 부분에서 달랐다.

아들 카리스를 낳은 엄연한 유부녀인 검희의 나이가 우선 많고, 전투력은 더욱 높았다.

하지만 이 토너먼트 수준은 그다지 올라가지 않았다.

로리 백작은 손녀 같은 검희를 위해 최소기준치를 높게 잡았지만, 그런데도 무려 64명이나 되는 사나이들이 겁도 없이 모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우우우-!”

“우우~!”

“우우우!”

참가자들을 야유하는 관중들의 분위기도 그대로다.

누가 이기든 지든 영주민들의 태도가 일관돼서 참으로 보기 좋다. 누구는 응원하고 누구는 야유하면 기분 나쁘지 않은가?

내 1회차 동료들처럼.

그들은 내가 못 이긴다는 것에 판돈을 걸었었다.

“검희는 내 차지다!”

“하하! 농담도 잘하네!”

“내 검술은 뭐냐면...”

“봉인해둔 나의 힘을...”

다양한 개성의 참가자들이 경쟁자들을 부지런히 떨어트렸다.

상대를 절대 죽이면 안 된다는 승리조건이 있어서 싸움이 밋밋하긴 했지만, 1회차든 지금이든 나는 정정당당하게 싸울 뿐이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53번째 참가자입니다! 북대륙 북부의 추운 웨일로에서 온 사나이! 하피 사냥꾼 쿄우! 웨일로 백작가의 차남이기도 합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주십시오!”

“우우~!”

“우우우!”

“그에 맞서는 54번째 참가자입니다! 오호? 본국의 수도 모스카르에서 오신 분이시군요? 검왕 파르파르! 별명이 대단합니다! 자국민 친구에게 박수 부탁드립니다!”

“우우!”

“우우우-!”

뜨거운 환대를 받으며 시합장 위로 올라선 경쟁자 53호와 정의로운 MAX급 용사님.

1회차 때랑 똑같다.

단, 형평성을 위해 마왕과 용사의 힘은 쓰지 않고 상대해주겠다.

상대의 도발이 들렸다.

“바람처럼 빠른 하피들을 사냥하며 강해진 나는 바람보다 빠르지! 내 속도를 과연 따라올 수 있을까!”

속도에 자신 있는 모양이다.

나도 잘하는 게 있다.

평판 작업!

나는 정의로운 MAX급 용사의 미소를 지으며 회답해줬다.

“안녕? 너의 척추를 걸고 정정당당하게 결투하자.”

“히익-?!”

“바람처럼 빠르게 덤벼라.”

“기, 기권!”

“......”

정말로 바람 같은 친구잖아?

경쟁자 53호는 내가 척추를 잡을 틈도 없이 항복해버렸다.

젠장! 제대로 허를 찔렸군!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에... 하피 사냥꾼 쿄우가 기권하면서 검왕 파르파르가 부전승으로 32강에 올라가게 됐습니다! 쟁쟁한 경쟁자들보다 체력을 아낄 수 있으니 운이 정말 좋군요.”

“우우-!”

“우우우!”

첫날 대결은 허무하게 끝났다.

마스터 몰랑께 배운 기술들의 정수를 보여줄 생각이었거늘!

써볼 기회조차 없었다.

나는 공작Q의 아카데미에서 마련해준 임시숙소에서 삼엄한 경비 속에 하룻밤을 보냈다.

참가자들은 무료로 부상을 치유하고 장비를 수선하면서 내일 있을 32강을 위해 만전의 태세를 갖췄다.

그러나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싸움은 시합장 위에서만 벌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크윽! 배, 배가...!”

“수프에 독이...!”

“누가 이런 짓을...!”

참가자 중 일부가 설사를 호소하며 치유사를 찾았다.

매수된 요리사 중 누군가 수프에 설사약을 탄 모양이지만, 주최자인 공작Q의 아카데미 심판관은 ‘자기 관리도 실력’이란 식으로 상황을 일축했다.

하룻밤 사이에 3명이 기권.

300레벨이 넘은 친구들이 무슨 설사냐고 하겠지만, 300레벨짜리 인간이 있으면 300레벨짜리 몬스터의 똥으로 제작한 설사약도 얼마든지 존재하는 법이다.

32강이 시작됐다.

“기권하겠소!”

16강이 시작됐다.

“기권이요!”

8강이 시작됐다.

“기권합니다!”

“음...”

4강이 시작됐다.

“기- 꾸엑?!”

“드디어 한 놈 잡네!”

정의로운 용사의 미소에 감격한 친구들이 기권해주는 건 고맙지만, 때로는 이러한 호의들이 용사님을 난감하게 만든다.

“사기 치는 것 같은데...”

“부전승만 몇 번째야?”

“검왕 파르파르. 수상해.”

“저거, 사기꾼 아니야?”

다행히 이번에는 확실하게 한 놈의 척추를 보냈기 때문에 의혹이 많이 사그라들었다.

이 용사님의 평판은 정말...

과한 호의가 역으로 민폐란 사실을 이 무식한 판타지 원주민들이 언제쯤 이해할까?

6번째 날.

결승전이 시작됐다.

“부전승으로 올라온 전설의 사나이입니다! 검왕 파르파르! 여기에 맞서는 경쟁자는 먼 동대륙에서 온 신비의 검사 포로리! 이 싸움의 승리자는 내일, 본 영지의 꽃이자 검이신 영애께 도전하게 됩니다!”

“우우우!”

“우우!”

“우우우~!”

사회자와 관중들의 환호 속에서 정의로운 MAX급 용사님과 하찮은 도전자A가 마주 보고 섰다.

상대는 그래도 강력한 우승 후보.

예의상 능력치를 확인해봤다.

▷종족: 휴먼

▷레벨: 451

▷직업: 용자(전원=1레벨)

▷스킬: 검술S 쌍검A 민첩A

▷상태: 경계, 준비

결승전까지 올라온 자답다.

직업은 용자.

용사의 모험 초창기에 마주쳤다면 절대적인 강자로 보이리라.

하지만 지금은?

준비운동조차 되지 않는다.

“내 이름은 포로리. 곧 검희를 차지하게 될 남자다. 검왕 파르파르. 어떤 비열한 수로 여기까지 올라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얄팍한 수는 내게 통하지 않는- 흡!”

“호오?”

주절주절 떠드는 도전자A에게 기습을 가했던 내 얼굴에 절로 의외란 표정이 지어졌다.

이걸 피하네?

온몸의 힘을 빼고 450레벨 수준의 육체로 상대해주긴 했지만, 저리 손쉽게 피할 줄은 몰랐다.

그러나,

“커어억-?!”

두 번째는 없다.

건방지게 반격을 준비하던 도전자A의 경추(頸椎) 6번과 7번 사이가 자석처럼 내 오른손 손아귀에 착착 감겼다.

그대로 대갈통 찍기!

콰직-!

나는 도전자A의 목을 예쁘게 붙잡은 상태로, 그의 머리를 시합장의 단단한 바닥에 찍었다.

오! 두개골이 제법인걸?

“무척 의외였다.”

“꾸르르르...”

“나, 검왕 파르파르를 상대로 이렇게 오랫동안 버틴 자는 네가 처음이다. 자랑스러워해도 돼.”

“......”

정의로운 MAX급 용사님의 칭찬에 감격한 도전자A는 말이 없었다.

하하! 부끄러워하긴.

“시합 종료! 모두가 치열한 접전을 예상했지만, 검왕 파르파르의 기습에 대응하지 못한 동방의 검사 포로리가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최종우승자는 검왕 파르파르입니다! 큰 박수로 이 최후의 도전자를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뭐...”

“크흠...”

짝짝짝!

짝짝!

그래도 최종우승자에게는 선심 썼다는 듯이 축하 박수를 보내는 영지민들.

그리고 결승전만큼은 교육을 겸해서 반쯤 의무적으로 보러 오는 기사지망생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내 아들도 있었다.

“녀석. 놀란 모양이네.”

정의로운 MAX급 용사님의 움직임을 또렷하게 보고, 완벽하게 이해한 게 틀림없다.

재능 하나는 진짜 미쳤군.

내 척추를 닮았으니 어련할까!

▶두근: 지루한 액션이 끝나고 드디어 로맨스 파트네요.

어? 교생 아가씨는 액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네?

용사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꿈이라길래 이쪽이 취향일 줄 알았다.

▶곤란: 액션을 싫어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로맨스를 좀 더 좋아할 뿐이랍니다. 그렇다고 일을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에요! 취향만큼은 각자가 자신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매우 지당한 말이야, 교생 아가씨!

▶수줍: 그리고 정의로운 미소를 지으며 싸우시는 강한수 생도님은 액션과 로맨스를 고루 갖추셨다고 생각해요. 내 여자를 위해 근육 위로 땀을 흘리는 남자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니까요.

교생 아가씨를 위해 땀을 흘려줄 수도 있지! 언제든 말만 해!

“저기...”

“왜?”

“파르파르 님. 관중들에게 답례로 손을 흔드시는 건 좋지만, 포로리 님의 목은 놔주실 수 있겠습니까? 숨넘어가기 직전이십니다.”

“아차차.”

외면도, 내면도 아름다운 교생 아가씨랑 대화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라서 깜빡했다.

털썩.

도전자A가 맥없이 쓰러졌다.

450레벨도 넘는 녀석이 저렇게 허약해서 어쩌자는 거야?

“콜록콜록!”

“용자 친구.”

“헛! 그 사실을 어떻게 아는... 콜록콜록!”

“직업만 믿고 까불지 마라.”

“......”

“검희는 그런 편법으로 이길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검사가 아니니까.”

공명정대한 대결을 마친 용사님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다음 낭만을 찾아서.

*시간 절약을 위해 곧바로 ‘청혼 이벤트’로 넘어가면 좋겠지만, 이 토너먼트는 하루씩 여유를 두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나처럼 무혈입성(無血入城)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살을 베이고, 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흘러내린다.

이게 일반적인 대결.

날붙이를 들고 싸우면서도 팔다리가 멀쩡한 건, 유아용 만화와 소설에서만 있는 일이다.

단, 어디든 예외가 있다.

“큐레일 공작 각하의 여식이며, 판타지아 북대륙 최고의 미녀, 오우거를 954마리 단독사냥, 북대륙 3대 기사단으로 이름 높은 흑장미 기사단의 단장, 북대륙 동부의 수호자, 동부군단 사령관, 북부군단 부사령관, 몰랑기사단 평기사, 몰랑교 대사제, 몰랑교 2급 성기사, 몰랑명예훈장 1041번째 수상자, 왕국 수도 모스카르 여신의 호위기사, 큐레일 영지의 수호신, 마법검 아이어의 주인, 서리여왕 엘쉬의 친우, 설산의 정복자, 얼음공주의 이해자, 큐레일의 살아있는 솔로늄, 아이스 트롤 학살자, 외로우나 치명적인 검은 장미, 2000년 만에 환생한 전설의 검희! 카이사 큐레일 백작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와아아아!”

“꺄호오오!”

“와아아아!”

영지민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시합장에 입장하는 검희.

귀부인의 드레스와 기사의 갑옷을 반반씩 섞어놓은 듯한 검은색 전투복이 인상적이다.

외모와 몸매가 전혀 안 드러나는 갑옷으로 완전무장하려는 딸을 공작Q가 말려서 타협한 것이다.

옅은 붉은빛이 감도는 금발은 판타지 세계의 귀족 아가씨답지 않게 어깨 부근에서 싹둑 잘렸다.

전형적인 여기사.

그러나 저 강인하면서도 아름다운 외모에 속으면 안 된다.

자기 부주의로 알몸을 보여놓고, 하나뿐인 용사님께 진심으로 칼부림하는 미친년이다.

자! 나도 가볼까.

“카이사 큐레일 백작님께 구혼하려는 수컷이 입장합니다. 수도 모스카르에서 온 검왕 파르파르!”

“우우-!”

“우우우!”

“우우!”

정의로운 MAX급 용사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우매한 관중들.

이대로 싸워도 승패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지만, 로맨스 분위기를 내보기로 했다.

“마약정령.”

“히히히! 아이들아! 나와 함께 마약용사를 응원하자!”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뿅...

최초의 정령이 부르자마자 수많은 정령이 허공에 출현했다.

땅, 불, 바람, 물, 마음.

하급, 중급, 상급, 최상급, 왕.

그들은 나를 응원하기 위해 시합장을 가득 채웠다.

“......”

“......”

말문을 잃은 판타지 원주민들. 하지만 그것도 잠깐뿐이었다.

내 공성추에 앉아있던 마음의 정령왕이 자릿세를 냈다.

이걸 고상하게 마인드컨트롤(Mind Control)이라고 부른다.

“검왕 멋지다!”

“힘내라! 파르파르!”

“꼭 이기세요!”

“파르파르 만세!”

나는 관중의 열렬한 환호와 축복을 받으며 시합장으로 걸었다.

그리고 검희랑 대치하고 섰다.

“여어~”

“...검왕이라고요?”

“그런데?”

판타지 경력 200년의 MAX급 용사님의 예상대로 도발이 확실하게 먹혀든 것 같다.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검희의 얼굴이 분노로 새빨갛다.

그녀가 말했다.

“당신의 야성적인 얼굴이랑 잘 어울리는 별호네요, 파르파르 씨...”

“...음?”

이년이 뭐라는 겨? 미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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