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화
[21회차] 몰랑교의 성기사
▶공감: 교직을 목표로 하는 교생으로서, 학도를 편애하면 안 되지만요. 악귀도 겁에 질릴 강한수 생도님의 얼굴은 정말 최고로 잘생기셨다고 생각해요. 여기에 억지스럽지 않은 표정이 마침표를 찍었고요.
과분한 칭찬 고마워! 몸도 마음도 최고로 예쁜 교생 아가씨!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나를 야만인 취급하는 건방진 검희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하! 야성적인 얼굴이라고?
매연으로 숨 막히게 아름다운 고향별 지구의 문화시민에게 그딴 막말을 하다니!
명백한 도발이었지만, 정의로운 용사님은 당해준 척하기로 했다.
“마약용사. 솔직하지 못하다.”
“시끄러워.”
“히히히!”
어떤 식으로 싸우면 좋을까?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를 써도 좋지만, 그건 너무 눈에 띈다. 관중석 안에 ‘용자’가 있다면 나를 알아볼 가능성이 있다.
완벽한 용사의 성검도 안 된다.
이건 앞으로 내 주력 무기가 될 텐데, 여기서 선보이면 마왕이랑 동일인물임을 들통나고 만다.
맨손?
그건 안 될 말이다.
검희의 검기는 강력하니까. 이걸 맨손으로 막아버린다면 판타지 원주민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터.
게다가 이 대전은 ‘검술로 검희를 쓰러트린 자’라는 조건이 있다.
정작 그 검희는 검술보다 압도적인 물량의 검기로 정말 무식하게 싸우지만, 따지지 말자.
결정했다.
“혼돈으로 파괴된 망각의 별에서 탄생한 마지막 검이여. 공허한 사랑과 우정을 베어버릴 꿈과 희망이여. 그 거룩하고도 거룩한 이름을 기억하는 계승자가 이렇게 찬미하노니, 태초부터 내려온 맹약에 따라 그 전설을 입증하라! 성검 뉴클리온!”
뾰옹-!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와 완벽한 용사의 성검이 생기고부터 찬밥 신세가 된 성검 뉴클리온.
나는 마신의 창고 구석에 넣어둔 구시대의 유물을 꺼냈다!
▶난감: 강한수 생도님께 잘 어울리는 멋진 디자인의 성검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나는 마신의 창고 양지(陽地)든 자리에 고이 모셔둔 신시대적인 멋진 신물을 꺼냈다!
성검 뉴클리온.
요정 용사 아무개가 마왕 페도나르를 쓰러트리기 위해 사용했던 강력한 성검이다.
변변찮은 주인을 만나서 활약하지 못했던 성검 뉴클리온은, 정의롭고 공명정대한 MAX급 용사 강한수를 만나서 빛을 보게 된다.
그리고 현재, 이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성검은 MAX급 검왕 파르파르의 부름으로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흠. 호응이 별로군.
정령들아. 집에서 쫓겨나기 싫으면 얼른 일해라.
“오오...!”
“와아아-!”
“대박!”
관중들의 환호와 정령들의 축복이 멋진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흠. 이제 좀 낫군.
“성검...”
“북대륙의 미친- 도록 강한 검희를 상대하는데, 평범한 무기를 쓸 수는 없으니까.”
“그렇군요.”
“자! 탐색전을 끝내지.”
“공감합니다.”
나는 능력치의 레벨과 스킬을 봉인하고 마스터 몰랑의 가르침으로 진화한 육체만 쓰기로 했다.
약한 척?
나는 그런 유치한 코스프레를 매우 싫어하지만, 이 대결은 목숨을 건 싸움이 아니다.
나름의 의미가 있다.
▶두근: 강한수 생도님. 무슨 의미예요? 대단히 낭만적인 이유일 것 같아요.
물론이야, 교생 아가씨!
나는 1회차 때, 지금이랑 같은 방식으로 검희를 쓰러트리고 아내 대신 동료로 맞이했다.
용사니까.
어머니의 테니스라켓이 기다리는 지구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기에 공작 가문의 데릴사위로 안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동료가 된 그녀는 마지막까지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나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악마... 라고 했던가.”
1회차의 마지막 날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내 기습을 늘 경계한 검희는 마지막까지 저항하다가 쓰러졌다.
용병왕, 현자, 요정왕.
이 셋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마왕 페도나르를 쓰러트리기도 전에 내가 자신들을 공격할 줄 몰랐다.
마왕을 동료 없이 토벌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마왕을 쓰러트리지 못하면 세상이 멸망하고 용사도 죽는다.
그렇기에 내가 ‘절대’ 자신들을 그전에 해코지 못 한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나는 편견을 깼다.
그리고 전부 죽였다.
탁.
이렇게 대지를 박차며, 동료를 향해 빠르게 질주했다.
마법에 약했던 나는 현자의 64중첩 보호막을 깨부수고 가장 먼저 처리했다.
이어서 정령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요정왕 실비아를 죽였다.
정령에게 명령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고, 자체적인 방어가 약했기에 매우 수월했다.
다음이 검희였고, 마지막이 용병왕이었다.
가장 높은 방어력을 자랑하던 기사왕, 근성으로 끝까지 버티는 검왕 알렉스의 빈자리를 채운 용병왕은 매우 성가신 탱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희는 피해냈다.
내가 수없이 돌려본 시뮬레이션에서 어긋한 움직임을 보였다.
용사의 기습에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했다.
바로 지금처럼.
“빠르시군요.”
검희는 중거리 공격수. 그녀의 검기는 일반적인 마법처럼 거리의 제약을 받진 않지만, 근접전을 선호하진 않는다.
접근을 허용하지 않고 물러난다.
나는 계속 따라붙었다.
중거리를 선호하는 검희에게 일방적인 타격을 받지 않으려면 가까이 붙어야 하니까.
팟.
그러나 내 예상대로 검희는 근접전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등을 보이지 않은 채 빠르게 뒷걸음치면서 수십 갈래의 검기를 줄기차게 쏘아냈다.
저 수법을 나는 잘 안다.
“검기 짤짤이.”
검희가 가장 애용하는 전술이다.
준비시간이 없고 사거리가 길어서 위력은 그녀의 기술 중에서 가장 약하지만, 상대의 사정권 밖에서 일방적인 중거리 공격으로 말려 죽이는 합리적인 방식이다.
캉, 캉, 캉.
나는 성검 뉴클리온으로 날아드는 검기를 막아내면서 거리를 좁히고자 애썼다.
하지만 검희의 견제와 기동력이 만만치 않았다. 공간이 제약된 결투장이 아니었다면 지루한 숨바꼭질이 됐을 것이다.
서걱, 서걱, 서걱.
엄한 결투장 바닥만 검기에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헛!”
1회차 때랑 똑같았다.
자기가 결투장 구석으로 유인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챈 검희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겠지.
그녀랑 거리를 좁히기 급급한 다른 검사랑 달리, 나는 싸움을 길게 보면서 큰 그림을 그렸다.
지금부터는 근접전이다.
캉!
카앙!
검과 검이 맞부딪혔다.
검희의 검은 그녀의 막대한 검기를 받아들여도 과부하가 안 걸리도록 특별제작됐다.
마법검 아이어.
능력치가 오르면 여기에 걸맞은 성능의 무기로 갈아타는 게 보통이지만, 검희의 마법검 아이어는 ‘성장형 무기’ 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녀랑 함께했다.
“전부 똑같군.”
“...예?”
“너무나 당연한가.”
짤짤이에서 접근전에 돌입한 검희의 검기가 폭포수처럼 솟구쳤다.
그 위력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정의로운 MAX급 용사님은 겁먹지 않고 깊숙이, 그녀의 가슴 쪽으로 찌르고 들어갔다.
전개가 똑같다.
이 공격을 막지 못한 검희는 피를 뿌리면서 쓰러지고, 나는 후속타로 그녀의 심장을 찌른다.
분명히 그럴진대,
“...몰랑교전 검술 제3식. 몰랑일체(Mollang一體).”
“뭣...?”
여기서 왜 그 위대한 이름이...?
주문처럼 짧게 중얼거린 검희의 움직임이 급격히 빨라졌다.
그녀는 가슴 깊숙이 찌르고 들어온 성검 뉴클리온을 가볍게 피한 후, 역으로 내 가슴을 향해 마법검 아이어를 사선으로 휘둘렀다.
오! 미친!
옛날의 검희를 떠올리면서 너무 얕잡아봤다.
검왕 알렉스와 망령왕 섹스피어가 유부남이 되면서 무지막지하게 강해졌듯이, 검희도 강해지지 말란 법은 없었다.
간과했다.
판타지아 북대륙에 몰랑교가 널리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챌 기회는 분명히 있었다.
몰랑기사단 평기사
몰랑교 대사제
몰랑교 2급 성기사
몰랑명예훈장 1041번째 수상자
내 1회차 때는 없었던 검희의 경력과 지위다.
4차 교육과정에서 5차 교육과정으로 넘어오면서 새롭게 추가된 게 틀림없다.
북대륙의 모든 국가가 몰랑교를 국교로 삼았으니까. 공작 가문의 영애인 검희가 몰랑교의 중책을 맡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아아! 위대한 마스터 몰랑! 당신은 언제나 이 제자의 방심을 꾸짖으시는군요!
내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기습적으로 훅 들어오신다.
“참으로 몰랑하군.”
그러나 마스터 몰랑의 제1사도인 내 앞에선 가소롭다.
뇌를 활성화해주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이 콸콸 쏟아져 나온다.
여기서 쏟아지는 막대한 명령을 수행하는 근육이 과부하로 고통을 호소했지만, 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이 억제해준다.
이렇게 무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검희의 반격이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또한, 마왕과 용사의 힘을 사용하지 않고 동등하게 ‘몰랑 vs 몰랑’으로 이기고 싶었다.
불끈!
눈 바깥쪽의 오목하게 들어간 부위인 태양혈(관자놀이)이 솟아나고, 삼두근과 대퇴근이 평소보다 크게 부풀어 올랐다.
몰랑에는 몰랑으로.
캉-!
빨라진 검희보다 더욱 빠르게 움직여서 마법검 아이어를 쳐냈다.
그리고 훤히 드러난 그녀의 복부를 힘껏 걷어찼다.
퍼엉-
북 터지는 소리가 나면서 검희가 결투장 바닥을 굴렀다.
드드드득-
장외(場外)로 떨어지기 전에 칼날을 바닥에 박아서 버텨냈지만, 맷집이 취약한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콜록콜록!”
“깜짝 놀랐어.”
나처럼 과학적으로 접근하진 않았지만, 확고한 신앙으로 자율신경계를 억누르고 제어했다.
자기최면이라고 할까?
수세식 변기의 혜택을 누리는 북대륙 원주민들이 얼마나 마스터 몰랑을 따르는지 알 수 있었다.
정말 강하군!
“윽! 파르파르 씨. 당신은 강하고 비겁할 정도로 잘생기셨어요. 깊디깊은 무저갱 같은 눈빛과 살인적인 미소로 경쟁자들을 제압하시는 모습을 본 뒤부터 제 심장이 이상해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패배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어요.”
“이유라...”
결혼을 거부하려는 걸 보니, 스스로 ‘누군가의 아내’라고 생각하긴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내 공격을 받은 몸으로 비틀비틀 일어선 검희의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다.
▷종족: 휴먼
▷레벨: 999+
▷직업: 기사(충절→불굴↑)
▷스킬: 검기ZZ 불굴ZZ 매력Z
내공Z 영재MAX···
▷상태: 탈골, 골절, 피로, 흥분,
의지···
외부인들에게 500레벨대로 알려진 검희의 레벨은 실제로 999레벨을 돌파한 초월자다.
소문만 믿고 도전하는 수컷들은 밤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헛된 희망을 품은 셈.
물론, 영혼이 분할되어 약해지는 초등교육과정의 검희라면 이처럼 강하진 못하리라.
그래도 내 상대는 아니다.
단 한 번의 발차기로 척추가 부러진 검희는 검을 지팡이 삼아 일어서는 게 한계다.
그때,
우드득, 우득.
검희의 몸에서 척추가 맞닿는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폭.
지팡이처럼 쓰던 마법검 아이어를 땅에서 뽑은 그녀는 허리를 곧게 세웠다.
검희의 능력치 상태에서 ‘골절’과 ‘탈골’이 말끔히 사라졌다.
내 200년 내공의 허리디스크를 자력으로 치유했다고?
보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파르파르 씨. 미안합니다.”
“...뭐가?”
“이 싸움은 검술대결입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을 이기기 위해 봉인해둔 몰랑교의 힘을 사용했어요.”
“그, 그렇게 되나?”
나는 마스터 몰랑의 가르침을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했는데...
척.
검을 세운 검희가 말했다.
“지금부터는 검희가 아닌 몰랑교의 성기사로서 파르파르 씨를 상대해드리겠습니다. 결혼 안 하려고 애쓰는 철부지 아가씨처럼 추한 꼴을 보이게 됐지만, 저에게는 이미 마음을 준 사내가 있습니다.”
“...몸은?”
정말로 궁금해서 그래!
얼굴이 새빨개진 검희가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모, 몰랑교 검술 제4식 몰랑신검(Mollang神劍)!”
쏴아아아!
마법검 아이어의 칼날을 중심으로 부채꼴 모양의 검기가 하늘 높이 솟구쳤다.
검희의 능력치를 넘어선 힘.
이 정략혼 이벤트는 그녀의 영혼이 교실 숫자만큼 분할돼도 깰 수 없을 것 같았다.
내연남 빼고.
나는 봉인하진 않았지만, 여태 사용하지 않았던 힘을 꺼내들었다.
“물의 정령왕.”
뿅!
온종일 내 왼쪽 겨드랑이에서 뺨을 비비적대는 물의 정령왕이 검희의 제모(除毛)된 깨끗한 겨드랑이로 수분처럼 숨어들었다.
몰랑한 검기를 잔뜩 머금은 마법검 아이어를 모아쥔 양손을 머리 위로 번쩍 들고 있던 그녀는 이 정령왕의 침투를 막지 못했다.
“아으읏~?!”
효과는 굉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