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311화 (311/430)

 311화

[21회차] 정말로 닮았네!

“한눈 팔 때가 아닐 텐데?”

“아...!”

내가 검희에게 알려준 이유는, 이미 늦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단단한 요추(腰椎) 4번과 5번 사이에 왼팔을 두르고, 오른손으로 턱끝을 올렸다.

그리고 입술을 포갰다.

“흠.”

“우읍-?!”

파시시시시...

검희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면서, 결투장을 통째로 파괴할 기세였던 검기도 흐지부지 사라졌다.

대결은 그것으로 종료.

“......”

“......”

“......”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불패를 자랑했던 검희가 드디어 패배의 쓴맛을 봤기 때문이다.

1회차 때도 이러했다.

단, 당시의 나는 처절한 진흙탕 싸움으로 유도해서 이긴 탓에 관중들로부터 비난을 많이 받았었다.

이기면 된 거 아닌가? 음?

우득!

얌전히 있어.

나는 검희의 척추를 다시 조용히 시킨 후, 정의로운 MAX급 용사님의 200년 내공을 사용했다.

“쓰읍!”

“읏- 자, 잠시만...!”

“씁- 왜?”

“이 능숙함은, 설마...?”

“......”

나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저 정의로운 용사님의 미소를 지었다.

챙그랑.

여전히 손에서 놓고 있지 않았던 마법검 아이어를 바닥에 떨어트린 검희가 내 목에 양팔을 휘감았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먼저 내 입술을 훔치며 호응했다.

...마음의 정령왕. 노래 틀어.

“와아아!”

“파르파르 짱이다!”

“검왕 만세!”

“행복하게 사세요!”

“꺄오오옷!”

정의로운 검왕과 폭력적인 검희는 우매한 원주민들의 축복을 받으며 성대하게 시합을 마쳤다!

▶훌쩍: 정말 감동적이에요.

이 정도는 기본이지! 로맨스를 잘 아는 교생 아가씨!

*

검희의 태도는 무척 이상했다.

1회차 때는 알몸 좀 보였다고 칼부림하는 미친년이었는데, 지금은 노출증이 의심스러울 만큼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흠. 뭐든 정상은 아니군.

귀족들의 흔한 예행행사인 약혼식을 생략하고 곧바로 결혼식을 재촉한 것도 검희였다.

여전히 감이 좋다.

이 시간이 오래 가지 않으리란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파르파르. 그 이상한 반지, 빼면 안 돼요?”

“안 돼.”

검희는 내 11번째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무척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녀는 속도위반을 해서라도 둘째를 간절히 바라는 눈치였지만, 이 불완전한 세상에 힘없는 생명을 또 남길 순 없었다.

책임, 희생.

용사라면 누구나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어머니. 저는 이 남자를 아직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공작Q의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아들 카리스.

소년의 티를 슬슬 벗어나는 중인 녀석은 공작Q가 데려온 사생아, 검희의 남동생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가문의 후계자다.

원래는 무남독녀(無男獨女)였던 검희가 데릴사위를 얻어서 가문을 계승하게 되어있었지만, 그녀가 일찍 아들을 낳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공작Q는 아직 정정하고, 손자 카리스는 훌륭하게 자랐다.

여성 공작에 불만을 품던 일부 가신들이 쏙 들어갔고, 검희도 자기 아들이 가문을 잇는 것에 일말의 불만도 없었다.

카리스를 사생아라고 착각한 순혈주의자들이 있지만, 공작Q가 따로 면담해서 해결한 듯했다.

“크리스.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 엄마의 얘기를 들어주세요.”

“아니요. 듣고 싶지 않습니다.”

“크리스!”

“소자(小子)는 가슴이 찢어질 듯이 괴롭습니다. 제 사랑만으로 부족하셨습니까?”

“제발 들어주세요.”

“그리고 그 고분고분한 말투는 뭡니까? 아! 새 남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러시는 겁니까?”

“...죽고 싶나요?”

“이제 좀 평소 같으십니다.”

모자(母子)가 서로를 노려보며 다투기 시작했다.

시시콜콜한 과거사까지 막 튀어나오면서 제삼자가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도 검희가 더 어른이었다.

흥분을 가라앉힌 그녀는 아들에게 차분히 얘기했다.

“크리스, 잘 들으세요.”

“.....”

“이분이 당신의 친아버지예요.”

“거짓말이 심하십니다! 저랑 하나도 닮지 않은 이 남자가 제 아버지라고요? 저보다 이 남자가 더 좋다고 그냥 말씀하십시오!”

“이 엄마가 거짓말한 적 있나요?”

“많진 않아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제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황제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걸 지금 믿으라는 겁니까?”

“그건 사실이에요. 꿈에서 본 그분은 정말로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늠름하신 분이었어요. 그분이 응애라고 한 번 울부짖으시면 북대륙의 모든 신민이...”

“됐습니다! 그 얘기는 어릴 때부터 귀 따갑게 들었습니다!”

사춘기 아들 때문에 고생하네!

검희가 무슨 말을 해도 카리스는 진지하게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둘의 대화는 아까부터 쭉 평행선이었다.

나는 그것을 잠자코 지켜봤다.

무척 답답했다. 내가 끼어든다고 해결될 것 같지 않았으니까.

“쑥떡이 아쉽네.”

아들 카리스의 반항기를 보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내가 중앙대륙에서 시작하여 북대륙 정벌에 나섰을 때, 북대륙 연합국에 소속된 청년을 보았다.

소름 돋을 정도로 나랑 척추가 닮았던 까닭에 보자마자 내 친아들임을 눈치챘다.

▶당혹: 전에도 질문드렸던 것 같은데, 그게 구분이 되나요?

물론이야, 교생 아가씨!

그나저나...

나는 어머니의 테니스라켓 아래에서 훌륭하게 자랐다.

하지만 검희는 아들의 조기교육에 실패한 것 같다. 그렇다고 나무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카리스의 아버지인 나는 아예 옆에 없었으니까.

뭐라고 할 자격이 없다.

그렇지만,

“어이, 시끄러운 도련님. 주둥이만 나불거리지 말고 제대로 하는 게 어때? 그 훌륭한 척추는 장식품이야? 싸워서 내게 이기면 이 결혼을 무효로 해줄게.”

“...진심입니까?”

“거짓말할 필요는 없지. 애초에 약자가 네 아버지 노릇을 할 수 있을까? 얼마 못 가서 암살- 그래, 사고로 죽을 텐데.”

“그, 그런 잔혹한 생각까지는...”

당황한 카리스가 뻘쭘한 표정을 지으며 주춤거렸다.

하지만 내가 거짓말하고 있지 않다는 건 확실히 인지한 듯했다.

아직 어려서 순진하긴 해도 아둔하진 않았다.

나는 대답을 재촉했다.

“할 거야?”

“합니다.”

“좋아. 기한은 결혼식 전까지. 언제든 도전하도록.”

“그러면 당장 하겠습니다!”

예상대로랄까?

내 아들 카리스는 검희를 닮아서 무척 성급했다.

▶난감: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래? 똑똑한 교생 아가씨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팔불출 할아버지 공작Q나 환경이 요인인 모양이다.

▶당혹: 그... 네.

*

나와 카리스는 검희의 전용수련장 정중앙에 마주 보고 섰다.

약 220세와 15세의 싸움.

내 아들이 소년만화 주인공이라면 이 격차를 좁히고 승리하겠지만, 현실은 냉혹한 법이다.

“와라.”

“후회할 겁니다.”

“말이 많네.”

“원래는 어머니를 놀라게 해드리려고 숨겨둔 힘이지만, 당신을 쓰러트리고 어머니를 되찾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오냐.”

쫑알대는 아들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궁금하긴 했다.

검희에게도 비밀로 한 힘이라?

처음 만났을 때는 그런 게 없었기 때문에 더욱 궁금했다.

훌러덩.

아비에게 덤비며 본격적으로 콩가루 집안 루트를 타겠다던 카리스가 갑자기 상의를 벗었다.

스트립쇼?

그렇진 않았다.

우득, 우드득, 펄럭~!

소년의 등허리에서 뼈로 된 날개 1쌍이 솟아났다.

박쥐의 날개처럼 길게 발달한 날개뼈 사이에는 연분홍색 피막이 이어져 있었으며, 척추처럼 생긴 날개뼈는 가죽으로 덮여있지 않고 훤히 노출되어 있었다.

닿는 모든 악(惡)을 찢어발기는 정의로운 가시는 없었다.

그러나,

“저건 분명...”

“북대륙에서 2000년 전부터 내려온 전설입니다. 위대한 마스터 몰랑의 제1사도였던 용사는 세상에 다시 없을 MAX급 선구자였다. (중략) 수세식 변기를 널리 보급하며 세상을 이롭게 하던 그는 마왕 페도나르를 마침내 쓰러트린다. 하지만 마왕의 저주를 받은 용사는 타락하여 두 번째 마왕이 되니, 그 이름은 마왕 파르마몬. 그에게는 악마의 뿔이 없었다. 하지만 등에 돋아난 흉악한 뼈의 날개는 대악마조차 벌벌 떨며 조아리게 하더라. 날갯짓 한 번에 용들이 쓸려나가고, 두 번에 남대륙 거인왕이 무릎 꿇었으며, 세 번에 동대륙이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중략) 두려워하고 또 두려워하라. 공포의 마왕 파르마몬의 날개를. 그 절망을 보고도 살아남는 자여. 자신의 능력치부터 확인하라. 행운 스킬 숙련도가 대폭 상승했을 테니.”

“호오...”

현실이랑 다른 부분도 있지만, 내 발자취를 각색해서 널리 퍼트린 작가나 음유시인이 누군지 궁금했다.

만나면 부드럽게 척추를 만져주고 싶기 때문이다.

카리스가 선언했다.

“당신이 제 친아버지가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저는 어머니의 꿈에 나타난 마왕 파르마몬의 후손. 백마 탄 왕자님이랑 결혼하길 꿈꾸던 소녀의 미래를 짓밟고 태어난 불행의 상징입니다. 그렇기에 어머니를 속이고 친아버지를 자칭하는 당신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크리스!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그리고 백마 탄 왕자라니... 내게 못생긴 얼굴을 들이밀던 그 멍청이들을...”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어머니에게 청혼한 왕자들은 모두 북대륙 최고의 미남들이었습니다!”

“귀부인 치마폭 아래에 숨게 생긴 그들은 내 취향이 아니에요. 파르파르 님이야말로... 흠흠.”

“어머니! 정신 차리세요!”

“매우 멀쩡해요. 크리스가 이 엄마에게 비밀이 있었다는 사실에 살짝 충격을 받았지만요.”

“그, 그건... 큭! 아무튼!”

검희랑 말싸움에서 패배한 아들 카리스가 나를 돌아봤다.

나도 마찬가지로 녀석을 관찰하면서 내심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종족: 카오스 휴먼 듀얼코어

▷레벨: 249

▷직업: 왕자(국력=기력↑)

▶스킬: 신성ZZ 마기ZZ ■■Z

영재Z 만능MAX···

▶상태: 개방, 마족, 신족

멋진 능력치다.

귀여운 황제 시절의 내 MAX급 유전자를 고스란히 계승했다.

블랙박스까지 완벽하게 가져갈 줄은 몰랐지만, 이대로 쭉 성장한다면 5000년 안에 나를 뛰어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무시무시하군.

아들은 내가 50살에 이룩한 경지를 고작 15살에 해냈다.

▶반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강한수 생도님이 닦아놓은 길을 물려받은 것뿐이니까요. 크리스의 노력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강한수 생도님을 뛰어넘는 날은 오지 않을 거예요. 틀리면 제가 위로도 겸해서 데이트해드릴게요~

오오! 아들아! 힘내렴! 척추가 닳아서 없어질 정도로 노력해서 아비를 뛰어넘는 거다!

▶감탄: 그리고 정말 놀랐어요. 척추가 닮았다고 하셨을 때는 반쯤 농담인 줄 알았는데, 척추에서 돋아난 저 날개를 보니 확실하네요. 두 분이 정말 닮았다는 것을요.

교생 아가씨.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척추가 닮았다고.

하지만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까지 계승할 줄은 몰랐다.

하위호환이긴 하지만.

▶두근: 강한수 생도님도 이젠 날개를 생성하실 건가요? 그리고 말씀하셔야죠. I am your father.

예쁜 교생 아가씨도 비겁한 마누라처럼 로맨스 영화와 소설을 너무 많이 본 것 같네!

나는 카리스에게 끝까지 날개를 보여주지 않을 거다.

그래야 ‘저 사기꾼에게서 어머니를 반드시 구한다!’라는 마음으로 꾸준히 노력할 테니까.

이것이 내가 아들에게 주는 가르침이다.

“정말 멋진 날개네.”

“저주받은 마왕의 날개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힘을 소중히 여겨라. 인생에 불필요한 탈모를 물려받아도 묵묵히 효도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데.”

“...간다.”

정의로운 용사님의 논리에 반박하지 못한 카리스가 돌진해왔다.

펄럭!

날개가 추진력을 더했다.

정령의 가호를 받는 내 앞에서 가소로웠다. 공기저항 때문에 역으로 방해될 테니까.

그런데 최초의 정령이 놀란 어조로 이상한 말을 했다.

“마약용사! 내 아이들이 선택장애에 빠져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하아?”

정령들이 나를 사랑하는 원천인 호르몬까지 복사해간 모양이다.

내 척추를 닮은 카리스가 뿌듯했었는데, 슬슬 날도둑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비의 힘을 보여주지.

이건 검술시합이 아니기에 검을 쓰지 않는다.

스윽-

오른손이면 충분하다.

나의 MAX급 척추를 고스란히 가져갔지만, 축적된 경험까진 복사하지 못했다.

그리고 흑화 선배의 집에서 영웅호걸들의 영혼을 흡수한 내 실전경험은 수십만 년이나 다름없다.

결정적인 차이도 있다.

“너는 오만해.”

“헛?!”

“아무리 애써도 뛰어넘을 수 없는 스승을 만나지 못한 탓이겠지. 그러니 보여주마.”

너와 나의 격차를.

싸움은 매우 싱겁게 끝났다.

큰 힘은 필요하지 않았다. 발레리나처럼 몰랑하게 몸을 회전하면서 카리스의 날개를 붙잡고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커억-?!”

녀석은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 하위호환을 감추고 다녀서 활용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단순히 능력치 증폭기 정도로만 알고 있다.

이 날개는 악(惡)에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무기다.

물론, 사용법을 알더라도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정의로움으로 충만한 내게는 전혀 위협이 안 되니까.

우드득.

날개와 척추가 이어진 부분을 팔꿈치로 찍어줬다.

이걸로 싸움은 끝났다.

“싱겁군.”

“아직 끝나지 않- 아아아악?!”

발끈하면서 일어서던 아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로 쓰러졌다.

나는 물끄러미 지켜봤다.

하지만 검희처럼 자력으로 척추를 고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너는 아빠가 누군지 따지기 전에 엄마부터 본받아야겠다.”

“허, 허리가...!”

“신앙심이 부족해. 안 그랬다면 이토록 허무하게 패배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어미 젖이나 더 먹고- 아니, 그건 내게 넘기고 너는 몰랑교에 들어가서 기도부터 해라.”

“웃기지- 아아악?!”

이걸로 아들의 정신교육 완료.

나는 검희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수련장 밖으로 나왔다.

대낮인 세상은 아직 밝았지만, 어둠을 지배하는 MAX급 마왕님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탁!

손가락을 튕기자 개기일식처럼 세상이 어두컴컴해졌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 속에서 나는 진짜 날개를 펼쳤다.

펄럭!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를.

그 상태로 나는 검희를 안은 채 수직으로 날아올랐다.

“그 날개는 정말로...?”

“검희.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황제 폐하를 본 소감은 어떠한가?”

“...말이 필요하신가요?”

“짐의 허언이었다.”

주말마다 등산하는 어르신들이 산꼭대기에서 핫팩과 컵라면을 찾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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