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312화 (312/430)

 312화

[21회차] 현자의 탑?

▶질문: 이대로 떠나셔도 괜찮으시겠어요?

나는 괜찮아, 교생 아가씨!

검희에게 시간을 많이 소모하긴 했지만, 충분히 가치 있었다.

북대륙에서 그녀의 영향력은 상당하니까. 검희를 잘 따르는 아들 녀석도 분발하고 있으니, 1년 이내에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비겁한 남편. 어땠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성대한 결혼식을 마치고 이틀째 되는 새벽에 조용히 빠져나온 나는, 영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쏘시아랑 재회했다.

“다 알면서 모른 척하네.”

“라누벨은?”

“못 찾았어. 하지만 용사소환 마법진이란 건 확실해. 그리고 내 불길한 추측이 맞는다면, 소환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거야. 그래서 검희는 어땠어?”

“건강하더군.”

척추가 매우 튼튼했다. 심지어 재생능력도 탁월했다.

“무슨 대답이 그래.”

“나는 사실대로 말해준 거다만? 허리디스크를 순식간에 자력으로 고친 존재는 그녀가 처음이었어.”

“...흥! 말해주기 싫으면 됐어.”

“네 골반이 더 예쁘다는 소리를 또 듣고 싶냐?”

“아, 아니거든?! 나를 사랑에 굶주린 이상한 악마로 몰지 마!”

“흐음~”

열심히 부정하지만, 비겁한 마누라의 씰룩거리는 표정은 솔직했다.

“으으...”

“MAX급 남편을 너무나 사랑해서 질투심이 폭발한 쏘시아.”

“그건 대체 어느 평행우주의 비틀린 쏘시아야?! 나는 남편이 누군가랑 먼저 애를 낳고 결혼식까지 했어도 전혀 화나지 않았어.”

“인기남은 역시 문제로군.”

“아니라니까!”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빠르게 이동했다.

아까부터 계속 아니라고 부정하며 졸졸 따라오는 쏘시아가 답답했던 걸까?

온종일 킁킁거리며 나태한 삶을 즐기는 최초의 정령이 100년 만에 예리한 질문을 했다.

“마약용사. 어디로 가는 거냐?”

“현자의 탑.”

마법왕국 안에 있는 그 도시에는 4차 교육과정 최강의 마법사인 ‘현자’가 살고 있다.

5차 교육과정으로 넘어오면서 종결자 섹스피어가 그 영광의 자리를 차지했지만, 그렇다고 현자가 무시될 정도로 약한 건 아니다.

더구나 이곳은 북대륙.

현자의 영향력이 매우 강한 지역이다.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절반을 먹고 들어간다지 않던가?

다른 이유도 있다.

“뭔데?”

“쏘시아, 드디어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 큭!”

“그만 놀려. 예쁜 며늘아기를 울렸다고 어머님께 이르기 전에. 내 명의로 메신저 계정도 하나 파놨어.”

“비겁하다!”

비겁한 마누라에게 옆구리를 꼬집힌 나는 그 비겁함에 치를 떨었다. 아무리 악마라도 저리 비겁할 수 있단 말인가!

“운다? 인증사진까지 찍어서 전송해야지.”

“미안해!”

“...저기, 남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사과를 너무 쉽게 하는 거 아니야?”

“나는 효자니까.”

어머니의 테니스라켓이 무서워서 이러는 건 절대 아니다.

“예전에도 비슷한 말을 했었던 것 같은데,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머님은 테니스라켓 하나로 우주를 평정하신 분 같아.”

“쏘시아. 진심으로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 소설 좀 그만 봐.”

내 어머니는 요리를 잘하지만, 남편에게 앞치마를 빼앗긴 평범한 가정주부시다.

테니스라켓을 휘둘러서 우주를 쪼개시는 힘은 없다.

도마 위의 당근도 똑바로 못 써시는 분이 우주는 무슨.

“그런데 남편. 현자는 만나서 어쩌려고? 검희 때처럼 몰래 정체를 밝히고 협조요청이라도 하게?”

“......”

“왜?”

“쏘시아.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지 궁금하다만.”

“무, 무, 무슨 소린지 도통 모르겠는걸!”

당황하는 비겁한 마누라.

범죄의 향기가 물씬 풍겼지만, 자비로운 MAX급 남편님은 조용히 덮어두기로 했다.

어머니에게 이르지 마라.

“현자를 만나는 이유는 간단해. 용사소환 마법진은 희귀한 촉매가 많이 필요한 마법이란 설정이거든. 실제로 내가 1회차 때, 고향별로 귀환하려고 연구하면서 살펴본 촉매들은 하나같이 귀한 것들뿐이었지. 라누벨로 추측되는 존재가 정상적인 방식으로 마법을 발동했다면, 현자의 도움을 받았을 거야.”

“네 계획은 잘 알겠어. 하지만 현자가 솔직하게 말해줄까? 거래 장부를 속일 수도 있잖아.”

“예리한 지적인걸?”

“완벽한 용사의 아내에게 이 정도쯤은 간단하지. 중요한 결혼식은 안 했지만!”

“......”

쌓인 게 많은 모양이다.

나는 결혼식 같은 거추장스러운 의식보다는 서로의 골반이 얼마나 잘 맞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내 마누라는 귀족들처럼 허례허식을 신경 쓰는 것 같다.

뭐라고 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는 내 눈에 가오리가 딱 들어왔다.

“Seeeex?”

그렇군! 네가 있었네!

“비겁한 마누라. 너에게는 외제차를 선물해줬잖아.”

“...그렇네. 나는 남편에게 우주마를 받은 성공한 여성이구나!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결혼식은 나중에 배운 몰랑이에게 주례를 부탁해서 성대하게 해야지!”

“그, 그래.”

결혼식에 묘한 집착을 보이긴 했지만, 일단은 섹시하게 우는 가오리에 만족한 것 같다.

*

유행이나 대세가 바뀔 때마다 흥하는 산업도 달라진다.

도시와 국가는 어떤 산업을 장려하느냐에 따라 흥망성쇠와 희비가 엇갈리게 된다.

농경, 관광, 공업, 상업, 정보, 도박, 음양, 수산, 무역...

하지만 어느 산업이든 간에 거친 풍파 속에서도 1등은 살아남는 법이며, 자연스러운 독식이 부와 명성 등을 집중시킨다.

이 법칙은 판타지 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누추한 도시가 현자의 탑이 맞나...?”

“누추한지는 모르겠지만, 위치상으로는 거기가 맞아, 우주마를 선물해준 남편.”

“Seeeex~”

내가 알던 현자의 탑은 판타지아 세계에서 가장 마법이 발달한, 마법사들의 성지였다.

그런데 여기를 보라.

북대륙 어디에나 있을 법한 마탑이 세워진 평범한 영지였다.

아무래도 조사가...

“남편. 여기서 손 미끄러졌다고 우기지 말고 얌전히 있어.”

“왜?”

“성공한 여성의 필수애완동물인 몰랑이와 우주마를 보유한 내가 시민에게 물어볼 테니까.”

“어, 그래.”

아까부터 ‘성공한 여성’이란 단어를 유난히 강조하는 쏘시아에게 맡겨두기로 했다.

그녀는 적어도 내 1회차 동료들처럼 모험에 하등 도움 안 되는 불우이웃돕기 일거리만 물어오진 않을 테니 말이다.

나는 앞장서서 걸어가는 쏘시아가 뭘 하는지 지켜봤다.

...골반을 흔들고 있군.

그때, 머리 위에서 마약정령이 말했다.

“마약용사. 조카가 좀 유감스러워도 이해해줘라. 일찌감치 성공한 친구를 늘 부러워했다.”

“어떤 친구인데?”

“자세히는 듣지 못했지만, 조카에게 저 몰랑한 슬라임을 분양해준 인간이라고 한다.”

“과연...”

상상이 잘 가질 않았다. 쏘시아에게 과외선생으로 마스터 몰랑을 붙여줄 수 있는 인간이라니?

성공한 친구가 틀림없다.

“실례합니다. 질문 좀 할게요.”

“헉! 세상에...”

“그렇게 노골적으로 쳐다보시면 제 남편에게 척추 잡히실 거예요. 저를 끔찍이 아끼는 그이의 질투가 좀 심하거든요.”

“흠흠!”

“질문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아름다운 분이랑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크나큰 영광이자 기쁨이지요. 당신은 제가 살면서 만나본 여성 중 두 번째로 아름다우십니다. 무엇이든 기탄없이 물어보십시오!”

“그러면 사양 않고...”

뿔을 감추고 피부도 인간처럼 바꾼 쏘시아는 현자의 탑에 사는 시민 중 귀족으로 보이는 사내를 붙잡고 이것저것 질문했다.

지명, 영주, 특산품, 역사...

엿듣고 있던 나는 짐작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1등이 바뀌었다.

내가 척추를 잡으려다가 만 남자가 정리하듯 말했다.

“부인. 살면서 이런 얘기 못 들어보셨습니까? 마법은 서대륙으로, 몰랑은 북대륙으로.”

4차 교육과정에서는 마법의 본고장이라고 불렸던 북대륙.

그리고 이런 북대륙에서 가장 마법이 발달한 도시였던 현자의 탑.

하지만 현재는 쏘시아 같은 비겁한 미녀 하나 안 사는 평범한 시골 도시였다.

“마약 용사. 네 기준대로라면 판타지아 세계에 시골이 아닌 도시가 없다.”

“마약정령. 그 사실을 이제야 알았어? 물론, 서대륙의 흡혈귀 제국 수도만 빼고.”

종결자 섹스피어의 마누라는 확실히 미인이었다.

하지만 ‘세상에서 두 번째로 아름답다.’라는 특수한 보정 덕분에 이견(異見)이 나올 수 없는 쏘시아랑 다르게 취향을 탄다.

대신, 첫 번째로 가장 아름다운 미녀로 뽑힐 가능성이 열려있다.

내게도 쏘시아는 두 번째로 아름다운 여성이다.

“비겁한 남편. 또 실례되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

“어.”

“참 당당하네! 일단, 내가 수집한 정보를 요약하자면, 5대 재앙이었던 망령왕이 종결자 섹스피어로 새롭게 태어나면서 역사가 틀어졌어.”

“그쯤은 나도 알아.”

“북대륙은 옛날부터 마법사 체질이 많이 태어나기로 유명했지. 그래서 마법이 발달할 수 있었는데... 그 출생률은 변함없지만, 자금에 여력이 있는 북대륙의 마법사들이 몽땅 서대륙으로 유학을 떠나는 바람에 북대륙마법 수준이 4차 교육과정 때보다 쇠퇴했어.”

“그 대신에 종교가 발달하고.”

“맞아. 북대륙의 대중종교는 남편이 전도한 몰랑교야. 나는 신을 키우는 완벽한 아내고.”

몰랑몰랑~

쏘시아의 누추한 가슴과 양팔에 안겨있는 마스터 몰랑은 평화롭게 몰랑하셨다.

“그러면 현자도 서대륙으로 유학을 떠났으려나?”

“그게...”

“...뜸 들이지 말고 얼른 말해. 어차피 별거 아닌 일이잖아.”

“현자가 타락했어.”

“거봐. 정말 별거 아닌... 음? 타락했다고? 현자가?”

“응.”

“......”

믿어지지 않았다.

아름다워야 한다는 조건이 있긴 하지만, 여성의 속옷만 봐도 코피를 쏟는 그 현자가 타락이라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

쏘시아가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2위의 비애지.”

*

자기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음을 깨닫고, 그로 인해 아무도 자신을 최고로 대우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사람은 크게 2가지의 반응 혹은 대응을 보일 것이다.

더욱 노력하든가, 남을 끌어내리든가.

...조급하다면 둘을 동시에 진행할지도 모른다.

“현자님! 오늘 만나기로 한 여자친구가 실종됐습니다!”

“도와주십시오, 현자님! 제 여동생이 사라졌습니다!”

“어제부터 딸아이가 안 보여요! 제발 찾아주세요, 현자님!”

4차 교육과정 때는 도시의 이름이었으나, 5차 교육과정에서는 도시 중앙의 탑만을 ‘현자의 탑’이라고 부르게 됐다.

그만큼 현자의 위상이 내려갔다는 증거였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당하는 존재는 아니다.

그래도 2위이기 때문이다. 2위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청원에 현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4차 교육과정 때는 얼굴 한 번 보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누가 부르면 번개처럼 내려와서 탑 아래에 모습을 드러냈다.

현자는 내가 알던 소년의 형태 그대로였다.

다만,

“도시에서 젊은 여성들의 실종사건이 작년부터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건 서대륙의 사악한 마법사 섹스피어의 소행이 틀림없습니다. 그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을 마왕 파르마몬에게 제물로 바친다는 소문이 예전부터 쭉 있었으니까요!”

아름다운 여성의 속옷만 봐도 코피를 쏟는 체질은 여전했다.

지금도 양쪽 콧구멍을 휴지로 틀어막고 있었다.

정말 웃기는군.

서대륙의 섹스피어가 이렇게 먼 이국땅에서 여성을 수입해서 내게 제물로 바칠 리 없잖아?

현자는 선동과 날조로 정정당당하게 승부하기에는 수준이 너무 뒤떨어졌다.

저딴 말에 누가 속...

“비겁한 남편. 자세히 말해봐. 몰랑폰으로 섹스피어에게 무슨 지시를 내린 거야?”

속는 바보가 있었다.

“쏘시아. 내가 그런 번거로운 짓을 왜 하냐?”

“너는 강한수니까.”

“그건 어느 평행세계의 논리야?”

“흥!”

“......”

내 마누라는 그냥 심통을 부리는 것 같지만, 이 우매한 판타지 원주민은 그렇지 않았다.

“섹스피어의 짓이라고요?”

“역시! 그 부러운 유부남이!”

“현자님만 믿습니다!”

영원히 늙지 않고 남편의 피만 빨아먹고 사는 서대륙 최고의 미녀를 곁에 둔 종결자 섹스피어.

그 승리자를 향한 분노가 북대륙의 한 시골 도시에서 들끓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

판타지아 북대륙에서 이러한 선동과 날조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면, 내가 섹스피어랑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을 때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얘기는?

“버그.”

“남편.”

나와 쏘시아는 동시에 말했다. 하지만 의견은 일치하지 않았다.

정말로 아니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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