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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급 관심용사-319화 (319/430)

 319화

[21회차] 변신

4차 교육과정 때는 사막 한복판에서 에어컨을 튼 빙룡왕 슬레이아스 때문에 사막화가 심각했었다.

하지만 5차 교육과정으로 넘어오면서 빙룡왕 슬레이아스가 정착할 곳을 잃었고, 남대륙은 요정들이 살기 좋은 온화한 날씨가 되었다.

현재, 판타지아 남대륙은 인간, 요정, 거인이 각각 나라를 세우고 육지를 지배하고 있다.

“마약용사. 거인이 무척 많다.”

“그러게. 남대륙을 거의 다 먹은 것처럼 보이네.”

하지만 남대륙의 실질적인 지배자는 거인 종족이다.

거인들이 중앙의 조그만 사막을 포함해서 약 80%를 지배하고 있다. 나머지 20%를 인간과 요정이 반반씩 나눠서 통치한다.

전쟁으로 빼앗은 건 아니다.

남대륙의 산맥을 싹 밀어서 간척한 결과다. 지금도 자연산 시멘트 콘크리트 같은 거인의 배설물로 2000년째 간척사업을 진행 중이다.

내가 가르쳐준 것이다.

“저쪽이군.”

우주 회장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무작정 이동했다. 그림자A가 알려준 유물의 장소를 몇 개 건너뛰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당장 노리는 교사는 정해져 있으니까. 최종적으로는 전부 처리할 예정이지만, 우선순위가 다르다.

그게 사업 아니겠는가?

가출선배에게 신입생들을 빨리 공급받기 위해 이 후배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의심: 악의가 느껴진다만...

기분 탓입니다, 가출선배!

영 신경 쓰이시면 파견한 빨강색 용이 잘하고 있는지 감시하세요. 이 후배는 문제없습니다.

▷피식: 그쪽이라면 괜찮다. 내가 완벽하게 제어하지 못할 만큼 강한 자다. 보리스가 귀엽다면서 합류해준 덕분에 마찰 없이 손에 넣은 최강의 패 중 하나다. 어릴 적부터 반항아 기질이 심했던 보리스가 이혼하고 멋대로 죽어버리는 바람에 최근 관계가 틀어지긴 했지만, 그 덕분에 이번 임무에 제격이었지.

가출선배의 환상적인 가정사는 유전이로군요.

저는 장인어른이 좀 말썽이긴 하지만, 매우 화목한 가정에서 훌륭하게 자식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카리스, 보셨지요?

제 척추를 닮아서 여자애들에게 인기도 많고, 정의로운 용사의 자질도 충만합니다.

▷황당: 그걸 우주에서는 편견, 색안경이라고 부른다.

질투의 화신인 내 마누라 못지않게 자존심이 추한 가출선배의 변명은 못 들은 거로 하자!

목적지에 거의 도착하기도 했고.

“웅장하군.”

남대륙 80%를 지배하는 거인제국의 수도는 정말 터무니없는 규모를 자랑했다.

일단, 모든 게 거대했다.

거인에게 맞춰진 복지시설과 주거는 인간의 관점에선 산과 강이나 다름없었다.

그 중앙.

판타지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통하는 설산M에 버금가는 규모의 인공구조물이 떡하니 있었다.

쉽게 표현하면, 거인들을 위한 피라미드형 고층빌딩이었다.

쿵! 쿵! 쿵!

쿠웅! 쿠웅!

여기저기 거인들이 쿵쾅쿵쾅 뛰어다녀도 건물이 주저앉을 기미는 안 보였다.

거인들의 타고난 몸무게 때문에 그 하중을 견딜 수 있는 2층 이상의 건물은 짓기가 매우 어려운데, 이 구조물은 이러한 상식을 비웃듯 정말 높게 지어져 있었다.

세상을 다 굽어보듯이.

오만함이 느껴졌다.

“저 날개는 설마...!”

“오! 맙소사!”

“전설이 돌아왔다!”

“헉! 선지자다!”

천체망원경의 렌즈처럼 눈알이 큰 거인들이 하늘에 부유한 나를 발견하고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이놈의 인기는 2000년이 흘러도 변함없군.

인간 원주민 대부분이 나를 잊었지만, 거인 종족은 확실히 달랐다.

▷종족: 자이언트

▷레벨: 596

▷직업: 어부(낚시→체력↑)

▷스킬: 낚시A 사냥B 건설B

수영C 불로C…

▷상태: 경악, 혼란, 찬양

주어진 천명(天命)은 인간이랑 비슷하지만, 레벨 높은 대형 해양몬스터를 식량원으로 쓰는 거인들은 평균 레벨이 높았다.

물론, 해양 몬스터를 사냥하다가 역으로 잡아 먹히는 경우도 허다했지만, 그렇게 살아남은 거인들은 육지의 ‘강자’가 되었다.

직업이 ‘어부’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거인들의 왕은 어떨까?

“안 보이네.”

최초의 요정 ‘페닉스’를 잡아먹고 하나가 되어 불로영생을 얻은 거인왕 ‘페닉스’는 영원히 성장한다.

이론상으로는 언젠가 행성보다 거대해질 것이다.

이런 거인이 2000년 동안 성장했다면 얼마나 클까?

하지만 어디에 숨었는지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아니, 그 덩치를 숨기는 게 가능한가?

이상하군.

“마약용사. 죽은 거 아니야?”

“그건 아니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5차 교육과정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거인제국으로 협조공문을 보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거인왕 페닉스의 이름으로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은 그 1년 전이기에 살아있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어디에 있는 거지?

집에 불청객이 멋대로 들어와서 난동부리는데도 말이다.

“침입이다! 침입- 컥!”

“황궁을 지켜라!”

“적이 강하다!”

“막아라! 어서 막아!”

거인들의 체중을 견딜 수 있을 만큼 단단한 소재(거인의 대변)로 만들어진 황궁은 이런 난리 속에서도 무너지는 참극이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침입자를 여태 저지하지 못하고 있다.

어부가 아닌 진짜 전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종족: 하이 자이언트

▷레벨: 999+

▷직업: 전사(전쟁→체력↑)

▷스킬: 괴력Z 대형Z 대검MAX

내성MAX 색적SSS…

▷상태: 불굴, 부상, 출혈

이만한 능력치와 높은 체급의 거인 전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침입자에게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있었다.

그만큼 상대가 강한 탓이다.

아니, 이 침입자들이 봐주면서 싸우지 않았다면 진즉 황궁과 함께 몰살당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종족: 올드 휴먼

▷레벨: 999+

▷직업: 교사(학력→능력↑)

▷스킬: 무골ZZZ 오감ZZZ 생기ZZ

활력ZZ 정력ZZ…

▷상태: 경계, 양호, 예민

상대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능력치를 보유하고 있었다.

직업은 교직원 일동 공통으로 ‘교사’이기 때문에 어떤 과목을 가르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스킬 구성으로 봐서는 육체파, 체육 선생 같은데?

그런 근육질 남자 선생이 길을 뚫으면, 어린 꽃사슴처럼 가녀린 여자 선생이 정서불안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뒤쫓아갔다.

이쪽도 한 번 볼까?

▷종족: 올드 휴먼

▷레벨: 784

▷직업: 교사(학력→능력↑)

▷스킬: 요리G 빨래ZZ 청소Z

육아Z 정리Z…

▷상태: 불안, 초조

신의 영역에 도달한 G급 요리 스킬이 놀라웠지만, 전투하고는 인연이 없는 능력치.

용사들에게 요리를 가르치는 선생인가?

경계할 필요성은 없어 보였다.

나는 두 교사의 주변을 한 번 더 살펴봤다.

“흠. 거인왕은 끝까지 안 나설 생각인가?”

이쪽 복도를 따라 쭉 가면 거인제국의 보물창고로 짐작되는 장소로 이어진다.

그곳에 혼돈의 유물이 있을 터.

하지만 이제 필요 없다. 유물을 제거하기 위해 찾아온 교사가 내 원래 표적이기 때문이다.

혼돈의 유물은 수단일 뿐.

나는 요리를 잘하는 여자 선생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어둠】

권능으로 그녀의 발밑에 그림자처럼 어둠의 구멍을 열었다.

이곳에 떨어지면 ‘마신의 창고’에 갇히게 된다.

“조심하십시오!”

“네? 꺅?!”

“가정 선생님-!”

덥석!

거인 전사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없던 남자 선생이 뒤돌아섰다. 그리고는 구멍에 빠지기 직전인 여자 선생의 손을 잡아서 지상으로 단숨에 끌어올렸다.

기습 실패.

터무니없는 반응속도다.

혀를 찬 나는 공간을 접으며 빠르게 접근했다. 여자 선생을 구하려다가 균형이 흐트러진 남자 선생을 처리하기 위해.

그런데,

“허! 이걸?”

감지할 수 없는 순간이동이나 다름없는 내 돌진에도 반응했다.

파앙-!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와 남자 선생의 주먹이 격돌했다.

“강한수 학생인가?”

“학생이 아니라 용사다.”

“마왕이겠지.”

“그건 겸업이고.”

찌직, 찍, 찍!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에 박힌 수많은 가시가 남자 선생의 몸을 할퀴고 지나갔다.

여자 선생을 지키면서 싸우는 남자 선생은 방어하기 급급했다.

하지만 놀랍다.

정의감으로 충만한 내 날개에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지 않고 생채기로 끝나다니?

여기서 위력을 더 올리고 싶었지만, 전장이 버티질 못했다.

“무, 무너진다!”

“헉! 피해!”

“후퇴! 후퇴!”

우리가 충돌할 때마다 생성되는 파동에 휩쓸린 거인제국의 황궁 일각이 폭삭 주저앉았다.

이건, 안 되겠군.

나중에 쏘시아가 복구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계속 싸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았다.

나는 몰아치길 멈추고 뒤로 살짝 물러났다.

남자 선생은 이런 나랑 거리를 좁히지 않고 제자리에 대기했다.

“너는 무슨 과목이지?”

여유가 생긴 김에 뭘 가르치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생물이다.”

“생물! 생물 선생이었군! 그 옆에는 가정 선생이라고 했었나?”

“그렇다.”

“생물과 가정. 묘한 조합이네. 그리고 네 몸뚱이도.”

치이이이...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로 생긴 상처들이 빠르게 아물고 있었다.

처음에는 생채기의 출혈을 막지 못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 시작했다.

“나는 생물을 전공한 생물 선생이다. 그렇기에 내 육체는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하지. 내 몸에 흐르는 백혈구가 지혈(止血)을 방해하는 네 독성의 저항력을 키웠다.”

“허...”

동종업자를 만날 줄이야!

“강한수 학생. 스킬에 의존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끝에 유의미한 성과를 얻어낸 그대의 진화는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스킬과 성검에 매달리는 다른 학생들에게 그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 정도지.”

“오! 칭찬 고마워.”

“하지만 아무리 우수한 학생이라도 교사에게 반항하는 행동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 또한, 그 알량한 성과로 약자를 괴롭히는 태도는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알량한 성과?”

“그렇다. 강한수 학생은 얕은 지식으로 인체의 신비와 기적을 약간 들여다본 것뿐이다. 약자를 깔보는 그대에게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가르쳐주겠다.”

“말을 참 잘하네.”

생물 말고 다른 과목을 가르쳤어도 잘했을 것 같다.

“비겁하게 가정 선생을 노리지 말고, 마음 놓고 싸우기 좋은 옥상으로 따라와라. 어차피 네가 친 공간의 벽 탓에 우리는 교무실로 돌아갈 수 없지 않은가? 그 알량한 힘에 자신 있다면 말이지만.”

“...말을 정말 잘해.”

뻔히 속셈이 보이는 유치한 도발이었지만, 걸려주기로 했다.

얕은 지식이라고?

마스터 몰랑의 가르침에 그런 막말을 내뱉다니! 그분이 몰랑하시면 끝장날 교사 따위가 감히!

그 도전을 받아주겠다.

“옥상으로 따라와.”

“생물 선생. 말하는 꼬락서니가 학교 일진 같은데?”

“왕년에 한주먹 했지.”

“어, 그래.”

약자를 괴롭히지 말라고 잘난 듯 떠들더니, 본인부터 안 지키는 공허한 헛소리였다.

우리는 거인제국 황궁 옥상에 마주 보고 섰다.

운석이 수직으로 떨어져도 무사하도록 단단하게 제조된 지붕 위라면 큰 문제 없을 것이다.

“보여주마. 내가 생물 선생인 진짜 이유를...!”

“말이 많...”

“하아아아압-!!”

다리를 쫙 벌리고 무릎을 살짝 굽힌 채 힘찬 기합을 내지르기 시작한 생물 선생.

육체에 변화가 찾아왔다.

스르륵, 스륵...

그의 녹색 머리카락이 삐쭉삐쭉 서더니, 급기야 하얗게 탈색됐다.

“...기분 나쁘네.”

사악한 교사 주제에 남자의 로망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변신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빠각!

나는 탈색된 생물 선생의 머리통을 양손으로 붙잡은 후, 무릎으로 턱주가리를 힘껏 쳐올렸다.

“늦었다.”

“...변신이 빠르네.”

어릴 적에 본 애니메이션에선 변신에만 20분씩 걸렸거늘!

턱주가리를 후려친 내 다리의 발목을 움켜쥔 생물 선생이 입술 사이로 흐르는 붉은색 피를 뱉으며 말했다.

“퉤! 슬라임에게 무언가를 배웠다고 착각하는 네 한계다.”

“평범한 슬라임이 아니다.”

“몰랑거리는 평범한 슬라임의 몰랑거림 말고, 훌륭한 생물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아라.”

부우우웅-!

생물 선생이 왼손으로 내 발목을 잡은 채로 오른손을 휘둘렀다.

표적은 내 얼굴.

여전히 발목이 잡힌 탓에 회피는 힘들었다.

피할 생각도 없었고.

나는 눈 좌우의 태양혈에 힘을 빡 주며 외쳤다.

“어리석긴!”

빠각!

생물 선생의 주먹이 내 얼굴에 닿기 전, 내가 먼저 그의 얼굴에 내 이마를 들이박았다.

“커억~?!”

한순간 정신을 놔버린 생물 선생이 벌러덩 뒤로 자빠졌다.

붙잡힌 발목이 풀린 나는 추가로 반격하고 싶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회복한 생물 선생이 뒤로 물러나는 바람에 무산됐다.

그는 살짝 함몰된 자신의 이마를 부여잡으며 외쳤다.

“이럴 수가! 내 두개골보다 단단한 뼈라니! 그게 과학적으로 가능할 리 없는데! 너는 대체 뭐냐!”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이군!

나는 박치기로 살짝 뻐근해진 경추(頸椎) 6번과 7번 사이를 왼손으로 주무르며 가르쳐줬다.

“아무튼 몰랑한 자다.”

몰랑계시록 1장 3절.

그분을 네 알량한 눈으로 재단하려 들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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