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329화 (329/430)

 329화

[21회차] 잘생긴 용사님!

“지구의 달을 떠올리면, 무언가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월면(月面)에 착륙해서 한 바퀴 빙글 돌며 생명체가 없다는 게 확인될 때까지 온갖 추측이 있었다.

달의 보이지 않는 뒷면이나 안쪽에 사람이 사는 주거지가 있는 소설과 영화가 많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달은 지구에서 떨어져 나간 단순한 돌덩이다. 물과 산소가 존재했던 흔적은 있지만,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그렇다면 판타지 세계는 어떨까?

“쏘시아. 창조신이면 저 구조를 잘 알겠지?”

“별로 아는 건 없어. 좌측에 큰 위성의 이름은 판타지아트, 우측의 작은 위성은 쏘시아트. 각각 엄마랑 내 이름을 붙여서 지었지. 영원히 함께한다는 의미...”

“구조를 물었다만?”

“좀 들어! 감성이 너무 메마른 거 아니야?!”

“여기서 고치고 있어.”

나는 쏘시아에게 판타지아 행성의 수복을 맡기고 위성A와 위성B로 향했다.

위성A는 판타지아 행성 주위를 돌고, 위성B는 위성A 주위를 돈다. 위성의 위성인 셈.

위성A의 크기는 지구만 하고, 위성B는 달이랑 비슷하다. 당연히 모성인 판타지아는 훨씬 크다. 안 그랬다면 난폭한 야만인들의 공격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야만용사!”

“내가 왜 야만용사냐?”

“야만용사는 장모가 가꾸던 행성을 아무렇지 않게 파괴했다! 그러니 야만용사는 야만용사다!”

“크흐흠!”

인간은 손이 미끄러지면서 성장하는 법이다.

【인간】

자아성찰(自我省察) 도중에 새로운 신격이 불쑥 튀어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시작이 가장 어렵다는 말뜻을 알 것 같다. 신격 하나를 개방한 이후부터 줄줄이 잘 풀리는 기분.

“오긴 왔는데...”

존경하는 우주 회장님의 관심이 식는 바람에 고통스럽군!

여기도 달이랑 환경은 같았다.

빛을 받는 부분은 백열전구처럼 뜨겁고, 빛을 못 받는 반대편은 얼음이 생길 정도로 차갑다.

그 중간 온도가 있어야 생명체가 살 수 있다. 여기에 온도변화가 들쑥날쑥하지 않게 조절해줄 대기권도.

이래저래 여긴 생명체가 살 환경은 아니었다.

“야만용사. 그건 편견이다.”

“...그런 것 같네.”

나처럼 환경의 영향을 덜 받고 호흡이 불필요한 경지에 이르면, 달나라도 살만할 모양이다.

위성A의 뒷면.

그곳에는 월면의 재질이랑 같은 회색 흙으로 이루어진 천사들의 도시가 있었다.

건축물들은 공기를 보존하기 위한 밀폐된 공간이 아니었다.

유리 없이 뻥 뚫린 창문, 도둑은 신경 쓰지 않는 개방된 출입구, 천장 없는 집도 은근히 많았다.

사람도.

“환영합니다, 낯선 이여.”

“낯선 이여. 이곳은 영웅들의 황혼 판타지아트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낯선 이여.”

“먼 길을 오셨군요, 낯선 이여.”

“낯선 이여. 당신은 저 아래에서 오셨습니까?”

“무척 반갑습니다, 낯선 이여!”

나를 신기한 동물 보듯이 시민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하나같이 “낯선 이여!”라고 부르는 게 거슬렸지만, 나는 정의로운 용사의 미소로 곱게 넘어갔다.

“낯선 이여! 불만 있으면 말로 하시오!”

“어머! 결혼하셨나요? 낯선 이여.”

“우리에게 환영받기 싫은 모양이구려, 낯선 이여!”

“낯선 이여. 바쁘시지 않다면 소녀의 집으로...”

“몸이 참 좋으시네요, 낯선 이여.”

...어라?

내 미소를 본 수컷들은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하나둘 떠나고, 암컷들만 주위에 몰려들었다.

▶반짝: 강한수 생도님의 인기는 역시 대단하네요. 잘생긴 얼굴과 완벽한 표정. 여자들이 좋아할 요소를 다 갖추셨어요.

원래 알고 있었지만, 교생 아가씨가 그렇게 말해주니 영광이야!

하지만 곤란하군.

닭대가리 암컷들이 나를 포위하듯 둘러싸는 바람에 정의로운 업무에 지장이 생겼다.

소란을 틈타서 내 엉덩이와 가슴을 슬쩍 만지는 닭대가리도 있었다.

악의는 없는 것 같은데...

▷종족: 에이션트 엔젤

▷레벨: 999+

▷직업: 영웅(경험치 200%)

▷스킬: 검술ZZ 창술ZZ 신성Z

가호Z 비행Z…

▷상태: 현혹, 흥분, 발정

상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판타지아 대륙에서는 이렇게 적극적으로 내게 구애하는 여성들이 인어 빼고는 없었는데, 여긴 매우 열성적이었다.

큰일이군.

너무 잘생겨서 정의로운 용사의 업무에 지장이 생겼다.

내가 정중하게 한마디 하려고 할 때였다.

“비켜! 비켜! 음란한 천사 년들! 내 남편에게서 당장 떨어져! 헛! 너! 그 손 치우지 못해!”

“Seeeex!”

몰랑!

정중하지 못한 마누라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추하네요, 낯선 이여.”

“이 절세미남의 아내이신가요? 낯선 이여.”

“정말 추하군요, 낯선 이여.”

“낯선 이여. 당신은 전생에 우주를 구하셨나요?”

“낯선 이여. 추합니다.”

섹시하게 우는 가오리를 타고 날아온 쏘시아를 향해 천사 여성들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비겁한 마누라가 당황했다.

“비겁한 남편! 무슨 비겁한 마법을 쓴 거야?!”

“아무것도 안 했다만.”

그냥 내가 너무 잘생겨서 문제가 된 것 같다.

“거짓말하지 마. 너의 무서운 얼굴을 감당할 수 있는 여자는 세상에 나 혼자뿐...”

“낯선 이여. 아무도 안 믿을 거짓말을 하시는군요.”

“질투가 추하시네요, 낯선 이여.”

“낯선 이여. 잘생긴 남편분을 독식하려고 그런 말을...”

“착하게 사세요, 낯선 이여.”

천사 여성들에게 또 맹비난을 받은 쏘시아는 내 팔뚝을 끌어안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남편. 여기 이상해.”

“너무 잘생긴 남편을 둔 아내의 숙명이지!”

“이 천사들은 머리에 운석을 맞고 바보가 됐나?”

“마음을 곱게 먹어.”

“...내 남자를 나만 보겠다는데, 그게 잘못이야?”

진즉 그렇게 말할 것이지.

나는 주위의 닭대가리들을 향해 정중히 말했다.

“꺼져.”

내가 잘생긴 건 맞지만, 사악한 교사를 숨겨주기 위해 이들이 같잖은 미인계를 시도하고 있을 가능성도 없진 않았다.

천사들이 말했다.

“너무 완벽하시네요, 낯선 이여.”

“낯선 이여. 얼굴만 번지르르한 사내가 많은데, 당신은...”

“어머어머! 제 심장에 무리가 옵니다, 낯선 이여.”

“낯선 이여. 이건 제 명함이에요.”

“받아주세요, 낯선 이여.”

그녀들은 내 정의로운 가슴을 스치듯 쓰다듬으며 종이 쪼가리들을 꽂고 유유히 떠났다.

“...조금 이상하긴 하네.”

내가 잘생긴 건 맞지만, 저렇게 적극적인 여자들은 인어 이후로 처음이었다.

“비겁한 남편. 잘생겼다는 생각 좀 그만해.”

“맞잖아?”

“너무 이상해! 우리의 관계는 미녀와 야수잖아? 그런데 여기서는 추녀와 미남 취급이야.”

“음? 쏘시아. 네가 미녀와 야수는 어떻게 아냐?”

“몰랑폰으로 남편의 고향별 문화를 탐독했지.”

“그렇군.”

잘생긴 남편의 사랑을 독점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비겁하군.

“그만 좀 해!”

“그런데 판타지아 행성 복구작업은 어쩌고 벌써 따라왔냐? 설마, 질투심에 눈이 멀어서 때려치고 온 건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지. 문제 없이 깔끔히 처리하고 왔어.”

“...정말이군.”

나는 반으로 쪼개졌던 판타지아 행성이 멀쩡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대체 언제 고쳤다냐?

쏘시아가 말했다.

“자잘하게 부쉈으면, 목격자들의 기억을 손보고 말이 되게 환경을 수정해야 해서 번거로워. 하지만 방금처럼 깔끔하게 파괴해버리면 그런 2차 작업이 필요 없거든.”

“과연...”

지구의 고등학생 때, 담임선생님이 고장난 노트북을 포맷하며 내게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버그를 고칠 시간에 새로 설치하는 편이 낫다고.

비슷한 원리인 모양이다.

“그나저나 남편. 교사는 찾았어?”

“지금부터 찾아봐야지.”

“진짜 한심하네. 못생긴 여자들이랑 노닥거리느라 중요한 일을 내팽개치다- 꺄앗?!”

“우주에서 혼나볼래?”

정의롭고 잘생긴 Z급 용사님은 달나라로 모험을 떠났다!

▷부들: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줬으면 좋겠군...

*

위성A의 뒷면에 숨겨진 도시X는 판타지아 행성에서 도망친 영웅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도망친 원인은 다양하다.

일거리 부족, 치정 싸움, 골육상쟁, 후계다툼, 인생무상, 정략결혼, 누명, 암투, 원한, 빚...

도시X의 광장에 위치한 시청에서 근무하는 천사들이 이런 영웅들을 찾아가서 ‘신천지를 원하세요? (Y/N)’라고 묻는다.

이때, 영웅이 ‘Y’를 선택하면 천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도시X로 이주하게 된다.

“이, 이게 답니다! 켁켁!”

“나쁜 말로 할 때, 순순히 설명해줘서 고마워, 영웅D.”

지나가던 낯선 이방인A에게 아낌없이 정보를 제공해준 영웅D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는 바이다.

“이제 목을...!”

“신기하군. 정말로 호흡이 전혀 필요없는 모양이네.”

“그건 호흡 스킬 수련으로...”

“원래는 물속에 장시간 잠수하기 위한 스킬일 텐데, 이런 식으로 응용할 수도 있군.”

“그러니 제 목을...”

“오! 저건?”

갓난아기에게 젖을 먹이며 지나가는 영웅 여성이 보였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겠지만, 세상에 나온지 얼마 안 되는 갓난아기에게는 호흡 스킬이 없다.

영웅D가 말했다.

“죽어가는 동료에게 생명을 나눠주는- 켁켁! 가호 스킬로 온종일 지켜주는 겁니다!”

“과연...”

나는 마지막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준 영웅D를 보내줬다.

능력치 스킬을 활용하여 우주에서 살아간다는 발상이 신기했다.

영웅들을 폐휴지 줍듯이 수거해서 제2의 인생을 살도록 지원하는 것도 흥미롭고.

아마, 교사가 위성A에 숨어있다면 가장 유력한 장소는 도시X 중심부에 자리한 시청일 것이다.

입법, 사법, 행정.

저곳에서 도시X의 모든 것을 총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직원 일당처럼.

“남편. 꼭 잡아야 해?”

정의로운 남편님의 손을 놓치지 않도록 꼭 잡고 나란히 걸어가던 쏘시아가 물었다.

“잡으라고 강요한 적 없다만?”

“손 말고! 교사 말이야!”

“당연히.”

나는 후환을 남기지 않는다.

판타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영웅들을 돕는 선행은 칭찬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전쟁이다.

부양해야 하는 늙은 부모, 젖먹이 아이를 홀로 키우는 아내, 배를 쫄쫄 굶고 있는 형제자매...

집에 돌봐야 할 가족이 있다고 살려준다면, 전쟁은 애초에 성립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간】

우리는 각자가 지키고자 하는 소중한 것을 위해 싸운다.

나도 마찬가지.

손가락으로 쏘시아의 꼬리뼈를 지키는 중이다.

“마무리가 최악이네!”

“야만용사! 요즘들어 자주 진지해지는 것 같다!”

나는 옆과 위에서 조잘대는 악마와 정령을 무시하고 시청 건물을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이 도시의 유일한 2층 건물.

사람은 없고 땅은 넓어서 높은 건물이 필요없는 까닭이다.

시청에서 근무하는 천사들의 숫자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가출선배. 눈 시퍼렇게 뜨고 잘 찾아보십시오.

▷부릅: 이미 그러는 중이다.

나는 내부를 빠르게 훑었다.

시청 1층에서 일하는 모든 천사들의 능력치를 확인했다.

하지만 직업이 ‘교사’인 천사는 찾을 수 없었다.

흠. 2층으로 올라가볼까?

어쩌면 우리의 접근을 눈치채고 이미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정지: 멈춰라! 후배여! 너무 대충 살펴보는 거 아니냐! 저기 있다! 우측에서 3번째 책상 옆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가출선배에게 재차 확인을 요구했다.

신입사원의 이마를 종이다발로 쿡쿡 찌르며 훈계하는 저 직장선배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부정: 아니. 당하고 있는 신입사원이 그녀다!

...가출선배. 추합니다.

골반이 튼실해서 마음에 드신 모양이지만, 아내 목록에 억지로 끼워넣지 마세요.

저 신입사원은 아니다.

▷종족: 올드 엔젤

▷레벨: 999+

▷직업: 공주(국력=매력↑)

▷스킬: 가호G 매력G 신성G

연주ZZZ 노래ZZZ…

▷상태: 침울, 굴욕, 성물

그녀의 직업은 사악한 교사가 아닌 일국의 ‘공주’였다.

...잠깐. 공주라고?

나는 정의로운 용사의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실례합니다, 지나가던 낯선 이방인A인데요.”

“어머!”

“어머나!”

“히익-?!”

모든 닭대가리 암컷이 내 미소에 홀딱 넘어왔는데, 그 신입사원만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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