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332화 (332/430)

 332화

[21회차] 불사의 존재

판타지아 세계에서 죽은 자들은 회귀하면 다시 살아나지만, 살아나려면 조건이 있다.

학생 or 교보재

둘 다 교육장을 구성하는 핵심부품 같은 존재다. 그렇기에 아무리 잘난 교사라도 부활하려면 시스템에 귀속되는 수밖에 없다.

좋든 싫든 간에.

▷경악: 후배여! 이게 무슨 짓이냐! 그녀들을 기껏 생포해놓고 전부 죽이다니! 이러면 판타지아 세계에 귀속돼서 빠져나올 수-

하하하! 도덕 선생 하나로 만족하세요, 가출선배.

선후배의 아름다운 뒷거래는 여기서 끝났다.

저 유감스러운 전직 음악 선생이 조금만 더 일찍 얘기해줬다면, 번거롭게 판타지아 전역을 싸돌아다니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지만 후회는 안 한다.

【척수】

【인간】

뜻하지 않은 수확이 있었다.

교사들은 내게 가르침을 줄 생각이 없었겠지만, 마스터 몰랑의 수제자인 나는 알아서 깨우쳤다.

인간의 가능성은 무한하기에 통상적인 내 전투력도 무한이다.

그것이 신격 ‘인간’의 본질이다.

단, 반동도 그만큼 커진다.

파스스스...

판타지아 행성을 향해 내지른 내 오른손의 살가죽이 도마뱀 허물처럼 벗겨졌다.

“...회복이 더디군.”

“잘생긴 남편. 괜찮아? 멋 부린다고 괜히 무리한 거 아니지?”

“조금 쓰라릴 뿐이야.”

나는 시간을 되감듯 빠르게 복구되어가는 판타지아 행성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이상하다.

내 추측대로라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친구처럼.

퍼어엉-

내가 펼쳐둔 무형의 경계망을 과감히 뚫고 들어온 것도 놀라운데, 제대로 반응할 틈도 없이 한 방 맞았다.

왼손밖에 못 쓰는데, 꼬리까지 동원하는 건 반칙이잖아.

“뇌비우스.”

친애하는 전우가 달나라까지 직접 날아왔다.

“각오는 됐는가?”

인간형 얼굴에 깃든 표정을 보아하니, 아주 단단히 화가 난 듯했다.

그는 창조신 판타지시아의 마법봉으로 부활한 게 아니다.

행성마저 가루로 만든 내 신격을 버텨낸 것이다.

“그걸 버텼다고?”

“하지만 에르단티가 낳은 두 아이는 구하지 못했다.”

“아이들을 지키지 못한 저는 뇌비우스 님이랑 생명이 이어져 있어서 혼자 살아남았고요... 흑흑!”

뇌비우스 부부의 출현이었다.

남편의 뒤편에 선 성룡왕 에르단티는 자식을 잃은 슬픔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이, 잠깐-”

퍼어엉-!

말할 틈이 없었다.

나도 기습을 좋아하긴 하지만, 황혼기까지 패왕(霸王)이라고 불렸었던 이 칠흑색 용은 더욱 좋아했다.

방어에 실패한 나는 우주 저편으로 날아갔다.

탁.

나는 암흑물질로 형성한 디딤돌을 박차며 방향을 틀었다.

“해보자고.”

내 잘못이라서 한 방은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두 방이나 기습으로 얻어맞았다.

이번 기회에 누가 위인지 겨뤄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척추】

【암흑】

공간을 접으면서 빠르게 거리를 좁힌 후, 몰랑한 암흑물질이 깃든 왼손 주먹을 내질렀다.

“힘에 의존하는군.”

“뭐-?”

탁.

손등으로 가볍게 내 손목을 쳐서 공격 궤도를 튼 뇌비우스가 깊숙이 파고들었다.

...어쩔 수 없군.

나는 아직 회복되지 않은 오른손을 움직였다.

【척수】

불끈!

내 오른쪽 어깨와 팔, 허리의 근육이 팽창했다.

빠르게! 더욱 빠르게!

날카로운 손톱으로 내 눈을 노리는 뇌비우스보다 늦긴 했지만, 따라잡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흥!”

코웃음 친 뇌비우스가 내 오른손을 피하지 않고 맞부딪혔다.

우드득.

오른손 손가락의 뼈가 바스러지는 감각이 팔을 타고 올라왔다.

우득, 우득.

하지만 내 힘을 무시한 뇌비우스도 무사하진 못했다.

척추가 가닥가닥 끊겼다.

아무리 잘났어도 전신불수는 어쩔 수 없을 터.

“항복하- 미친?”

“조금 놀랐다.”

자세한 설명은 없었지만, 어떤 원리로 뇌비우스가 멀쩡하게 움직이는지는 알 수 있었다.

신체개조.

척추가 제 기능을 못 하게 되자마자 온몸을 덮은 칠흑빛 비늘이 허리와 목을 지탱해줬다.

운동신경과 감각신경도 척수를 포기하고 새로운 경로를 개설하여 대뇌피질까지 연결됐다.

용인(드래고니안)의 형태를 자유롭게 튜닝할 수 있는 용족이기에 가능한 묘기.

하지만 내 신격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 짧은 시간에 대응했다는 점이 기가 막혔다.

“과연, 전우로다.”

“집어치워라.”

우리는 위성A 옆에 붙은 위성B에서 재차 격돌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나는 오랫동안 봉인해둔 힘을 꺼냈다.

용린(龍鱗).

황혼기에 접어든 망룡왕 뇌비우스에게 받은 용의 비늘.

눈앞의 젊은 뇌비우스보다는 질적인 면에서 훨씬 우위였다.

다만,

“내 머리카락...”

휘릭~ 휘리릭~

파충류처럼 온몸을 칠흑빛 비늘이 감싸면서 걸리적거리는 모발이 싹 떨어져 나갔다.

머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리석은 배신자여. 전력을 다해라. 2000년 전의 은혜를 생각해서 비참하게 죽이진 않겠다.”

“거참! 나를 호구로 보네!”

살가죽이 벗겨져서 취약했던 오른손에 장갑처럼 비늘이 덮이면서 어느 정도는 해결됐다.

이러면 해볼 만하지 않은가?

【인간】

척추가 부러진 뇌비우스는 비늘로 몸을 지탱하고 있다.

그의 허리에 비늘이 파괴될 만큼의 유효한 타격을 주면 버티지 못하고 바로 쓰러질 것이다.

딱 한 방이다.

“와라.”

“말 안 해도 간다...!”

뇌비우스는 내게 힘에 의존한다고 핀잔을 줬지만, 나는 가출선배의 집에서 수많은 영웅호걸의 기술과 경험을 축적했다.

기교에선 밀리지 않는다.

...우위를 점해야 정상 아닌가?

퍽! 퍼벅! 퍽!

우리의 손발이 부딪히며 발생하는 충격파에 노출된 위성B의 지표면이 쩍쩍 갈라졌다.

어째서 못 이기지?

이기긴커녕 기교에서 살짝 밀리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렇다면...

퍽.

“걸렸군.”

꼬리로 내 턱을 밑에서 올려친 뇌비우스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다.

걸린 건 너다! 젊은 뇌비우스!

조금 반칙 같긴 하지만, 나는 그가 이렇게 공격해올 줄 처음부터 알고 맞아준 것이다.

젊은 뇌비우스는 황혼기의 자신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었으니까.

덥석.

나는 내 턱을 올려친 뇌비우스의 꼬리를 도망치지 못하게 왼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잔뜩 돋아난 뿔 때문에 내 손아귀가 긁히긴 했지만, 비늘로 보호받는 내 손에는 큰 피해가 없었다.

자! 이제...

황혼기의 뇌비우스는 콤보로 나를 두들겨 팼지만, 젊은 뇌비우스는 아직 그럴 수준이 아니다.

【인간】

대단한 기술이 아니다.

이론상으로는 발휘할 수 있는 물리력이 무한하지만, 내 몸이 견뎌줘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여기서 문제.

얼마나 강하게 때려야 눈앞의 뇌비우스가 쓰러질까?

...일단 때리고 보자.

“먹어라!”

“큭...?!”

퍼어어어엉- 빠직!

오른손으로 젊은 뇌비우스의 복부를 힘껏 때렸다.

판타지아 행성을 파괴할 때는 부채꼴로 물리력이 확산하면서 전체적인 위력이 감소했지만, 지금은 일점(一點)으로 화력이 집중됐다.

빠각, 우드득.

뇌비우스의 비늘이 우수수 쓸려나가고, 충격이 오장육부와 등의 비늘까지 바스러트렸다.

파스스스...

내 오른손도 멀쩡하진 못했다.

칠흑빛 비늘이 벗겨진 손가락은 간신히 붙어있는 수준이었다.

운이 아니라, 내가 지난 경험을 토대로 후유증 수위를 딱 그 정도가 되도록 조절한 결과다.

위력을 타협한 셈.

그래도 그 여파만으로 위성B가 궤도를 이탈해버릴 정도였으니, 약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왜 살아있냐?”

“방심했군.”

내 질문에 엉뚱하게 대답한 뇌비우스의 육체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비늘뿐만 아니라 척추까지!

신격이 발동한 까닭이다.

【성룡】

성룡왕 에르단티!

차원의 수만큼 분할되지 않은 녹색 도마뱀은 미약하게나마 신격을 보유하고 있었다.

보통은 회복될 수 없지만, 뇌비우스의 강인한 생명력이 내 신력을 무식하게 밀어냈다.

“진짜 너무하네!”

하지만 이 용사님에게는 아직 왼손이 남아있습니다.

내 손으로 밥을 먹고 싶어서 남겨뒀는데, 당분간은 비겁한 마누라에게 떠먹여달라고 해야겠다.

덥석.

뇌비우스가 내 왼손을 붙잡고 꼬리로는 내 허리를 감았다.

일명 조이기.

“강해졌군. 이렇게 안 만났다면 친구가 됐을지도 모르는데.”

“...다 이긴 것처럼 말하지 마라.”

【인간】

마누라의 치유력만 믿고 내 몸을 붙잡은 것을 후회하게 해주지!

불끈.

뇌비우스의 근력은 터무니없는 수준으로 강했지만, 상대에게 맞춰서 무한히 강해질 수 있는 내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조금씩 밀어냈다.

그랬더니...

【태권】

【순정】

【거신】

【윤회】

【철인】

【혼돈】

유부남 뇌비우스의 인간형 몸에서 다수의 신격이 포착됐다.

“미친...!”

“배신자여. 그대의 성장은 놀랍지만, 나도 2000년 동안 놀고 있던 건 아니었다.”

“잠만 잔 주제에!”

“글쎄?”

사기적인 전우랑 시답잖은 얘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도 힘을 끌어올렸다.

【암흑】

【척수】

【인간】

신격의 숫자로는 밀려도 질은 내가 압도적이다.

그때였다.

“멈춰. 무식한 남자들의 장난은 거기까지야.”

“뇌, 뇌비우스 님...”

쏘시아는 성룡왕 에르단티를 완벽하게 제압한 상태였다.

하지만 평범하게 무력을 동원한 게 아니었다.

시스템.

성룡왕 에르단티의 몸은 당장에라도 사라질 것처럼 반투명했다.

“창조신... 그렇군.”

내 몸을 조이고 있던 뇌비우스가 항복하듯 먼저 힘을 풀었다.

나는 꾹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무중력이라서 폐에서 뱉을 공기가 없긴 했지만.

“푸하!”

진짜로 위험했다!

전력을 다하면 절대 패배하진 않겠지만, 온몸의 후유증으로 쏘시아에게 온종일 업혀 다닐 뻔했다.

비겁한 마누라가 말했다.

“뇌비우스. 아이들은 무사히 부활했어. 그러니 싸움은 그만둬.”

“...처음부터 이럴 의도였나?”

“행성을 돌아봐. 너의 아이뿐만 아니라 모두 부활했어.”

“진즉 말했다면...”

“말할 틈도 없이 내 남편의 잘생긴 얼굴을 네가 쳤잖아!”

“...그랬군.”

뇌비우스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뒤로 훌쩍 물러났다.

풀려난 성룡왕 에르단티가 그에게 쪼르르 날아가서 품에 안겼다. 그리고는 온몸을 떨었다.

“무, 무서웠어요... 이대로 사라지는 줄 알고...”

“......”

뇌비우스는 별말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용인의 형태를 풀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칠흑색 용으로.

“Chaoooo.”

펄럭!

등에 달린 3쌍의 날개를 한 번 펄럭이더니, 순식간에 판타지아 행성으로 사라졌다.

너무 거대해서 마치, 옆의 나무로 옮겨타는 것 같았다.

조금 허탈했다.

“경고로군...”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말이다.

【흑룡】

그는 신(神)이었다.

*

나의 절친 뇌비우스가 갑자기 우정을 다지자고 조르는 바람에 시간이 조금 지체됐다.

지금부터가 진짜다.

“잘생긴 남편. 이번에는 또 누구랑 쌈박질하려고?”

“어허! 잘 생각해봐.”

나는 판타지아 행성을 절반씩 2번 파괴해서 완벽하게 정화했다.

내 말이 틀렸어?

“이게 정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뇌비우스랑 에르단티 빼고 한 번씩 다 죽었던 건 확실해.”

“그렇다면 교장은?”

“...어?”

“판타지아 행성 어딘가에 숨어있던 교장이 죽었다면, 시스템의 모든 제어권이 우리에게 넘어왔어야 해. 하지만 여전히 그대로지. 안 그래?”

“그, 그 얘기는...?”

“맞아.”

교장도 우리처럼 달나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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