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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급 관심용사-334화 (334/430)

 334화

[21회차] 아름다운 판타지아

감수성 풍부한 교생 아가씨! 내가 원래 좀 낭만적이긴 해.

정의로운 용사님을 죽을 만큼 사랑하다가 정말로 죽어버린 여인이 셀 수 없이 많으니까.

이처럼 낭만은 가시밭길이다.

내가 평범한 인간이었으면 벌써 백골로 변했을 것이다.

【백광】

시장의 설명대로, 교장의 방어본능이 내 수명을 가속해서 노화를 촉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두 번째 마왕.

수명의 한계가 없다.

“아아...!”

찰떡이 탄성을 내질렀다.

그녀는 아직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몸은 솔직했다.

내가 그녀의 등허리를 안은 왼손으로 요추(腰椎) 4번과 5번 사이를 쓰다듬자마자 반응이 왔다.

나를 밀어내려고 애쓰던 그녀의 양팔이 자연스럽게 내 목을 끌어안으며 사랑을 더욱 요구했다.

느낌이 왔다.

“돌아왔군.”

“이렇게 다시 주인님의 온기를 느낄 수 있어서 너무나 기쁩니다.”

“잠시만 기다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찰떡의 육체에서 사악한 교장을 밀어내는 게 우선이다.

“그러지 마세요.”

“할 수 있어.”

“압니다. 저의 주인님이시라면 능히 그러실 수 있겠지요. 하지만 거기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저는 주인님을 두려워하게 된 파르마엘의 계획을 잘 아니까요.”

“...쏘시아!”

나는 창조신을 불렀다.

찰떡도 판타지아 시스템으로 탄생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녀라면 내가 모르는 수단이 있을지도 모른다.

“Seeeex!”

“남편! 비켜봐.”

나는 순순히 옆으로 비켜줬다.

쏘시아에게 손을 잡힌 찰떡이 진한 미소를 지었다.

“조카님. 오랜만이에요.”

“히프리아! 절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소름 돋았잖아요!”

“후후후...”

“트, 틀렸어! 주도권이 벌써 고모에게 넘어가려고 해!”

“주인님이 교사들보다 먼저 절 찾아주셔서 다행입니다. 그 덕분에 먼저 깨어날 수 있었지만, 저에게 남은 시간은 별로 없어요. 파르마엘이 다시 영혼을 차지하기 전에 우리를 죽여주세요.”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솔직히, 혼란스럽다.

찰떡이 아직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도 그렇고, 손 놓고 무력하게 포기해야 한다는 것도...

아! 그 방법이라면!

검증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인간】

나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이론적으로 맞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망설이지 않겠다.

“히프리아.”

“주인님. 어서 절 죽-”

“닥치고 내 말을 들어! 두 번째 악마를 두 번째 교장으로 임명해! 유도는 내가 하겠다!”

“예? 네!”

나는 두 번째 마왕.

장인어른 페도나르는 ‘두 번째 저주’를 타고난 쏘시아를 매개체로 삼아서, 평범한 인간이었던 내 운명을 송두리째 바꿨다.

원리는 그때랑 똑같다.

단, 이번에는 매개체가 나다.

찰떡↔강한수↔쏘시아

나와 찰떡은 혼돈의 주종관계로 묶여있고, 쏘시아는 운명의 부부관계로 강하게 결속되어 있다.

“잃지 않겠다.”

인간의 가능성을 믿는다.

내가 무엇을 위해 강해졌는지 되새김한다.

【인간】

【척수】

나는 히프리아의 경추(頸椎) 6번과 7번 사이를 부드럽게 움켜쥐고 감각신경에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말하라고.

“두 번째 악마에게 저주받은 자여! 어둠의 굴레에서 벗어난 그대는 두 번째 빛이 될지니! 이것은 우주가 정한 섭리. 최초의 천사는 기꺼운 마음으로 그 운명을 받아들입니다!”

정의로운 용사님을 사랑하는 ‘최초의 천사’가 외쳤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백광】

【암흑】

내 영혼 속에서 상반되는 두 신격이 거칠게 충돌했다.

이미 내 정체성은 ‘두 번째 마왕’으로 확립되어 있기에 여기서 멈추면 나까지 위험해진다.

다행히 내게는 ‘두 번째’면 뭐든지 포용하는 마누라가 있었다.

“쏘시아! 받아!”

“자, 잠깐! 마음의 준비가...!”

“닥치고 얼른 받아!”

“꺅~?!”

나는 교장 파르마엘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신격 ‘백광’을 쏘시아에게 밀어 넣었다.

변화는 바로 찾아왔다.

두둑, 우드득...

쏘시아의 머리에 달린 악마의 뿔이 떨어지고, 피부색이 밝아졌다.

비겁한 골반까지 내려온 머리카락과 3쌍의 에테르 날개도 연보라색으로 바뀌었다.

악마 같지 않은 외모.

능력치도 변했다.

▷종족: 세컨드 루시엘

▷레벨: 999+

▷직업: 교장(교사→0레벨)

▷스킬: 신성GGG 마기GGG

백광GGG 암흑GGG

매력GGG…

▷상태: 주신

나는 쏘시아의 새로운 종족 ‘세컨드 루시엘’을 살펴봤다.

▷종류: 종족

▶명칭: 세컨드 루시엘

▶등급: 고유

▶고유1: 뭐든지 두 번째다.

▶고유2: 두 번째 악마다.

▶고유3: 두 번째 천사다.

▶특성1: 시간이다.

▶특성2: 빛이다.

▶종족1: 두 번째 마왕의 반려다.

▶종족2: 두 번째 영혼이 있다.

세세하게 볼 것 없었다.

나는 ‘두 번째 영혼’이란 대목을 확인하자마자 움직였다.

【암흑】

【척추】

【인간】

최초의 천사 ‘파르마엘’의 척추를 분쇄하고, 공간째 짓뭉갰다.

그리고 왼손 주먹을 갈겼다.

팡야-!

“......”

만인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머리를 잃은 육체가 힘을 잃고 찌부러졌다.

바로 그때였다.

물컹물컹~

머리를 잃고 납작해졌던 파르마엘의 육체가 빠른 속도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안 죽었다고...?”

심지어 내가 파괴한 머리까지 완벽하게 재생됐다.

하지만 더는 내가 알던 ‘성녀H’의 모습이 아니었다.

“할머니야!”

“고모네.”

“배신자다!”

주위에서 거의 동시에 확인해줬다.

저 괴물이 누구인지를.

그것은 목과 허리가 없었다. 움직일 때마다 물풍선처럼 뱃살이 출렁거렸고, 눈은 떴는지 감았는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그리고... 그만두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모습.

음유시인들이 절세미녀를 보면서 미사여구가 부족하다고 하는데, 눈앞의 존재는 다른 의미로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감히...!”

콧소리 섞인 목소리만이 저 기괴한 생명체가 여성임을 알려줬다.

펄럭! 펄럭! 펄럭!

덤으로 천사의 상징인 새하얀 날개가 등에서 솟아났다.

하지만 저 질량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될 만큼 애처로웠다.

▷종족: 퍼스트 엔젤

▷레벨: 999+

▷직업: 여왕(매력→지배↑)

▷스킬: 신성GGG 근력G

비만MAX 비행MAX

육중MAX…

▷상태: 탈골, 골절, 비만, □□,

격분, □□, □□, 성물,

□□, 붕괴, 공백, □□…

능력치는 안 좋았지만, 파르마엘이 안 죽은 이유는 순전히 종족 ‘퍼스트 엔젤’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소멸하지 않는다.

신력을 잃고 만신창이가 돼도 세상에 존재한다. 그것이 우주의 질서이고 이치이기 때문이다.

...위험했군.

판단이 조금만 늦었으면, 신격 ‘백광’을 보유한 교장이랑 2차전을 벌일 뻔했다.

“전직 교장. 다 끝났어.”

탁!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무슨 수를 써도 안 죽는다면, 저 살덩이를 압축해서 어둠의 공간에 가둬버리면 그만이다.

【암흑】

하지만 파르마엘은 맨몸으로 그 압박을 돌파하고 내게 돌진해왔다.

“내놔-!”

“...만지기 싫은데.”

하지만 정의로운 Z급 용사님이 안 하면, 누가 저 흉측한 악(惡)을 물리치겠는가?

뿅!

정의로운 성검을 소환했다.

뇌비우스는 비늘로 척추를 대신하더니, 파르마엘은 방대한 살로 몸을 지탱했다.

그래도 몽둥이로 쓸만하다.

물컹~!

내 예상이랑 달리, 정의로운 성검은 아무런 피해도 못 주고 그녀의 살에 파묻혀버렸다.

...정의를 뛰어넘는 악이었다.

처음으로 소름이 돋았다.

“호호호-!”

“까불지 마라!”

“호호- 꾸에에엑?!”

나는 양손으로 파르마엘의 살을 잡고 좌우로 힘껏 찢었다.

대형 몬스터 오우거에 비견되는 내장이 갈라진 틈새로 흘러내렸다.

하지만 안 죽는다.

“그만 포기해!”

“이, 이 버러지가... 쿠에엑?!”

【인간】

통닭을 해체하듯 갈기갈기 찢은 후에 신격으로 마무리!

물컹물컹~

하지만 되살아난다.

“......”

안 그래도 헛구역질을 참으면서 간신히 싸우고 있는데, 도무지 끝이 보이질 않으니 내 정의감도 서서히 지쳐갔다.

약한 것도 아니다.

신의 힘을 잃었지만, 파르마엘은 여전히 ‘최초의 천사’로서 방대한 신성을 발휘하고 있었다.

상대가 ‘신(神)’이기에 일방적으로 처맞는 것이다.

이걸 어쩌면 좋지?

“호호호!”

“진짜 끈질기군.”

“강한수 학생. 당신을 일찌감치 처리하지 않은 게 후회되는군요. 인성에서 FFF학점이 나왔을 때, 진즉 내쳤어야 했는데!”

“그러지 그랬냐?”

“당신 같은 폐기물도 쓸모가 있으리라고 여겼습니다. 전투력 하나만은 사냥개로 유용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주인을 물 줄은 상상도 못 했- 꾸에에엑?!”

“다진 고기로 만들어줄게.”

장인어른이 탄복할 만큼 1회차 때부터 높았던 나의 전투력은 원해서 이룩한 게 아니다.

민폐 덩어리 동료들 탓에 살기 위해선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우정의 힘? 사랑의 힘?

나는 조금도 기대하기 힘들었다.

“호호호! 저를 소멸시키지 못하는 당신에게는 승산이 없어요. 판타지아 차원에서 아등바등하는 일개 학생이랑 달리, 저는 우주에 수많은 협력자를 보유하고 있어요. 곧 그들이 저를 도우러 올 겁니다.”

“네 걱정이나 하시지?”

“어머머! 참으로 천박하군요. 신이 됐어도 여전히 인간의 감정을 버리지 못하다니. 저는 최초의 천사 파르마엘입니다. 당신 같은 하찮은 존재랑 근본적으로 달라요.”

“그건 동의.”

파르마엘의 외견은 내 고정관념을 완전히 파괴하는 초현실적인 무언가였다.

저걸 어떻게 하면...

“잘생긴 남편님. 이젠 내가 할게.”

“음?”

“정리가 대충 끝났어. 잘 봐.”

우쭐대면서 쏘시아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육체를 회복한 파르마엘이 날개를 펄럭이며 돌격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쏘시아는 피하지 않고 당당히 선언했다.

“교장 쏘시엘이 명합니다. 최초의 천사 파르마엘. 당신을 교사로 임명합니다.”

“감히, 누구 마음대로-!”

“교사 파르마엘. 멈추지 않으면 벌을 내리겠어요.”

“호호호! 쏘시아야! 조카야! 이 세계는 나의 것이다! 아무도 내게서 판타지아를 빼앗을 수 없어-!”

“...처벌.”

“이 세계는- 꾸에에엑?!”

쏘시아가 물리적으로 건드리지 않았음에도 파르마엘은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그 이유는 지극히 간단했다.

▷종족: 퍼스트 엔젤

▷레벨: 0

▷직업: 여왕(매력→지배↑)

▷스킬: 신성GGG 근력G

비만MAX 비행MAX

육중MAX…

▷상태: 사망, 탈골, 골절, 비만,

□□, 격분, □□, □□,

성물, □□, 붕괴, 공백,

□□…

파르마엘은 시체나 다름없는 ‘0레벨’이 됐다.

상태에도 ‘사망’이 추가됐다.

하지만 종족의 효과 덕분에 그녀는 죽어도 금방 되살아났다. 그러나 육중한 몸을 지탱할 근력이 없어서 꼼짝달싹 못 했다.

쏘시아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고모. 배신으로 이룩한 당신의 시대는 끝났어.”

“우, 웃기지 마...!”

“파르마엘. 저는 당신의 모조품이 아닙니다.”

“잠깐! 너는 설마...?”

“우리는 둘이면서 하나. 두 번째 타천사 쏘시엘입니다. 둘이서 이름을 짓느라 애먹었다고요? 교사 파르마엘. 앞으로 잘 부탁해.”

“아, 안 돼-! 이럴 순 없...”

몸이 점점 투명해진 파르마엘은 세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이것이 완전한 창조신.

분리되어 있던 시스템 개발자와 운영자가 하나로 합쳐졌다.

“...이제 끝?”

나는 절대권력을 거머쥔 마누라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매연으로 숨이 막힐 만큼 아름다운 고향별 지구로 드디어 돌아갈 수 있는 것인가!

내 팔을 끌어안은 쏘시아가 생글생글 웃으며 답했다.

“아니.”

“끼호오옷! 드디어 귀환이다! 정의로운 용사의 귀환!”

“응, 아니야.”

“쏘시아! 제발 가즈아~!”

마스터 몰랑! 순수한 용사님의 꿈과 희망을 짓밟는 저 비겁한 타천사에게 한 말씀 해주십시오!

몰랑? 몰라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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