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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급 관심용사-336화 (336/430)

 336화

[21회차] 실화냐

비겁한 마누라가 수정안을 제시하면서 설계가 살짝 변했다.

안드로이드를 파괴한 용사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코어에 저렴한 보석을 하나씩 넣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생산단가가 올라가는 바람에 매일 100기 생산이란 원초의 계획은 20기로 대폭 감소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악의 세력이 이 안드로이드 생산공장 중 하나를 점령한다는 설정을 추가하고, 여기서 생산된 안드로이드는 용사가 어디에 있든 계속 추적해서 습격하게 될 거야.”

“그럴싸한데?”

“남은 건, 이 안드로이드들의 이름이야. 남편. 뭐라고 할래?”

“비앙카.”

도덕 선생의 이름이다.

“진짜 신기한걸? 그 이름을 용케 안 까먹었네.”

“당연하지!”

서대륙 일정은 이걸로 끝.

나는 떠나기 전, 종결자 섹스피어에게 당부했다.

“용사가 방문하면 야박하게 쫓아내지 말고 잘 챙겨줘. 좋은 무기들도 빌려주고.”

“아! 임대사업 말씀입니까?”

“...어? 어, 그렇지.”

“잘 이해했습니다. 부수면 평생 일해도 못 갚을 만큼 뛰어난 무기를 잔뜩 준비해놓겠습니다.”

“그래. 마음이 놓이는군.”

1회차 때, 나는 아무런 국가지원도 못 받은 탓에 힘들게 모험했다. 좋은 무기는 일찌감치 단념하고 여행경비로 매일 고통받았다.

하지만 내 후배들은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잘생긴 남편, 뭐해?”

“Seeeex!”

비겁한 마누라가 성공한 여성의 상징인 우주마에 승마한 채로 이동을 재촉했다.

판타지아 차원 내라면 어디든 단번에 순간이동 할 수 있지만, 허영심 많은 내 마누라는 저 섹시하게 우는 가오리를 애용했다.

“그래. 얼른 가자. 쑥떡. 따라와.”

“네. 아버지.”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거인들이 지배하는 남대륙이었다.

*

뚝딱뚝딱!

쿵! 쿵! 쿵! 쿵!

판타지아 남대륙에서는 대규모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캡틴 판타지의 몰랑한 엉덩이에 납작하게 깔려버린 황궁은 마누라가 진즉 보수해줬다.

그렇다면 저건 뭘까?

쌓아둔 재료들의 양만 따져도 황궁보다 훨씬 거대한 구조물이 나올 것 같았다.

거리를 지나가는 도시 아가씨A에게 물어보기로...

“잘생긴 남편! 잠깐!”

“왜?”

“실수로 손이 미끄러져서 아가씨A의 목을 잡으려고 그러지?”

“......”

이번에는 목이 아니라 허리를 잡으려고 했다. 정말이다!

“뭐든 간에 실수하지 마! 앞으로는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면 나만 만져. 다른 여자에게 손대면 어머님께 곧바로 이를 거야.”

“이건 명백한 업무방해야!”

“흥! 마음껏 욕해라~”

“Seeeex~”

섹시한 가오리에서 내린 비열한 마누라가 선량한 사람의 탈을 쓰고 아가씨A에게 질문했다.

“실례합니다. 말씀 좀 물을게요.”

“네? 와아! 엄청난 미인이시네요. 아차! 뭐든 물어보세요.”

“저건 뭘 만드는 건가요?”

“황제 폐하의 스승이신 위대한 아기님의 동상이에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엄마 말로는 ‘영원한 겸손’을 상징한대요.”

...충격적이군.

거인도 추락사고로 죽을 높이의 거대한 구조물이 제작되고 있었다.

저 무슨 국고 낭비야?

“잘생긴 남편. 옆에서 들었지? 캡틴 판타지의 동상을 세운대. 그런데 남대륙에서는 뭘 할 거야?”

“허구로 가득한 애니메이션에 심취한 용사들에게 체급의 힘을 깨우쳐주는 학습장.”

“이해가 잘 안 되는데...”

“쉽게 설명해줄게. 쏘시엘. 캡틴 판타지에게 물리면 시스템 안 쓰고 빠져나올 수 있어?”

“아니.”

“내가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그거야. 스킬 괴력 등급을 아무리 올려도, 캡틴 판타지의 엉덩이에 깔리면 사망이란 거지.”

“그렇구나!”

우리는 대규모 공사현장 탓에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는 황궁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막아서는 자는 없었다.

출입문에 경비병이 없어도 허튼짓을 못 하리란 자신감.

거인제국의 막강한 군사력을 본다면 그 누구도 허세라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용이랑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통상적으로 거인은 비슷한 능력치의 인간 100명이랑 맞먹는다.

하지만 이건 옛말.

5차 교육과정의 거인은 무식한 야만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못 크기의 수세식 변기를 사용하는 문명사회 거인들은 전투력이 그야말로 깡패다.

▷종족: 배틀 자이언트

▷레벨: 791

▷직업: 병사(군집→투기↑)

▷스킬: 투기S 신앙S 낚시A 사냥B

▷상태: 양호

황궁을 순찰하는 평범한 거인 병사D의 능력치.

스킬이 조금 잡다하긴 했지만, 평균 능력치가 인간 왕국의 기사단장이랑 맞먹었다.

그런데 일개 병사다.

타고난 체급을 활용해서 초대형 몬스터를 주식으로 삼는 거인이기에 가능한 성장이다.

“격차가 좀 심하긴 하네.”

거인제국은 2000년 동안 터무니없이 성장해왔다.

인간들이 강을 건널 때, 그들은 바다를 건널 만큼 빠르게 발전했다.

그리고 이 격차는 세월이 흐를수록 좁혀지긴커녕 벌어지기만 했다.

서대륙 빼고.

거기는 종결자 섹스피어 혼자서 남대륙 전체랑 싸울 수 있다.

“남편의 작품이야.”

“걱정하지 마. 남대륙에는 거인제국만 있는 게 아니니까.”

유감스러운 요정왕이 다스리는 요정제국도 있다.

(용사님. 저를 그분의 품으로 보내주신다는 약속을 슬슬 지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편 레이더가 발동한 걸까?

여태까지 아무런 말 없이 진짜 그림자처럼 지내던 그림자A가 불쑥 요구했다.

당연히 잊지 않았다.

그림자A는 별로 도움이 안 됐지만, 그녀의 명예교사 지위는 제법 유용하게 써먹었다.

약속은 지킨다.

하지만 무턱대고 실행해버리면 대혼란이 펼쳐질 것이다.

비록 가짜이긴 하지만, 요정제국을 다스리는 요정왕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은 탓이다.

바로 저렇게.

“위대한 거인왕이시여. 지난 2000년 동안 유지돼온 두 종족의 화합과 공존은 전부, 페닉스 폐하의 자비 덕분이었습니다. 나약한 요정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상위종 거인의 은혜 덕분에 요정이 지금까지 존속할 수 있었던 거지요. 요정 종족을 대표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하하! 나는 그대의 혀가 늘 마음에 든다, 엘브하임! 틀린 말도 아니지만!”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걱정하지 말아라! 나는 위대한 거인왕이다. 조금만 힘주면 죽어버릴 하찮은 아들의 부탁을 들어주마. 요정은 짐의 가호 아래에 앞으로도 존속할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두 요정이 넓은 식탁을 사이에 두고 시끄럽게 대화했다.

한 명은 거인왕 페닉스.

나머지 한 명은 요정왕 엘브하임.

그리고 이 둘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시녀들이 시중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식사공간이 꽉 차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사막 한복판에 근사한 식탁 하나 놓고 파티를 벌이는 것처럼 휑했다.

“...쏘시엘.”

“응?”

“거인왕 말이야. 인격이 둘이지 않았나? 저번에도 그렇고, 대충 말하는 뉘앙스를 들어보면 하나가 완전히 죽은 것 같은데.”

“저게 섞인 모습이야.”

“어딜 봐서?”

내 눈에는 개차반이었던 초대 요정왕 페닉스의 인격 같았다.

“틀려. 살아온 세월이나 격이 훨씬 높았던 녀석이 원래 거인왕을 밀어내고 주도권을 잡은 건 맞지만, 사고방식이 많이 달라졌어. 정말로 순도 100% 개차반이였다면 거인제국은 진즉 망했을 거야.”

“아... 듣고 보니 그렇네.”

“걱정할 거 없어.”

“뭐가?”

“나와 그녀는 둘이면서 하나. 한쪽이 먹히거나 흡수돼서 사라지는 일은 절대 없어.”

“...누가 뭐래?”

나는 걱정한 적 없다. 처지가 비슷해 보여서 물어본 것뿐이다.

“누가 뭐랬어?”

“......”

“후후후! 같이 가! 잘생긴 남편. 그리고 놀려서 미안해. 내 시건방진 엉덩이를 마음껏 때려... 아앗?! 아니야! 방금 말은 취소야!”

우리는 거인왕과 요정왕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챙! 챙!

나를 모르는 요정 기사와 병사들이 검과 창을 뽑으며 무언의 경고를 보냈다.

접근하지 말라고.

그러나 거인들은 아니었다.

쿠웅! 쿠웅!

일제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최고의 예를 표시했다.

“누구... 헉!”

요정왕의 아부를 듣느라 내 접근을 눈치채지 못한 거인왕이 식겁하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는 서둘러 주위를 두리번거리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만이지?”

“수세식 변기와 몰랑교를 전파하신 위대한 선지자이시여! 전설도 어쩌지 못하는 위대한 마왕이시여! 저와 제국은 당신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넙죽!

거인왕 페닉스는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돌바닥에 머리를 바짝 붙이며 엎드려 절했다.

캡틴 판타지의 몰랑한 엉덩이로 참교육한 효과가 있었다.

“하하! 환영해줘서 고마워.”

판타지아 세계의 최강국 황제에게 절을 받으니 기분이 좋은걸?

“그런데 아기님은...”

“불러줄까?”

“아, 아닙니다! 주무실 텐데, 깨우면 절대 안 되지요! 아기님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서 동상도 부지런히 세우고 있습니다!”

“부탁이 있어서.”

“뭐든 말씀하십시오! 아기님의 방석이 되는 것만 아니면 뭐든 바로 실행하겠습니다!”

“별거 아니야.”

캡틴 판타지의 활약(?)으로 남대륙 사업도 수월하게 풀렸다.

거인왕 페닉스는 나중에 용사가 방문하면 벌레처럼 밟아버리지 않고 후하게 대접할 것을 약속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그마한 인간이라고 차별하지 말고 거대한 거인의 삶을 사실 그대로 체험시켜줘. 그러면 용사와 동료들도 무언가 깨닫겠지.”

“아! 이해했습니다. 아기님에게 대항했던 어리석은 소인(小人)처럼 용사들도 거인의 삶을 보며 깨닫게 하라는 말씀이시군요!”

“글쎄? 어떨까?”

나는 정의로운 용사의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아꼈다.

거인왕 페닉스의 말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근성이 용의 힘줄보다 질긴 후배들은 어떤 식으로든 체급의 한계를 넘어설 것이다!

...어떤 식일지는 나도 모르지만.

“저기, 남편? 용사들을 너무 높게 평가하는 거 아니야? 사회부적응자라고 얕봤었잖아.”

“힘들면 비열한 우정의 힘이나 지혜로 극복하겠지.”

“아!”

“나처럼 자력으로 해결하길 바라지만, 그건 사회부적응자에게 너무 지나친 기대겠지.”

“기대를 접은 수준이 이거구나?”

“왜? 더 접어야 해?”

“나는 그래야 한다고 봐. 용사들은 갓난아기처럼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야 해. 내 골반처럼 생각하면 다 부서질 거야.”

비겁한 마누라답지 않게 적절한 비유다.

갓난아기.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다.

“네 말이 맞아, 쏘시엘. 우리는 인간의 가능성을 믿...”

“너만의 가능성이겠지! 고집부리지 말고 내 말을 들어!”

“......”

쏘시엘은 거인왕 페닉스에게 다양한 주의사항을 전달했다.

예를 들어, 거인의 삶을 체험시킨답시고, 연못 크기의 수세식 변기에 용사를 앉히지 말라는 내용이다.

...저건 용사를 너무 무시하는 처사 아닐까?

변기에 빠져 죽는 용사라니?

지나가던 슬라임이 말랑거릴 것이다.

“쏘시엘. 끝났어?”

“응.”

“그러면 슬슬...

거인제국에서 볼일이 대충 끝났다고 판단한 나는 유감스러운 요정왕을 돌아봤다.

그런데 상대도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나누시던데, 괜찮으시다면 이 요정도 낄 수 있겠습니까?”

“좋지.”

“감사합- 켁켁?!”

나는 오른손으로 요정왕 엘브하임의 경추(頸椎) 6번과 7번 사이를 붙잡으며 말했다.

“버그야. 진짜 요정왕은 어떻게 했지?”

“무, 무슨 말씀...”

“그냥 죽든가.”

“......”

우드득.

나는 망설임 없이 그의 목을 분질렀다.

팟-!

내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그림자A가 죽은 요정왕 앞에 털썩 무릎을 꿇으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울면서 외쳤다.

“왜...!”

“버그라고 했잖아. 잘 봐.”

우드득, 우득!

목이 완전히 부러진 요정왕이 오뚝이처럼 몸을 일으켰다.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표정이 흉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완전히 다른 인물이 되었다.

버그가 질문했다.

“내가 가짜라는 사실을 어떻게 눈치챘지? 복사는 완벽했고,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간단해.”

“간단...?”

나는 상큼하게 답해줬다.

“내가 아는 엘브하임은 여자의 가슴에서 절대 시선을 떼지 않아.”

“...뭐?”

“여자의 가슴. 몰라?”

“미친! 실화냐?!”

“버그야. 억울해도 어쩌겠냐?”

네가 복사한 요정이 원래 그런 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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