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338화 (338/430)

 338화

[21회차] 인간의 가능성

“남편. 상황이 좋지 않아. 버그들이 전부 저런 식으로 침투해있다면,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어.”

“확실히 문제이긴 하네.”

버그의 습격으로부터 진짜가 대항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시스템으로 삭제해버린다면 ‘신’ 외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다.

판타지아의 분노.

가짜 엘브하임은 그 힘을 판타지아의 분노라고 불렀다.

예전에 섹시한 가오리를 탔던 우주의 용병도 이 존재에게 의뢰를 받고 소환됐다고 했다.

단순한 우연은 아닐 터.

나는 쏘시엘을 돌아보며 확인을 요구했다.

“벌써 시도해봤는데, 용병의 생활기록에 모자이크가 생겼어. 그 판타지아 분노라는 존재의 얼굴과 목소리가 완벽하게 은폐된 채 출력돼. 고모가 누군가에게 관리자 권한을 넘겨준 흔적도 없고.”

“...라누벨은?”

“동대륙에 있어. 혼자서 용사들의 유적을 탐험하는 중.”

“흐음~”

귀여운 척하는 라누벨이 가장 의심스러웠는데, 과거에 그녀가 ‘용사님. 저는 귀여운 고고학자예요!’라고 소개한 대로 행동 중이라서 무척 의외였다.

“아직도 의심스러워?”

“당연하지.”

이건 당해본 사람만 안다.

던전에서 고의로 함정을 밟은 뒤에 동료들의 의심을 받을 것 같으면 곧바로 귀여운 척한다.

진짜 소름 돋는다.

“계속 주시해.”

(용사님. 제가 라누벨 양을 감시하겠습니다.)

그림자A가 지원하듯 나섰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

분할된 영혼을 하나로 모으기 번거로워서 계속 미뤄지고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몇 시간 안에 페스티벌 행성으로 보내줄 수 있다.

시장실 창가에 앉아서, 도시로 놀러 온 인간 여성들의 가슴을 대놓고 구경하는 유감스러운 요정 수컷의 품으로 갈 수 있다.

그런데 미루겠다고?

나는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네. 이미 기다림에는 익숙합니다. 저는 분명히 약속드렸지요. 전력을 다해 도움을 드릴 테니 그분 곁으로 보내 달라고. 하지만 저는 도움은커녕 버그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조금이나마 만회해야 제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본인이 저렇게 원하니 거절할 수 없었다.

또한, 누군가 라누벨을 실시간으로 감시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누라에게 눈치를 줬다.

그러자 남편이 딴 여자의 목도 못 잡게 하는 깐깐한 절대권력자가 기쁜 마음으로 승낙했다.

“잠깐! 나를 질투의 화신처럼 몰지 마! 여자의 목을 잡는 건 도의적으로 문제가 있거든?!”

“얼른 하기나 해.”

“으으. 나중에 두고 봐!”

“지금 봐라.”

“네! 실컷 볼게요, 남편님... 아우! 라누벨 감시를 부탁해!”

과정은 없었다.

판타지아 시스템에 의해, 그림자A는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곧장 라누벨의 그림자로 전송됐다.

사실, 더는 용병 소환이 없을 거라고 거의 확신한다.

소환의 조짐이 보이는 즉시, 그쪽으로 이동해서 상황을 정리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범인에게 정상적인 판단력이 있다면 소환을 안 할 것이다.

슝! 슝! 슝!

나는 공간을 접으면서 빠르게 이동했다.

거인들의 간척지, 거인들의 낚시터, 거인들의 양식장, 거인들의 염전, 거인들의...

규모가 상식을 초월하는 시설들을 구경하기 위해 잠시 속도를 줄이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순식간에 동대륙에 도착했다.

“여기는 딱히 문제가 없어 보이네.”

절친 뇌비우스가 용들을 학살하지 않은 덕분에 4차 교육과정 때보다 용이 많이 살고, 역병의 화신이었던 5대 재앙이 평범한 가정주부로 지낸다는 걸 제외하면.

바뀐 게 없었다.

“남편. 살아있는 자연재난인 용들이 조용히 산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큰 변화라고 생각하는데?”

“그까짓 도마뱀이 뭐라고.”

처음 한 마리가 잡기 어렵지, 그 뒤부터는 탄력을 받아서 손쉽게 사냥할 수 있다.

“그게 말처럼 쉽나...”

“쉬워.”

나는 동료들의 부주의로 기습에 실패했음에도 사냥에 성공했다.

“그래서 어디로 갈 거야?”

“맞춰봐.”

“...모르겠어. 동대륙에는 가장 많은 동료 후보가 살아서. 그들 중 버그가 있다면 전부 살펴봐야...”

“뭐하러?”

“응?”

“버그의 힘이 어디까지인지 모르지만,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강하지 않다면 방치해도 돼. 사라진 5대 재앙을 대처할 훌륭한 적으로 후배들의 앞길을 가로막겠지.”

“아... 활용하자는 거구나?”

“그래.”

내 계획을 이해한 쏘시엘이 존경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우리는 중앙대륙과 교역이 가장 왕성하게 이루어지는 섬W로 향했다.

사실, 섬이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면적이 넓다.

지구에서도 아메리카 대륙을 섬이라고 부르진 않잖은가?

지구인의 관점에서 보면, 동대륙은 ‘작은 대륙’ 4개와 여러 군도가 합쳐진 ‘큰 대륙’이다.

그만큼 섬마다 문화도 다르다.

“요정 수컷 삽니다!”

“수많은 악마를 무찌른 역전의 용사를 팝니다!”

“항해의 필수품! 인어를 몰아내는 여자 분뇨 주머니 팝니다!”

“건강한 요정 급구합니다! 암컷 말고 수컷요!”

“곧 출항해야 해서 떨이합니다! 요정 암컷을 시세의 반값에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놓치지 마세요!”

“요정 수컷 사요!”

항구는 장사꾼들로 시끌시끌했다.

노예제도가 엄연한 합법인 동대륙의 노예는 조금 특수하다.

구매한 소유주만 수직관계고 타인에게는 수평관계인 까닭이다.

그래서 주인을 잘 만나면 평민 이상으로 호의호식하며 잘 사는 노예가 은근히 많다.

“여긴 바뀐 게 없네.”

“전에도 이랬어?”

“...아! 선원들의 여성 비율이 눈에 띄게 늘었군.”

“좋은 현상이네!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었다는 뜻이잖아.”

“그 반대야.”

“왜?”

“네가 요즘 지구의 문화를 너무 접해서 헷갈리는 모양인데, 여기는 판타지아 세계야.”

판타지아는 지구랑 다르다.

지구에는 남자만 전문적으로 납치하는 아름다운 인어가 살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 선원이 늘었다는 건?

동대륙에 남자가 부족해져서 여자들도 험한 일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여성의 사회진출?

몸이 고달프고 사망률 높은 위험직종에서 삶의 보람을 느끼는 여성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하물며, 바다는 남자보다 여자의 사망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인어 때문에.

인어들은 바다에 빠진 여자에게 일말의 자비도 베풀지 않는다.

바다에 빠져서 실종된 인간 수컷은 한두 달 뒤에 해안가에서 발견되기도 하지만, 암컷은 99.99% 확률로 죽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쏘시엘.”

“응?”

“너는 왜 이런 걸 모르냐? 나이도 많으- 큭!”

“숙녀의 나이는 묻는 게 아니야. 그리고 나는 북대륙과 중앙대륙에서만 활동했어. 남편처럼 세세하게 살펴볼 기회가 없었지.”

“가출선배랑 모험했었잖아?”

“그 멍청이는 동대륙에 미혼의 미녀가 많다고 좋아했어. 왜 많은지에는 관심 없었다고.”

“그것도 나름 재주군.”

나는 쏘시엘, 쑥떡을 이끌고 부둣가의 선술집으로 들어갔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선원들이 바글바글했다.

종업원들은 놀랍게도 인어.

양들의 무리 속에 늑대가 버젓이 활보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인간 행세를 하고 있지도 않았다. 물갈퀴처럼 생긴 귀와 푸른 피부색을 감추고 있지 않았다.

당당히 ‘신사님들~ 나는 인어예요♥’라고 홍보한다.

쿡쿡.

쏘시엘이 또 나의 잘생긴 옆구리를 찔렀다.

왜?

“잘생긴 남편의 말대로 인어가 문제라면, 어째서 사람들이 해코지 안 하는 거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지.”

비밀 아닌 비밀이다.

겉보기에 인어는 인간의 절대적인 우방이자 약자다.

인간이 없으면 번식을 못 해서 멸종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종족인 까닭이다.

그래서 인어들은 바다에 빠진 선원들을 아무런 대가 없이 구해주는 좋은 호구다.

...이렇게들 알고 있다.

내륙에서 사는 인간들과 비겁한 타천사는.

“나만 저격하지 마.”

“쏘시엘. 모르면 좀 배워.”

하지만 그 결과만 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바다에 빠진 인간 중에서 유독 남자들만 살고 여자는 죽는다.

인어에게 구출되면 어째선지 바로가 아니라 몇 개월 뒤에 핼쑥해진 모습으로 귀환한다.

왜일까?

인어들에게 직접 따지는 인간은 없다. 한두 마리 잡아서 따진다고 해결되지 않음을 조상들이 남긴 뼈아픈 교훈 덕분에 잘 알기 때문이다.

인어 종족을 화나게 하면 안 된다.

모든 해로가 완전히 차단되어 고립되기 때문이다.

“그건 곤란하겠네.”

“내 비겁한 마누라가 드디어 생각이란 걸 하는군.”

“무시하지 마! 동대륙에서 인어의 영향력이 이토록 높을 줄 몰랐을 뿐이야. 지금부터 공부하면 금방 통달할 수 있어!”

“그래.”

바로 그때였다.

주르륵!

쏘시엘의 머리 위로 대량의 물과 음식물이 쏟아졌다.

인어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어머! 죄송합니다, 손님. 잘생긴 남편분을 넋 놓고 보다가 그만... 금방 수건과 갈아입을 옷을 가져다드릴게요♥”

“......”

“시간이 좀 많이 걸리겠지만, 원하신다면 변상도 해드려요♥”

“...됐어요. 너무 잘생긴 남편을 둔 업보려니 할게요. 부러워서 미칠 것 같지 않나요?”

“우으으으...”

종업원은 패배감 짙은 얼굴로 도망치듯 떠났다.

나는 쏘시엘을 보며 말했다.

“인어들은 저런 식으로 영업해. 그나저나 쏘시엘. 네가 화내지 않은 건 의외인걸?”

“흥! 나를 얕보지 마. 판타지아트에서 이미 단련됐어. 거기 여자들은 인어보다 더해.”

“그, 그렇군.”

쏘시엘은 더러워진 몸을 씻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그녀의 비겁한 가슴골 사이에 머무시던 마스터 몰랑께서 몰랑하셨다.

몰랑몰랑~

위대한 존재는 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석구석 산책하시면서 물기와 얼룩을 완벽하게 제거했다.

그리고 다시 쏙.

비겁한 가슴골로 들어갔다.

“남편. 봤지? 이게 몰랑이의 능력이야. 남을 가르쳐서 신으로 만드는 재주는 없어.”

“한심하긴. 마스터 몰랑은 비겁한 은신처가 더러워져서 가볍게 몰랑하신 것뿐이야.”

“착각은 자유인데... 그만 좀 해!”

“어머♥”

주르륵...

마스터 몰랑의 자비로 깨끗해진 옷이 또 더러워졌다.

나 같으면 그냥 피했겠지만, 내 마누라는 어째선지 그냥 당해준다.

이유를 모르겠군.

“판타지아는 엄마가 내게 남겨준 곳이니까. 솔직히 나도 살짝 짜증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저들이랑 부대끼면서 동질감을 느껴.”

“나로선 이해하기 힘든 감정이네.”

“그래서 남편. 이 술집에는 왜 들어온 거야? 잘생긴 얼굴로 아내를 골탕 먹이려고?”

“설마.”

이건 온몸으로 느끼는 동대륙 문화체험이었을 뿐이다.

진짜는 지금부터다.

비겁한 마누라. 돈 좀 많이 만들어서 줘봐.

“뭘 어쩌려고?”

“소문을 좀 내려고.”

탕!

나는 손바닥으로 원형 식탁을 치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예상대로 모여드는 시선.

날조와 선동에 익숙한 정의로운 용사님은 위축되지 않고 큰 소리로 군중들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 오늘은 저에게 매우 기분 좋은 날입니다! 이유를 물어보시는 분께...”

“이유가 뭐요!”

“날치보다 잽싼 당신에게 맥주 한 잔을!”

“하하하! 처음 보는 이방인인 줄 아는데 동향이었구먼!”

경계의 시선이 단숨에 줄어들었다. 그리고 사방에서 “얼른 말해!” 혹은 “나도 맥주!”라고 외치며 호응하기 시작했다.

“나는 바다를 지배하는 왕자를 만났소!”

“어떻게 만났는데!”

“당신도 맥주!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지. 우리는?”

“결과가 중요하지!”

“하하! 당신도 한 잔! 이곳에는 뛰어난 맥주 사냥꾼들이 많구려! 그것은 보물! 그 왕자는 내게 보물의 위치를 알려줬소!”

“무슨 보물인데?”

나는 고조된 술집 분위기 속에서 그 보물의 이름을 외쳤다.

“신들의 유람선이라고 불리는 전설의 배. 천공선(天空船) 라우리타! 그것이 잠든 곳이오!”

“와우!”

“오오오!”

“대박!”

누군가 예고편을 봤다면, 그 배는 이미 북대륙 수호자가 빼돌렸다는 사실을 눈치챘겠지만, 이곳에는 몰랑한 어린 양들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비겁한 마누라의 표정이 심상치 않군.

뛰어난 수컷을 목도한 인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쏘시엘. 잘생긴 남편님의 얼굴 처음 보냐?”

“응. 이런 멋진 모습은 처음 봐.”

“...음?”

얘가 갑자기 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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