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339화 (339/430)

 339화

[21회차] 너는 해고야!

“비겁한 남편이 맨날 집에 가고 싶다고 노래하길래, 판타지아 세계를 싫어하는 줄 알았어. 여기는 엄마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별이라서 무척 섭섭했어.”

“싫은데.”

내가 수세식 변기를 보급하면서 생활 수준이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었다.

그런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쏘시엘은 제멋대로 해석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매우 좋아한다는 걸 알았어. 방금까지 우리를 경계하던 사람들이 남편을 좋아하고 있어. 그들의 삶에 공감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이야.”

“이건 정정당당하게 선동과 날조로 우매한 판타지 원주민들을 이용하는 거다만...”

“세상에 목적 없이 움직이는 사람은 없어. 친구를 사귄다는 것도 따져보면 목적이야. 중요한 건, 그 우매한 판타지 원주민들이랑 동화되어 잘 어울리고 있다는 거야.”

“누구나 할 수 있어.”

“나는 못 해. 방금처럼 가만히 있는 것밖에 할 줄 몰라.”

“거참...”

해줄 말이 없었다.

내가 판타지아 원주민들이랑 쉽게 동화될 수 있는 건, 순전히 1회차 동료들 때문이다.

그들이 도와줘서?

그랬다면 내가 무릎 꿇고 절했을 것이다.

내 의견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동료들에게 대항하려면, 나를 지지해줄 자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하고도 가까워질 수 있다.

내가 괜히 Z급 용사라고 당당히 말하는 게 아니다. 평판 작업은 내게 숨 쉬듯 자연스러운 것이다.

“정말 기뻐. 남편이 엄마와 나의 고향별을 사랑해줘서.”

“거참! 말이 안 통하네.”

찰떡의 영향이거나 골반에 콩깍지가 낀 게 분명하다.

“아버지는 정말 대단하세요!”

여태까지 쭉 얌전히 있던 쑥떡이 존경의 눈빛을 보내왔다.

“뭐... 기본이지.”

파르마엘의 훼방으로 쑥떡의 조기교육에 실패해서 훌륭한 마룡이 되긴 글렀지만, 선동과 날조만 잘해도 절반은 먹고 들어갈 것이다.

잘 보고 배워라.

그러면 맥주 몇 잔으로 단시간에 이런 것도 할 수 있다.

“뭐? 신들의 유람선이?!”

“천공선 라우리타!”

“전설의 배가 돌아왔다아-!”

“선술집에 가봐!”

내가 퍼트린 이야기가 항구 전역으로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천공선 라우리타.

쉽게 말해서, 하늘을 나는 배.

서대륙에서는 그보다 더한 비행선을 양산하는 중이었지만, 개발도상국이나 다름없는 동대륙은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알더라도 밤하늘의 별이나 다름없는 꿈같은 얘기다.

그러나,

“강한 선원이 필요하겠군!”

“뛰어난 조타수도!”

“노련한 부선장은 구했으려나?”

“항해사도 필요하겠지!”

“어허! 요리사는 기본 아니야?”

“부상자를 치료할 의사도!”

“남자들만 가게 둘 순 없죠!”

항구를 배회하며 중앙대륙으로 항해하는 일거리를 찾고 있던 자들이 관심을 보였다.

동대륙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들은 부모와 어른들에게 ‘옛날옛적에~’라는 전설을 듣고 자랐다.

천공선 라우리타는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았다.

거친 파도와 태풍을 무시하고, 동대륙과 서대륙을 가로막은 무한의 바다를 하루만에 주파하고...

뱃사람들에게는 꿈의 결정체다.

물론,

“사기꾼이 아닐까?”

“그래도 믿을 녀석은 많지.”

“사기? 인어들에게 던져주면 돼.”

“마누라 몰래 도전해볼까...”

안 믿는 사람도 있고, 머뭇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내가 낚으려는 자들은 이런 송사리가 아니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해적왕이다! 해적왕의 배다!”

“맙소사! 산적왕도 온다!”

“헉! 미친! 무역왕도 보이는 것 같은데?!”

무역왕은 범죄자가 아니지만, 해적왕과 산적왕은 항구에 멋대로 들어올 수 없다.

하지만 그건 윗사람들이 정한 규칙일 뿐이고, 항구에서는 약간의 융통성을 발휘한다.

기물을 파손하며 제멋대로 날뛰지만 않으면 눈감아준다. 도시 안에서 싸우면 서로 남는 게 없으니까. 역으로 그들이 정상적인 소비 활동을 해주면 경제에 보탬이 된다.

범죄자라는 건 변함없지만.

“거기, 땅거미. 당장 길을 열어라!”

“물벼룩! 네놈들이나 꺼져!”

그리고 해적과 산적은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

서로 영역이 달라서 충돌할 일은 없지만, 그게 문제가 됐다.

서로 더 잘났다는 자존심 대결이 돼버렸다.

바다에서 해적이 이기면 당연한 거고, 육지에서 산적이 이기는 것도 당연하다.

간혹 지형을 무시한 결과가 나오면 방심한 탓이라고 둘러댄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선 동료를 죽인 원수가 되어있다.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비천한 범죄자들이 얼쩡거리나! 귀하신 분의 행차다. 비키지 않으면 전부 감옥에 처넣겠다!”

“총관. 길이 바쁘다.”

“죄송합니다. 벌레들은 무시하고 빠르게 지나가겠습니다, 회장님.”

“그래.”

앙숙인 해적과 산적들 사이를 의도적으로 가르고 지나가는 긴 상단의 행렬.

무역왕의 등장이다.

그의 밝은 금발과 하얀 피부는 타고난 귀공자 같지만, 젊은 나이에 밑바닥부터 올라온 진짜배기다.

“멧돼지. 다음에 결판을 내자.”

새하얀 해골이 그려진 검은색 선장모를 쓴 여자가 으르렁거렸다.

귀족 분위기의 제독 코트 안쪽에는 폭발적인 몸매를 아슬아슬하게 가려주는 수영복만 입고 있다.

푸른색 머리카락 때문에 인어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그녀의 뾰족한 귀를 본다면 혼혈 요정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순혈일 가능성?

저 폭발적인 가슴은 유전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녀가 바로, 긴 시간 동안 해적들의 왕으로 군림해온 해적왕이다.

인어들의 숙적!

그러자 상반신 누드의 갈색 피부 사내가 답했다.

“푸하하하! 물개야.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이 야만인이 산적왕이다.

녀석도 혼혈 요정인데, 수컷이라서 자세히 알진 못한다.

무역왕, 해적왕, 산적왕.

동대륙의 강자들이 차례대로 선술집에 들어왔다.

나를 만나기 위해.

전설의 배, 천공선 라우리타를 차지하기 위해.

모였다는 게 중요하다.

가장 먼저 들어온 무역왕이 내게 인사를 건냈다.

“사기꾼으로 치부하기에는 일행들의 외모부터 범상치가 않군요. 저는 무역왕이라고 불리는 남자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하지 마.”

“...본론으로 바로 넘어가지요. 허풍으로 치부하기에는 천공선 라우리타에 대해 자세히 아시더군요. 제 상단이 보유하고 있는 선체구조 조감도보다 상세하게.”

“직접 봤으니까.”

“과연...”

무역왕이 오른손을 살짝 들었다.

철컥, 챙, 챙, 찰칵!

함께 들어온 호위들이 기습적으로 무기를 뽑았다.

그러나 산적과 해적들도 멍청하지 않았다. 귀신 같은 눈치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족속들이기 때문이다.

“무역왕 나리. 나를 빼고 이야기를 진행하려고 하면 곤란해.”

“망할 물개! 내가 하려던 말을 가로채지 마라! 이봐, 무역왕. 육지에서 무역하고 싶으면 무기를 내려놓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

털썩, 털썩, 털썩...

해적왕과 산적왕이 순식간에 무역왕의 호위들을 제압했다.

죽일 가치조차 못 느낄 만큼 압도적인 실력 차이.

아니, 죽일 수 없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호위들을 죽였다면 무역왕도 무기를 뽑았을 테니까.

별명에 ‘왕’이 붙긴 했지만, 셋이 하는 짓거리는 깡패나 다름없다.

해적왕이 내게 질문했다.

“당신에게 배의 위치를 가르쳐줬다는 바다의 지배자. 그도 나처럼 푸른 머리카락을 가졌나?”

“그는 북대륙 마법왕국에서 태어났고, 현자의 제자이기도 하지. 귀중한 반지를 물려준 딸을 여전히 사랑한다는군.”

“...안내해. 아니면 위치가 적힌 지도를 내게 팔든가. 내가 해적이긴 하지만, 이 반지의 명예를 걸고 정당한 보수를 약속해.”

해적왕이 처음부터 해적왕이었던 건 아니다.

바다에서 실종된 대마법사 아버지를 찾고자 몇 년을 떠돌다가 해적들에게 붙잡히고, 온갖 험한 꼴을 당하면서 기어오른 끝에 그들의 왕이 되었다.

1회차 때도 그랬다.

그녀의 목적은 소문처럼 천공선이 아니라, 천공선을 찾아서 모험을 떠난 아버지의 행방이다.

산적왕이 큰 소리로 끼어들었다.

“천공선에는 천사의 보물이 잔뜩 들어있다고 한다. 정말인가?”

“아니.”

“그러면 뭐가 있지?”

“텅텅 비었어.”

천공선 라우리타는 북대륙의 수호자가 수리해서 가져갔는데, 그전에는 최초의 용사가 사용했었다.

돈을 버는 족족 유흥비로 탕진했을 게 뻔한 가출선배가 값비싼 보물들을 남겨뒀을 리 없다.

급기야 천공선 라우리타마저 험하게 다뤄서 추락시키고.

“...하하! 진짜군! 내 할아버지는 추락한 천공선 라우리타에 직접 들어가 보셨지! 허세면 죽일 생각이었는데 진짜니 살려주마. 나는 천공선 라우리타의 진정한 주인이다! 그 장소를 알려주면 나중에 보답하지!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개소리가 심하군.

천공선 라우리타를 얻으면 육해공을 아우르는 도둑이 될 놈이다.

물론, 도둑질을 오래 하진 못할 것이다.

하늘을 나는 배.

인간의 관점에선 굉장하지만, 용들에게는 단순한 종이비행기다.

자신의 둥지 위에서 얼쩡대면 바로 추락시킬 게 뻔하다.

쿡쿡.

쏘시엘이 내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찌르며 불렀다.

왜?

“이들을 모아서 어쩌려고? 위치를 알려주지 않으면 싸우자고 덤빌 것 같은데.”

아주 좋은 질문이다.

나는 쑥떡의 녹색 머리카락을 오른손으로 쓰다듬으며 답했다.

“소개하겠습니다. 이쪽은 제 아들인 쑥떡입니다. 어허! 이 사람들! 호응할 줄- 그래! 내 아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저 용자에게 맥주 한 잔! 아니, 두 잔!”

동대륙을 대표하는 강자들의 출현에 긴장했던 사람들이 내 강단에 감탄하면서 호응하기 시작했다.

짝짝짝!

짠! 짠! 짠!

손뼉을 치고 술잔을 부딪치면서 가라앉았던 분위기를 띄웠다.

쑥떡이 당황한다.

“아, 아버지...?”

그 모습이 참으로 답답했다.

이쯤 말하면 적당히 알아듣고 호응할 줄 알아야 하는데.

피가 안 통하는 탓일까?

안타깝게도 이 양아들은 선동과 날조를 너무 할 줄 모른다.

그렇나 괜찮다.

“바다의 지배자와 천공선 라우리타는 동대륙과 서대륙을 가로막고 있는 무한의 바다에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살아서 돌아온 자가 드물 만큼 굉장히 넓고 위험한 바다지요.”

무한의 바다.

지구의 모든 바다를 합친 면적보다 2배 이상 넓고, 깊이는 평균 5배를 넘는다.

그리고 정중앙에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있어서 배만 튼튼하다고 지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래서 이 바다는 판타지의 가호를 받는 자들도 엄두를 못 낸다.

툭.

나는 쑥떡의 어깨를 두드리며 호기롭게 외쳤다.

“제 아들 쑥떡이 여러분들을 전설이 잠들어있는 섬으로 안내할 겁니다. 하하! 무시하지 마십시오. 애가 좀 어리고 순진하게 생기긴 했어도 매우 똘똘합니다. 쑥떡만 따라가면 됩니다. 참 쉽죠?”

“아버지? 저는... 아욱!”

모른다고 대답하려는 쑥떡의 발을 밟아서 입을 다물게 했다.

아이고! 앞날이 걱정되는군!

이번 기회에 사회경험을 똑바로 시켜줘야겠다.

무역왕이 예리한 시선으로 나를 쏘아봤다.

“당신은 어째서 천공선 라우리타를 회수하지 않았습니까?”

“배의 주인이 아니라서 움직일 수 없었어.”

“그렇군... 마스터 인증을 어떻게든 초기화해야... 흠흠! 한심한 질문을 해서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해적왕이 질문했다.

“인원은?”

“자율입니다. 마지막에 누가 소유할지는 관심 없습니다. 가장 강한 자가 차지하겠죠.”

“...당신, 악마네.”

해적왕 주제에 제법인걸?

하지만 나는 평범한 악마가 아니라 마왕이다.

산적왕이 불쾌감을 드러냈다.

“너는 쏙 빠지시겠다?”

“하하! 저는 마누라의 골반 만질 시간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제 아들을 보내잖습니까?”

“전혀 안 닮았는... 꾸엑?!”

쿠웅-!

멧돼지 멱 따는 소리를 내면서 산적왕이 뒤로 자빠졌다.

내가 아니다.

쑥떡이다.

“외모가 전부는 아니에요! 한 번만 더 저를 화나게 하면 당신을... 당신을... 또 혼내주겠어요!”

...아들아. 마무리가 시원찮구나.

하지만 나름 만족한다.

방금처럼 조금씩 사회경험을 쌓다 보면 훌륭한 마룡이 될 것이다.

콕콕!

마누라가 또 옆구리를 찔러댔다.

“왜?”

“쑥떡을 보내서 어쩌려고?”

쑥떡은 지금까지 나를 따라다니면서 모든 대륙을 훑어봤다.

이제, 이력서에 위대한 전설의 탐험가만 추가하면 된다.

그러면,

“라누벨을 해고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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