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화
[21회차] 몰랑폰2
‘아... 이런 곳이구나!’
‘판타지 세계! 나도 드디어!’
‘진짜 왕자님을 만날 수 있을지도!’
‘나도 요정 마누라가...!’
신출내기 용사들은 몰랑폰으로 최신정보를 확인했다.
비겁한 마누라가 잽싸게 간섭해서 용사들이 소환될 때 몰랑폰2도 같이 생성되도록 한 덕분이다.
[판타지아는 처음이신가요?]
[신규용사는 가입해주세요.]
[몰랑폰이란?]
......
스마트폰처럼 스크린 터치 방식을 지원하며, 카메라와 도난방지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
충격에 강하고 방수는 기본. 모든 속성에 높은 저항력을 가지고 있어서 마법이나 주술적인 간섭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방패가 아닌 몰랑폰의 진짜 가치는 따로 있다.
[판타지아 세계란?]
[고향별로 돌아가고 싶나요?]
[친구를 사귀는 방법]
[몰랑교라고 들어보셨나요?]
[판타지아 몬스터 백과사전]
[최신정보를 확인하세요.]
[능력치를 올바르게 보는 법]
[마스터 몰랑은 누구인가?]
[각국의 이해관계와 고찰]
[판타지아 신화와 전설 모음]
[기다리면 무료: 몰랑계시록]
[마왕 파르마몬의 경력]
......
모험에 필수적인 정보를 원하는 만큼 무료로 얻을 수 있다.
물론, 해부에 가까운 상세한 정보는 제공해주지 않는다. 조금만 노력하면 구할 수 있는 정보들만 모아놓았을 뿐.
몰랑폰의 꽃은 따로 있다.
통합커뮤니티다.
⤷지크: 11111111 제가 1등인가요? ^^;;;
⤷레몬: 너희는 업보 등급이 얼마나 되냐?
⤷루크: 공략정보 교환합니다. 귓속말로. 장난은 사절.
⤷레이나: 중학생 없나요? 벌써 초딩 냄새가 진동하네.
⤷아론: 판타지아 경력 1900년 만에 별 해괴한 걸 보는군.
⤷피코: 몰랑교 만세! 여러분도 몰랑교 믿고 결혼하세요!
⤷루루: 친구신청 받아요! 제 이름을 꾸욱 눌러주세요!
⤷링끄: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젤따는 어디 있죠?
......
이름은 ‘킹왕짱지크’ 같은 중2병 짓을 못 하도록 생활기록부를 기반으로 자동등록되고, 채팅창 도배를 막기 위해 장문과 연속채팅은 금지했다.
하지만 용사들의 숫자가 워낙 많아서 채팅창이 넘어가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일반인은 읽지 못할 수준!
하지만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채팅방을 개설한 후에는 지금의 혼란도 잠잠해질 것이다.
“순조롭군.”
나는 몰랑폰2S+의 관리자 권한으로 내부상황을 쭉 훑었다.
누가 예상을 했겠는가?
마왕이 용사들에게 유용한 아이템을 시작부터 뿌린다고.
장인어른은 부하와 자식들을 사료처럼 던지며 용사들을 지원했지만, 나는 그런 야만적인 수단을 쓰지 않는다.
정보는 힘!
아름다운 지구별의 문화시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우선은 동료와 물주를 구해야지.’
‘으흐흐. 총을 개발해볼까?’
‘귀여운 라누벨이 안 보이네...’
‘신성제국에서 시작하는 건가?’
처음이든 아니든 용사들은 몰랑폰의 정보를 바탕으로 빠르게 판타지아 세계에 적응해갔다.
만두왕국 대신 신성제국에서 시작한 순간부터 현역 용사들은 ‘기존이랑 달라졌다!’라고 직감하면서 정보공유에 힘썼다.
⤷지크: 요정공주 실비아가 어디에 있는지 아시는 분?
⤷아론: 남대륙 엘브하임 제국으로 가보세요. 3대 요정왕이 불치병에 걸렸다는 소문입니다.
⤷제니: 우와! 정말 감사요! 나서스 왕자님도 남대륙에 있겠네요!
⤷피코: 신성제국에서는 몰랑교를 이단 취급합니다. 조심하세요. 자기들이 사이비인 주제에!
⤷제임스: 몰랑교보다 응애교가 훨씬 나음. 거인제국에서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음.
......
그들은 길을 헤매거나 허둥대지 않고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모르는 게 있으면 몰랑폰의 다른 용사들에게 물어보고, 그래도 모르면 원주민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물론, 원주민들은 상대가 용사라고 해서 공짜로 도와주지 않는다. 심부름 같은 대가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도 한때다.
오지랖 넓고 관심병 걸린 용사들이 게시판에 공략들을 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공략: 황녀를 조심해라.]
[작성자: 루크]
「황성에 계속 머물면 황녀가 잃어버린 어머니의 유품을 찾아달라고 부탁할 거야.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몰라. 해본 친구가 있다면 댓글 달아줘. 유품의 정보를 수집하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잡다한 임무를 잔뜩 떠안게 됨. 다 무시하고, 황실 정원의 사자 모양 동상의 주둥이 안에 숨겨져 있다. 도둑은 개뿔! 황녀가 숨기고 거짓말했음.」
이 게시글이 올라가자마자 수많은 용사가 잡다한 임무를 멈추고, 황녀에게 유품을 바로 돌려줬다.
용사를 자연스럽게 이용할 계획이 틀어진 황녀의 표정이 안 좋아졌지만, 용사들은 간악한 황녀의 손아귀를 빠져나와서 빠르게 모험을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단점도 있었다.
‘나만 특별한 인간인 줄 알았는데!’
‘용사가 도대체 몇 명이야?’
‘이세계 모험은 주인공 특권이야!’
‘노잼. 나보다 잘난 놈이 많아.’
자기만 회귀하고, 자기만 특별하고, 자기만 환생하고, 자기만 먼치킨이고, 자기만...
자기 잘난 맛에 살던 용사들은 마주한 현실에 우울증에 걸렸다.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저런 사회부적응자들은 졸업해서 사회에 나갔을 때, 견디지 못하고 사고 칠 테니까.
사람은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
나만 특별하다는 오만함에 사로잡히면 주색(酒色)에 빠지고 만다.
[공략: 빠르게 강해지는 법]
[작성자: 용사A]
「후배들의 성장을 돕기 위해 최고의 정보를 풉니다. 신성제국 북서쪽에 자리한 누추한 마을에 마스터 몰랑이 은거하고 계십니다. 가르침을 청하여 모두가 성공하시길 빕니다. 그분의 위대함은 몰랑계시록 4장 6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첫 번째 제자가 그분의 몰랑한 몸을 만지고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세상을 다 가진 듯이 오만하게 굴더라. 이에 마스터 몰랑께서 몰랑하며 꾸짖으시니 만물이 몰랑하였다. 이에 놀란 제자는 자신의 미숙함을 깨닫고 그분 앞에 몰랑하더라. 게임 같은 능력치에 의존하지 말고 진정한 힘에 눈을 뜨시길 바랍니다.」
“...남편, 뭐해?”
“후배들에게 내 성공비결을 아낌없이 전수해주는 중. 쏘시엘. 보고도 몰라?”
“내가 정말로 몰라서 묻는 게 아니야. 어째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건데? 저들이 성장해서 남편의 자리와 목숨을 위협하고, 아름다운 첫 번째 아내를 강제로 빼앗으려고 할지도 모르잖아.”
“예리한 지적이야.”
비겁한 마누라의 말대로 위험한 짓을 하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이미 후배들보다 200년 이상 앞서있다. 이 정도면 선구자로서 충분히 누렸다고 생각한다.
지식의 독점은 강점이 많고 매력적인 건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게으르게 만들 것이다.
단순한 추측이 아니다.
나는 1회차 때보다 여자의 골반을 만지는 시간이 부쩍 늘어났다. 내가 나태해졌다는 증거다!
“그건 나태해진 게 아니라 내가 너무 예뻐서고.”
“조카는 예쁘다!”
“방금 들었지? 이모님 말씀은 항상 옳아.”
“그런데 추하다!”
“......”
비겁한 마누라는 내 계정명 ‘용사A’가 마음에 안 든다면서 ‘먼치킨’으로 바꿨다.
너무 유치한 거 아니야?
쏘시엘이 반박했다.
“용사A보다는 훨씬 낫거든?”
“용사A가 어때서? 아무도 내가 누군지 모르잖아.”
“아니. 저런 괴상한 작명센스는 판타지아에 남편밖에 없어. 분명히 알아보는 사람이 나올 거야.”
“그럴 리...”
⤷피코: 강한수냐?
게시글을 올리자마자 달린 댓글을 보고서 나는 침묵했다.
그런데 ‘피코’가 누구인데 나를 단번에 알아보지?
“남편의 고향별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 동정A.”
“이젠 동정이 아니야. 생활기록부를 살펴보면, 신성제국의 황제에 오른 황녀가 용사 피코랑 결혼해서 자식을 열두 명이나 낳았어.”
“와우!”
“그뿐만이 아니야. 비록 초등교육과정이긴 하지만, 용사 피코는 황녀를 도와서 판타지아 4개 대륙을 통일하는 데 일조했어. 서대륙 정벌에 실패하고 회귀했지만.”
“제법인데?”
애가 유부남이 되더니 완전히 각성한 모양이다.
쏘시엘이 이어서 말했다.
“교직원들 말로는, 용사 피코가 초등학생 중에서 가장 빨리 남편에게 도전할 인물로 꼽히고 있어. 그가 달달 꿰차고 있는 신성제국에서 시작한 게 매우 크다는 분석이야.”
“정말이네.”
용사 피코는 단 이틀 만에 옛 부인이었던 황녀의 마음을 훔쳤다.
권력욕이 심한 황녀는 용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지만, 쓰고 버릴 도구가 자신의 골반을 만지도록 허락할 여자는 절대 아니었다.
아니. 이것도 정치.
골반이 가볍다는 추문이 돌면 후계자 경쟁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용사들의 모험 방향은 성별에 따라 크게 둘로 나뉘었다.
이것도 몰랑폰으로 정보를 공유한 영향일 것이다.
쏘시엘이 긍정했다.
“맞아. 남자들은 신성제국의 항구에서 배를 얻어타고 곧장 북대륙으로 넘어가려는 추세야. 얼음공주, 성녀, 검희를 한 번에 얻겠다는 전략. 여자들은 성왕국에서 성기사와 성녀를 얻고 남대륙으로 넘어가서 나서스 왕자랑 접촉한다는 계획이 많아.”
“좀 일괄되긴 했군.”
안전과 효율만 따지는 바람에 모험들이 전부 비슷비슷했다.
성별로 루트가 갈릴 줄은 예상 못 했지만, 대충 이렇게 흘러갈 것은 처음부터 예상했었다.
그래서 길잡이 쑥떡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안녕하세요, 용사님. 이것도 인연인데, 흥미로운 이야기를 잠시 나눌 수 있을까요? 이 근처에 수세식 변기가 있는 근사한 레스토랑을 알고 있어요.’
녀석은 라누벨처럼 다짜고짜 마왕을 무찌르자고 말하면서 동료로 합류하지 않았다.
닷새 정도 멀리서 용사를 관찰하며 성격과 취미 등을 분석한 후, 거기에 맞춰서 접근했다.
이것이 영업이다.
귀여운 척으로 전부 해결하려는 라누벨이랑 근본적으로 다르다.
⤷레몬: 너희도 전설의 탐험가 쑥떡이랑 만났냐?
⤷루크: 오늘부터 당분간 정보공유 안 합니다. 쑥떡이 만능이네요.
⤷레이나: 완전무결 미소년! 완전 내 취향 저격! 쑥떡은 내가 침 발라뒀으니 여러분은 꺼지세요.
⤷루루: 친구신청 안 받아요. 쑥떡만 곁에 있으면 돼. 사랑해!
⤷링끄: 이 쑥떡이란 소녀. 젤따랑 너무 닮지 않았나요?
⤷아론: 판타지아 경력 1900년 만에 완벽한 동료를 발견했다. 쑥떡. 그녀는 진짜다.
⤷지크: 내게는 실비아뿐인데. 쑥떡은 너무 반칙 아닙니까? 모든 속성을 다 가지고 있음.
......
성별이 없는 용인 쑥떡은 자유롭게 모습을 바꿀 수 있다.
특징은 태생적으로 타고난 녹색 머리카락과 눈동자뿐.
녹색 복장을 극단적으로 선호하긴 하지만, 이건 상황에 따라서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
쑥떡은 닷새 동안 연구한 용사의 취향을 저격하면서 자연스럽게 동료로 들어갔다.
그리고 유능하다.
내 인맥으로 모든 대륙의 절대자들에게 특급 대우를 받고, 용사들이랑 판타지 동료 이상의 고차원적인 대화도 가능하다.
검술, 정령, 궁술, 마법, 치료, 탐색, 요리, 빨래, 야영, 정찰, 외교, 거래, 탐지, 감정...
못 하는 걸 찾기가 더 어렵다.
라누벨이랑 격이 다르다.
▼진리: 용사님. 그런 전능한 도구를 이용하면 모험이 될 수 없어요. 가슴 벅찬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고 싶지 않으세요?
이 와중에도 라누벨의 발버둥은 계속됐다.
밤낮으로 시끄럽게 ‘몰랑폰을 버리세요.’라고 떠드는 바람에 그녀의 평판은 나날이 추락하고 있었다.
첫날에는 그래도 신탁 효과 덕분에 ‘여신’으로 불렸지만, 어제부터는 용사의 휴식을 방해하는 ‘마녀’로 불리는 중이다.
⤷로빈: 웬만하면 참겠는데, 저 마녀 좀 닥치게 못 하나?
⤷루시아: 아무리 화나도 욕은 자제요. 저는 스트레스로 피부가 나빠져서 미치는 중이요. ^^
⤷스미스: 나도 진짜 미치겠다. 최강의 아이템을 만드는 중인데 마녀 때문에 집중이 안 돼.
⤷케빈: 너두? 나두!
⤷아린: 라누벨 대신 이상한 신탁이랑 쑥떡이 나와서... 쑥떡아! 이 누나는 너를 만나서 행복해!
⤷피코: 여러분! 마녀는 이교도들이 믿는 고대의 신입니다! 몰랑교가 진짜 진리입니다!
귀여운 척하는 라누벨이 파고들 빈틈 따위는 없다.
몰랑폰의 매력에 몰랑해진 용사들은 공명정대한 Z급 마왕님의 선동과 날조에 더욱 휘둘릴 것이다.
졸업할 때까지 쭉.
▼진리: 모험하지 않는 여러분들은 용사로 불릴 자격이 없어요! 판타지 세계와 함께 멸망하세요!
마침내, 라누벨이 폭발했다.
모든 용사를 부정하고, 세계를 저주했다.
삼류마왕 같은 대사로군.
“잘생긴 남편.”
몰랑몰랑~
그리고 내 허벅지 위에 앉아서 마스터 몰랑이랑 몰랑폰2S+를 들여다보던 쏘시엘이 나를 불렀다.
“라누벨 때문이겠지?”
“응. 라누벨이 시스템 방화벽을 무시하고 탈주했어.”
“어디로?”
비겁한 마누라가 손끝으로 밤하늘을 가리켰다.
“고모와 천사들의 고향. 페스티벌 차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