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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급 관심용사-347화 (347/430)

 347화

[22회차] 모험의 힘

“그건 확실히 마음에 걸리네.”

발견하면 다시는 귀여운 척하지 못하도록 척추를 만져줄 예정이었다.

그런데 ‘신’이라니?

절친 뇌비우스랑 싸워보고 느낀 거지만, 일단 ‘신’이란 명패를 달고 있으면 만만하게 볼 수 없다.

승산이 있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패자부활전이 없는 싸움이기에 확실하게 압도할 수 있어야 한다.

장소가 좋지 못하다.

몰랑소프트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라누벨이랑 싸워서 행성이 터져버린다고 상상해보라.

판타지아 차원은 괜찮을지 몰라도 이곳은 엉망이 될 것이다.

“이번에는 용사님의 일정이나 계획을 말씀해주십시오. 귀염둥이 손녀들을 위해 전심전력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세력이 어느 정도인데?”

이 요정왕이 얼마만큼의 역량이 되기에 나를 돕겠다는 걸까.

엘브하임이 씩 웃었다.

“페스티벌 행성에서 제 손녀들의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저는 언제나 약자의 위치에서 외교와 정치를 해왔습니다. 동족들은 너무나 약했고, 영웅이라고 부를 존재는 태어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셀레니스와 셀비너스는 다릅니다. 두 아이는 동족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줬고,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족이 길다.”

“하하! 처음에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페스티벌 행성에서 제 손녀들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고. 그 말 그대로입니다. 최강으로 일컬어지는 용족마저도 무릎 꿇었습니다. 망룡왕 뇌비우스가 동족학살을 시작하려고 할 때, 손녀들이 나서서 도와줌으로써 전폭적인 협조와 지원을 약속받았습니다. 현재는 아직 이르지만, 먼 훗날의 후손들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용들을 타고 날아다닐 겁니다.”

“과연...”

딱히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망룡왕 뇌비우스가 내 딸들에게 사냥당한 이유를 알게 됐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성룡왕 에르단티 덕분에 마음의 안정을 얻는 절친 뇌비우스는 동족학살을 벌이지 않았다.

하지만 유부남이 되지 못한 페스티벌의 젊은 뇌비우스는 같은 길을 되풀이하고 말았다.

흠. 유부남은 과학인가?

하여간 엘브하임의 영향력이 페스티벌 행성에서 엄청나다는 건 확실하게 알았다.

“용사님. 예전에 해드리지 못했던 말을 하겠습니다. 제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정말 멋진 말이로군!

정의로운 MAX급 용사님은 최고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너무 늦었어.”

“아...”

“현재로도 충분해.”

두 딸이 건강하게 자라준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다.

*

용사의 동료 중에서 내게 폭언을 날린 녀석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라누벨처럼 ‘세계’가 멸망하라고 저주한 자는 없었다.

어떻게 이런 존재가 신이 됐는지 의문이지만, 그녀가 엘브하임의 말대로 ‘모험의 신’이라면 충분히 수긍되는 이야기였다.

몰랑폰2의 보급으로 모험이란 변수가 사라진 판타지 세계.

귀여운 척하는 라누벨의 관점에서는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저 천사들처럼.

“망할 닭대가리들. 군대가 없다는 건 거짓말이었군.”

조용히 엘브하임이랑 작별한 나는 다시 하늘로 비상했다.

그랬더니 웬걸?

완전무장한 수많은 천사가 마중 나와 있었다.

내가 도시 중 한 곳을 방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랴부랴 끌어모은 정예로 짐작됐다.

능력치가 상당했으며, 선두에는 쏘시아처럼 ‘두 번째 저주’를 타고난 천사 남성이 있었다.

▷종족: 세컨드 엔젤

▷레벨: 999+

▷직업: 신왕(신앙→지배↑)

▷스킬: 신성GGG 기백GGG

정력ZZZ 신앙Z 매력Z…

▷상태: 경계, 분노

능력치는 형편없었다. 하지만 신성 하나만큼은 능력치를 돌파할 만큼 대단했다.

그리고 내가 너무 잘생긴 바람에 남을 잘 인정하지 않지만, 눈앞의 천사는 ‘두 번째’로 잘생겼다.

스킬 ‘기백’이 신의 영역에 도달했다. 저것이 그의 외모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 같다.

“파르마엘의 자식은 여자라고 생각... 그렇군.”

옆에 다른 천사들도 있었다.

마왕 페도나르도 가장 사랑하는 여자랑 맨 처음에 낳은 자식이 쏘시아였을 뿐이다.

그 뒤부터는 ‘악마 왕자’와 ‘악마 공주’를 무수히 낳았다.

전부 죽여봐서 잘 안다.

“나는 파르마엘의 첫 번째 자손 바나나엘.”

“나는 파르마엘의 두 번째 자손 우유엘.”

“나는 파르마엘의 세 번째 자손 감자엘.”

그들의 자기소개를 듣자마자 식욕이 당기는 건 기분 탓일 것이다.

두 번째 저주를 받은 아들 바나나엘이 능력치로는 가장 강했고, 딸 우유엘은 가슴이 정말 무시무시했으며, 셋째 감자엘은 외모부터 표정까지 어딘가 많이 부족해 보였다.

뒤편에도 파르마엘의 자손으로 짐작되는 천사들이 바글바글했지만, 입을 다물고 있는 거로 봐서는 실질적인 리더는 이 셋이라고 봐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용건을 꺼냈다.

“너희가 신으로 떠받드는 라누베르크는 어디에 있지?”

진리를 전파하는 자.

신끼리 고삐 풀고 싸우면 행성이 파괴되는 건 필연이라고 할 수 있지만, 용사 페스티벌이 시작된 후에 싸움이 터지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다소 위험하더라도.

질질 끌지 말고 라누벨이랑 결판을 내야 한다.

“은혜로운 분께 칼끝을 겨눈 어리석은 배덕자여! 그분의 헌신과 사랑으로 그대가 강한 용사가 될 수 있었음을 잊었는가!”

“귀여운 그분께서 인간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며 보듬지 않았다면 우리의 가축이었을 하등한 종족. 주제를 깨닫고 물러나세요.”

“형제님. 신을 진노하게 하지 마십시오. 지금이라도 반성한다면 늦지 않았습니다. 몰랑폰이란 사특한 요물을 파기하시고 그분의 모험에 동참하십시오. 그것만이 용서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전에는 저런 주절주절 잡다한 연설을 들어주지 않았는데.

나도 슬슬 은퇴해서 마누라의 척추나 빨아먹는 기둥서방이 될 때가 된 것 같다.

“라누벨이 여기에 있다는 거군.”

탁.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저들의 잡다한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준 것도 라누벨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발뺌하지 않고 저리 쉽게 고백할 줄은 몰랐지만, 필요한 정보도 모았으니 퇴장해줬으면 좋겠다.

【암흑】

몰랑한 암흑물질이 천사 군대를 몰랑하게 바꾸고, 공간째 그들을 남김없이 짓뭉갰다.

그러나,

“음양의 이치를 통해서 강해지는 사랑의 힘!”

【모험】

바나나엘의 뒤편에 선 천사 여성들의 몸에서 쏘아진 분홍색 빛이 빨대처럼 그의 몸에 꽂혔다.

“바나나엘 님!”

“힘내세요! 바나나엘 님!”

“꼭 이기셔야 해요!”

“바나나엘 님! 조심하세요!”

“절대로 지지 마세요!”

판타지 능력치로 표시되지 않는 강함이 그녀들로부터 바나나엘에게 전달됐다.

불끈불끈!

눈에 띄게 부풀어 오르는 그의 성검과 근육만 봐도 알 수 있다.

옆의 우유엘도 선언했다.

“강한 유대로 더욱 강해지는 우정의 힘.”

【모험】

그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파르마엘의 딸이니 당연한 거겠지만, 가슴이 2배쯤 큰 찰떡처럼 생겨서 기분 나쁜 우유엘은 새하얀 빨대를 추종자들에게 꽂았다.

“우유엘 님을 위해!”

“나의 힘을 우유엘 님께!”

“당신만이 절 가질 수 있어요.”

“이 노예가 힘을 바칩니다.”

“우유엘 주인님! 만세!”

그녀는 바나나엘이랑 달리 남녀가 혼합되어 있었다.

두 번째 저주를 받은 바나나엘보다 모든 면에서 압도적으로 약했던 우유엘의 전투력이 단숨에 오라비를 바짝 따라잡았다.

나는 감자엘도 확인했다.

【모험】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강해지는 희망의 힘...”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는 양팔과 양다리를 벌리고 X자 모양으로 가만히 허공에 두둥실 떠 있었다.

그러나 확실한 건 하나.

엘브하임의 추측처럼 라누벨은 ‘모험의 신’이었다.

바나나엘, 우유엘, 감자엘.

이름만 들어도 배가 고파지는 세 천사가 내 신격 ‘암흑’에 짓뭉개지지 않고 저렇게 버티고 있다는 게 그 증거다.

“믿는 구석이 있었군?”

하지만 가소롭다.

【인간】

【척수】

장인어른에게 물려받은 신격은 판타지아 차원의 유지에 허비되어 매우 약하다.

그러나 내 노력으로 일궈낸 이 신격들은 다르다.

팟!

나는 겁도 없이 가장 앞으로 튀어나온 바나나엘에게 도약했다.

“어림없다! 러브게이션!”

그러나 두 번째 천사답게 바나나엘의 반응속도는 대단히 빨랐다.

뿅!

힘껏 ‘러브게이션’이라고 외친 그의 손에 낯익은 검이 소환됐다.

“성검1이군.”

판타지아 차원에 있는 것은 양산형 복제품이고 이쪽이 진짜일 터.

나도 맞상대해줬다.

【척추】

내 신격으로 형성된 정의로운 성검이 소환됐다.

캉! 캉! 캉-!

우리는 찰나에 수십 번의 공방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바나나엘의 척추가 부러질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꺅?!”

“허리가...!”

“아, 아파요!”

“꺄윽?!”

받는 피해를 뒤편의 응원단에게 분산하고 있었다.

이 피해가 누적되면 그나마 괜찮은데, 다수의 천사에게 분산된 내 신격은 신성과 자연치유에 삼켜져 흐지부지 사라졌다.

그리고 성검1.

장인어른이 싫어할 만했다.

“더러운 자동전투!”

“야시리엘! 마왕이 그쪽을 쳐다본다! 뒤로 빠져! 루미엘! 거기가 아니라 우측이다! 슈엘. 멀뚱멀뚱 서 있지 말고 거리를 확보해!”

바나나엘은 전투를 성검1에게 몽땅 맡기고, 자신은 분홍색 빨대를 꽂은 응원단을 관리했다.

그 탓에 무방비한 보급(응원단)을 공략하지 못하고 있었다.

성검1의 자동전투를 실력으로 찍어 누를 수 있으면 좋은데, 짝퉁이랑 달리 검술 실력이 무지막지했다.

그래도 곧 뚫을 수...

“Bluuuuu!”

“Silllllll~!”

“Chaoooo!”

“Gollll-!”

“Greeee~!”

과거의 뇌비우스처럼 천사들에게 사육된 용들이 일제히 내가 숨결을 쏘았다.

누구의 소행인지 봤더니, 용들의 몸 위에 우유엘과 추종자들이 타고 있었다.

가소롭다.

신격을 얻은 뇌비우스라면 충분히 위협적이겠지만, 저런 천사의 애완동물은 그 숫자가 얼마나 많든 날도마뱀에 지나지 않는다.

한 방에 처리해주지.

【인간】

성검1에 근접전투를 맡긴 바나나엘만큼 자유롭진 않지만, 내게는 아직 왼손이 남아있다.

팡야-!

용들의 숨결이 붕괴하며 방사형으로 쏘아진 충격파가 우유엘과 추종자들을 휩쓸었다.

“러브에이드-!”

그 파멸의 현장 안에서 우유엘의 명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촤악!

그리고 내 신격의 충격파가 종잇장처럼 좌우로 갈라졌다.

“성검2...”

스킬을 증폭해주는 성검.

나도 한때 애용했었던 만큼 그 효과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몰랐던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힘에 취한 어리석은 마왕이여. 성검 러브에이드는 스킬을 증폭하고 공유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즉, 당신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우리의 우정을 뛰어넘을 수 없어요.”

“노예들이겠지.”

우정을 논하는 우유엘의 추종자들은 친구나 동료 같은 미지근한 관계가 아니었다.

고삐가 채워진 용들은 대놓고 사냥개, 애완동물 취급을 받고 있다.

우정은 개뿔!

물론, 우유엘의 방식이 효율적이란 건 부정하지 않겠다.

“너의 패배다!”

“우리의 승리예요!”

바나나엘과 우유엘이 우쭐대기 시작했다.

어이가 없다.

비열한 협공을 쓰는 주제에 강함과 정의를 논하다니?

저런 악(惡)의 무리에 패배하지 않는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겠다.

【인간】

【암흑】

【백광】

...비겁한 마누라의 사랑을 조금 끌어와서 증폭.

내가 소유하면 두 신격이 반발하는데, 이렇게 빌려오는 식이면 상승효과가 무시무시하다.

덤으로,

“우리의 우정을 보여주지.”

“응애~!”

숫자가 많다고 우정의 힘이 강해지는 건 아니다.

캡틴 판타지의 몰랑한 손바닥이 한 번에 수십 마리의 용들을 후려쳐서 재기불능으로 만들었다.

거기에 탄 천사들은 덤.

“Reeeee~?!”

“꺄악~?!”

“Whiiiii~?!”

“컥-!”

제자리에서 캡틴 판타지가 선풍기 날개처럼 한 바퀴 빙글 돌자마자 모든 게 쓸려나갔다.

아니, 불타버렸다.

거대한 화염의 날개는 태양의 홍염처럼 닿는 모든 걸 흔적도 남기지 않고 증발시켰다.

여기에 내가 마무리!

걸리적거리는 바나나엘의 불끈한 사타구니를 걷어차고 우유엘의 물렁한 가슴을 후려쳤다.

“컥!”

“꺅?!”

마무리는 캡틴 판타지에게!

나는 마지막까지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셋째, 감자엘을 찾았다.

그리고 눈을 부릅떴다.

“저건 대체 뭐야...?”

어떻게 저 방대한 힘을 여태 놓칠 수 있었을까?

나는 바나나엘과 우유엘이 미끼였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비장감 넘치는 감자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주에 사는 모든 친구여. 나에게 조금씩만 힘을 빌려줘. 희망의 불씨가 되어줘...”

“빌리긴 뭘 빌려!”

못생긴 닭대가리. 뒤질 준비나 해라!

내가 저지하고자 도약함과 동시에 감자엘도 움직였다.

“간다! 러브나로크~!”

쿠구구구-

강탈한 힘을 희망으로 둔갑시킨 신격이 나에게 뚝 떨어졌다.

그때, 캡틴 판타지가...

“응애? 응애애애~!”

귀엽게 울부짖으며 상황을 종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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