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357화 (357/430)

 357화

[23회차] 거인왕의 숙제

판타지아 교육장의 최종목표는 마왕 파르마몬을 쓰러트리고 세계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하지만 4차에서 5차 교육과정으로 넘어오면서 판타지 세계는 혼돈과 전쟁이랑 거리가 멀어졌다.

가장 큰 원인은 악마숭배자.

그들은 2000년 전부터 꾸준히 감소해왔다.

“마왕 페도나르가 위대한 용사에게 패배하고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 뒤부터 2000년 동안 악마와 악마숭배자들은 꾸준히 줄어들었지요. 그러나 우리는 더욱 큰 위협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마왕 페도나르를 단신으로 쓰러트린 위대한 용사가 마왕이 된 겁니다! 작금에 이르러선 그가 얼마나 강해졌을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뽕의 가호를 받은 성녀E가 잘 설명해주는군.

“나와 아내는 2000년 전에 그의 파티에 있었지. 설녀가 함정에 빠지는 바람에 마지막 전투는 보지 못했지만, 그자의 강함은 진짜다. 그리고 강함에 못지않은 지혜와 비열함도 갖췄지. 남자로서 매력과 카리스마, 결단력, 추진력도 겸비했고... 못 하는 것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알렉스가 욕인지 칭찬인지 분간 안 되는 설명을 덧붙였다.

지크가 질문했다.

“알렉스 씨. 지금의 당신이랑 싸우면 누가 더 강한가요?”

“마왕, 말인가?”

“네.”

“...무의미한 가정이다. 나는 마왕이랑 싸우지 않으니까. 전투에 돌입하는 순간, 그는 가장 먼저 내 아내를 잔혹하게 살해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싸울 수 없다.”

“만약 싸운다면요.”

“만약은 없다. 그가 설녀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나는 마왕이랑 적대하지 않는다.”

불편하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린 알렉스는 융통성 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지크도 만만치 않았다.

“마지막 전투 직전에 설녀 님을 안전한 장소에 피신시킨다면요?”

“...끈질기군.”

“제가 좀 그래요.”

“5초.”

“...5초요?”

“내가 만전을 가한 상태에서 마왕 파르마몬을 상대로 버틸 수 있는 최대의 시간이다.”

“이렇게나 강하신데요?”

지크가 주위를 가리켰다.

산처럼 쌓인 몬스터의 시체.

야영하는데, 설녀가 침낭 속에서 꼼지락대며 ‘알렉스.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어요.’라고 한마디 하자마자 알렉스는 이 일대의 몬스터를 싹 정리했다.

졸개, 보스 가리지 않고.

마음으로 베는 그의 심검 앞에선 모든 몬스터가 평등했다.

“용사여. 나는 강하지 않다.”

“이게 안 강하다고요?”

“서대륙의 대현자 섹스피어, 그는 한 손가락으로 순식간에 대륙을 지울 힘을 가졌다.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그만한 힘을 가졌다. 남대륙의 거인왕 페닉스. 나의 육체 능력이 100배쯤 증폭됐다고 보면 된다.”

“......”

“그리고 이런 거인왕을 단 1초 만에 엉덩이로 짓눌러버린 신적인 존재 아기님. 마지막으로, 중앙대륙의 흑각룡 뇌비우스는 마왕 파르마몬도 꺼리는 최강의 용이다.”

“...이 세계는 용케도 멸망하지 않고 여태까지 유지되어왔네요.”

지크는 사색이 됐다.

야! 알렉스. 왜 자라나는 195년짜리 새싹을 기죽이고 그래.

그래도 눈치 없는 알렉스는 멈추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설녀를 잃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듯, 그들도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대현자 섹스피어는 서대륙 최고의 미녀가 아내고, 흑각룡 뇌비우스도 성룡왕 에르단티를 아끼지. 거인왕 페닉스는 야망이 있으나, 아기님이 무서워서 얌전한 편이다. 그 아기님은 북대륙과 서대륙의 정신을 지배하는 몰랑교랑 쌍벽을 이루는 응애교의 유일신이니 논외로 쳐야 하고.”

“아슬아슬한 균형이네요.”

“하지만 2000년 동안 유지되온 균형이기도 하지.”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요.”

몰랑폰을 얘기하는 것이리라.

지금까지 검왕 알렉스를 동료로 영입하는 데 성공한 용사는 없었기 때문이다.

할 마음도 없고.

손이 없는 설녀랑 알콩달콩 로맨스 영화를 매일 찍어대는 그를 영입하고 싶은 용사는 없기 때문이다.

알렉스가 말했다.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군. 그러니 지크 용사여. 내가 아닌 그대가 강해져야 한다.”

“강해질 수 있을까요?”

“그는 강해졌다.”

“마왕이요?”

“그렇다. 그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무언가를 했다. 나의 아름다운 설녀를 닭고기 취급할 정도로 여색(女色)이 없었고, 오직 인류의 평화와 안녕만을 위하는 진짜 용사였다. 그야말로 미친 남자였지.”

알렉스는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설녀에게 최고급 육포를 조금씩 잘라서 먹여주며 말했다.

“그도 저처럼 독신이었나요?”

“아니.”

“...아니라고요?”

“그의 아내는 내가 살면서 본 여자 중에서 두 번째로 아름다웠다. 서대륙 최고의 미녀로 칭송받는 흡혈귀 제국의 황제도 그녀의 아름다움에는 못 미쳤지. 아! 당연히 첫 번째는 나의 아내 화이트 치킨이다.”

“......”

알렉스는 설녀에게 제대로 콩깍지가 씐 게 틀림없다.

저 멍청한 닭대가리가 여자 중에서 최고로, 첫 번째로 예쁘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정의로운 용사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 교생 아가씨가 가장 예쁘다.

이건 반론의 여지가 없다.

“또 질문 있나?”

“알렉스 씨는 아는 게 정말 많으시네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현자 섹스피어는 서대륙 황제의 남편이고, 거인왕 페닉스는 황제다. 그동안 나는 판타지아 전역에 정보망과 인맥을 쌓아뒀지. 별거 아니다.”

“와아...”

내가 지크였다면 몰랑폰에 바로 정보를 공개했을 텐데, 그는 남들이랑 공유할 마음이 없는 듯했다.

지크답다고 할까.

“흠. 저도 질문 하나만 할게요, 알렉스 씨.”

“말씀하십시오, 디스토리아 양.”

“당신이 생각하기에, 현 마왕을 쓰러트릴 방도가 있다고 보시나요?”

“...모릅니다. 제 정보는 마왕이 깨어나기 직전까지니까요. 마왕의 성이 붕괴하고 그 자리에 거대한 탑이 세워진 이후부터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마왕을 토벌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건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유부남이 되면서 개념을 탑재한 알렉스가 나를 띄워주는 건 좋은데, 그만큼 반작용이 생겼다.

지크가 중얼거렸다.

“희망이 안 보여...”

녀석은 몰랑폰의 커뮤니티를 부지런히 살펴보고 있었다.

⤷지크: 인증하지 못한 지크가 선배님들께 부탁이 있습니다. 마왕 파르마몬의 공략법. 하다못해 능력치라도 가르쳐주세요.

⤷오딘: 오! 지크잖아? 잠수하더니 오랜만이다. 마왕은 모르겠다. 나도 10층에서 막혔거든. 타락한 요정 용사 실레리온. 검술 실력이 미침.

⤷알라: 나는 동료들에게 10층을 맡기고 강제돌파했지. 그렇게 20층까지 갔더니 실레리온의 아내이자 엘브하임의 여동생 엘브하슈가 기다리고 있더라. 마법 완전면역임. 돌았음.

⤷제우스: 너희들. 그래서 졸업할 수 있겠냐? 나는 30층이다. 아래층 공략법은 비밀. 30층에는 최강의 골렘 보리스가 있다. 난공불락임.

⤷이시스: 안녕하세요? 저는 중학교 학생회장이에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하고 계시네요, 선배님들. 저도 끼워주세요. 참고로 저는 중등교육과정 40층에서 막혔어요.

...

그들의 이야기가 진행될 때마다 지크의 표정은 절망과 희망이 수없이 교차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루크: 40층 보스 실화임?

⤷레이나: 와! 능력치 무시라니...

⤷아론: 2000년을 채우겠군.

⤷로빈: 그래도 갈 수는 있구나.

⤷루시아: 10층도 어렵던데...

설명으로 들은 탑의 보스들 수준이 너무 높았던 것.

하지만 40층까지 올라간 학생들이 소수지만 있어서 불가능한 일은 아님을 입증했다.

디스코도 어느새 지크의 몰랑폰을 함께 훑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

⤷사탄: 현재 70층. 정보 공유함. 50층은 중간휴식지. 60층은 타락한 천사 감자엘. 70층은 구마왕 페도나르. 참고하세요.

사탄이란 고등학생이 선구자처럼 다른 이들의 기록을 압도했다.

무려 70층.

내가 안 본 사이에 쏘시엘이 탑을 증축하고 보스도 늘린 것 같다.

그 비겁한 마누라가 자기 아빠도 활용할 줄은 몰랐지만.

흠. 소심한 복수인가?

거기까지 살펴본 지크가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마왕이랑 싸워본 용사는 아직 없지만, 도전해볼 만한 것 같네요. 벌써 70층까지 도달한 선배가 있다는 걸 보니까요.”

“많이 아프니?”

비겁한 마누라에게 확인해봐야 알겠지만, 50층에 휴게소(?)가 있는 구조로 봐서는 100층이 종점이다.

그런데 고작 70층밖에 못 도달한 시점에 도전하겠다고?

얘가 현실감각을 잃은 모양이다.

“선배.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요. 저희의 파티 전력은 강합니다.”

“내가 모은 거다만.”

“그, 그렇긴 하지만, 선배를 파티로 끌어들인 건 저입니다. 그러니 제 공로라고도 할 수 있죠!”

그것도 틀렸다.

내가 감찰 때문에 자발적으로 이 파티에 들어온 거다.

하지만 지금은 시시콜콜하게 따질 때가 아니었다. 해봤자 디스코의 의심만 살 테니까.

진정하자, 강한수.

지금은 지크 따위랑 말싸움하며 심력 낭비할 때가 아니다.

시치미 뚝 떼고 물었다.

“그래서 지크. 너는 그 몰랑폰이란 기물로 새로운 정보를 꽤 모은 것 같은데, 어떻게 하고 싶냐?”

“공략을 올려준 선배님의 말씀에 따르면, 10층 보스는 타락한 요정 용사입니다. 문제는 그가 고대의 성검을 사용한다는 거죠. 성검에는 성검으로밖에 대적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크는 공략집에서 가르쳐준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읊었다.

마치 자신이 즉흥적으로 짠 계획처럼 뻔뻔하게 설명했다.

그래. 그래도 참아주마.

디스코에게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면 무언들 못하리.

“정보수집도 능력이지요. 요행으로 우수한 동료를 모으는 행운도 포함해서요.”

깐깐한 줄 알았던 디스코는 의외로 지크에게 후한 평가를 내렸다.

이에 기분이 좋아진 걸까?

지크의 고질병이 또 발작했다.

“성검 몰랑코인을 획득한 후, 마왕의 탑에 도전하겠습니다!”

“뀨뀨!”

이젠 한 발자국 물러나서 지켜보기로 한 나는, 우매한 후배에게 딱 한마디만 해주고 싶다.

그럴싸한 계획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

“아기님, 만세!”

어떤 머저리 선배들의 말을 믿고 저따위 도발만 하지 않았어도 9년 동안 개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심기가 불편해진 거인왕 페닉스는 용사 지크에게 불가능한 시련을 풀세트로 내줬다.

1) 요리대회 우승

2) 마라톤 우승

3) 낚시대회 우승

4) 먹기대회 우승

5) 투기장 우승

6) 수영대회 우승

사람도 볶을 수 있는 초대형 프라이팬을 사용하는 요리대회.

판타지아 남대륙의 해안선을 따라 한 바퀴 크게 도는 마라톤.

미끼로 오우거를 쓰지 않으면 절대로 우승할 수 없는 낚시대회.

위장의 크기가 100배쯤 차이 나는 거인들이랑 겨루는 먹기대회.

체급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하긴 했지만, 가장 현실성 있던 투기장.

드넓은 바다를 수영장 취급하는 거인들이랑 겨루는 수영대회.

심지어 ‘우승’해야 했기에 더욱 힘들었다.

“으으으...”

“뭐... 수고했다, 지크.”

가장 돌파구를 찾기 힘들었던 시련은 먹기대회였다.

거인들처럼 빨리 먹을 순 있어도 몸속에 저장할 수 있는 양은 한없이 적었던 탓이다.

그래도 지크는 해냈다.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판타지 스킬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당연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종족: 엘프니즘 휴먼

▷레벨: 999+

▷직업: 용사(경험치 500%)

▷스킬: 정력ZZZ 회피ZZ

체력ZZ 폭식ZZ 낚시Z

질주Z 소형Z 우정Z

검술Z 요리Z 수영Z

인내MAX…

▷상태: 희열, 과식, 성검

“흥! 제법이군.”

거인왕 페닉스는 한껏 거드름 피우면서 보관 중인 성검을 넘겼다.

거인의 성검 몰랑코인.

칼날의 크기와 형태를 용사가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그리고 매우 단단하다.

판타지 시스템의 보호를 받는 성검을 평범한 무기와 수단으로는 절대 파괴할 수 없다.

적어도 판타지아 차원에서는.

지크가 성검 몰랑코인을 번쩍 치켜들며 외쳤다.

“마왕의 탑으로 출발-!”

“...지크야.”

“선배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있지. 헐어버린 너의 괄약근. 다시 조이던가 틀어막는 게 급선무 같은데.”

“예? 아앗...”

용사 지크의 모험은 괄약근 재활운동 1년 후에 재개됐다.

드디어 마왕의 탑으로!

지크야! 큰 기대 안 할 테니 30층까지만 가자!

...이거 실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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