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7화
[25회차] 우정의 힘!
“정말... 어마어마하군.”
무려 19년.
당연히 첫날부터 끝까지 쭉 동행한 동료는 드물다.
하지만 용사 사탄의 모험 도중에 개인사, 가정사, 연애사 등의 사유로 이탈했던 그 동료들이 ‘약속의 날’에 전부 모였다.
평소의 나 같으면 이들을 ‘잡것’으로 싸잡아서 취급했겠지만, 기념비적인 날이기에 쭉 살펴보기로 했다.
<옵저버>
쑥떡: 양아들 or 딸
아담: 나
이브: 비열한 감찰관
도굴왕: 던전 함정 전문가
도적왕: 적 탐지 전문가
고고학자: 라누벨 아님
옵저버는 복잡한 던전과 지형, 몬스터 서식지, 사악한 요새 등을 먼저 정찰한 후, 안전한 길로 본대를 이끄는 길잡이 역할이다.
나와 디스코는 모험의 간섭을 최소로 하고자 이쪽에 가담했다. 하지만 길잡이로도 딱히 활약하진 않고, 던전에 숨겨진 수세식 변기의 위치를 알려주는 정도다.
실질적인 옵저버는 나머지 넷이라고 할 수 있다.
<탱커>
기사왕: 마조히스트(남)
용병왕: 산전수전 베테랑
암흑공주: 마조히스트(여)
토마토: 타락한 성기사
땅의 기사: 가슴이 단단함
용자H: 방패 성애자
지룡왕: 마조히스트(용)
풍룡왕: 회피 성애자
악마왕D: 장인어른 부하 4호
탱커는 아프기 싫거나 비실비실한 동료들을 앞에서 지켜주는 고기방패, 맷집 역할이다.
장인어른이 남긴 버그라고 할 수 있는 ‘악마왕 시리즈’가 사탄의 ‘복수하고 싶지 않아?’라는 말에 설득돼서 대활약 중이다.
4차 교육과정 당시, 장인어른을 유혹하던 요정왕 마누라를 지키던 5대 기사는 실업했다.
그 백수 요정 암컷들을 사탄이 모아서 다시 한 팀으로 꾸렸다.
만만한 용왕(龍王)들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파티에 채용했고...
더 살펴보자.
<미드필더>
사탄: 용사
검왕: 아들 카리스
창왕: 찌르기 성애자
권왕: 주먹 성애자
얼음공주: 얼리기 성애자
아쿠아: 멍청한 물고기 공주
나서스: 가슴 성애자 2호
용자A: 용&선배 혼혈 1호
용자G: 흡혈귀&선배 혼혈 1호
용자P: 흡혈귀&선배 혼혈 2호
산적왕: 산악전 전문
악룡왕: 노출증 환자
마룡왕: 마기 마니아
광룡왕: 근육 바보
닭대가리C: 천사 노출증(여)
닭대가리G: 천사 노출증(남)
악마왕B: 장인어른 부하 2호
탱커를 맡기에는 맷집이 다소 약하지만, 공격력이 우수하고 다방면으로 활약하는 미드필더.
자기가 탱커인 줄 착각하고 불나방처럼 돌격하는 멍청한 용왕들이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사탄은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강한수와 검희 대신 참가한 아들 카리스는 용사 사탄이랑 쌍벽을 이루는 미드필더다.
내 척추를 닮은 카리스는 무시무시한 성장세를 보여주면서 알렉스처럼 ‘검왕’이란 칭호를 따냈다.
황위계승서열 1위였던 나서스 왕자는 성녀E의 커다란 가슴(뽕)에 현혹되어 참가했다.
...불쌍한 녀석.
<근거리 딜러>
천마: 무적 안드로이드(성검)
검귀: 천마 제자(남)
검마: 천마 제자(여)
검룡: 천마 제자(용)
해적왕: 해상전 전문
암살왕: 뒤치기 달인
암흑기사: 짤짤이 달인
실비아: 남편감 구하는 중
용자B: 요정&선배 혼혈 1호
용자C: 하렘 성애자
용자N: 인어&선배 혼혈 자매
99호: 안드로이드 비앙카
바나나엘: 설득당한 천사
닭대가리B: 천사 근육 바보
악마왕C: 장인어른 부하 3호
딜러는 방어를 포기하고 공격에 영혼을 판 자들이다.
그중에서도 근거리 딜러는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성녀만 믿고 적에게 가까이 접근해서 싸운다.
시가전, 난투, 개싸움, 첩보전, 게릴라전, 추격전 등에 우수하고, 방어를 포기하고 가까이 붙어서 싸우는 만큼 공격력도 높다.
눈여겨볼 점은 천마.
내가 과거에 성검3로 골렘D를 만들었듯이, 사탄도 성검에 깃들은 용사의 영혼 ‘천마’를 활용했다.
그녀(?)의 두 제자는 안드로이드가 아닌 요정으로, 원래는 존재하지 않는 비정규직(?) 동료다.
그리고...
<원거리 딜러>
군신: 골렘 마니아
현자: 코피 대마법사
궁신: 저격 전문
노예왕: 악당 세뇌
마음의 기사: 몬스터 마니아
불의 기사: 요정 마법사
바람의 기사: 요정 궁수
용자D: 본능에 충실함
용자K: 용&선배 혼혈 2호
용자M: 인어&선배 혼혈 자매
용자Q: 요정&선배 혼혈 2호
서리여왕: 전직 5대 재앙
신룡왕: 신성 마니아
빙룡왕: 온난화 주범
근거리 딜러보다도 방어를 포기한 녀석들의 집합체다.
부하를 부리는 군집형, 광범위를 포격하는 학살형, 멀리서 간부를 죽이는 저격형 등이 있다.
눈여겨볼 녀석은 노예왕.
강자를 생포한 후, 세뇌해서 충실한 노예로 부리는 노예왕은 ‘토벌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탄은 정정당당하게 내기해서 그를 굴복시켰다.
내게 척추를 잡혀도 항복 안 하던 노예왕이 무릎 꿇는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전율을 느꼈다.
날조와 선동의 진수...!
<힐러>
성녀A: 여성 전문 치유사
성녀C: 남성 전문 치유사
성녀E: 뽕 사기꾼 요정
백룡왕: 신체개조 성애자
외계인G: 안드로이드 정비공
아군을 치유하거나 되살리는 힐러는 너무 우수해서 볼 것 없었다.
용사1 성녀1
이 규칙을 깨고 판타지아 대륙의 모든 성녀를 고용한 용사 사탄의 파티는 힐러가 남아돌고 있다.
모험 19년 동안 사망자 없이 동료가 불어나기만 한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외계인 시리즈.
가출선배가 과거의 마누라들을 회수하기 위해 판타지아로 파견했던 녀석들이 대륙 곳곳에 숨어있다.
그 대부분은 서대륙의 대현자 섹스피어 밑에서 일하고 있지만, 자유인도 조금은 있다.
외계문물을 활용한다는 특징이 있지만, 태생이 엑스트라 병사라서 큰 활약은 못 한다.
자기들 대장 빨강이 보스로 등장한 걸 보면 뒷목 잡겠는걸?
<서포터>
주술왕: 해골 일꾼 소환
무역왕: 전리품 감정
물의 기사: 식수 보급
괴짜: 각종 물약 제조
요리왕: 요정 요리사
정보왕: 정보수집 전문
황녀: 스트레스 상담
유희왕: 오락 담당
외계인F: 총기류 제작자
외계인L: 안드로이드 설계사
외계인U: 비행선 조종사
닭대가리G: 택배기사
악마왕K: 야바위꾼
말랑이: 배설물 담당
파티의 잡다한 일은 전담하는 서포터는 없어선 안 될 존재다.
용사 사탄은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일반적인 용사 파티는 만능형 동료인 쑥떡 혼자서 옵저버와 서포터 포지션을 전부 처리하지만, 사탄의 파티는 전투원만 66명으로 규모가 너무 커서 그럴 수 없다.
서포터까지 총원 80명(?).
이건 어디까지나 ‘마왕의 탑’에 입장하는 인원이다.
이 80명이랑 연계된 부하, 불가피하게 함께할 수 없는 동료까지 더하면 2000명은 가볍게 넘기며, 그 하나하나가 졸개가 아닌 영웅이다.
“갑니다...!”
선두에 선 용사 사탄이 검은색 망토를 휘날리며 1층으로 향했다.
“와아아아!”
“끼요오오옷!”
“몰랑을 위해-!”
“아기님께 영광을...!”
“와아아아~!”
그 뒤를 따라서 79명의 동료가 질서정연하게 입장했다.
자, 본격적인 마왕님의 수업을 시작하자!
*
마왕의 탑.
여기는 내 집이 틀림없지만, 정작 나는 100층의 구조밖에 모른다.
탑 내부에서는 ‘성녀의 부활’도 제한된다는 사실을, 지크 덕분에 알게 됐을 정도로 무지하다.
굳이 알 필요도 없고.
“이번 층은...”
용사 사탄은 서두르지 않았다.
사망자와 부상자가 최대한 안 나오도록 층마다 멈춰서 브리핑을 할 만큼 조심스럽게 진행했다.
매번 최선을 다했겠지만, 이번에야말로 100층까지 도달하겠다는 의지가 자주 엿보였다.
“난감하네.”
“무슨 뜻이죠?”
“빠질 틈이 안 보여.”
“아! 그렇네요. 19년 동안 기둥서방처럼 지내는 모습만 봐서 깜빡했습니다. 당신의 역할이 있었죠. 하지만 이 분위기대로 흘러가면 고층까지 사망자가 안 나올 것 같습니다.”
“...그것도 괜찮겠지.”
마왕의 탑은 총 100층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10층마다 존재하는 보스방 외에는 어렵지 않다.
나머지 방들은 어중이떠중이를 걸러내고, 학생에게 다양한 환경을 경험시켜주는 테마파크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정말로 용사들의 침입을 저지할 생각이었다면?
보스들이 각개격파 당하지 않도록 한 층에 몰아넣으면 된다.
그러면 아무도 못 덤빈다.
10층에 도달했다.
“나는 10계층 수호자 실레리온. 이 위로 올라가고 싶다면 힘으로 나를 쓰러트리면 된다. 하지만 검술의 대가인 나는 쉽지 않을...”
“검술의 대가? 건방지군. 본좌는 천마. 내 칼에 수많은 절대자가 쓰러졌지. 너도 그중 하나일 뿐.”
“크리스 포스 큐라레입니다. 검왕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한 수 가르침을 부탁합니다.”
1대1로 붙을 분위기.
하지만 사탄은 그런 낭만적인 싸움을 용납하지 않았다.
“여기서 머뭇거리거나 희생자가 나와선 안 됩니다. 빙룡왕의 환영이 펼쳐지면 작전을 시작합니다. 닿는 무엇이든 베어버리는 실레리온의 성검을 상대하면 안 됩니다. 자, 그러면...무차별 포격 시작! 정확히 맞출 생각은 버리고 공간을 파괴해서 회피할 수 없게 해야 합니다!”
퍼엉!
펑!
콰앙-!
무려 14명이나 되는 원거리 딜러가 작전대로 ‘무작위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시스템으로 마왕의 탑에 ‘파괴 불가’ 속성이 안 걸려 있었다면 가루가 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압도적인 화력!
10층 보스 실레리온은 쏘시엘에게 보급받은 ‘타락한 성검’만 남긴 채 허무하게 전사했다.
“...무시무시하군.”
내가 200년 넘게 용사와 마왕을 겸직하면서, 이렇게 비겁한 우정의 힘은 처음 보았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
용사 사탄은 전력을 고스란히 보존한 채 20층에 도달했다.
여기서 한두 명쯤은 죽거나 다쳐도 괜찮지 않을까?
그러나 압도적인 우정의 힘으로 찍어누른다는 방침은 바뀌지 않았다.
20계층 수호자 엘브하슈.
나는 그녀에게 ‘죽음의 군주 실바라스’라는 이름을 지어줬었는데, 비겁한 마누라가 유치하다면서 교장이 되자마자 싹 뜯어고쳤다.
재미없는 원래 이름으로.
실레리온의 아내인 그녀의 본명은 엘브하슈. 유감스러운 3대 요정왕 엘브하임의 여동생이다.
...외운 게 아니다.
무려 5시간 동안 이루어진 사탄의 브리핑 탓이다.
보스의 이름 ‘엘브하슈’만 수백 번 들었기에 저절로 외워진 것이다.
그녀의 남편 ‘실레리온’도 그렇고.
뭐, 며칠 뒤면 까먹겠지만.
“꺅~?!”
그녀는 남편보다 처지가 그나마 나았다.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걸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노예왕.
녀석의 야만적인 고문에 굴복한 엘브하슈는 노예로, 마왕을 배신하고 적으로 돌아섰다.
“...이 부분은 빠르게 보완할 필요가 있겠군.”
엘브하슈는 마법 완전면역이란 강점을 전혀 살리지 못했다.
사탄의 파티에는 마법을 전혀 안 쓰는 딜러만 30명이 넘었으니까. 그들이 우르르 달려가서 가녀린 여성을 폭행하고 생포했다.
우정의 힘이 얼마나 잔인한지 잘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그분의 이름으로, 몰랑.”
나는 먼지처럼 허무하게 패배한 두 보스의 명복과 안식을 빌어줬다.
...30층에서도.
40층 보스에게도.
마왕의 탑 30층을 지키는 수호자 보리스는 몰랑폰 커뮤니티에서도 대단한 난적으로 꼽혀왔지만, 용사 사탄은 간단히 공략했다.
똑같은 안드로이드로.
퍼엉-!
고대의 용사 천마랑 1대1로 싸워서 패배한 보리스가 쓰러졌다.
그리고 외계인들에게 개조되어 용사의 파티에 편입됐다.
“Reeee...!”
남편이 개조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한 40층 보스 빨강이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용사 사탄은 능력치를 무효화하는 힘을 가진 빨강이를 도발해서 체급이 낮은 ‘용인’ 형태로 싸우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몰랑폰 커뮤니티 공략법에 작성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이 그 공략법을 어기고 있었다.
어떻게?
“Iceeeee-!”
“Bleeee-!”
“Daaaar-!”
“Whiiii-!”
“Gooool-!”
“Siiiiiil-!”
미소년, 미소녀 모습을 해제한 용왕들이 우정의 힘을 과시하며 육탄전을 벌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빈틈이 보이자마자 빨강이를 향해 일제히 숨결을 토했다.
“Reeee~?!”
쿠웅-!
압도적인 열세 속에서 치열하게 버티던 빨강이가 마침내 쓰러졌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은 20층 보스 엘브하슈를 통째로 잡아먹고, 30층 보스 보리스를 완전히 파괴한 후에 숨을 거뒀다.
즉, 용사 사탄의 파티는 여전히 전력을 온전히 보전한 상태.
커뮤니티 활동도 꾸준했다.
⤷사탄: 고등교육장 마왕의 탑 40층까지 피해 전무. 처음으로 인증사진 올립니다. 40계층 수호자 크로마티구스 장군의 시신 앞에서 79명의 동료들이랑 찍었습니다.
⤷제우스: 성녀가 셋? 응. 합성.
⤷알라: 양심 어디? ;;
⤷루크: 80명은 좀 에바인데요.
⤷오딘: 관종아. 좀 꺼져.
⤷루시아: 사탄 님. 실망이에요.
하지만 오늘도 다른 학생들에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몰랑폰 커뮤니티를 보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는 사탄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사탄. 질문이 있어.”
“말씀하십시오.”
“어째서 너는 욕먹으면서까지 평행세계의 용사들을 갱생하고자 애쓰는 거지?”
“동료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흐음?”
79명이나 모아놓고 웬 동료 타령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