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화
[25회차] 정의로운 MAX급 용사
▶종족: 유나이티드 스피릿
▶레벨: 9999+
▶직업: 탈마(용사=마왕)
▶스킬: 영재ZZZ 신성Z 날조Z
편애MAX 불사MAX···
▶상태: 용린
내 목숨을 노리는 가출선배의 집에서 신세 졌을 때의 능력치.
그 보답으로 수도(행성)를 탈탈 털어준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스킬 자체는 눈여겨볼 점이 없었지만, 종족의 변화로 가출선배를 포함한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경험을 손에 넣었다.
▷종류: 종족
▶명칭: 유나이티드 스피릿
▶등급: 태초
▶태초1: 영웅의 삶을 계승한다.
▶태초2: 계승한 삶을 융합한다.
▷특성1: 우주의 총애가 시들시들해졌다.
▷종족1: 전설적인 인간이다.
너무 강해져서 우주의 총애를 잃어버렸을 정도!
당시에 나는 행성, 태양계, 은하계 규모 패자들의 전투경험을 이어받으면서 능력치로 구현할 수 없는 힘을 손에 넣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출선배랑 싸우면서 이 새로운 힘에 익숙해지고, 장인어른에게 가업을 물려받았을 때는 완숙의 경지에 이른 상황이었다.
그게 바로 저 모습.
정의로운 MAX급 용사님이다.
“호위대형으로...!”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탄은 잽싸게 80명을 통제했다.
지휘관으로서 그의 역량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거나 먹어라!”
“타올라라! 지옥의 겁화여...!”
“사격 개시!”
“빛이여!”
“얼어붙으세요!”
가장 긴 사정거리를 자랑하는 궁신(弓神)의 저격을 신호로, 원거리 딜러들이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일해라.”
뿅! 뿅! 뿅! 뿅! 뿅!
땅, 불, 바람, 물, 마음!
판타지아 어디에나 존재하는 정령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속성을 가진 마법 중 대부분이 무효화 되고, 화살 같은 물리적인 투사체는 강한수의 몸을 감싼 암흑물질의 몰랑한 공간 왜곡 현상에 이상한 방향으로 꺾였다.
회피하지 않고 정면돌파!
덕분에 강한수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이때부터는 본진이랑 너무 가까워져서 범위 공격을 쓸 수 없었다.
“접근을 막아!”
“밀어내!”
“딜러를 지켜!”
가장 견고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기사왕을 선두로 탱커들이 강한수 앞을 가로막았다.
철벽이나 다름없는...
콰당-!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기사왕의 방패에 몸을 들이박은 강한수가 오른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충돌로 몸의 균형을 잠시 잃었던 기사왕의 경추(頸椎) 6번과 7번 사이가 빨려들 듯이 그의 손아귀에 붙잡혔다.
“켁켁?!”
“네 움직임은 이미 알지.”
우득-
첫 희생자가 너무나 쉽게 나왔다.
목이 꺾인 기사왕의 사지가 축 늘어졌다.
강한수는 두꺼운 판금으로 된 중장비를 걸친 기사왕을 투포환처럼 힘껏 던졌다.
표적은 원거리 딜러.
탱커들이 자리를 잡으면 돌입할 예정이었던 미드필더들은 원거리 딜러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기사왕의 시신을 저지했다.
시신을 훼손할 순 없으니까.
여럿이서 붙잡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 틈에,
“꺅~?!”
강한수는 다른 탱커를 방패처럼 왼손에 쥐었다.
여성의 잘록한 허리를 꿰뚫은 손에 요추(腰椎) 4번과 5번 사이를 붙잡힌 암흑공주가 비명을 질렀다.
기사왕은 바로 죽여서 버리고 암흑공주는 생포한 이유?
매력적인 허리를 과감히 노출한 복장을 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덕분에 맨손으로 피부를 뚫고 척추를 붙잡기 쉽기에 뽑힌 것이다.
“팔팔하네! 하핫!”
유쾌하게 웃은 강한수가 9명에서 7명으로 줄어든 탱커들의 포위망을 뚫고 돌진했다.
피용-!
“꺅!”
아군의 화살에 맞은 암흑공주가 비명을 질렀다.
흡혈귀의 높은 생명력 덕분에 목숨을 건졌지만, 무방비한 상태로 이렇게 몇 번만 더 맞으면 확실하게 죽을 듯했다.
그때, 도적왕이 외쳤다.
“무시하고 공격- 큭?!”
“닥쳐! 그녀가 죽으면 어쩌려고!”
“도적왕! 나중에 보자!”
“한 번만 더 개소리해봐라!”
냉정한 판단을 내린 도적왕에게 반발한 마룡왕과 산적왕, 암살왕이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기사왕을 몰래 사모했던 바람의 기사가 눈물을 흘리며 활시위를 당기고, 남의 연애사에 관심 없는 천마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사탄은?
“보스의 흉계에 놀아나면 안 됩니다! 도발에 흔들리지 말고 이대로 포위하십시오!”
진두지휘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암흑공주는 포기한다.’라는 말을 아꼈다.
동료를 버리는 용사를 맹목적으로 따를 자는 없으니까.
그런 상황에서도 사탄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진형을 유지했다.
피해는 처음부터 각오했고, 이곳에 모인 자들은 질질 짜는 어린애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타핫!”
“죽어라!”
“얍!”
미드필더와 근거리 딜러들이 과감히 강한수에게 접근했다.
보통은, 탱커의 보호를 받으면서 안전하게 공격하지만, 강한수의 복장과 움직임은 방어를 도외시한 딜러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딱 한 방만!
...라고 판단한 것이다.
“멋진걸?”
정의로운 미소를 짓는 강한수를 향해 가장 먼저 접근해서 덤벼든 자는 권왕이었다.
주먹으로 싸우니까.
무기를 쥔 딜러들보다 발이 빠르지 않으면 거리를 좁힐 수 없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보법이 뛰어난 그는 가장 먼저...
“크악?!”
죽음의 문턱을 넘었다.
주먹을 내지르던 권왕은 방패로 전락한 암흑공주의 아름다운 얼굴을 치지 못하고 멈칫했다.
머릿속에서 ‘때려봐야 공주님의 예쁜 얼굴만 망가진다.’라고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그래서 간과하고 말았다.
상대가 자신의 움직임을 읽고 암흑공주의 얼굴을 노골적으로 들이밀었다는 사실을.
우득-
일격필살(一擊必殺)이었다.
척추의 마디 사이를 정밀하게 손끝으로 찔러서 분리해버리는 G급 전문가의 손길!
그 뒤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한수는 암흑공주가 동료들의 칼날에 죽자마자 다른 방패로 빠르게 갈아탔다.
아쿠아, 검마, 해적왕, 실비아...
그 대부분은 배꼽을 내놓고 ‘제 척추를 잡아주세요.’라고 유혹하는 듯한 여성이었다.
물론, 늘 성공한 건 아니었다.
“꼭 이겨주...”
쩌저적-!
요추 4번과 5번 사이를 붙잡힌 얼음공주가 자폭했다.
자신에게 마법을 건 그녀는 꽁꽁 얼어붙었고, 강한수는 예쁜 척추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공주...!”
“공주님~!”
얼음공주의 희생에 감격한 동료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예기치 않게 방패를 잃은 강한수는 그 모든 공격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유효한 타격을 허용했다.
처음으로.
“하핫! 흥미로운 변수네. 얼음공주는 자살할 성격이 아니었는데. 능력치도 내 기억보다 100배쯤 우수하고. 이봐, 용사B. 어떻게 그녀를 조련했는지 가르쳐줄래?”
뚝! 뚝! 뚝!
한순간에 베인 등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에 떨어졌다.
강한수답지 않게 멈춰서서 숨을 고르듯 말을 많이 했다.
그러나 사탄은 무르지 않았다.
“이때입니다. 총공격! 얼음공주님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보스가 지쳤다!”
“끝내버리자!”
“절대로 용서 못 해!”
용사 사탄을 포함해서 81명으로 90층에 도전했던 파티는 어느새 48명까지 줄어들었다.
그만큼 전력도 감소했다.
승기를 잡은 지금 확실하게 끝내지 않으면 100층은 어림도 없다는 계산을 마친 사탄.
복수심에 불타는 나머지 동료들도 같은 생각을 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강한수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다소 무리하더라도 함께 몰아치는 방법을 택했다.
“...가증스러운 우정의 힘. 정의로운 힘으로 짓밟아주지!”
휙.
검마에게서 빼앗은 검을 버린 강한수가 정의로운 미소를 지었다.
스르륵.
그의 등에서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가 솟아나고, 그 정의로운 비주얼에 모두가 전율할 틈도 없이 대참사가 벌어졌다.
드드득...!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에 돋아난 가시가 일제히 쏘아지며 사탄의 파티를 쓸고 지나갔다.
평지를 무모하게 돌격하는 보병대대를 향해 기관총을 난사하듯이.
그것은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학살이었다.
“아악-!”
“큭?!”
“꺄앗?!”
이때 ‘아담’도 은근슬쩍 당해서 퇴장해줬다.
용사 사탄이 90층을 돌파할 경우를 대비해서 100층 더미의 몸으로 갈아타야 하니까.
90층에서 사탄이 좌절해도 상관없다. 전멸한다면 이 교실에서 볼일은 끝났기 때문이다.
그래도 관전은 계속했다.
“이걸 노렸나!”
“최후의 발악인가?”
“아니, 아니야. 저걸 봐.”
“상처들이 사라진다...”
“성녀도 없이...?”
위대한 마스터 몰랑의 가르침을 소화한 강한수의 육체는 스킬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상처의 자연회복을 방해하는 판타지 스킬은 일절 통하지 않는다. 바다의 상어가 육지의 토끼를 공격할 수 없는 이치.
그래도,
“당황하지 마십시오! 능력치를 무시했던 크로마티구스 장군이랑 비슷할 뿐입니다!”
용사 사탄은 포기하지 않았다.
방금 기습공격으로 옵저버와 서포터가 전멸했지만, 성녀들을 포함한 강자들은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천마, 이브, 검왕, 현자, 나서스, 풍룡왕, 지룡왕, 악룡왕, 광룡왕, 마룡왕, 신룡왕, 빙룡왕, 서리여왕, 백룡왕, 성녀A, 성녀C, 성녀E, 바나나엘, 감자엘, 쑥떡.
용사 사탄을 포함해서 총 21명!
전투가 시작되고 10분도 안 지나서 60명이 죽은 셈이지만, 패배했다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쿠구구구...
우우웅...
솨아아아...
용왕들이 변신을 풀고 원래의 형태인 용으로 돌아갔다.
난전에선 도움이 안 되기에 인간 형태로 싸웠지만,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은 현재는 달랐다.
펄럭!
활짝!
근거리에 취약한 현자, 이브, 성녀들을 태운 용왕들이 일제히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랐다.
바나나엘은 죽은 궁신의 활을 회수하고, 감자엘도 죽은 창왕의 창을 들고 용왕들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지상은?
사탄, 천마, 쑥떡, 검왕, 나서스.
다섯 강자가 강한수를 둘러싼 째 맹공을 펼치고 있었다.
“용사B. 제법이야. 아주 좋은걸♪”
강한수는 이 순간을 즐겼다.
그는 자신이 ‘가짜’란 사실은, 수세식 변기에서 눈을 뜬 순간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캡틴 판타지, 성검 뉴클리온, 성녀H, 최초의 정령, 쏘시아.
지금까지 쭉 함께했던 이들이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자연이 속삭이고 있으니까.
그의 부족한 정보를 빠르게 채워주면서 의문들을 하나하나 풀었다.
내가 ‘나’를 바라본다.
‘진짜 나. 성공했구나?’
‘그래. 판타지아를 먹었다.’
‘교장의 교보재가 아니란 거네.’
‘하는 일은 같지만.’
‘그래서 어머니는?’
‘건강하셔.’
‘그래, 그거 다행이군.’
전투를 구경하는 ‘나’ 대신에 ‘자연’이 성실하게 대답해줬다.
바로 그때,
“산개-!”
쾅!
콰앙!
펑!
포위망을 구축하며 강한수를 압박하던 다섯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그 신호에 맞춰서 하늘의 용왕들이 숨결을 토했다.
빨강이도 쓰러트린 가공할 화력!
그러나 이쪽은 격이 달랐다.
펄럭!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른 강한수가 용왕의 등에 탄 성녀들을 노렸다.
원거리에서 무한정 회복하는 그녀들을 쓰러트리지 않으면 끝이 안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강한수의 계획을 눈치챈 사탄이 서둘러 외쳤다.
“이쪽으로! 어서!”
하늘을 날 수 없는 그의 지시를 받은 용왕들이 강한수를 피해서 지상으로 향했다.
“못 지나간다!”
“복수다-!”
바나나엘과 감자엘은 강한수가 추적하지 못하게 방해하다가 장렬하게 목숨을 잃었다.
이것으로 남은 인원은 18명.
점점 전력이 줄어드는 상황 속에서 용사 사탄은 강렬한 유혹을 받고 있었다.
【파멸】
어떤 신이 달콤하게 속삭인다.
저 괴물을 이기고 싶으면 내 손을 잡으라고.
“...나를 얕보지 마라. 신의 사탕발림에는 질린 몸이다.”
어금니를 꽉 깨문 사탄이 작게 중얼거린 후에 외쳤다.
“성녀님들은 비행 속도가 가장 빠른 풍룡왕의 등으로 집결! 쑥떡, 나서스! 그녀들을 곁에서 지켜주십시오! 지금부터 경칭 생략하고 빠르게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이길 테다! 반드시 이겨 보이겠어!”
이때부터 공중전에 돌입했다.
강한수는 풍룡왕의 등에 탄 성녀들을 노리지만, 용왕들이 온몸을 던져가면서 방해했다.
이런 용들을 하나하나 처리하면 좋겠지만, 척추가 닮은 아들 카리스가 발목을 잡았다.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 2호.
성능은 훨씬 떨어지지만, 천사와 악마처럼 단독으로 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검희를 닮아서 끈질기네!”
“...그런 면이 조금 있으시죠.”
“이른다.”
“그건 무리입니다. 당신은 여기서 죽을 테니까요.”
“후레자식일세!”
“어머니를 오랫동안 내팽개친 당신에게 듣고 싶진 않습니다.”
“뭐, 어른의 사정이란 거지.”
끈질기게 방해하는 아들 카리스를 처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용의 등을 타고 추적해온 사탄과 천마가 그렇게 되도록 놔두지 않았다.
강한수는 풍룡왕의 등에 탄 성녀들을 추적해보지만, 사탄과 용왕들이 철통같이 방해했다.
그리고 성녀들은 부상자들을 치유하면서 상황을 원점으로 돌렸다.
치열한 장기전.
그러나 영원하진 않았다,
쾅-!
사탄과 천마가 양쪽에서 휘두른 성검에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를 잃은 강한수가 지상에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이어진 용의 숨결!
덤으로 현자의 마법!
이번에야말로 살아남기 힘들어 보였다.
“이겼나...? 아니?!”
용사 사탄은 91층으로 향하는 단단한 대문이 여전히 닫혀 있는 걸 보고는 세심하게 주위를 살폈다.
90층 보스를 찾는 거겠지.
“이봐, 용사B. 아니- S급 용사 사탄. 나는 안 도망갔으니 번거롭게 두리번거리지 마.”
강한수가 유쾌하게 웃으며 폭발 속에서 걸어 나왔다.
너무나 즐겁다는 듯이.
하지만 사탄의 파티는 여기에 동조할 수 없었다.
사탄이 반쯤 넋을 놓은 채 중얼거렸다.
“드래고니안... 실화냐.”
“2차전을 해볼까?”
칠흑빛 대머리가 된 강한수가 정의로운 용사의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