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371화 (371/430)

 371화

[26회차] 사랑의 힘!

[공략: 90층 공략법]

[작성자: 사탄]

「마왕의 탑 99층에서 이 글을 작성합니다. 90층 보스는 타락하여 마왕이 되기 직전의 전설적인 용사입니다. 살해한 대상의 지식과 경험을 빼앗아서 자신의 것으로 바꾸는 종족특성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무조건 1대1로 승부를 봐야 합니다. 숫자로 밀어붙였던 저는 80명의 우수한 동료를 전부 잃었습니다. 보스의 공격패턴은 4페이즈로 나뉩니다. 1페이즈는 평범한 인간 형태. 2페이즈는 위협적인 날개 추가, 3페이즈는 드래고니안 변신, 4페이즈는광폭화입니다. 70층보스인 구-마왕 페도나르를 단신으로 가볍게 쓰러트린 용사가 90층 보스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것으로 공략을 마치며, 무운을 빕니다.」

“용사님. 쑥떡의 이야기는 쏙 빼셨네요?”

“저만 아는 비밀이니까요. 친구인 쑥떡도 그걸 바랄 겁니다.”

“흐음~”

“...이브 님.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요. 90층에서 대충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관전자입니다. 사탄 용사님의 모험에 간섭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

“이번에는 정말 혼자군요. 아, 잠시만.”

사탄은 출입구 앞에서 호주머니 안의 몰랑폰을 꺼냈다.

마왕의 옥좌에서 일어설 준비를 하던 나는 맥이 탁 풀렸다.

야! 안 들어오고 뭐 해?

⤷사탄: 이제 100층, 마왕 파르마몬에게 도전합니다. 성공한다면 공략을 올릴 수 없겠지만, 실패한다면 경험담을 적도록 하겠습니다.

⤷알라: 응. 얼른 꺼져. ^^

⤷제우스: 딱 봐도 졸업 못 함.

⤷오딘: 금방 또 보겠구먼.

⤷루크: 사탄 선배님. 90층 공략집 감사합니다!

⤷피코: 몰랑의 가호가 함께하길.

⤷오피온: 눈팅만 하다가 처음으로 글 쓴다. 그동안 올린 공략과 조언 정말 고맙다. 꼭 졸업해라.

⤷아몬: 내가 최초로 100층 도전하려고 했는데 늦었네. 사탄아. 공략을 혼자만 알고 있지 왜 공개하냐. 답답하다. 진짜!

⤷이시스: 찌질한 중학생의 개소리는 무시하세요. 선배님 덕분에 80층까지 쉽게 왔으면서 양심 무엇?

⤷루나: 학생회장. 팩폭이 너무 심하세요.

......

몰랑폰 커뮤니티가 시끌시끌했다.

첫 도전자.

그 타이틀이 주는 무게감은 확실히 달랐다.

커뮤니티에 참여는 안 하고 정보만 빼먹던 자들도 한마디씩 했다. 평상시보다 38배 활발해진 채팅창은 눈으로 따라가며 전부 읽어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나저나...

“쪽쪽.”

아들 씨드엘의 게걸스러운 목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캡틴 판타지처럼 성장이 멈추다시피 한 건 아니지만, 평범한 아이들보다 무척 느린 씨드엘은 아직도 젖을 못 떼고 있었다.

그래도 성장하긴 했다.

“씨드. 고모랑 죔죔 하자!”

“쪽쪽? 쪽쪽!”

“죔죔 하자~ 죔죔~”

유감스러운 정령은 젖먹이의 고사리 같은 손에 장난감처럼 쥐어지고 싶은 모양이지만, 씨드엘은 몰랑한 엄마 젖을 빨기 바빴다.

나는 아들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한쪽 가슴을 내놓고 있는 쏘시엘을 돌아보며 물었다.

“안 숨냐?”

“최초의 도전자를 가까이서 봐두고 싶었는데... 씨드가 또 배고프다고 해서 안 되겠네.”

“얼른 숨어.”

“그러면 잘생긴 남편님에게 이것만 미리 말해둘게. 100층은 순수한 도전이야. 90층을 통과한 시점에 졸업은 확정.”

“쑥떡을 활용했는데?”

“인복(人福)이지. 70층에서 구-마왕 페도나르를 쓰러트리고, 80층에서 자신을 뛰어넘었어. 이것만으로도 졸업 자격은 충분해. 하지만 몰랑폰의 보급으로 동료 모집이 너무 쉬워졌어. 그래서 고안해낸 보스가 90층이야. 우정의 힘을 부수는데 특화된 남편을 마지막 시련으로 골랐어.”

“MAX급 남편님을 아주 골수까지 우려먹는구먼!”

남편, 조커, 중간보스, 최종보스.

다음에는 또 어디에 써먹으려고 할지 궁금하다.

“내가 믿고 의지할 존재는 남편님밖에 없잖아.”

“...얼른 숨기나 해.”

“응.”

뿅!

비겁한 마누라가 날이 갈수록 더욱 비겁해지는 것 같았다.

탑 100층에 혼자 남은 나는 정면의 대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그러고 보니...”

사탄은 최초의 도전자다.

그걸 뒤집어서 말하면, 나도 처음으로 용사의 도전을 받는 셈.

장인어른도 처음에는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니면 아무런 기대도 안 하고 용사를 바라봤을까...

끼이익-

용사 사탄과 디스코가 입장했다.

동료 아담으로 19년 동안 활동하며 지겹도록 봐온 얼굴들.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관계가 아군에서 적으로 바뀐 것만으로도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준비한 대사를 읊었다.

“모든 관문을 뚫고 여기까지 올라온 후대의 용사여! 그대의 도전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이다!”

“......”

“자기소개도 안 할 셈인가? 안 하고 죽겠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제 이름은 사탄. 미치광이 신(神)으로부터 고향을 구하고자 용사가 된 자입니다.”

...생각 외로 정중하네?

왜 이리 침착한지 묻고 싶지만, 처음 만났다는 설정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능력치 때문인가?

▶종족: 퍼펙트 데몬

▷레벨: 1

▶직업: 탈마(용사=마왕)

▶스킬: 자연GGG 신성G

마기G 시간G 공간G

암흑G 백광G 선동MAX

날조MAX 지진MAX

화산MAX 폭풍MAX

해일MAX 광분MAX

공갈MAX 협박MAX

혼돈MAX 파괴MAX

망각MAX 체력MAX

맷집MAX 기력MAX

정력MAX 육아MAX…

▶상태: 성골

판타지아를 지탱하는 내 신력이 반영된 ‘자연’은 GGG등급도 돌파한 상황이다.

그 아래의 G등급 스킬들은 비겁한 마누라가 직장(보직: 마왕)에서 맞지 말라고 떠안겨줬다.

하지만 별 의미 없다.

스킬 효율이 극도로 떨어지는 1레벨이니까.

그러나 만약, 만약에 동료를 잔뜩 끌고 왔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한 명이라도 죽으면 대량의 경험치를 내게 기부해줘서 레벨이 쭉쭉 오르기 때문이다.

즉, 우정의 힘을 써선 안 된다.

공략법 자체는 90층이랑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가, 용사 사탄. 다시 한번 그대의 도전을 환영한다.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그대는 인정받을 자격이 충분하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도 좋다. 유언이든 폭언이든 망언이든.”

진심이다.

함께한 동료들을 잃고 여기까지 올라온 남자는 무슨 생각 중일까?

1회차 때, 나는 그냥 집에 돌아갈 생각으로 즐겁기만 했다.

...뜻대로 안 되긴 했지만.

숨을 한 차례 고른 후, 사탄이 큰소리로 외쳤다.

“마왕 파르마몬. 쑥떡이 당신의 자식이라고 했는데, 사실입니까?”

“맞다.”

비상식량에서 양아들까지.

내가 봐도 참으로 파란만장한 용생(龍生)이었다.

그런데 이건 왜 묻는 거지?

“쑥떡을 사랑합니다!”

“...뭐?”

“쑥떡을 사랑합니다!”

“못 들어서 되묻는 게 아니다, 용사 사탄. 너는 인간 수컷이고 쑥떡은 용이다만?”

사실은 좀 더 노골적으로 되묻고 싶었다.

사탄을 따라서 19년 동안 모험한 쑥떡은 ‘건장한 수컷’이었다.

적극적으로 전투에 참여하지 않아서 나중에는 옵저버로 빠졌지만, 초창기에는 탱커도 맡았었다.

그런데 사랑한다고?

“네! 그래도 쑥떡을 사랑합니다!”

“......”

뭐라고 대답해야 좋지?

연설문과 예상질문의 답변을 잔뜩 준비해놨는데, 교묘하게 빗나간 상황이랄까!

지난 19년 동안 고자처럼 철벽을 두르고 있던 남자였는데.

갑자기 180도 바뀌었다.

어렴풋이 듣기로는, 고향별에 결혼한 아내도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사탄이 이어서 말했다.

“처음에는 동료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고향별에 놔두고 온 아내도 있고, 판타지아 세계를 떠나면 끊어질 인연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함락당했습니다. 몰랑폰의 존재를 알면서도 제게 중요한 비밀을 밝히고, 미래를 축복해줄 때의 올곧은 눈을 본 순간...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습니다.”

“어이어이. 진정해, 용사 사탄. 일시적인 감정이야.”

얘가 갑자기 왜 이래?

최초로 도전해온 용사에게 ‘제법이구나!’라고 한마디 칭찬해주면서 설렁설렁 상대해줄 생각이었는데.

대체 이 전개는 뭐지...?

“쑥떡의 성별과 외모는 용사의 취향에 맞춰서 시스템으로 결정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진정한 정체가 용이란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제 심장은 거칠게 요동쳤습니다!”

“용이 양성이긴 하다만...”

“쑥떡을 사랑합니다. 그렇기에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아버지라면 굳게 닫힌 쑥떡의 마음을 열 키워드도 알고 계실 겁니다.”

“그걸 알려달라?”

“그냥 받겠다는 건 아닙니다. 제가 쑥떡에게 어울리는 사내가 될... 꾸엑~?!”

“얼른 덤벼.”

더 상대해주고 싶지 않았다.

용사가 원하는 만큼 대화해줄 계획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장르가 로맨스 판타지로 바뀌면서 그럴 마음이 싹 사라졌다.

턱이 돌아간 사탄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큭! 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런 얘기는 혼자 지껄이지 말고 쑥떡이랑 함께 와서 해라.”

“아...!”

“네가 정말로 용사라면, 마왕인 짐에게 생채기라도 입혀봐라. 짐은 나약한 녀석을 상대해줄 만큼 한가하지 않다.”

“...알겠습니다.”

“사양하지 말고 와라! 용사 사탄! 너의 의지를 시험해보겠다!”

“갑니다-!”

*

▷용사님. 모험은 즐거우셨나요?

사탄은 쓰러졌다.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손발 다 잘린 ‘나’에게도 상대가 안 됐던 녀석이 온전한 ‘나’를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도...

▷진정한 용사의 길은 실로 험난합니다. 하지만 꿈과 희망을 잃지 않은 당신을 응원해준 수많은 인연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우정과 사랑을 배우며 함께 성장한 당신은 마침내 사악한 마왕이랑 마주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지금부터 성적을 알아볼까요?

비겁한 마누라가 말한 것처럼 사탄의 졸업은 확정이다.

실질적인 최종보스 마왕은 90층이고, 100층의 나는 미친 척하고 도전해보는 이벤트 보스.

...너무 허술한 게 아닐까.

쑥떡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누구나 졸업할 수 있다는 뜻이잖아?

아무튼,

▷성적표를 꼼꼼히 확인해주세요!

▷이름: 사탄

▷전투력: A+

▷업적: SS

▷평판: MAX

▷인성: SS+

▷비고: 쑥떡은 아버지 칭찬에 약합니다. 힘내시길.

...흠잡을 곳이 없는 훌륭한 성적이군.

그런데 쏘시엘 안의 찰떡이 비고란에 쓸데없는 소리를 적었다.

말해줘서 뭐해?

▷합격했습니다.

어차피 고향별 열차를 타고 곧 떠날 졸업생이다.

▷졸업을 축하합니다.

▷상장: 위 학생은 평소 모험을 성실히 하고 바른 선행을 스스로 실천하였습니다. 또한, 항상 동료들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모습으로 판타지아 원주민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이에 위 학생을 SS급 용사로 임명합니다.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파앗-!

용사 사탄이 졸업하면서 불필요해진 판타지아 세계도 붕괴했다.

그리고 디스코만 남았다.

“정말 충격적인 반전이었어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제 제안을 거부한 것도 그렇고. 몰랑소프트는 모든 우주인이 바라는 꿈의 직장인데.”

“그래서 평가는?”

“...입사를 거부하고 학교에 남겠다는 그의 선택은 괘씸하지만, 평가에 사적인 감정이 들어가면 안 되겠죠. 사탄 학생만 보면 최고입니다. 앞서 둘이 너무 똥이었을 뿐.”

“킁!”

졸업생인 사탄에게는 2가지 선택지가 있다.

이대로 졸업해서 고향별로 돌아가거나, 남아서 진학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고등교육과정을 이수했고, 판타지아 교육장에는 대학과정이 없어서 진학할 수 없다.

대신, 학교에 계속 남아서 ‘교생’이 될 자격이 주어진다.

그리고 사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남는 길을 선택했다.

고향별을 구하겠다더니...

“아담... 아! 입에 너무 붙어버렸네요. 마왕 씨. 지크 때랑 달리 정신적인 피로도 없으니 다음 학생으로 곧장 넘어가도록 하죠.”

“골라봐.”

“음... 딱히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연속으로 남학생만 3번 걸렸네요. 이번에는 여학생 중에서 골라보도록 하죠.”

“편할 대로.”

누가 걸려도 상관없다.

뿅!

디스코가 ‘무작위 조건’을 말하려는 그때, 곤히 잠든 아들을 안은 쏘시엘이 등장했다.

그리고 말했다.

“디스토리아 감찰관님. 본교의 꽃인 용사 페스티벌이 시작됐어요. 참관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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