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9화
[28회차] 참 쉽죠?
⤷제우스: 뒤에서 이론만 지껄이는 교사가 모범을 보여주겠다고?
⤷오딘: 패기만은 인정. 고등교육과정을 스킬 없이 1레벨로?
⤷알라: 심지어 딸랑 하나 있는 스킬 업보가 A등급임. D등급만 돼도 토가 나오는데.
⤷이시스: 선생님. 학생들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 아닌가요?
⤷아몬: 놔둬. 저러다가 비명횡사하겠지.
몰랑소프트의 목적은 판타지아 교육장을 흡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돈과 힘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
여론.
교직원들이 큰 잘못을 저질러야 명분이 생긴다.
감찰단은 내가 개망신당하면서 판타지아 교직원들의 명예와 권위를 실추시키길 원했다.
그래서 공개했다.
▷공지: 교직원 일동은 그동안 용사님들의 불만 사항을 신중히 검토해왔습니다. 그러나 교육방침에는 변화가 없을 예정입니다. 그 대신, 교사가 직접 시범을 보이는 생방송을 몰랑폰으로 방영하기로 했습니다. 교사의 능력치는 모든 학생이 실시간으로 열람할 수 있으며, 시스템 등의 부정한 방법은 일절 사용하지 않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용사님들의 많은 시청 바랍니다.
내 프라이버시를 침범하는 횡포였지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답답했으니까!
사회부적응자가 아닌 평범한 인간이 용사로 발탁되면 판타지가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겠다.
⤷오딘: 헐... 시작하자마자 신앙 스킬 S등급 실화냐?
⤷제우스: 몰랑교가 이걸?
⤷알라: 그 종교를 진지하게 믿는 흑우가 있었다고...?
⤷피코: 몰랑교 만세!
판타지아의 미련한 중생들아. 보아라. 이것이 마스터 몰랑을 찬양하는 몰랑교의 위대함이다.
몰랑으로 대동단결!
삼라만상이 몰랑할지니...
내가 ‘용사’였다면 벌써 SS등급을 찍고 하루면 MAX등급에 도달하겠지만, 별 의미 없다.
하루나 닷새나 결국은 신앙심이 안 받쳐주면 정체하게 되어있다.
역시, 직업 용사는 쓰레기다.
“몰랑교라니!”
“소환한 용사가 몰랑교도?!”
“어떻게 이런 일이...”
“다, 당장 용사를 가둬라!”
내가 몰랑교의 교리를 전파하자마자 신성제국에선 난리가 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호구일 줄 알았는데, 세계의 진리를 아는 G급 용사가 소환됐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시작이라구?
▷종류: 스킬
▷명칭: 신앙
▷등급: S
▷SS: 이단자를 응징한다.
▷S: 이단자를 세뇌한다.
▷A: 이단자를 추적한다.
▷B: 이단자를 구분한다.
▷C: 개종을 거부한다.
▷D: 설교에 저항한다.
▷E: 기도로 강화한다.
▷F: 대상을 믿는다.
비주류에 속하는 신앙 스킬은 S등급부터 빛을 본다.
몰랑한 신앙심이 없으면 여기까지 올리기도, 유지하기도 어려워서 용사들은 포기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몸뚱이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몰랑교 제1사도인 나의 신앙심만은 어쩌지 못한다.
우매한 이단자들은 들어라!
이것이 몰랑이란 것이다. 말랑이 아니다.
“몰랑교는 이단... 윽! 만세!”
“나는 여신님을 믿는... 오오! 몰랑이시여! 믿나이다!”
“정신 차려! 저건... 몰랑!”
“몰랑은... 진리다!”
하지만 1레벨로는 스킬 효율이 너무 떨어져서 주위의 모두를 감화시킬 순 없었다.
황녀, 기사, 마법사.
이들은 S등급 효과에 저항했다.
“얼른 잡아라!”
“용사가 타락했다!”
“저 입을 막아!”
정의로운 MAX급 용사님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신성제국 이단자들.
응당한 벌을 주리라.
“잘됐네. 안 그래도 레벨 좀 올리고 싶었는데. 음?”
몸이 무겁다.
능력치가 바닥이라서 무겁게 느껴지는 거랑 달랐다.
실내라서 위력과 범위가 큰 마법을 쓸 수 없는 마법사들이 일제히 ‘상태 이상’을 일으키는 디버프(Debuffs)를 내게 건 것이다.
“마법을 걸었어요!”
“이때입니다!”
“용사를 제압하십시오!”
황녀를 호위하던 기사들이 우르르 내게 달려들었다.
비열한 협공.
만약, 여기서 내가 굴복해버린다면 G급 용사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고등교육과정답게 500레벨을 가볍게 넘겨버린 기사와 마법사를 상대로 아무런 준비 없이 1레벨로 싸우는 건 나라고 해도 무리였다.
그러니,
“신도들이여!”
몰랑교여! 몰랑의 이름으로 말랑한 이단의 땅에서 일어나라!
“몰라아앙!”
“용사님을 돕자!”
“몰랑! 몰랑!”
세뇌된 자들이 나와 기사들 사이를 몸으로 가로막고, 안전한 뒤편에서 마법을 발휘하는 마법사들을 습격하며 방해했다.
단순히 신앙심만으로는 이런 무모한 현상이 벌어지지 않는다.
광기(狂氣).
종교계열 B급 직업인 광신도의 직업특성으로 생성된 스킬 ‘광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내 신앙이 높은 덕분에 광기의 효과도 제대로 발휘됐다.
“이, 이자들이...!”
“기사들은 황녀님을 지켜라!”
“이놈들! 미친 거냐!”
“황녀님을 보호해! 어서!”
덕분에 마탑의 소환진 주변이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됐다.
식겁한 기사들은 나를 제압하는 걸 포기하고 허겁지겁 황녀의 주위를 감싸며 보호했다.
예상대로다.
“으악!”
“컥!”
기사와 마법사에게 덤빈 교도들이 하나둘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손속에 사정을 둔 탓에 죽은 자는 아직 없었다.
동료까지는 아니지만,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백성이고 자국민이었으니까.
이것도 예상했다.
“교도들이여. 물러서지 마라! 그대들의 뒤에서 내가 몰랑하고 있음을 명심하라!”
“나는 항복하... 커억?!”
“어, 어째서... 꺅?!”
나는 겁먹고 도망치려는 신자들의 경추(頸椎) 6번과 7번 사이를 자애롭게 붙잡았다.
이단을 눈앞에 두고 어찌 등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약하다면 힘을 보태면 된다.
바로 나에게.
우득!
우드득.
“교도들이여! 그대들의 숭고한 희생을 내일까지 잊지 않겠소! 내 가슴 속에서 몰랑교가 우뚝 서는 모습을 지켜보시오!”
레벨이 오른다.
용사의 경험치 5배에 비빌 수준은 아니었지만, 1레벨일 때보다는 훨씬 상황이 나아졌다.
1레벨→24레벨
이것만으로도 전반적인 능력치가 월등하게 상상했다.
그리고 신도들이 시간을 벌어준 틈에 마스터 몰랑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육체개조도 어느 정도 됐다.
감찰단에서 제시한 비실비실한 몸에 근육이 붙었다.
육체를 제대로 강화하려면 충분한 양의 육류를 섭취해줘야 하지만, 일단은 이걸로 됐다.
불끈!
몰랑교 제1 사도가 이단의 땅에 정의를 우뚝 세우리라.
“하하! 상큼하게 가보실까!”
*
몰랑소프트 감찰단의 요구는, 평범한 학생 신분으로 마왕의 탑 100층 도달이다.
수단과 방법은 자유.
요점은, 90층이 현실적으로 돌파할 수 있는 난이도냐는 것이다.
그것만 증명하면 된다.
⤷알라: 와! 1레벨로 시작해서 저 난장판을 이겨버리네...
⤷제우스: 저게 된다고? 사기라고 누가 좀 말해줘라. 제발!
⤷오딘: 교사의 능력치를 쭉 주시하고 있었는데, 사기 아님. 그냥 교사의 운영능력이 미쳤음.
⤷이시스: 진지하게 몰랑교 가입을 고려해봐야겠네요.
⤷아몬: 와! 나는 황녀를 영입하려고 별의별 짓을 다 했는데! 저 교사는 대체 뭐냐!
뭐긴. 진정한 용사님이지!
사회부적응자인 너희들이랑 똑같이 취급하면 굉장히 불편하다.
원리는 간단하다.
스노우볼.
1레벨에 50레벨을 세뇌하고, 10레벨에는 100레벨을 세뇌하고...
나는 그런 식으로 소모전을 유도해서 마지막에 황녀와 500레벨대 기사 하나만 남도록 조절했다.
그것도 방금까지의 얘기다.
“이럴 수가... 끅!”
황녀를 지키던 기사는 내게 목을 붙잡힌 이유를 여전히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왜 모르지?
“선동만으로 이 정도는 해줘야 용사라고 할 수 있지.”
진정한 용사라면, 100레벨에 500레벨 기사의 모가지쯤은 간단히 비틀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득.
“......”
내가 부지런히 스킬 숙련도 작업해서 신앙을 SS등급 찍은 시점에 끝난 싸움이었다.
SS등급 효과는 이단자 응징!
여기에 마스터 몰랑의 가르침이 곁들어지면, 우매한 이단자들의 척추가 수수깡처럼 부러진다.
이제, 황녀만 남았다.
“너는 어쩔래?”
내 질문을 받은 황녀는 피로 물든 돌바닥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몰랑계시록 5장 8절. 몰랑을 믿지 않던 어리석은 이단자가 몰랑한 기적을 목도하고 몰랑한 얼굴이 되었더라. 설명이 더 필요하신지요?”
“아니.”
신성제국 황위를 노리는 황녀가 북대륙 나라들이랑 결탁하기 위해 몰랑교에 입교했다는 사실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이러면 실질적인 신앙심이 매우 낮을 것 같지만, 황녀는 ‘내 야망을 이뤄주실 분이기에 신(神)!’이란 식으로 해석했다.
“저는...”
“빌빌거리는 부친의 자리를 빼앗는 수준으로 만족할 셈인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지? 라누베르크의 은색 여우여.”
“...충성을.”
절제해온 욕망이 폭발한 황녀가 내 발등에 입을 맞췄다.
누군가의 붉은색 피가 옷과 입술에 묻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것이 황녀의 본성.
나는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참 쉽지?”
“네?”
“아무것도 아니야.”
이 동영상을 따라가기만 해도 누구나 A급 용사는 될 수 있다.
*
마탑 안에서 벌어진 비극은, 용사를 시해하려 신성제국에 숨어든 몰랑교 신자들의 소행으로 일축했다.
그리고 ‘진짜’는 황녀와 함께 신성제국의 유력인사들을 부지런히 만나고 다니며 ‘용사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라고 인사했다.
하는 김에 개종도 부탁하고...
모두가 흔쾌히 수락했다.
정말 쉽지?
⤷오딘: 하하하! 나는 오늘부터 생각을 포기하겠어!
⤷이시스: 용사의 시작거점인 신성제국이 단 보름 만에 선생님의 손아귀에 떨어졌네요.
⤷루크: 나는 왜 저렇게 못 할까? 자괴감 들고 괴로워...
⤷알라: 애들아. 좀만 기다려봐. 종교로 쉽게 흥한 자, 종교로 금방 망한다.
⤷피코: 와! 선생님. 정말 존경합니다. 몰랑.
신성제국의 모든 귀족이 몰랑교로 개종했다.
황녀만 비난할 게 아니다.
귀족이란 족속들은 지위와 안녕만 보장된다면, 말랑한 슬라임도 찬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 게 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탐험가 쑥떡이에요. 정의로운 용사님이랑 꼭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뵙게 됐어요.”
쑥떡이 내가 알던 녹색 소년의 모습으로 파티에 합류했다.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저는 당신의 정체를 이미 알아요!’라고 주장하는 외모 선택이었다.
이어서 디스코가 부자연스럽게 파티에 들어왔다.
“...방해는 안 할 겁니다.”
뜻대로 안 돼서 굉장히 불편하다는 의사가 그녀의 얼굴과 말투에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나는 정의로운 용사의 미소로 회답해줬다.
“너무 걱정하지 마. 마왕의 탑까지 얼마 안 걸리리니까.”
10년씩이나 필요 없다.
왜냐하면...
▷종족: 아크 휴먼
▷레벨: 134
▷직업: 수도사(신앙→신성↑)
▷스킬: 신앙SSS 선동S 날조S
거래A 업보A......
▷상태: 신성, 거룩
신성제국 귀족들을 상대하면서 수도사로 전직했다.
수도사.
신앙심이 높을수록 신성이 덩달아 상승하기에 천사가 부럽지 않다.
직업특성의 장점은, 초월영역을 하지 않아도 Z등급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신앙이 ZZ등급이면 신성도 ZZ등급이고, G등급이면 똑같이 G등급이란 식이다.
이 기세로 교주까지!
그건 마왕의 탑으로 가면서 천천히 전직하면 된다.
“잠시만요! 80층을 어떻게 돌파할 생각이죠?”
디스코가 예리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며 묻는다.
“그걸 왜 네가 걱정해?”
“자신의 복제를 포함한 6인 파티랑 싸워야 하는데, 동료도 없이 가서 묻는 거예요. 혹시, 제가 모르는 부정한 수법을...”
“보면 알아.”
사탄의 방식은 잘못됐다.
내가 올바른 80층 공략법을 보여주겠다.
이것도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