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화
[28회차] 쑥떡? 쑥떡!
가장 무역이 활발한 중앙대륙이지만, 유감스럽게도 몰랑교는 그리 뿌리 내리지 못했다.
이러고도 중앙대륙이 몰랑교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을지, 매우 통탄할 따름이다.
원인은 간단하다.
중앙대륙 북부의 신성제국은 국교가 따로 있고, 서부의 요정왕국은 요정우월주의에 빠진 무신론자 천지며, 남부는 여신이랑 대적 중인 마왕의 영토다. 동부의 상인공화국은 거인제국이랑 원만한 거래를 위해 응애교를 믿고, 중부에는 독자적인 토속신앙이 자리하고 있다.
“용신(龍神)이라...”
5대 재앙의 수좌였던 망룡왕 뇌비우스의 달라진 호칭.
그의 마누라인 성룡왕 에르단티가 중부의 무역도시에서 성녀 겸 영주로 2000년 동안 활동하며 일궈놓은 남편의 평판이다.
내 마누라는 남편의 분신을 찍어내서 사골까지 우려먹는데, 이 집은 완전히 정반대다.
친애하는 절친이 잠자는 동안, 형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남편을 신격화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부럽구나! 참으로 부러워!
“...용신의 아내가 너무 부러워서 훼방을 놓으려고 포교하러 왔다는 건가요?”
설마, 그럴 리가.
여기서 죽어버리면 FFF급 용사들에게 웃음거리가 된다는 사실을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단시간에 전직하려면 약간의 위험은 감수해야지. 잘 들어. 종교계열 직업은 계급처럼 단계를 밟으며 성장하는데, 나는 그걸 뭉텅이로 생략하는 중이야.”
학교랑 비슷하다.
유치원생,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취준생...
이처럼 종교계열 직업도 비슷하게 성장한다.
신도, 광신도, 사제, 수도사, 성기사, 대사제, 추기경, 교주, 성녀, 사도, 선지자, 구도자.
가장 좋은 방법은 선지자나 구도자가 되는 거지만, 시간과 예산이 부족해서 어렵다면 교주로 타협해서 진행해도 큰 문제 없다.
▷직업: 교주(교세→세뇌↑)
▷직업: 추기경(교세→신성↑)
이 둘은 교세에 따라 직업효과가 상승하거나 내려간다.
보통은 추기경이 수도사보다 월등히 좋지만, 위대한 마스터 몰랑을 향한 신앙심이 남다른 내게는 역으로 손해다.
하지만 교주는 다르다.
굉장히 얻기 힘든 스킬 ‘세뇌’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교주의 세뇌는 일반적인 세뇌랑 달라서, 같은 종교를 믿는 자들에게 절대적이다.
그 상대가 누구일지라도.
가령...
“마왕의 부하들이라든가?”
그들은 나를 본받아서 열렬한 몰랑교 신자다.
“맙소사...”
*
교주가 되려는 G급 용사님에게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듣보잡 신흥종교도 아니고, 2000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몰랑교의 정점을 찍으려면 성과와 인지도가 매우 중요하다.
이걸 단시간에 하려면?
교주도 실패한 유명인들을 몰랑교에 입교시켜야 한다.
토마토, 아쿠아, 알렉스...
⤷오딘: 그게 가능하겠냐?
⤷제우스: 통할 녀석들이었으면 진즉 입교했지.
⤷알라: 종교가 애들 장난인 줄 아는 모양인데. 그게 생각처럼 쉬웠으면 아무나 다 했지.
⤷아몬: 저들이 얼마나 자존심 강한데. 특히 알렉스가 슬라임 따위를 신으로 모실 리 없다.
최고학력이라는 고등학생들이 매사에 부정적이다.
물론, 모든 고등학생이 이들처럼 나쁘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몰랑폰 커뮤니티에 참여하지 않고 조용히 동영상을 시청하는 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M.사탄: 정말 다양한 시도를 해봤던 저도 믿기지 않지만, 일단은 지켜보지요.
⤷이시스: 어? 사탄 선배다. 졸업한 거 아니셨어요?
⤷루나: 잘 보세요. 이름 앞에 수상한 코멘트가 붙었잖아요.
⤷루크: 하여간 선배님.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M.사탄: 저도 반갑습니다. 오늘부터 커뮤니티 관리를 맡게 된 교생 사탄입니다. 후배와 동기님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몰랑폰 커뮤니티에 교생 신분으로 사탄이 돌아왔다.
지금까지는 자율로 놔뒀지만, 관리자가 한 명쯤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내 마누라도 일한다!
남편님도 부려먹는 게 흠이지만.
사탄은 관리자답게 공개채팅방 도배 방지용으로 고안된 연속채팅 금지에서 자유로웠다.
그래서 학생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변해줄 수 있었다.
“슬픈 노래의 호수를 포함한 이 일대에서 포교하려면 성룡왕 에르단티를 가장 먼저 설득해야 해. 그녀의 전투력은 형편없지만, 두 아이는 아비를 닮아서 잘 싸우거든.”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쑥떡만큼은 아니지만, 어린 나이에 ‘용자’랑 싸워도 전혀 밀리지 않는 기량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모친인 에르단티.
뒤에서 두 아이를 회복해주고 죽더라도 간단히 부활시켜버리는 ‘최초의 성녀’가 있는 한, 지금은 이 몸으로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 이긴다.
아직은.
“어머! 쑥떡! 어서 오세요! 식사는 했나요? 모험은 할 만한가요?”
성룡왕 에르단티는 쑥떡을 자기 새끼처럼 무척 귀여워한다.
하지만 그녀를 상대하는 쑥떡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안녕하세요, 아줌마.”
“후후! 쑥떡이 저를 먼저 찾아와줘서 정말 기쁘네요. 아! 용사님도 환영합니다!”
우리는 영빈관으로 초대됐다.
성룡왕 에르단티는 어린 두 쌍둥이의 양손을 잡고, 시선은 쑥떡을 향한 채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G급 용사님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났다.
“아줌마. 용사님의 얘기를 들어주세요.”
“쑥떡의 부탁이라면 당연히 들어줘야죠. 그보다 뭘 마시겠어요? 홍차, 녹차, 황차, 흑차, 백차가 있어요.”
“흑차로 주세요.”
“역시! 쑥떡은 뇌비우스 님이랑 취향이 똑같네요.”
둘의 대화를 듣던 나는 적당히 끊어줄 필요성을 느꼈다.
이 모험은 모든 용사에게 공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말실수라도 나오면 일이 매우 복잡해진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내 정체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에르단티 님. 용사인 제가 당신을 찾은 이유는 포교 활동을 허락받기 위함입니다.”
“아아, 그거라면 제 대답은 같습니다. 응애교를 제외한 어떤 종교도 허가하지 않습니다.”
“...음?”
전부 안 되는 게 아니라 응애교는 된다고?
“뇌비우스 님께서 응애교의 아기님을 호적수로 인정하셨으니까요. 탐탁지 않지만, 아내로서 그분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순 없죠.”
“그렇습니까...”
캡틴 판타지의 삼등신 박치기와 우렁찬 응애의 포효는, 천하의 뇌비우스도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지금이라도 응애교로 갈아탈까?
마스터 몰랑께는 죄송하지만, 애초에 두 종교는 하나였기에 교리에는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문제는 학생들.
판타지아 세계를 양분하는 두 종교가 사실은 하나의 뿌리란 사실이 그들에게 알려져서 좋을 게 없다.
에르단티가 못을 박았다.
“중앙대륙 중부는 뇌비우스 님께서 머무신 덕분에 2000년 동안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답니다. 몬스터는 이곳에 얼씬도 못 하고, 어떤 종족의 분쟁도 허락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뇌비우스 님은 아무런 대가도...”
“땅값이 올랐잖습니까?”
“...그건 뇌비우스 님이 아니라 제가 투자를 잘해서 그런 거예요. 별개의 문제라고요.”
설득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면 이렇게 하지요. 에르단티 님과 제가 쌍방 동의하는 경기로 대결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기면 몰랑교의 포교를 허락해주시고, 패배하면 쑥떡을 보름 동안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보름이 시간인가요? 눈 깜빡하면 지나가는 찰나잖아요. 1500년.”
“그러면 없던 일로 하죠.”
“1000년!”
“100년.”
“500년!”
“500년. 좋습니다.”
“그런데 이 내기는 쑥떡도 동의한 사항인가요?”
“눈빛으로 허락을 받았습니다.”
내가 정의로운 용사의 눈빛으로 쑥떡을 바라봤고, 녀석은 군말 없이 따르기로 했다.
금시초문이란 듯이 녹색 눈동자를 휘둥그레 뜬 이유는, 기간이 500년이나 될 줄 몰랐던 탓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내가 지더라도 이 아줌마가 너에게 해코지는 안 할 테니.
역으로 친자식처럼 매우 잘해줄 것이다.
“내기의 종목을 골라야겠군요.”
“뭐든 상관없습니다.”
“흐응~ 자신만만하시네요? 듣고 후회하지 마세요. 제가 고를 종목은 요리입니다!”
“요리? 좋습니다. 하지만 심사의원을 객관적인 인물로 선정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죠.”
“일리 있는 얘기군요. 하지만 그런 인물이 있을까요? 저는 시민 중에서 무작위로 10명을 선정해서...”
“쑥떡.”
“...쑥떡을 위해 요리하는 거란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혹시, 싫으십니까?”
“그럴 리가요! 좋아요! 의욕이 충만해지는걸요!”
대화 내내 시큰둥한 얼굴이었던 에르단티의 두 눈이 반짝였다.
참고로...
▷종족: 그린 드래곤 로드
▷레벨: 999+
▷직업: 신녀(총애→신앙↑)
▷스킬: 신앙GG 부활G 영생ZZ 회복ZZ 재생ZZ 육아ZZ 요리ZZ 매력Z 경영Z 축복MAX…
▷상태: 변신, 결속, 의욕
성룡왕 에르단티의 요리실력은 ZZ등급.
고등교육과정 기준으로, 신성제국의 수석요리사가 Z등급이란 걸 고려하면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만약, 그녀가 2000년 동안 요리 스킬에만 투자했다면 훨씬 엄청났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요리재료를 구할 시간도 필요하니, 보름 뒤에 대결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요리 스킬이 아예 없다.
보름 동안 부지런히 연습해서 Z등급을 찍을 계획이다.
“보름을 정말 좋아하시네요. 1년 뒤가 어떤가요? 고기를 숙성할 시간이 필요해요.”
“너무 깁니다!”
시간을 넉넉하게 잡을수록 내 부담이 줄어들지만, 용의 시간개념은 정말 잘못됐다.
그리하여 우리는 30일 뒤에 대결하기로 합의했다.
*
스킬 ‘신앙’은 한계돌파 할 필요가 없는 특수한 스킬이다.
개인의 신앙심을 한계돌파란 고정된 시스템으로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신A를 믿다가 개종해서 여신B를 따른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여신A를 배신한 신자의 신앙 스킬을 보존해줘야 할까?
당연히 아니다.
그렇기에 스킬 ‘신앙’은 초월영역의 구분이 없으며, 신앙심에 따라 얼마든지 등급이 변화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종족: 샤이닝 휴먼
▷레벨: 382
▷직업: 수도사(신앙→신성↑)
▷스킬: 신앙ZZ 요리Z 몰살MAX 학살MAX 미각MAX 선동SS 날조SS 거래E 지력F…
▷상태: 양호
보름 안에 요리 스킬을 MAX등급까지 올리는 건 쉬웠다.
요리재료를 근처에서 구한 후, 맛은 포기하고 병렬 방식으로 끊임없이 요리했다.
삶고, 굽고, 볶고, 썰고...
협찬해준 모든 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바이다.
⤷오딘: 자비를 구걸하는 산적들을 산채로 기름에 튀길 줄이야...
⤷제우스: 이 교사는 미쳤어!
⤷알라: 언제부터 화형(火刑)이 요리법이었지? 아는 사람?
⤷M.사탄: 생방송은 어쩔 수 없지만, 방송을 놓친 학생들을 위한 재방송은 모자이크로 편집될 겁니다.
⤷지크: 너무하잖아.
시장에서 평범한 요리재료를 공수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맛을 포기하고 대량으로 만드는 까닭에 버리긴 아깝고, 한계돌파를 하려면 제물로 바칠 스킬들도 많이 필요했다.
사냥 후 요리.
나는 인류에 해를 끼치는 생명체라면 종족을 가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보름 만에 요리 Z등급.
첫 초월영역 스킬로 요리를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
예전에 연약한 척하던 가정 교사가 보여줬듯이, 요리는 전투에도 유용한 스킬이기 때문이다.
“용사님. 준비는 끝나셨나요?”
“물론입니다.”
“그러면 바로 시작하지요. 쑥떡을 위한 요리대회를...!”
친구의 마누라는 원래 목적을 완전히 망각한 것 같지만, 진행에는 문제없었다.
“정의로운 요리를 보여주지.”
보는 눈이 많았다.
쑥떡에게 ‘한 입 먹자마자 천상의 맛이라고 찬양해!’라고 주문할 수 없었다.
번거롭지만, 정정당당하게 맛과 실력으로 이겨주겠다.
⤷M.사탄: 귀엽고 사랑스러운 쑥떡을 위한 요리대회가 마침내 시작됐습니다!
...나중에 저 교생 녀석도 몰랑몰랑하게 해줘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