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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급 관심용사-384화 (384/430)

 384화

[28회차] 몰랑만능설

너무나 당연한 얘기겠지만, MAX급 용사님이었던 내가 모르는 동료 후보는 없다.

...잘 찾아보면 한두 명쯤 있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내가 무시할 정도면 엑스트라 혹은 피라미이므로 신경 쓸 필요 없다.

무슨 말을 하고 싶냐면...

“내가 패했다고...?”

“토마토. 그게 자연의 이치야.”

나는 동료 후보들의 전투 스타일을 손금 보듯 세세하게 알고 있다.

반면에 그들은 나를 모른다.

그리고 이 차이가 전투의 승패를 가른다. 한 번의 실수로 삐끗한 척추는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토마스 님이 패했어.”

“나의 낭군님이...”

“최강이신 줄 알았는데!”

“속은 기분이야.”

관전하던 인어들이 수군거렸다.

방금까지 태연하게 토마토를 응원하면서 ‘사랑해요!’를 연발하던 물고기들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인어들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토마토가 내게 패배하기 전까지는 온몸을 바쳐가면서 진심으로 그를 사랑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약한 용사에게 패배한 그의 유전자를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사랑에 균열이 갔다.

쉽게 사랑하고 쉽게 깨진다.

그것이 인어다.

...그래도 이렇게 쉽게 깨지는 일은 매우 드물지만.

⤷루크: 토마스 성기사단장. 여성 용사들이 선호하는 동료 3위.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문란해진 성생활 때문에 인기가 하락했지만, 능력만은 여전히 최상위권 동료. 맞나요?

⤷이시스: 3위?????

⤷루나: 정보가 늦네요. 그건 4차 교육과정의 순위입니다. 5차 교육과정의 토마스 성기사단장은 별거 없어요. 지금은 북대륙의 천재검사 크리스가 대세죠!

⤷릴리스: 몰랑위키 남성 동료 인기순위. 1위 쑥떡(연하 버전), 2위 쑥떡(연상 버전), 3위 크리스, 4위 나서스, 5위 강한수. 토마스는 고작 6위밖에 안 돼.

⤷마리아: 여러분! 토마스 혐오를 멈춰주세요!

인어들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수컷의 능력치 레벨이 매우 낮은 나에게 패배한 게 원인이다.

철옹성 같은 성녀A의 호위와 책무를 그만두고 인어들로 하렘을 차린 토마토 성기사단장.

지금까지 이 호수에서 왕처럼 군림해왔지만, 내게 패배한 시점에 그 영광된 삶도 끝났다.

모든 인어가 곁을 떠났다.

“아아, 나의 하렘이...”

모든 걸 신기루처럼 잃은 토마토가 망연자실했다.

저러다 토마토 주스가 아니라 케첩이 될 것 같다.

구제해주마.

“말랑한 어린 토마토여. 몰랑을 외치면서 세상을 보라. 네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토마토였는지 깨닫게 될 거다. 그런고로 너도 오늘부터 몰랑한 토마토가 되는 거다.”

“내 이름은 토마스다...! 대체 몇 번을 말해야- 꾸엑?!”

“진 새끼가 말이 많아. 닥치고 너도 1년 동안 몰랑이다.”

그 뒤는 알 바 아니다.

순조롭게 아쿠아와 토마토를 몰랑한 신자로 받아들인 내 인지도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동료가 아니다.

신자다.

그 차이는 매우 크다.

지독한 무신론자였던 아쿠아와 토마토가, 정의로운 G급 용사님에게 몰랑교의 교리를 배우고부터 열렬한 신자가 됐다!

...라는 소문이 퍼지면 그들의 명성이 내게로 넘어온다.

“동료랑 무슨 차이지요?”

잠자코 있겠다고 선언했던 디스코가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동료는 용사의 명성을 빨아먹는 해충이지. 용사 혼자서 해냈어도 동료들이랑 힘을 합쳤다는 식으로 포장돼버리거든.”

“실제로 도움을 받았을 수도 있잖아요?”

“그게 용병 파티랑 뭐가 다르지?”

“용사님이 리더죠.”

“그렇다면 이 용사는 용병이랑 뭐가 다르지? 용병보다 의뢰비가 싸다는 거? 하하! 그런 용병은 찾아보면 은근히 많아. 실력은 있지만, 광고를 안 해서 인지도가 낮고 고용비도 저렴한 친구들이.”

회사가 그렇다.

능력과 젊음이 있지만, 직급이 낮아서 날개를 펼치지 못하는 사원.

용병업계도 똑같다.

고용한 용병이 도적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허다하기에 실력보다 신용을 중요시한다.

그렇다면 용사는 어떨까?

판타지 신(神)이 신용을 보장해주는 용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용사가 용병이랑 차별되려면 강해야지. 제삼자의 도움과 희생이 불필요할 만큼 압도적인 강함. 그리고 이 강함은 몰랑에서 나온다!”

“잘 나가다가 어째서 또 몰랑인 거죠?!”

“어리석은 질문이군. 모든 길은 몰랑으로 통한다!”

이해가 되질 않는다.

우주 굴지의 대기업 몰랑소프트에서 일한다는 여자가 몰랑의 위대함을 모른다니?

이 여자, 사기꾼 아니야?

“...굉장히 불편한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시는데요.”

“맞아.”

“정말이라도 부정 좀 하세요! 당신은 진짜- 하아... 말을 말죠.”

나는 여기저기 소문을 냈다.

정의로운 용사님의 말에 감복한 인어공주 아쿠아와 전직 성왕국의 성기사단장 토마토가 몰랑교의 열렬한 광신도가 됐다고.

둘은 군말 없이 따랐다.

이것이 동료와 계약직의 차이다.

“용사님.”

“누가 사람 말을 하라고 했냐, 토마토.”

“부탁이 있습니다.”

“하지 마.”

“딱 한 마디만 하게 허락해주십시오! 제발!”

귀여운 척하는 라누벨이랑 똑같은 말을 하는군.

굉장히 불쾌했지만, 판타지 200년 경력의 용사님 센서가 속삭였다.

들어서 손해는 안 본다고.

“해봐.”

“감사합니다! 흠흠. 성왕국의 성녀님도 용사님의 지혜로 굴복시켜주십시오. 그러면 진심으로 몰랑교의 광신도가 되어 용사님의 앞길을 열겠습니다.”

“아아, 그렇군. 너는 성녀의 엉덩이를 노렸었지?”

“크흐흠!”

하지만 그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어 영웅으로 추앙받던 조국, 성왕국을 떠나서 하렘을 차렸다.

4차 교육과정에 없던 설정.

하지만 성녀를 짝사랑한다는 건 변함없는 듯했다.

“그거라면 내가 알아서 해. 그러니 너는 몰랑만 찬양하면 돼.”

성녀A는 곧 나타날 것이다.

소꿉친구인 인어공주 아쿠아를 내게서 되찾기 위해.

*

결과부터 말하자면, 아쿠아를 되찾겠다며 내가 도전한 성녀A는 단 3초 만에 굴복했다.

살짝 도발하자마자 그녀는 발끈하며 내기를 수락했다.

누구의 신앙심이 더 깊을까?

성녀로선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주제였다.

“이제 막 소환된 용사님에게 이만한 신앙심이라니...?”

눈이 부실 만큼 찬란한 나의 후광을 목도한 성녀A는 흙바닥에 주저앉은 채 넋을 놔버렸다.

이상하겠지.

다른 세계에서 막 넘어온 용사가 판타지아의 대중종교인 몰랑교의 열렬한 신도이며, 성녀조차 뛰어넘는 신앙을 품었으니 말이다.

보통은 말이 안 된다.

몰랑과 말랑의 차이를 분간하는 시련부터 쉽지 않으니까.

나는 정의로운 용사의 미소로 회답해줬다.

“이게 용사다.”

나머진 짝퉁이다.

⤷알라: 종교 선생이었나? 한계돌파가 안 돼서 Z등급도 어렵다는 신앙 ZZZ등급 실화인가?

⤷오딘: 그래서 수도사 직업특성으로 신성도 ZZZ등급임. 미쳤음.

⤷제우스: 성녀는 무슨 죄야. ;;

⤷루나: 궁금하네요. 성녀를 신앙으로 이기면 어떻게 되는지.

커뮤니티 머저리들 사이에 똑똑한 학생이 있었다.

아주 좋은 질문이다.

“신(神)이 가장 총애해야 할 성녀가 용사만도 못하다니? 너는 성녀의 자격이 없어.”

“아아...!”

나에게 남의 직업을 박탈하는 권한은 없다.

그것은 시스템의 영역이니까.

하지만 내 얘기를 들은 성녀 스스로 ‘내게 자격이 없다.’라고 느꼈다는 게 중요하다.

▷종족: 홀리 휴먼

▷레벨: 1590

▷직업: 성녀(신앙→부활↑)

▷스킬: 신앙ZZ 치료Z 마성Z

고결Z 설교MAX…

▷상태: 후광

이랬던 성녀A가,

▷종족: 하이 휴먼

▷레벨: 1590

▷직업: 교주(교세→세뇌↑)

▷스킬: 치료Z 마성Z 고결Z

설교MAX 매력MAX…

▷상태: 절망, 혼란, 자멸, 퇴보,

부정…

한순간에 이렇게 바뀌었다.

바뀐 성녀A의 직업은 그야말로 쓰레기였다.

몰랑교의 교주였다면 전혀 달랐겠지만, 성왕국과 몇몇 소국만 믿는 마이너 종교의 교세는 정말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세뇌가 B등급이나 나올까?

죽은 자를 되살리는 성녀랑 비교하면 그야말로 쓰레기다.

“아아...”

더는 성녀가 아니게 된 성녀A 수준의 치유사는 몰랑교에 교주와 추기경을 포함해서 30명도 넘는다.

고등교육장 난이도에서 ZZ등급 스킬이 없다는 건 그만큼 크다.

하지만 그런 성녀A도 나름의 쓸모가 있다.

“아주 좋은 홍보수단이지. 토마토. 앞으로 너에게 그녀를 전적으로 맡긴다. 이 용사님이 이렇게 배려해주는데 사랑의 도피 같은 등신 같은 생각은 안 하리라고 믿는다.”

“몰랑! 몰랑! 몰랑...!”

성왕국에서는 감히 손도 못 잡았던 성녀A의 잘록한 허리를 끌어안은 토마토가 몰랑을 외쳤다.

그의 능력치를 확인해보니...

▷종족: 홀리 휴먼

▷레벨: 3214

▷직업: 성기사(신성=축복↑)

▷스킬: 정력Z 신성Z 신앙MAX

수영MAX 검술MAX…

▷상태: 감격, 신앙, 타락, 찬양

밑바닥이었던 스킬 신앙이 F등급에서 MAX등급으로 가파르게 수직상승 했다.

사랑의 힘은 정말 대단하군!

이 기세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Z등급도 찍을 것 같다.

그리고 성녀A를 굴복시킨 내 명성과 신앙도 쭉쭉 올라갔다.

“좋군?”

역사를 새롭게 쓰는 기분이다.

성녀를 잃고 우왕좌왕하던 성왕국은 황녀가 다스리는 신성제국에 무력하게 합병됐다.

직업과 기반을 전부 잃은 성녀A는 파렴치한 성기사 토마토에게 의지하기 시작했고, 단 며칠 만에 그의 아내가 되었다.

몰랑한 신전에서 성대한 결혼식도 치렀다.

그리고...

“재미있는 용사네.”

“그렇게 말하는 너도.”

나는 가장 마주치기 싫은 위험인물이랑 대면하게 됐다.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토마토와 성녀A가 결혼한다는 충격적인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게 틀림없다.

“하하! 만나서 반가워, 몰랑한 후배. 나는 정의로운 MAX급 선배님이라고 해.”

비겁한 마누라가 검희를 위해 만든 강한수의 등장이었다.

“퇴물은 꺼져.”

“...어이쿠!”

덥석!

덥석!

우리는 서로의 경추(頸椎) 6번과 7번 사이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손아귀에 힘을 주려다가 멈췄다.

깨달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나갔다가는 둘 다 죽는다는 걸.

“...놔라.”

“먼저 놔.”

이래서 마주치기 싫었다.

“자, 잠시만요! 아버지- 같은 용사님과 용사님!”

쑥떡의 중재가 아니었다면 계속 이러고 있었을 것이다.

*

예상하긴 했지만, 강한수가 멋대로 나의 파티에 합류했다.

하지만 한심한 후배들처럼 그에게 모험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사태는 없었다.

왜냐?

“후배야. 오늘은...”

“몰랑계시록 9장 1절. 그분이 고아원에서 몰랑하셨다. 그랬더니 원장은 벌벌 떨고, 아이들은 몰랑한 희망으로 가득해지더라. 몰랑.”

“...몰랑.”

“선배는 마스터 몰랑과 모험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당연히 몰랑이지.”

“그러면 당신보다 신앙심이 몰랑한 제 일정을 따르십시오.”

“큭!”

분한 표정을 지은 강한수는 순순히 내 지시를 따랐다.

제대로 싸우면 내가 지겠지만, 신앙심 하나만큼은 절대적인 우위에 있었던 덕분이다.

⤷루크: 진지하게 묻는 건데요. 몰랑교는 만능입니까?

⤷제우스: 몰랑만능설? 미친!

⤷루나: 인정!

⤷이시스: 와아! 천하의 강한수 오빠를 길들이다니! 몰랑교는 정말 대단하네요!

⤷릴리스: 나도 해볼까?

⤷피코: 꿈 깨세요. 제가 몰랑교 선배로서 충고하는데, 웬만한 신앙심과 교리로는 꿈쩍도 안 합니다. 저 교사가 대단한 거.

⤷알라: 19년 동안 동료 모은다고 고생한 사탄만 불쌍하게 됐네.

⤷레온: 강한수 >> 49명 동료

⤷지크: 애도...

⤷M.사탄: 몰랑교의 위대함을 몰랐던 당시로선 최선이었습니다. 애초에 교리가 너무 난해합니다...

선대 용사 강한수의 합류로 파티의 전력이 60%쯤 상승했다.

이대로 탑에 도전해도 된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한 발자국 더 욕심을 내보기로 했다.

만두왕국으로...

“안녕하세요, 용사님! 주인님을 닮은 주인님도 안녕하세요! 저는 화이트 치킨이라고 해요!”

돌연변이 하피인 설녀가 두 날개를 파닥거리며 인사했다.

오랜만에 주인을 만나서 기쁜 모양이다.

“손이 없는 그녀의 남편 알렉스입니다. 그나저나... 당신이 용사를 적극적으로 도울 줄은...”

알렉스가 흥분하는 아내를 말리며 강한수에게 질문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일단은 나도 몰랑한 신도라서 말이지. 몰랑.”

“그, 그렇군요.”

나는 80층까지 혼자 썰어버릴 수 있는 GG등급 검사에게 정의로운 용사의 미소로 말했다.

“몰랑계시록 8장 19절. 몰랑한 유부남아. 손이 없는 아내와의 행복이 누구 덕분인지 떠올려보아라.”

“...몰랑.”

“몰랑이 길을 인도하리.”

마왕의 탑을 썰어버릴 드림팀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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