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388화 (388/430)

 388화

[28회차] 쏘시아&히프리아

파앗-!

내게서 직업 ‘추기경’을 상징하는 후광이 쏟아지고, 길을 가로막던 성기사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추기경 예하...?”

“아, 아앗...”

주춤주춤 물러난 둘은 공손히 무릎을 꿇었다.

나는 그들이 아는 추기경 명단에 없지만, 내게서 뿜어져 나오는 신분증은 진짜였으니까.

정의로운 G급 용사님은 선택받은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수세식 화장실로 당당히 나아갔다!

▷곤란: 생도들 앞에서 화장실이라고 해설하지 말아 주세요. 아메바 같은 그들은 곧이곧대로 믿는답니다.

아아, 그랬지! 앞으로는 주의할게! 예쁜 도덕 아가씨!

내면의 아름다움만큼 외면도 아름다운 도덕 아가씨가 함께하니, 내 마음도 정화되는 기분이다.

이게 바로 모험이다!

⤷루크: 오오! 몰랑교 총본산 내부는 처음 봄.

⤷이시스: 굉장히 고풍스러운 화장실이란 느낌이네요.

⤷피코: 몰랑교 총본산은 공용화장실로, 성별이 아닌 직급으로 사용하는 칸이 나뉩니다. 수세식 및 비데가 완비되어 있으며, 추억의 슬라임식 변기도 체험해볼 수 있습니다.

⤷지크: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진짜 몰랑교도다!

⤷아몬: 지크야. 뒷북 자제 좀. 저 녀석은 커뮤니티 초창기부터 몰랑교 광신도로 유명했다.

당시에는 오물을 배출하는 하수도와 정화조 설치로 애먹었다.

그러나 그 외에는 기술이 아닌 자본주의의 힘을 사용했다.

북대륙의 까다로운 왕족과 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최고급 품질만을 고집했다.

설치된 비데만 보더라도, 척추가 튼튼한 천사 대장장이가 손수 제작한 극상품.

여기가 바로 몰랑교의 심장이다.

“생소하다는 얼굴이군요?”

나란히 걷던 디스코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당연하지. 여기는 몰랑교의 고위관계자인 추기경 이상만 들어올 수 있는 성역이니까.”

“과연...”

내부는 조용했다.

몰랑교는 추천제가 아닌 성과제이기에 가만히 앉아서 지위를 누릴 수 없는 까닭이다.

하급자의 공적을 내 것으로 돌리는 양아치 수법도 불가능하다.

종교계열의 직업은 직장상사가 아닌 시스템이 부여하니까.

승진도, 강등도.

교주의 주관으로 ‘너, 오늘부터 추기경 해라.’이런다고 추기경이 되는 게 아니란 뜻이다.

나처럼 공적과 명성을 쌓으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는 것이다.

그건 교주도 마찬가지.

태어날 때부터 선택받는 성녀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이 상대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에 이 화장실을 항상 지키는 존재도 실적이 불필요한 ‘성녀’뿐일 수밖에 없다.

칸막이 없는 변기 위에 다소곳이 앉아있던 여인이 감았던 눈을 뜨며 내게 말을 건넸다.

“성지에 온 걸 환영합니다, 새로운 추기경이여.”

“이거 실화냐...”

“무슨 말씀이신지요?”

내가 알던 기존의 북대륙 성녀, 성녀C는 하녀처럼 화장실 변기를 정성스럽게 닦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인물.

내가 익히 아는 얼굴과 척추였다.

“히프리아...”

▷종족: 퍼스트 엔젤

▷레벨: 9999+

▷직업: 여신(교세→창조↑)

▷스킬: 신앙GGG 신성GGG 매력G 수유ZZ 육아Z...

▷상태: 평온

하지만 그녀의 종족은 파르마엘이랑 같은 ‘최초의 천사’였다. 이건 시스템으로 속일 수 없다.

내가 마계에 10년 동안 갇힌 사이에 비겁한 마누라가 또 무슨 짓을 한 게 틀림없다.

마음 같아서는 비겁한 마누라의 골반을 흔들면서 묻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이럴 때는?

도덕 아가씨! 도덕 아가씨!

▷비밀: 강한수 고문님이 납치되면서 쏘시엘 교장님의 정서가 급격히 불안해졌어요. 스스로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하신 쏘시엘 교장님은 히프리아 교감님을 부활시키는 방법을 선택했어요.

방법은 간단했다.

최근에 열린 페스티벌에서 졸업생들에게 부정당하고 정체성과 자존심이 짓뭉개진 파르마엘에게 도전.

쏘시아와 동거(?)하면서 ‘더미’라는 운명에서 벗어난 히프리아는, 존재의 주도권이 걸린 영혼의 대결에서 파르마엘을 쓰러트렸다.

그리고 현재.

최초의 천사가 된 히프리아는 교감 겸 여신으로 활동하고 있다.

▷설명: 히프리아 님은 강한수 고문님의 마왕 더미처럼, 몰랑교 여신으로서 움직여야 할 때만 더미를 조종하세요. 평소에는 수면 상태로 놔두고 교무실에서 업무를 보시거나 씨드엘 님을 돌보세요.

그러고 보니...

내가 10년 동안 쌓인 불만을 비겁한 마누라에게 푸는 동안, 젖먹이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곁에 있었다면 다짜고짜 마누라의 골반부터 잡지 않았을...

처음부터 이걸 노렸구나!

히프리아에게 아들을 맡기고 자기만 잽싸게 날아온 것이다.

“질문이 있습니다. 오늘 이곳을 방문한 그대는 추기경으로서 오신 건가요? 용사로서 오신 건가요?”

그리운 목소리.

나는 페스티벌에서 히프리아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모두의 성녀였던 그녀는 ‘성자’였던 내게 임무를 줬었다.

악마숭배자로 전락한 이들을 교화해서 다시 영웅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임무만 받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예를 들어, 지하감옥에 가둬둔 악마숭배자와 이교도들을 교화하는 일이라든가.”

“그거라면 제가 먼저 부탁드리고 싶군요. 교화한 악마숭배자와 이교도의 숫자에 따라 합당한 보상을 해드리겠습니다.”

“옛날 생각이 나는군요.”

“저로서는 그들을 교화하기 역부족이었어요. 그렇기에 믿고 맡기겠습니다. 정의로운 성자님.”

“물론입니다.”

“그러면 우선, 모든 대륙의 최고지도자에게 인정받은 그대에게 합당한 지위를 내리겠습니다.”

추기경→교주(교세→세뇌↑)

이건 우연이 아니다.

그녀의 설명처럼, 나는 모든 대륙의 최고지도자에게 인정받았다.

중앙대륙의 성룡왕 에르단티, 서대륙의 대현자 섹스피어, 남대륙의 거인왕 페닉스, 동대륙의 지모왕 말파리, 북대륙의 여신 히프리아.

그리고 이어진 임무는 ‘교주’에게 최적화되어 있으며, 그 위로 더 올라갈 발판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아니요. 이것은 그대가 이룬 성취입니다. 그러니 저에게 감사할 필요가 없어요.”

“......”

“......”

히프리아랑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소와 시기에 재회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구차한 대화는 불필요했다.

시선만으로 충분했다.

“교주님. 절 따라와 주세요. 지하감옥으로 안내해드릴게요.”

“...예.”

계속 변기나 닦을 것이지, 눈치 없이 끼어든 성녀C가 나의 즐거운 시간을 방해했다.

하지만 척추를 잡을 순 없었다.

보는 눈이 많았으니까.

⤷바알: 히프리아 여신님 만세!

⤷제우스: 나도 몰랑교를 한 번 믿어볼까?

⤷오딘: 여신이 진짜 여신답게 생겼네. 흠흠!

⤷루크: 졸업생 페스티벌 성녀님이 몰랑교 여신???

⤷지크: 나도 오늘부터 몰랑!

눈치 없는 성녀C를 뒤따라 내려간 지하감옥은 악취로 진동했다.

이곳에는 몰랑교를 ‘부정(否定)’하는 이교도와 악마숭배자들이 재래식 간이화장실처럼 생긴 독방에 수용되어 있었던 탓이다.

저 독방은 내가 2000년 전에 애용했던 전통적인 고문법이다.

성녀C가 설명했다.

“청결하고 편리한 수세식 변기의 소중함을 모르는 자들에게 내리는 형벌이에요.”

그녀의 말대로다.

이 독방은 육체적인 고통을 주는 고문이나, 들을 생각을 안 하는 설교보다 효과가 좋았다.

하지만 그건 다시 말해, 이 방식으로도 교화되지 않는 고집불통만 남았다는 뜻이다.

“굉장히 불쾌하군요.”

“네. 아무래도 고의로 청소를 뜸하게 하다 보니...”

“아니요. 제 말은, 저들이 그분의 은혜를 깔보고 무시하는 이유가 불쾌하다는 거였습니다. 스킬을 이용해서 생리현상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저러면 화장실을 매일 이용할 필요가 없기에 수세식 변기의 소중함이 와 닿지 않겠지요.”

“혜안에 감탄했습니다. 이 짧은 시간에 거기까지 파악하셨다니! 정확히 보셨습니다, 교주님. 그렇기에 당신께 도움을 청하는 거예요.”

혜안은 무슨.

2000년 전에도 고위능력자에게는 이 방법이 통하지 않아서 골치 아팠었다.

물론, 그들은 제1사도였던 내게 설득되어 몰랑한 신자가 됐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성녀님.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말씀만으로도 든든하네요. 죄인은 총 200명. 신앙 E등급 이상 찍어야만 인정됩니다. 시간제한은 없어요. 그리고 성공할 때마다 점수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점수로 원하시는 무엇이든 살 수 있어요.”

“무엇이든?”

“네. 무엇이든지요. 나중에 오해가 없도록 대략적인 가격을 적어둔 표입니다. 참고하세요.”

200점: 여신의 입맞춤

150점: 어떤 교사의 가터벨트

80점: 행운의 반지

50점: 어떤 아기의 기저귀

20점: 성녀

3점: 소생의 비약

...

기저귀가 판타지아 세계에 단 3명뿐인 성녀보다 값어치 있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지만, 내가 참견할 문제는 아니었다.

내 목표는 당연히 200점.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바로 시작해볼까?”

*

교주의 세뇌는 특별하다.

스킬로 얻는 세뇌랑 겉보기에는 똑같지만, 무신론자와 이교도에게는 몇 배의 효과를 발휘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건 아니다.

성공확률이 0.1%에서 0.5%로 올라서는 의미가 없으니까.

결국, 본인의 실력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어야 효과가 있다.

그리고 설교는 내 전문이다.

“아악-?!”

“인사해. 이게 네 척추- 어이쿠!”

푹.

내 손에서 도망친 싱싱한 척추가 오물의 산꼭대기에 떨어졌다.

“무, 무, 무슨~?!”

“손이 미끄러지면서 네 척추 마디가 구멍에 빠졌네. 이걸 어쩌지? 오물이 잔뜩 묻어서 저건 재활용하기가 힘들겠는걸? 벌써 오염됐잖아.”

“아으아...”

“정말 안타까워. 수세식 변기였다면 손이 미끄러졌더라도 이런 비극이 없었을 텐데. 너도 이건 동의하지?”

“흑, 흑흑, 꺼흑...!”

“울지 마. 공명정대한 몰랑교 교주님이 집게를 빌려줄게. 이걸로 구멍에서 척추를 집어 올리면...”

“몰랑! 몰랑! 몰랑!”

“하하하! 드디어 너도 몰랑한 그분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았구나. 늦었지만, 축하해. 몰랑.”

교화는 매우 간단했다.

실력도 실수.

그들은 내 실수를 이해해줬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흔쾌히 몰랑교도가 되었다.

그동안 잡것들은?

알렉스와 설녀는 알콩달콩. 쑥떡과 강한수는 히프리아랑 온종일 붙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리고 디스코는 감시자답게 내 옆에서 설교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이게 어딜 봐서 설교죠?”

“어딜 보더라도 설교다만?”

재래식 화장실도 좋다는 야만적인 무뢰배들은 하나둘 몰랑교로 전향하며 내 점수를 올려줬다.

10, 50, 100, 150, 200...!

지하감옥이 텅텅 비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몬: 저 방식이면 번거롭게 교주가 될 필요가 없던 게 아닐까?

⤷제우스: 해보고 알려줘.

⤷바알: 너희들. 시바에게 얼른 사과해. 요즘 안 보이잖아.

⤷알라: 애초의 고인물들은 커뮤니티를 안 했는데 뭔 개소리?

⤷오딘: 닥치고 교사 직업이나 봐라. 벌써 바뀌었어.

추기경과 교주는 밟고 지나가는 관문에 지나지 않았다.

지하감옥에서 내 손이 100번 미끄러졌을 때,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업적을 세우면서 격이 상승했다.

교주→성인(신앙→기적↑)

판타지아 세계에 단 3명뿐인 성녀랑 동급으로 취급되는 성인.

성녀처럼 죽은 자를 되살릴 순 없지만, 불가능한 현상을 숨 쉬듯 일으키는 변칙적인 존재다.

하지만 내가 노리는 직업은 성인이 아니다.

“여신님의 입술을 원합니다.”

“물론이에요. 당신은 제 입술을 훔칠 자격이 됩니다.”

...이까짓 게 뭐라고.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정정당당하게 200점을 모은 나는 히프리아 앞으로 걸어갔다.

“멈춰.”

“...그랬지.”

나만 생각하느라 깜빡했다.

이 자리에는 ‘나’가 한 명 더 있다는 것을 말이다.

강한수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원래는 ‘검희’를 만나는 이벤트로 녀석을 도발할 계획이었는데, 살짝 틀어지고 말았다.

강한수가 제안했다.

“여신의 입술을 포기해라. 그러면 내가 후배의 졸업을 전력으로 도와주겠다.”

조건이 제법 나쁘지 않았다.

나는 정의로운 용사의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선배. 이건 어떻습니까? 싸워서 제가 패하면 여신님의 입술을 포기하고, 이기면 성검 뉴클리온을 제게 양도하십시오.”

“후회할 텐데?”

“기적을 보여드리죠.”

“...좋다.”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판돈이 걸린 내기가 성립됐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