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화
[28회차] α > α+β
“학생 제군들이 잘못된 학습으로 80층부터 무척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잘 알아. 그래서 내가 특별히 시범을 보여주려고 해.”
71층에서 79층까지는 가벼운 몸풀기이므로 설명은 생략.
헤어진 잡것들은 탑 50층 휴게소에서 ‘세계의 마지막’을 부부끼리 보내도록 했다.
괜히 따라와서 홀몸인 수호자도 쑥떡에게 맡겨서 외롭지 않도록 배려했다.
(본좌의 여식이 외롭지 않도록 신경 써줘서 정말 고맙다.)
알면 충성해라.
귀여운 척하는 라누벨의 종자를 돕는 건, 나에게 매우 큰 결단을 요구하는 일이니까.
몰랑스타도 강화했다.
성마검 소드마스타 - 빛, 어둠
천마신검 룬 - 내공
정령검 엔드미온 - 5대 속성
알렉스의 성마검 소드마스타, 수호자에게 받은 천마신검 룬, 강한수가 건넨 정령검 엔드미온.
성검 다음으로 뛰어난 3대 보검이 몰랑스타에 흡수됐다.
땅, 불, 바람, 물, 마음, 빛, 어둠.
사출하는 칼날에 모든 속성이 깃들고, 내공을 활용한 ‘검기’를 기본으로 두르게 됐다.
이름도 살짝 변했다.
몰 랑 스 타 G
그렇게 준비를 마친 나는 디스코만 대동한 채 탑을 올랐다.
설명이 굳이 필요할까?
더욱 막강해진 성검 몰랑스타G와 철판의 도움으로 별 어려움 없이 80층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선 설명이 살짝 필요하다.
내가 아닌 후배들을 위해.
“모두가 알다시피 80층은 자신의 도플갱어와 안정된 6인 파티를 상대하는 거야. 그래서 등장한 공략법이 도플갱어를 용사가 상대하고, 그동안 동료들은 6인을 쓰러트리는 거지. 이론상으로는 나쁘지 않아. 하지만 그 6인을 쓰러트릴 동료를 모으는 시간이 너무 걸려.”
⤷알라: 그래서 채플 선생님은 혼자 공략하시겠다?
⤷오딘: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되나? 이 선생은 계산이 안 되나?
⤷아몬: 보면 알겠지.
⤷제우스: 용사 vs 용사+α // 이게 누가 이길지 고민해야 할 만큼 어려운 문제냐?
⤷레온: 힘들 것 같음.
끼이익-
나는 비관적인 학생들의 야유를 받으며 80층 출입문을 열었다.
이해한다.
그들은 몰랑과 말랑도 구분하지 못하는 우매한 말랑이들이니까.
몰랑한 내가 보듬어줄 수밖에.
“혼자서 왔다고...?”
“에이. 그럴 리가 없잖아.”
“잔말 말고 마법탐지나 해봐.”
“매복을 조심하세요.”
“정말로 없는 거 아니야?”
“무슨 생각인지...”
나를 완벽히 복사한 짝퉁이 6인 파티와 함께 출현했다.
우리의 능력치는 동일.
내가 ‘총애’를 조작해서 지금이라도 격차를 줄 수 있지만, 학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생방송이기에 그런 편법은 쓰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나와 짝퉁의 전투력은 완벽하게 똑같다. 그러나 차이가 딱 하나 있다.
동료.
짝퉁은 6명이나 있지만, 나는 응원단조차 대동하지 않았다.
그리고 짝퉁은 내가 혼자 왔다는 사실을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이 차이.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승패를 가를 만큼 중요한 요소다.
“철판.”
사사삭-
내 부름을 받은 철판이 몰랑스타G의 칼날을 일제히 쏘았다.
나도 인사를 생략하고 그들에게 거침없이 도약했다.
“...철판!”
짝퉁이 한 박자 늦게 외쳤다.
시스템이 제대로 복사했다면 내 계획도 눈치챘을 터.
그러나 늦었다.
내가 ‘혼자 도전한다.’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의 결정적인 차이.
승패를 가르는 요소다.
“커억?!”
“어, 어째서 저희를?!”
“무슨 일- 꺅?!”
“...쿨럭!”
“이 무슨 배신...”
짝퉁이 자신의 동료 둘을 죽이는 사이, 한 박자 일찍 움직인 내가 넷을 죽였다.
도중에 짝퉁의 견제를 받아서 어깨를 다치긴 했지만, 이런 사소한 상처는 무시해도 될 수준.
더 많이 죽였다는 게 중요하다.
⤷루크: 무슨 일이지????
⤷바알: 멀쩡한 동료들을 뜬금없이 죽여버리네?
⤷제우스: 미친 건가?
⤷알라: 나는 생각을 그만두겠어.
관전하는 학생들이 혼란에 빠진 가운데, 나와 짝퉁은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팡, 뽕, 몰랑, 쿵, 떡-!
우리는 아주아주 긴 세월 동안 서로의 목숨과 척추를 노렸다.
그리고 대등한 줄 알았던 우리 사이에 미세한 격차가 생기고, 점점 그 격차가 벌어졌다.
이유는 하나.
우리는 완벽하게 똑같지 않다. 내가 짝퉁보다 2명 더 죽여서 2레벨이 더 높다.
서걱-
찍-
이 미세한 차이는 치료하지 않은 파상풍처럼 점점 커졌다.
생채기가 경상이 되고, 경상이 중상으로 바뀌고, 중상은 치명상이 됐다. 그리고 치명상은 아쉬운 죽음으로 이어졌다.
“쿨럭! 비, 비겁한...”
“그러게 말이다.”
척추가 박살 난 짝퉁이 분하다는 얼굴을 한 채 차가운 바닥에 마침내 쓰러졌다.
털썩!
얼마나 걸렸지?
모르겠다.
“학생 제군들. 잘 봤지? 동료 없이 80층을 도전하는 게 올바른 공략법이야. 그런데 반대로 하려니 어려울 수밖에.”
⤷오딘: 참 쉽죠? 미친!
⤷제우스: 용사 > 용사+α // 누가 좀 설명해줘라. 이게 대체 어느 세계의 수학법이냐?
⤷알라: 잘못된 공략을 뿌린 사탄은 해명하라!
⤷바알: 해명하라!
⤷M.사탄: 잘못된 정보로 물의를 일으켜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나는 짝퉁의 경험치를 먹고, 몰랑스타G는 가짜 몰랑스타G를 흡수해서 배로 강화됐다.
소득은 그것만이 아니다.
짝퉁이랑 싸우면서 내 부족한 점을 절실히 깨닫고 보완,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허공을 보며 말했다.
“짝퉁은 능력치부터 사고방식까지 완벽히 똑같아. 하지만 짝퉁은 80층에 진입한 순간의 자신을 복사한 거야. 그 뒤의 성장은 별개란 뜻이지. 나처럼 짝퉁보다 먼저 6명을 처치하기 힘든 학생은 동료들이랑 함께 입장해. 그리고 동료들을 죽이는 거야. 그러면 변수 없이 짝퉁보다 확실하게 강해질 수 있어. 참 쉽지?”
⤷이드: 너무 쉬워서 머리가 안 굴러갑니다, 교수님.
⤷지크: 인성 무엇?
⤷이시스: 10층도 힘든 지크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네.
⤷루크: 저는 복습해도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시바: 나중에 해봐야지.
나는 학생들에게 올바른 풀이법을 차근차근 설명해준 후, 계속해서 탑을 올랐다.
79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디스코가 뒤따라왔다.
굉장히 불편한 얼굴로.
“디스코. 불만 있으면 말을 해.”
“...당신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짓을 해주는군요. 어째서 운명을 거부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무력한 당신은 신성제국에서 손가락만 빨다가 포기했어야 했어요.”
“포기? 이 쉬운 모험을?”
“당신의 그 기준이 이상하다는 겁니다! 현재 판타지아 교육방식은 평범한 학생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흥분하지 마.”
“......”
“평범은 아니었어. 나는 전반적인 지식을 가지고 시작했으니까. 지식은 그 자체만으로 힘이야.”
“그렇다고 해도...”
“당신은 지금 해서는 안 되는 짓을 벌여줬어. 생방송이란 걸 잊은 거야? 어렵다, 못 한다, 힘들다. 너는 열심히 하는 학생들에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
입을 꾹 다문 디스코에게서 완전히 고개를 돌린 나는 89층까지 차분히 등반했다.
10층마다 등장하는 보스 구간이 가장 어렵지만, 그렇다고 나머지 층을 대충 만든 건 아니다.
학생들이 나를 ‘교사’로 착각 중이고, 디스코가 까발렸으니 조금은 설명해도 괜찮겠지.
“마왕의 탑은 판타지아를 모험하며 겪을 수 있는 다양한 환경과 상황을 재현해놨어.”
내 1회차 경험을 토대로 각층을 꾸몄다.
“나는 빠른 진행을 위해 무시하고 돌파 중이지만, 하나하나 그 의미를 생각하며 진행한다면, 몰랑교에 심취하지 않아도 무난하게 졸업할 수 있을 거야.”
⤷루나: 오늘의 채플 선생님은 너무 멋있으시네요.
⤷이시스: 동감. ^^
⤷사라: 보스만 신경 쓰는 공부는 나쁘다는 말씀이시군요.
⤷릴리스: 결혼하셨으려나?
마왕의 탑 90층.
여기가 실질적인 진짜 졸업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아래층까지는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가능하다. 하지만 90층만큼은 그렇지 않다.
나는 차분히 설명했다.
“90층은 꼼수가 통하지 않는 진검승부야. 아무것도 모른 채 고등교육과정에서 시작한 초심자가 200년쯤 노력해야 넘어설 수 있어. 이건 추측이 아니라 내 기준으로 하는 말이니 믿어도 좋아.”
90층 보스는 200년 경력의 ‘나’이기에 틀림없는 사실이다.
물론, 실제로는 200년도 안 걸릴 것이다. 당시의 나는 교육여건이 지금처럼 좋지 않았으니까.
귀여운 척하는 라누벨과 동료들의 방해를 받았었다. 급기야 파르마엘 교장의 노골적인 견제와 편파판정까지 받았다.
지금은 천국이지.
다른 용사들이랑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몰랑폰 커뮤니티.
귀여운 척하는 라누벨이랑 달리 개념이 박힌 길잡이 쑥떡.
각 대륙의 지배자들에게 용사의 모험에 적극적으로 협조해달라고 신신당부까지 해놨다.
너무 쉽잖아?
“자, 그러면 가볼까.”
도덕 아가씨! 도덕 아가씨! 몸도 마음도 예쁜 도덕 아가씨! 옛날처럼 응원해줘!
▷응원: 조심하세요. 결혼하고 은퇴하신 뒤부터 강한수 고문님의 움직임이 꽤 무뎌졌으니까요.
그럴 수가...!
마계에서 라누벨의 척추를 잡으며 보낸 시간이 내 감각을 무디게 바꿔놓은 듯했다.
돌아와서 충분히 재활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도덕 아가씨의 충고를 들으니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즉, 조심하지 않으면 죽겠군.
“...안녕?”
강한수랑 다르다.
변기에 차분히 앉아있는 눈앞의 강한수는 ‘마왕 파르마몬’이 되기 직전의 나.
시간상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지금의 나랑 매우 가깝다.
녀석이 눈을 떴다.
“이 위로 올라가고 싶으면 척추만 놓고 가. 참 쉽지?”
▶종족: 유나이티드 스피릿
▶레벨: 9999+
▶직업: 탈마(용사=마왕)
▶스킬: 영재ZZZ 신성Z 날조Z
편애MAX 불사MAX···
▶상태: 용린
짝퉁의 스킬 등급은 고등교육과정치고 높지 않았다.
차라리 G등급 스킬을 대수롭지 않게 보유한 친우 뇌비우스, 유부남 알렉스, 종결자 섹스피어, 거인왕 페닉스가 훨씬 위협적이다.
문제는, 그래도 나보다는 능력치가 높다는 것이다.
▷종족: 러블리 휴먼
▷레벨: 2950
▷직업: 사도(총애=능력)
▷스킬: 신앙GGG 요리ZZ 맷집Z
체력Z 날조Z
몰살MAX…
▷상태: 성검, 열애
녀석은 성실한 몰랑교도이기 때문에 ‘이교도’에게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신앙이 통하지 않는다.
그도 이미 내 능력치를 봤을 터.
놀랍다는 듯이 말한다.
“신앙이 GGG등급. 몸을 보니, 마스터 몰랑의 가르침을 제대로 흡수한 듯하군.”
“그런 셈이지.”
정의로운 용사의 미소로 칭찬하는 나를 보니 기분이 묘했다.
거울을 보는 것 같달까.
“...재미있네. 누가 마스터 몰랑의 수제자인지 겨뤄보자고.”
녀석이 변기에서 일어섰다.
여전히 정의로운 용사의 미소를 짓고 있지만, 심기가 대단히 불편하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마스터 몰랑의 수제자.
그 자리를 빼앗으려는 판타지 천둥벌거숭이(나)가 굉장히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아무리 ‘과거의 나’라도 이 자리는 양보할 수 없다.
“몰랑.”
나의 총애를 몸에 둘렀다.
녀석은 아직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와 뇌비우스의 용린이란 패를 꺼내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 몸은 1년 동안 급조한...
휘이익-
녀석이 대지를 박차더니 기습적으로 내게 주먹을 내질렀다.
노리는 부위는 예상대로 경추.
이 싸움은 내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녀석은 결국 ‘나’니까. 어떻게 싸울지 훤히 보인다.
반면에 녀석은 나를 모른다.
이 차이가 진짜와 짝퉁의 우열을 갈라놓을-
빠각!
“...크아악?!”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왜 처맞은 거지?!
▷걱정: 조심하세요. 생도였던 현역 시절의 강한수 고문님은 정말 굉장했으니까요.
내가 과거보다 약해졌다고...?
충격과 공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