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393화 (393/430)

 393화

[외전] 모험은 진리!

나는 어릴 적부터 모험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저녁에는 술집의 동그란 테이블에 앉아서 오늘 있었던 일들은 이야기한다...

그것이 내 꿈이었다.

“라누벨. 모험가라면 강한 몬스터를 사냥할 줄 알아야 해.”

“네가 귀여운 건 알지만, 사냥을 등한시하면 강해질 수 없어.”

“라누벨. 그만 떠돌아다니고 정착해서 우리랑 함께 몬스터를 사냥하는 게 어때?”

친구들은 매일 잔소리한다.

똑같이 ‘모험가’인데, 그들은 모험에 관심이 없다.

사냥, 사냥, 사냥, 사냥...

몬스터의 부산물과 현상금밖에 관심 없는 친구들은 모험하는 내가 잘못됐다고 말한다.

나를 무시하는 건 아니다.

내가 여행하며 그린 세계지도, 출판한 몬스터 도감 시리즈, 맛집 모음집, 던전에서 구한 고대유물...

모두가 애용해주니까.

“괜찮아요! 라누벨은 레벨이 낮아서 약하지만, 지금 하는 일에 보람을 느껴요!”

“그렇다면야...”

“쩝. 마음대로 해.”

“알겠어.”

나의 고집과 삶을 이해해준 친구들도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

1년, 10년, 100년, 500년...

하지만 그렇게 계속될 줄 알았던 나의 모험도 영원하지 않았다.

수명.

운명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부지런히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레벨을 올린 친구들은 여전히 20대 외모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콜록콜록! 하아... 라누벨은 이렇게 죽는 걸까요...”

팔팔했던 젊음도 한때였다.

세상을 돌아다니며 구한 진귀한 영약과 비술로 수명과 건강을 연장했지만, 인간이란 종족의 한계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육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혼.

누적된 지식과 경험이 포화상태에 이르러서 ‘그릇’이 풍선처럼 터지는 것이다.

환생, 윤회, 전생, 환골탈태...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해서 정해진 운명에서 도망쳐왔지만, 결국에는 따라잡히고 말았다.

아쉽다.

슬프다.

이 드넓은 우주에는 라누벨이 아직 가보지 못한 흥미진진한 세계가 너무나 많은데...

이젠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어머! 포기가 너무 빠른 것 아닌가요?”

“누구...?”

“모험가 라누벨. 우주의 관점에서 보자면 당신은 보잘것없는 먼지나 다름없지만, 이 은하계 한정이라면 상당한 유명인사예요.”

“그래서 누구시죠? 콜록콜록!”

사람을 식용유에 푹 담가서 100년쯤 퉁퉁 불리면 딱 저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요?

처음에는 인간형 몬스터인 줄 알았는데, 잘 보이지 않는 노안(老眼)으로 가만히 관찰해보니 인간 여성이 틀림없었다.

그녀가 말했다.

“제 이름은 파르마엘. 당신이 애타게 찾고 있던 신(神)입니다.”

“...갑작스럽네요.”

영약과 비술로 늘린 수명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은 뒤부터 전지전능한 신을 찾아다녔다.

신은 분명히 실존한다.

일평생을 모험에 바친 내가 수많은 행성의 유적과 신전을 돌아다닌 끝에 내린 결론.

그러나 흔적은 발견했어도 직접 만나진 못했다. 사기꾼에게 속아서 소중한 시간을 수십 년씩 낭비하기도 했었다.

“믿어주는 건가요?”

“네. 아무도 살지 않는 오지에서 임종을 준비하는 라누벨을 애써 찾아올 사기꾼은 없을 테니까요.”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아닌가요? 당신의 지혜를 노릴 수도 있잖아요?”

“그것도 옛말이에요. 콜록콜록!”

나는 재산을 쌓지 않았다.

수중에 돈이 생기면 모험에 전부 투자하고, 재산을 물려줄 가족도 일절 만들지 않았다.

내 지식이 무기였던 때도 분명히 있었지만, 그릇의 포화로 육체의 나이랑 관계없이 치매 비슷한 증상이 오면서 힘들어졌다.

지금의 나는 퇴물.

죽음이란 운명에 좌절한 한 명의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모험가 라누벨. 당신에게 새로운 생명을 준다면, 당신은 저에게 무엇을 줄 수 있나요?”

“라누벨에게 자유로운 모험만 보장해준다면 무엇이든지...!”

“호호! 그 약속, 잊지 마세요.”

【백광】

최초의 천사 파르마엘.

몬스터처럼 생긴 그녀는 시간을 조작한다는, 터무니없는 권능을 행사하는 진짜 신(神)이었다.

파르마엘은 그 힘으로 나를 건강했던 시절로 되돌려줬다.

또한, 자신의 사도로 임명하여 ‘그릇’을 대폭 확장해줬다.

나는 부활했다.

“파르마엘 여신님!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라누벨이 무엇을 하면 될까요?”

“라누벨. 지금처럼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우수한 모험가를 저에게 소개해주면 됩니다.”

“모험가를...?”

“저는 강력한 모험가들을 모집하고 있어요. 모든 신에게 사랑받는 순진한 어떤 여신을 끌어내리려면 힘이 필요하거든요.”

순진한 어떤 여신.

우주 곳곳에 흩어져 있는 신화에 따르면, 하렘을 용납하지 않는 불패의 여신이라고 한다.

그녀가 베개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하렘을 추구하는 신들이 무더기로 소멸한다고...

너무 터무니없어서 이 여신의 존재만은 믿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실존하는 모양이다.

아차! 대화 중이었지.

“파르마엘 여신님. 모험가는 용병이 아니에요.”

“이상한 견해로군요. 모험가는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돈을 버는 자들입니다. 상단이나 인물의 호위 같은 의뢰도 받지만, 대다수 모험가는 사냥꾼처럼 몬스터 사냥을 생업으로 삼지요. 아닌가요?”

“그건...”

“다시 묻겠습니다, 라누벨. 저를 위해 유능한 모험가들을 소개해줄 수 있나요? 힘들다면 지금이라도 힘을 거두겠습니다.”

“...할게요.”

나도 안다. 내 철학과 신념을 남에게 강요할 수 없다.

그리고 파르마엘 여신님의 말씀은 틀리지 않았다.

모험가들은 ‘몬스터 사냥꾼’처럼 행동하고 있으니까.

사냥한 몬스터의 뼈와 살을 분리해서 팔고, 그것을 가공한 장비로 무장해서 더욱 강한 몬스터를 사냥할 생각으로 가득하다.

모험은 안중에 없다.

아니, 그들에게 모험이란?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는 강한 몬스터에게 도전하는 것이다.

나는 친구들을 포함해서 그런 ‘몬스터 사냥꾼’들을 아주 많이 알고 있다.

“계약 성립이군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모험가 라누벨.”

“네, 여신님.”

그것은 살이 뒤룩뒤룩 찐 흉측한 악신을 돕는 계약이었다.

*

나는 파르마엘 여신님의 요구대로 수많은 모험가를 소개해줬다.

그녀는 내게 제안했듯이 신격 ‘백광’으로 그들에게 ‘영생’이란 미끼를 던져서 이주를 유도했다.

행성 페스티벌.

파르마엘 여신님이 모험가들을 양성하는 장소로, 행성 전체가 하나의 훈련장이다.

강력한 몬스터가 아주 많이 살아서 모험가들의 훈련장소로 안성맞춤인 행성이다.

하지만 파르마엘 여신이 이곳의 주인인 건 아니다.

“Daaaar...!”

어둠의 거룡 뇌비우스.

시간을 조종하는 파르마엘 여신님조차 손쓸 도리가 없는, 페스티벌 행성의 포식자다.

“저는 상대의 시간을 가속해서 수명을 소진하는 전략을 씁니다. 하지만 뇌비우스는 나이가 들수록 강해지는 탓에 시간을 되돌려서 약화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모험가와 천사들이 죽었죠.”

“그렇군요.”

나는 파르마엘 여신님의 얘기를 적당히 흘려들었다.

할 말이야 뻔했다.

“충분히 어려진 뇌비우스를 죽이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용을 생포해서 길들이고 싶습니다. 그러니 라누벨. 뛰어난 몬스터 사육사를 소개해주세요.”

“네. 여신님.”

나는 자유롭게 모험하는 걸까?

파르마엘 여신님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언제든 수명이 다하는 보잘것없는 생명이었다.

결국, 뇌비우스는 생포됐다.

내가 여신님께 소개해준 모험가들이 힘을 합쳐서 그 칠흑색 용을 쓰러트리고, 내가 소개해준 사육사가 길들이기 시작했다.

...이게 과연 모험일까?

나는 이대로 손을 놓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좋아하는 여행을 그만두고 행성 페스티벌에 정착했다. 그리고 모험가들에게 말했다.

“모험의 재미를 알려드릴게요!”

강요하지 않는다.

모험가들에게 몬스터 사냥보다 즐겁고 보람된 모험이 있다는 것을 옆에서 알려주자.

그러기로 마음먹었다.

“라누벨. 던전에 뭐가 있는데?”

“값비싼 보물과 고대의 신비가 숨겨져 있어요!”

“라누벨. 야영을 왜 하는 거야?”

“대자연의 위대함을 몸소 느낄 수 있어요!”

“라누벨. 그러면 이건...”

“그건...”

시간이 흘렀다.

내 노력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모험가들은 진정한 모험의 재미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변했다.

사랑하는 모험가가 생기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응애! 응애!”

“아...”

나는 어리석었다.

새로운 모험을 위해 쭉 여행해왔지만, 정착해서 아이를 키우는 일도 모험이었다.

이 아이가 커서 어떻게 될까?

그것은 미지의 모험이었다. 여행만이 모험이 아니었다.

【모험】

그렇게 나는 변화했다.

익숙한 모험을 벗어난 내게 신격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신(神)이 되었다.

“라누벨, 너...!”

“파르마엘. 라누벨의 생명을 구해준 건 고맙게 생각해요. 하지만 더는 당신의 야망을 위해 모험가들을 희생시키진 않을 거예요!”

“...좋아요.”

“이해해주시는 건가요?”

“네. 그래요. 모험가는 모험을 떠나야죠. 당신의 말이 맞아요.”

“감사합니다!”

“그런 당신에게 새로운 모험을 제안하고 싶은데요.”

“좋아요!”

“행성 판타지아. 이곳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입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던전이 무척 많은 곳이죠.”

“아!”

어엿한 신(神)이 된 나는 모험가들을 이끌고 행성 판타지아로 모험을 떠났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

던전을 훼손하면 안 된다고 가로막은 정령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내가 죽인 건 아니지만, 정령에게 설득될 뻔한 모험가들을 부추겼으니 내 소행이 맞다.

분노했으니까.

던전에는 주인이 없다.

그런데 이 정령은 모험가와 모험을 모욕하고, 탐욕스러운 악(惡)으로 규정했다.

그래서 죽였다.

“모험의 신 라누벨. 아내를 잃고 분노한 마왕 페도나르가 모험가들을 몰살시킨다고 선언했어요.”

“그렇군요.”

후회하지 않는다.

그 정령은 모험과 모험가들을 모욕한 대가를 치른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죠?”

“모험가들의 힘을 합쳐서 마왕을 물리치면 돼요!”

“맞아요. 모험가들의 권리를 지켜야죠. 제가 도와줄게요.”

“감사합니다!”

너무나 어리석었다.

이때부터 나는 모험가들을 ‘몬스터 사냥꾼’으로 육성하는 파르마엘을 도왔다.

몬스터가 마왕으로 바뀌었을 뿐인데, 진실을 외면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모든 걸 잃었다.

“정말 고마워요, 라누벨. 당신 덕분에 저는 판타지아 교육장을 설립할 수 있었어요. 당신의 업적을 기리는 나라를 이곳에 세우고, 모든 천사가 당신을 존경하도록 명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지향하는 용사를 이곳에서 직접 육성할 수 있도록 지원해줄게요.”

판타지아 교육장.

마왕 페도나르와 여신 파르마엘의 신격을 합쳐서 구현해낸 용사 육성 시스템이다.

이때까지도 나는 몰랐다.

모험가들이 언제부턴가 ‘용사 후보’로 불리게 됐음에도 이상하다는 자각이 없었다.

“정말 고마워요, 파르마엘!”

나는 진짜 바보다.

*

스스로 판타지아 교육장에 귀속된 나는 아무런 의심 없이 파르마엘의 용사 육성을 도왔다.

영겁의 시간이 흘렀다.

오늘도 나는 다른 차원에서 용사 후보를 소환했다.

【모험】

그리고 인사했다.

“환영합니다, 용사님!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소환돼서 많이 혼란스러우...”

“으아아아아~?!”

“지, 진정하세요! 이곳은 판타지아. 용사님이 태어나고 자란 세계랑 다른 차원...”

“뭐야?! 꿈?! 납치?! 몰카?! 설마, 저승?!”

“...당장 이해를 바라는 건 무리겠죠. 지금부터 차근차근 설명해드릴... 제발 전정하세요!”

“꿈, 꿈, 꿈, 꿈, 꿈...”

“꿈이 아니에요!”

진짜 한심한 용사 후보가 내 신격에 걸려서 소환됐다.

공황에 빠진 첫인상은 너무나 실망스럽지만, 이 소년에게 ‘재능’이 없다면 소환되지 않았겠죠.

“......”

“용사님. 조금 진정이 되셨나요?”

“전혀.”

“그, 그러시군요. 제 이름은 라누벨. 고대의 전설을 쫓는 여행 중, 신탁을 받고 용사님을 소환한 고고학자입니다. 라누벨은 고대언어로 ‘진리’란 뜻이에요. 용사님의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강한수.”

“후후! 강한수 용사님!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당시에는 몰랐답니다.

그 한심한 용사가 모든 걸 집어삼키는 마왕이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쏘시아. 무릎 꿇고 손들어.”

“엄마. 아들 앞에서 그건 좀...”

“남편을 아빠라고 부르고 싶다면 하지 마렴.”

“그러지 마!”

“씨드. 바보 엄마는 놔두고 이 할머니랑 놀자꾸나.”

“쪽쪽? 꺄르르♪”

“내 손자는 사위를 닮아서 정말 귀엽네. 쏘시아를 닮지 않아서 다행이야.”

“엄마. 이만 용서해주세요.”

“손이나 들어.”

“네...”

오늘도 이 모녀(母女)는 시끌벅적합니다. 용사님의 아들도 변함없이 귀엽습니다.

벌을 받는 지금이 행복합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죠?

“라누벨.”

“네! 판타지아 님!”

“무슨 생각 중인가요?”

“씨드엘 님이 정말 귀엽다고 생각하는 중이었어요.”

“당연하죠! 사랑하는 사위를 쏙 빼닮았으니까요!”

“장래가 정말 기대되네요.”

“쪽쪽?”

이 아이가 커서 최고의 모험가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라누벨의 새로운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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