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398화 (398/430)

 388화

[29회차] 우정의 이름으로!

『어떤 신이 팝콘을 먹습니다』

『어떤 미신이 나도 달라고 보챕니다』

『느긋한 어떤 천신이 두리번거리며 명당을 찾습니다』

『어떤 신이 돗자리를 폅니다』

아니, 이것들이...?

나는 척추도 아프고 힘들어 죽겠는데, 어떤 신들은 팝콘 먹으며 구경하고 있었다.

당장 쫓아내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현재 내 상황이 썩 좋지 못했다.

“진짜 많네.”

정의로운 GGG급 용사님의 상상력이 이렇게 빈약했었나?

고작 수천쯤 예상했던 내 안일한 태도가 부끄러웠다.

허! 이게 우주 스케일인가...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을 무시하고 판타지아 행성부터 점령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전투의 결과와 상관없이 당신 가족의 안전을 보장합니다.”

“꽤 신사적이네.”

“이상한 말을 하는군요. 몰랑함대와 몰랑소프트는 당신처럼 사악하지 않습니다.”

“하아?”

이건 무슨 상큼한 개소리지?

이 우주에서 나만큼 정의로운 신이 어디 있다고.

“수긍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당신은 파르마엘 교장을 살해하고, 판타지아 교육장을 강탈했으며, 기존의 계약을 무책임하게 파기했습니다.”

“...그렇군.”

나는 몰랑로이드의 설명을 듣자마자 이해했다.

내 1회차 때도 그랬으니까.

입장과 관점에 따라서 ‘정의’는 얼마든지 뒤집혔다.

용사 파티가 합류한 혁명군이 누구에게는 영웅이지만, 또 누구에게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민폐 덩어리였다.

나는 어떤가?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내 자유를 위해 파르마엘를 처리했을 뿐이고, 판타지아 교육장은 내 희생을 기본전제로 한다.

나도 ‘정의’가 있다.

“당신의 사고방식은 이기적이었던 고대의 신이랑 똑같습니다. 자연생성 외에는 구할 수 없는 환상의 금속 로맨티넘은 우주의 평화에 꼭 필요합니다.”

“우주의 평화? 어이, 우주의 용사. 촌놈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거 아니야?”

“유감이군요.”

“싹 꺼져.”

찰칵!

몰랑로이드의 숫자가 징그럽게 많긴 하지만, 신격의 총량은 나도 무한대나 다름없다.

【명암】

지금부터는 나의 시간.

내 시야에 닿는 몰랑로이드 군단의 전열이 1초 만에 말끔히 삭제됐다.

“...저항감이 있네.”

내 새로운 신격을 벌써 분석해서 기체에 적용하는 모양이다.

저 안드로이드, 범용성과 유연성이 너무 뛰어난 거 아니야?

상대에 맞춰서 프로그램을 최적화하고, 몸체도 옷을 갈아입듯 바로 튜닝해버린다.

“당신은 오만합니다.”

“당신께 항복 권고합니다.”

“당신의 승률 0%입니다.”

“당신은 촌놈입니다.”

몰랑로이드 군단은 단 1초 만에 수십만이 파괴됐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돌격해왔다.

찰칵.

그리고 내 기분 탓이 아니다.

신격 ‘명암’에 삭제되는 몰랑로이드의 숫자가 점점 줄어든다.

싸우면 싸울수록 누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량되어 저항이 올라간다는 방증.

“하핫! 재미있구먼!”

하지만 패배나 고전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다.

분석은 저 녀석만 하고 있던 게 아니니까.

그리고 이 분석결과를 활용할 수 있을 만큼 내 신격은 범용성과 유연성이 우수하다.

【명암】

삭제가 안 된다면 다른 속성이나 수단을 쓰면 그만.

화르륵~!

수백만의 몰랑로이드를 희생해서 내게 닿은 녀석에게 태양M의 향연을 선물해줬다.

칙, 치익, 칙...

나를 난도질하려고 벼르던 몰랑로이드들이 중력과 초고열에 덧없이 파괴됐다.

“자! 이제 어쩔 셈...”

나는 우쭐대던 대사를 멈추고 몰랑스타를 무더기로 소환했다.

공격용이 아니다.

“준비된 사수부터 사격을 개시합니다.”

방어용이다.

팡, 팡, 팡, 팡, 팡, 팡...!

내가 파괴한 만큼 보급된 몰랑로이드들의 무기는 쌍검에서 라이플로 변경됐다.

판타지에 총이라니!

정말 예의를 모르는 놈들이다.

몰랑로이드의 만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신고. 174사단 보병연대 근면한 몰랑이 일병 참전합니다.”

“신고. 173사단 포병연대 성실한 몰랑이 이병 참전합니다.”

“신고. 173사단 방공중대 유쾌한 몰랑이 일병 참전합니다.”

“신고. 172사단 공병부대 꼼꼼한 몰랑이 이병 참전합니다.”

“신고. 173사단 방패대대 듬직한 몰랑이 상병 참전합니다.”

......

병과를 조합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현대전쟁.

여기에 맞춰서 나도 다양한 전략을 구사해서 대항했다.

블랙홀M, 태양M, 삭제, 몰랑스타, 시간, 공간, 빙하, 해일, 암흑물질, 파동, 만년설...

이밖에도 몰랑로이드를 복사해서 내가 활용하는 수법도 시도해봤지만, 고도의 프로그램 방화벽에 막혀서 실패했다.

쉽게는 안 된다는 건가?

대신, 머리 없는 몰랑로이드 시체를 대량생성해서 방패 대용으로 활용했다.

“흐음...”

이대로는 좀 힘들겠는데?

당장 밀리진 않지만, 전술이 유동적으로 바뀌는 몰랑로이드 군단에 비하면 단조로웠다.

나 혼자서 전부 생각하니까.

양아치처럼 슈퍼컴퓨터가 보조하는 저들이랑 다르다.

...어쩔 수 없지.

【명암】

생명체만은 복사하고 싶지 않았는데, 첨단과학의 힘이 너무 사기라서 봉인을 풀었다.

뿅!

▷종족: 카오스 드래곤 포에버

▷레벨: 99999

▷직업: 거신(체급=신앙↑)

▷스킬: 용린GGG 맷집GGG 대형GGG

역린GGG 내성GGG 혼돈GGG

신성GGG 마기GGG 면역GGG

재생GGG 몰살GGG 괴력GGG

비행GGG 시력GGG 진화GGG

영재GGG 가속GGG 감속GGG

암흑GGG 백광GGG...

▷상태: 결속, 공유, 가호

나의 절친 뇌비우스!

이 칠흑색 용은 판타지아와 페스티벌 차원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생명체다.

내 임의로 그의 능력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까지 주고, 노안(老眼)이 유일한 약점이었던 황혼기 육체로 설정했다.

기억은 전부 복원했다.

최초의 천사 파르마엘에게 생포되어 사육되고, 미녀 사냥꾼 가출선배에게 에르단티를 빼앗기고, 내 도움으로 2000년 동안 행복한 단잠에 빠진 최근까지 싹!

이제, 최종판단은 절친 뇌비우스의 몫이다.

“...Chaooo.”

그는 가늘게 뜬 칠흑색 실눈으로 엉망진창인 전장을 쓱 훑어보고는 바로 답했다.

협력하겠다고.

“고맙다! 나의 전우여!”

2회차 때부터 함께 싸워온 우리의 아름다운 우정을 보여주자!

동의를 받았으니 사양하지 않고 마음껏 이용해주겠다.

【명암】

눈 깜짝할 사이에 20만 뇌비우스 군단 완성!

“Chaooooo!”

“Chaooooooo!”

“Chaoooooo-!”

“우정의 이름으로-!”

우리의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구!

*

어째서 뇌비우스인가?

내가 신뢰하는 유일한 전우이기도 하지만, 가성비란 측면도 크게 작용했다.

능력치는 덧셈이 아니니까.

근육질 남성과 늘씬한 여성이 팔씨름한다고 가정해보자.

둘의 레벨과 스킬은 같으며, 괴력ZZZ을 보유하고 있다.

게임캐릭터처럼 덧셈이라면?

남성: 3+200000=200003

여성: 2+200000=200002

티도 안 난다.

만약에 둘이 싸운다면, 불필요한 근육이 없는 여성이 유연성 덕분에 훨씬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곱셈이다.

남성: 3*200000=60000

여성: 2*200000=40000

이 공식은 성별뿐만 아니라 종족, 체급, 체형, 지능, 척추, 골반 등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즉, 내가 부여한 능력치의 효율을 극대화하려면 이 개체값이 태생적으로 높아야 한다.

“Choooo!”

“방어선이 무너집니다. 지원-”

“Chooooo...!”

“전술을 즉시 변경합니다.”

“Choooo~?!”

파괴와 죽음의 향연.

몰랑로이드는 슈퍼컴퓨터로 적의 사고와 특성을 분석하며 효율적으로 싸운다.

그리고 이에 맞서는 절친 뇌비우스는 빠르게 진화하는 방식으로 맞불을 놓았다.

“나의 친구여! 덕분에 살았어!”

“에르단티를 부탁한다.”

“약속하지.”

나는 이 전장에서 유일하게 인간형 모습을 한 뇌비우스의 요구에 진지하게 답했다.

이 개체는 300만 뇌비우스 군단의 작전참모.

그의 능력치 조언 덕분에 20만에서 300만, 15배나 불어났다!

▷종족: 카오스 드래곤

▷레벨: 3000

▷직업: 전사(전쟁→체력↑)

▷스킬: 용린GGG 대형GGG

역린GGG 몰살GGG

진화GGG

▷상태: 공유, 공명, 공존

불필요하거나 비효율적인 능력치를 빼는 식의 다이어트.

그 여력만큼 더욱 많은 뇌비우스를 소환할 수 있었기에 절대 손해가 아니었다.

물론,

“Choooo~?!”

“Chooo~?!”

이기고 있다는 건 아니다.

퍼엉! 펑! 펑!

언제부턴가 판타지아 차원의 벽 너머에서 쏘아지는 폭격은 마땅한 대책이 없었으니까.

신격 ‘명암’의 유일한 흠.

내 영역인 판타지아와 페스티벌 차원 안에서만 전능하다.

저거 어떻게 못 하나?

“작은 친구여. 영원히 싸울 수는 없다. 저 폭격이 한 발이라도 빗나가서 행성에 떨어지면 대참사가 벌어진다는 걸 명심해라.”

“그건 그렇지.”

뇌비우스를 일격에 수천 마리씩 죽이는 폭격이다.

판타지아의 평범한 원주민은 영혼째 소멸해버리리라.

그나저나...

『어떤 사신이 휴전을 원합니다』

『어떤 사신이 백기를 흔듭니다』

『어떤 사신이 휴전을 외칩니다』

『어떤 사신이 후퇴를 청합니다』

디스코. 안 죽었네?

나와 몰랑로이드의 전투에 휘말려서 소멸했을 줄 알았는데, 용케도 살아있었다.

몰랑소프트의 요구는 뻔하다.

로맨티넘(Romantinum).

내가 200년 넘게 판타지아 행성을 돌아다니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환상의 금속...

“...잠깐.”

나는 저 몰랑한 금속을 만져봤었다. 그것도 여러 번.

“작은 친우여. 중요한 무언가가 떠올랐는가?”

“그래. 뇌비우스, 무리한 부탁 좀 할게.”

“일단 말해봐라.”

“판타지아 행성에 급히 다녀와야겠어. 그동안 저격과 포격으로부터 내 본체를 사수해줘.”

“정말 무리로군. 저격은 가능해도 포격은 어렵다.”

“흐음...”

하지만 늦기 전에 꼭 가서 확인해봐야 한다.

어쩌면 좋지?

“차라리 휴전을 원하는 저들의 장단에 어울리면서 시간을 벌어보는 게 어떤가.”

“아! 그거 괜찮네.”

나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마계】

마계로 피신시킨 비겁한 마누라를 소환했다.

뿅!

“잘생긴 남편님! 무사해?!”

“어. 저쪽에서 슬슬 휴전협상을 원하는 눈치인데, 나는 말을 섞기 싫거든? 그러니 대신해줘. 단, 결론은 절대 내지 말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시간만 끌어.”

“...응? 시간?”

“그래, 시간. 부탁한다.”

“어? 어엇?!”

나는 쏘시아의 대답도 듣지 않고 곧바로 정신을 옮겼다.

신격은 금지.

몰랑로이드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판타지아 세계에 이미 있는 더미를 활용해야 한다.

...딱 하나 있군.

“하응...!”

“헉! 헉! 헉!”

“사랑해요! 하으읏?!”

“나도 사랑해!”

외부와 완벽히 차단되어 방음이 완벽한 마왕의 탑 50층.

벌거벗은 남녀가 치열한 공성전 중이었다.

...살짝 열 받네.

나는 판타지아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는데, 이 분신은 부러운 짓이나 하고 있었다.

강한수.

Made in Earth.

젊은 시절의 나와 잽싸게 동기화를 진행했다.

“...카이사.”

“네? 말씀하세요.”

“카이사.”

“네, 카이사예요. 강한수, 당신만의 여자.”

“정말 고마워.”

“으음? 신혼여행지로 마왕의 탑은 살짝 섭섭했지만, 그래도 당신과 함께할 수 있어서 만족해요. 그러니 고마워하실- 아읏?!”

“쓰읍!”

판타지아 세계의 자유와 평화는 내일부터 다시 지키자!

오늘 용사님은 자체휴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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