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3화
[30회차] 존잘 사위
장모님께 다짜고짜 잘생겼다는 소리를 들으면, 아무리 겸손한 G급 용사님이라도 어깨가 으쓱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요, 언니? 저건 잘생긴 게 아니라 무서운 거예요.”
“얼굴을 보자마자 심장이 막 두근두근 뛰는데?”
“무서워서 그래요.”
빨래판 교사가 뚜렷한 근거도 없이 G급 총장님의 외모를 비하하기 시작했다.
너는 나중에 해고다.
“이 존잘남이 내 사위라... 흠흠. 사위시라고요?”
까칠했던 장모님의 목소리가 사근사근하게 바뀌었다.
나는 외모보다는 정의로운 용사로서 인정받고 싶지만, 장모님들의 눈이 뒤집힐 만큼 잘생기게 태어났는데 어쩌겠는가?
운명이려니 받아들여야지.
“그렇습니다, 장모님.”
“어머. 싫어라. 딱딱하게 장모님이 뭔가요? 요정은 말이죠. 1000살만 넘어가면 부모·형제 사이도 전부 친구랍니다. 에실리스라고 친근하게 불러주세요.”
“......”
나도 내가 잘생긴 건 예전부터 쭉 알았지만, 이런 적극적인 태도는 비겁한 마누라의 모친, 판타지아 장모님 이후로 두 번째다.
수명이 바보가 돼서 가끔 잊고 말지만, 눈앞의 20대 외모 요정은 1만 년 넘게 살아온, 살아있는 화석이다.
나는 장모님들이 좋아하는 얼굴일까?
아니면 ‘딸에게 과분한 사위’라서 좋게 보이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장모님 옆에서 오들오들 떨며 나를 바라보는 요정 때문이다.
요정왕의 두 번째 아내 실...
일일이 생각하기 귀찮네.
“반갑습니다. 좀 더 일찍 뵈었어야 했는데, 따님이 제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도 아주 최근에 접하는 바람에 늦고 말았습니다.”
“그렇군요. 그 계집애는 어디서 이런 존잘남을 낚... 호호! 주책이네요. 사위를 보면서 참 잘생겼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서 자꾸 말이 헛나오니 이해해주세요. 아! 그렇게 서서 얘기하지 말고 소파에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이야기는 술렁술렁 잘 풀렸다.
이 세상은 상대평가!
딸을 주기 아까우면 막 뭐라고 할 예정이었던 장모B는, 장모A처럼 관대해졌다.
두 장모의 차이는?
“엘브하임 칸 라누베르크. 그분은 나의 빛, 나의 주인, 나의 스승, 나의 선배, 나의 사랑, 나의 남자, 나의 남편. 사위님이 본 엘브하임 님은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던가요? 지금도 2층 창틀에 멋지게 앉아서 지나가는 인간 여자들의 가슴골을 힐끔힐끔 훔쳐보시나요?”
“흠. 요즘은 안 그러는 것 같습니다.”
“헛! 최근에 죽은 가짜처럼 편찮으신 건가요?!”
“그, 그건 아닙니다.”
장모A는 남편 페도나르를 완전히 잊고 사위를 노리지만, 장모B는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고 그리워했다.
그렇다면 이 끈적끈적한 시선의 정체는 대체 뭘까?
마치, 거미줄에 낚인 몰랑한 슬라임이 된 기분이다.
장모B가 말했다.
“과연. 엘브하임 님이 살아계신다는 실레시아의 주장은 정말이었군요.”
“......”
“아아, 미안해요. 원하는 정보를 얻으려고 대답을 유도한 건 맞지만, 사위의 평가는 진짜입니다. 아아, 정말 듬직한 가슴이네요.”
“...감사합니다.”
갑자기 내 옆에 바짝 붙어서 앉으신 장모B가 사위의 넓고 튼튼한 가슴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좀, 혼란스러운걸.
“어머! 오해하지 마세요. 제 몸과 마음은 전부 엘브하임 님의 소유니까요. 이건 딸에게 어울리는 남자인지 건강 등을 살짝 확인하는 것뿐이에요.”
“아, 네.”
장모들에게 연이어 성희롱당해서 이젠 그러려니 하는 중이다.
그때, 해고할 예정인 교사A가 참견해왔다.
“이해해주세요. 이미 아실지도 모르지만, 언니는 엘브하임 님이 고통받는 동족들을 구원하기 위해 풍요로운 인간사회를 떠나기 직전에 노예시장에서 거둔 제자였습니다. 그래서 동족보다 인간의 사고방식에 가까우십니다.”
“네가 생각하는 인간은 뭔데?”
“왕성한 번식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종족입니다. 그래도 놀랐습니다. 본능에 솔직한 엘브하임 님과 달리, 언니는 겉으로 잘 표현하지 않으시거든요.”
아주 잘 표현하고 있는데?
이 문밖에서 카이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장모님. 거기서 손이 더 내려가시면 살짝 곤란한데요.”
몰랑한 내 정의감이 우뚝 치솟을지도 모른다.
“어머! 처음 생긴 사위가 신기해서 저도 모르게 그만.”
“......”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이어서 하고 싶은데요. 폐하께서 편찮으신가요? 가슴에서 눈을 떼지 않으시던 분인데.”
“호수가 보이는 전망 좋은 자리에 놓은 소파에 앉아서, 손녀들이랑 놀아주기 바쁘십니다.”
“아...!”
깊은 탄식을 터트린 장모B는 위험한 손놀림을 뚝 멈추고는 처연한 얼굴로 말했다.
“제 딸이 낳은 쌍둥이 손녀를 무릎 위나 옆구리에 앉히고 헤벌쭉 웃는 모습이 상상되네요.”
“안 봐도 아시네요.”
“당연하죠. 지금은 폐하와 멀리 떨어지고 말았지만, 그 시간은 기나긴 제 삶 속에서 찰나에 지나지 않는걸요.”
“그런 것치고는...”
버그도 못 알아봤습니다만?
이 타이밍에 그 말을 하면, 분위기 파악 못 한다고 한 소리 듣게 되겠지.
“버그 말인가요?”
“흠흠!”
“진짜 그분은 살아있는 동생들에게 양보하고, 가짜인 저는 가짜로 만족한 것뿐입니다. 죽은 자가 산 자의 앞길을 방해하고 싶진 않았으니까요.”
“...저기, 장모님?”
“연민할 필요는 없어요.”
“그게 아니라, 손은 언제 뺄 거냐고 묻고 싶은데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으십니다.”
“후후후! 대단하죠? 인간의 우월한 젖가슴에 대항하기 위해 저는 기술을 연마했답니다.”
“그걸 사위에게 쓰는 건 좀...”
“고마운 줄 아세요. 사위가 존잘남이라서 해주는 겁니다. 비실비실한 허수아비였으면 벌써 쓰레기통에 넣었어요.”
『너무 순진한 어떤 여신이 얼굴을 붉힙니다』
『너무 순진한 어떤 여신이 손바닥으로 눈을 가립니다』
『너무 순진한 어떤 여신이 손바닥 사이를 벌립니다』
...이 여신은 뭘 하는 거야?
메시지로 내 시야를 더 도배하기 전에 작금의 사태를 완만하게 넘길 필요가 있었다.
“가짜라...”
“진짜 저는 먼 과거에 죽었습니다. 옆의 동생이 일으킨 반란에 휩쓸려서 어이없게. 지금의 저는 세계의 의지가 짜깁기한 기억의 잔해죠.”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장모B랑 비슷한 사고방식은 처음 보는 게 아니었다.
가짜다. 그러니 괜찮다.
최초의 천사 파르마엘에게 흡수될 위기에 처한 더미, 히프리아가 딱 그러한 마인드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장모님께 제가 아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여자인가요?”
“어... 네.”
“아내인가요?”
“아니요. 노예입니다.”
“어머? 설마, 용사씩이나 되는 분이 이 업계에서 아내와 노예는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란것도 모르시나요? 저도 엘브하임 님의 노예부터 시작했는걸요. 주종관계는 부부보다 사이를 돈독하게 해주는 마법의 관계죠.”
“그... 얘기해도 되겠습니까?”
“장모님 앞에서 딸 외의 여자 얘기를 하는 게 옳은지는 두고 볼 문제지만, 저는 가짜니 그 정도는 용인해드릴게요.”
“......”
이 장모님, 내 상상 이상의 여걸이네.
자신을 직간접적으로 죽인 거나 다름없는 여자랑 평화롭게 대화할 때부터 느꼈던 거지만, 엘브하임 못지않은 정신의 소유자다.
그의 제자 겸 아내란 소개는 빈말이 아닌 듯하다.
“존잘 사위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나요? 참고로, 딸아이라면 이미 허락했습니다. 당신의 몸. 얼굴만 잘생긴 빈껍데기는 절대 흉내 낼 수 없으니까요.”
“성희롱으로 그런 것도 알 수 있습니까?”
“당연하죠. 성희롱이라고 생각했다니, 정말 너무하네요. 잘생기면 다인가요?”
“어흠.”
장모님. 귀여운 황제였던 제가 잘생긴 건 알고 있지만, 자꾸 잘생겼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내 겸손한 생활 태도에 너무 심한 자극이다.
장모B가 웃었다.
“무슨 생각 중인지 훤히 보이는군요. 장모가 성희롱을 합리화한다고 욕하지 않았나요?”
“그보다는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가 더 궁금합니다.”
“잘난 사내들의 겉모습은 거기서 거기죠. 여자의 가슴처럼 유전적인 체형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군살 없는 몸매란 점에선 별 차이가 없어요.”
“맞습니다.”
내 몸은 다른 용사들이랑 크게 다르지 않다.
몰랑한 근육세포의 구조로 들어가면 확연하게 차이나지만, 장모B의 뉘앙스는 육체의 강함을 논하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뭘까?
“제 손의 자극에 대한 사위의 반응을 살펴봤습니다.”
“...조건반사 같은 겁니까?”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니 조금만 설명하죠. 지금의 판타지아 세계는 능력치를 아주 당연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제가 태어나서 어른이 될 때까지만 해도 능력치는 여신에게 선택받은 모험가들의 전유물이었죠.”
“과연...”
장모B의 젊은 외모에 자꾸 깜빡하는데, 살아있는 화석이다.
판타지 원주민들은 태어날 때부터 능력치를 받기에 아무도 그것에 의문을 품지 않지만, 그녀는 ‘원래는 없었다.’라는 사실을 알기에 관점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어쨌는데?
“언제부턴가 이 세계는 레벨이 높은 자들을 높게 평가하는 세상이 돼버렸습니다. 그래서 방법을 찾던 중에 발견한 것이...”
“성희롱?”
“아니라니까요! 보통은 손만 잡아봅니다. 굳은살도 도움이 안 돼요. 능력치가 높아지면 그것도 사라지니까요. 하지만 능력치로도 감추지 못하는 게 있습니다.”
“습관.”
“네, 맞아요. 습관은 그 사람의 삶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저는 악수로 상대의 반응을 보고 인물을 판단합니다.”
“장모님. 이유가 뭐든 간에 사위의 11번째 손가락이랑 악수하시는 건 곤란한데요.”
“살아생전에 낳은 유일한 자식의 남편을 살피는 거니까요. 어찌 허투로 할 수 있나요? 악수만으로는 정보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다소 적극적으로 살피는... 아아, 만질 때마다 움찔거리는 사위의 탄탄한 가슴은 묘한 중독성이 있네요. 역시, 존잘...”
“크흠!”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상대는 10000년도 더 된 LCD 모니터고, 나는 아직 파릇파릇한 200살짜리 존잘남이다.
나이를 상대평가로 본다면, 나는 고도의 지능적인 아동성범죄에 노출된 게 아닐까?
이러려고 방문한 게 아닌데, 갑자기 머리가 혼란스럽다!
“당신의 근육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어요. 예쁜 암컷만 보면 흥분해서 소유하려고 날뛰던 어느 용사랑 달라요. 그리고 아주 정밀한 마술식처럼 감각에 대응합니다. 손톱을 세우면 그게 위협이든 아니든 피부의 솜털까지 경계에 들어갑니다. 능력치에 의존하는 요즘 세대 모험가들은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죠.”
“헤에~”
제법 그럴싸한 논리다.
그렇게 말해도 아동성범죄란 점은 변함없지만!
“그래서, 우리의 존잘남 사위께서는 무슨 일로 오셨죠? 이미 다 저질러놓고, 산송장이 된 장모에게 허락을 구하러 애써 찾아오진 않았을 테니까요.”
“일리나를 찾고 있습니다.”
“아아, 도둑고양이의 딸을 찾고 있었군요? 설마...?”
“아닙니다.”
“아직 얘기도 안 했는데, 찔리긴 하는 모양이네요? 탓하려던 건 아닙니다. 저도 엘브하임의 시간 일부를 그 좀도둑 집안에 빼앗겼으니까요. 으으. 제 남편에 이어서 존잘 사위까지...!”
“흠흠! 말씀처럼 도둑고양이의 피를 진하게 물려받아서 찾을 수 없거든요. 그래서 도움을 좀 받으려고 왔어요.”
“제 도움을요?”
“죄송하게도 아니요. 제 부하직원을 좀 조용히 동원하려고 왔습니다.”
나는 이해하지 못한 장모B는 놔두고, 그녀 옆에서 눈알만 굴리고 있는 요정을 돌아봤다.
일명, 현장교사.
요즘은 살만한지 온몸의 피어싱을 다 빼고 평범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실레시아입니다.”
“안 물었거든?”
“잊으신 게 뻔하기에 미리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상사에게 눈도장 찍는 습관은 사회생활의 기본이니까요. 멍청해서 마법을 못 쓰는 뇌근육 용사들에게 정령을 붙여주는 역할을 맡았던 현장교사 실레시아입니다. 현재는 엘브하임 님의 부재로 불안해진 정세의 안정화를 맡고 있습니다.”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곧 해고될 녀석이 참 애쓰네!
“그래서 일리나는?”
“......”
“모른다고 발뺌하진 않겠지? 너에게 그만한 권한은 있으니까. 내가 직접 조사하기 전에 불어.”
“알겠습니다.”
“흐음?”
대답하는 교사의 말투가 영 석연치 않았다.
상대는 배신의 아이콘.
동족들에게 신(神)으로 숭배받던 남편이 큰 것만 좋아한다는 이유로 반란을 일으켰던 여자니까.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아직 살아있다면 몽환의 숲에 있을 겁니다.”
“거긴 왜?”
“사랑하는 손자가 이모의 가짜 가슴에 해롱거리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독약 좀 먹였습니다.”
“나서스에게?”
“설마요”
“야! 너는 손자를 지키려고 조카에게 독을 먹이냐?!”
“안 죽였습니다. 일리나는 몽환의 숲에서만 자생하는 희귀한 해독초(解毒草)를 구하러 갔습니다.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둘을 떼어놓는 묘수...”
“너, 해고!”
“부당합니다...!”
판타지아나 페스티벌 차원에서 죽으면, 총장인 내가 몇 번이고 부활시킬 수 있다.
하지만 뽕은?
일리나가 객사해서 뽕이 실종된 사태만은 피하고 싶다.
“제발 무사하길!”
존잘 용사님은 예상 밖의 위기에 직면했다!